Title | 일곱 번째 칼럼 <프랑스의 공교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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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8-05-24 11:19 | Read | 576 |
본문
프랑스의 공교육
프랑스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공교육에 있어서 참 좋은 점이 많다고 생각되는 일이 많습니다. 당장 제가 다니고 있는 대학만 비교해봐도, 국립대학은 등록금이 한 학기에 300유로 중반 수준(약 40만원 대), 저와 같은 외국인에게는 파리에서 생각도 할 수 없는 저렴한 월세에 넒은 원룸을 우선 제공해주며, 각종 할인 혜택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새 철도 파업과 함께 마크롱의 학교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도 학교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고 이로 인해 많은 대학교들이 시험 일정에 차질이 생겨 교수들이 급급하게 과제로 대신 제출하도록 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학교에서 배운 Sociologie de l’école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공교육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마크롱의 학교 개혁은 사실 단순합니다. 대학교 1학년 입학생들의 높아지는 낙제율을 줄이기 위해 입학 시 기존 운으로 당첨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교에게 선발권을 주겠다는 겁니다. 사실, 지금껏 프랑스의 국립대학은 바깔로레아 자격증만 있다면, 누구든지 원하는 과를 지원할 수가 있었고 지원자가 많다면 뽑기 형식으로 자신이 지망한 순서에 따라 배치가 되는 이른바 “뺑뺑이” 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자라온 저에게는 뽑기가 아닌 실력대로 뽑겠다는 이 정책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좋은 바깔로레아 점수를 받았는데도 운이 없어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해 문의하는 학생들의 전화가 빈번하며 저로써는 이들의 억울함이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딴 사람이 당연히 원하는 과에 가야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다른 시각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사회 계층의 격차가 이러한 개혁으로 인해 더욱 더 공고해지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프랑스 공교육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그동안 프랑스에서는 대혁명 당시 생긴 이념을 중심으로 교육에 있어서도 기회의 확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교육에 있어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게끔 의무교육 범위가 점차 늘어나면서 공통 교육과정을 설립하였고 그와 더불어 고등교육에 있어서도 학업의 대중화를 위해 대학입학자격 취득률을 80%까지 올리기 위한 정책을 펼쳐 많은 학생들이 기본적인 Bac만 취득하면 원하는 공부를 선택해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랑제꼴을 들어가기 위한 일명 프레빠(CPGE)도 특정 학교를 제외하고 국비로 제공이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시행됨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으로 갈수록 부유층 집안의 학생들만 계속해서 고등 교육을 이어가는 추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대표적인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학교가 계급 재생산의 좋은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모든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모두에게 평등한 시스템인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자식보다 간부, 높은 직급의 자식들이 훨씬 더 많이 석사로 공부하며 프레빠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생각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모든 사람에 대한 평등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았을 때, 전에는 단순히 혈통 같은 것으로 세습되던 계급적 특권들이 더 이상 공개적으로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더욱 교묘하고 신중한 지위 상속 수단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고등교육의 ‘실력주의 시스템’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지배 계급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계급적 이해를 교육적 위계질서에 맡기고 사회 위계질서를 효과적으로 재생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종종 극소수의 사람들이 학교, 교육 시스템을 통해 사회구조에서 상승하지만, 이는 선진효과로써 피지배 계층들이 불평등하다고 느끼지 못하게끔 사회적 안정에 기여하는 것일 뿐입니다. 부르디외는 기본적으로 집안 내에 존재하는 ‘문화 자본’의 중요성에 대해 표현했는데, 가정에서의 고등 교육에 대한 기대, 부모의 학업적 도움, 관심 등이 종합적으로 자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집안에 대학을 나온 사람이 없다면, 그 자식도 대학을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랑제꼴과 같은 학교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스스로 내재화를 하게 됩니다. 문제는 학교와 같은 객관적인 구조가 방금과 같이 이러한 주관적 성향을 만들어내고 결과적으로 다시 계급의 차이에 따른 교육 기관이 구성되어 불평등한 현상이 계속해서 재생산된다는 점입니다. 사회의 불평등을 축소하는 역할을 해야할 교육이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 유지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게 되고 그중에서도 고등교육 시스템은 특권을 부여하면서 기존 사회제도에 대한 존경을 배양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뛰어난 인재들만 모아 특수한 목적을 가진 학교를 만들고, 여기서 졸업한 학생들이 많은 연구와 남다른 활약으로 국가 경제 성장의 동력에 도움이 되는 것은 누가 봐도 바람직한 일입니다. 여기에 대해 누구든지 실력만 갖춘다면 들어갈 수 있는 기회까지 준다면 따로 흠잡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지만, 프랑스 사회에서는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내재화하는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저건 다른 이의 길이야”라고 치부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있으며 공부를 연장하는 것이 아닌, 일찌감치 사회에 진출하여 돈을 버는 등 다른 방향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졌고 결국 지배 계층만 계속 이어서 좋은 학교로 진학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대학에도 학생들에 대한 선별권을 준다는 개혁에 대해 대학생 노조들은 우리야 말로 원하는 공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반 대학에서의 전공 선택만큼은 자신의 길이고 뺏기고 싶지 않다는 느낌으로 저는 받아들여졌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프랑스 대학생들의 이러한 주장은 정말 배부른 소리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운 좋게 원하는 과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거면, 그에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해야된다고 생각하지만, 성실하게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습니다.(2014년 기준, 최종적으로 졸업을 하는 인원은 평균 1학년 입학생의 27%뿐) 지하철 파업 때문에 다른 교통 수단이 있음에도 혹은 다른 방법이 있음에도 수업에 오지 않고, 재시험이 있으니 쉽게 본 시험을 포기하기도 하고 요리조리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들을 듣다보면 절실함이 상대적으로 부족해보인다고 많이 느꼈습니다. 이러한 풍토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여서 적당히 공부하는 것이 똑똑한 방식이라는 것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조금은 답답했습니다. 프랑스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프레빠와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는 오히려 개인이 다시 한 번 수능에 도전하기 위해 사비로 학원비를 충당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재수생에게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일은 한 푼도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선별적으로 학생을 뽑겠다는 발표에 대해 프랑스 학생들이 왜 이렇게 민감한 건지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과 비교해봤을 때 대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을 줄 세우는 현상이 그렇게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학 입학을 하는 한국에서는 사실 대입과 관련되어 정말 다양한 병폐들이 존재합니다. 특히 학생들의 잠재력을 보고 뽑겠다고 시행된 입학사정관제도는 공립고등학교에 비해 등록금 자체에서 8배 정도의 차이가 나는 자사고와 특목고에서 휩쓸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다양한 창의적 체험활동을 제공하기에 학생부의 두께와 질이 극명하게 나뉘게 되고 모든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학생부에 대해 도덕적으로 항상 갈등하게 됩니다. 실제 있는 그대로 작성하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부풀리기 위해 교사들에게 부탁하거나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 좋은 대학을 갈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거짓말을 통해 대학을 가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르디외는 프랑스 사회 내에서 주관적인 내재화를 통한 고등 교육 포기에 대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교 자체내에서 개인의 교육에 대한 기대 상승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교육에 대한 기대 상승이 되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장점은 ‘인터넷 강의’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상 프랑스에서는 학업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대부분 학교, 혹은 집에 있는 형제정도지 한국처럼 타인에 의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일이 잘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실제 학교 선생님보다 인터넷 일타 강사들이 훨씬 잘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며 종종 이러한 점으로 공교육이 무너지는 부작용이 있기도 하지만, 나도 가능성이 있다는 동기부여를 엄청 주기 때문에 이러한 인터넷 사교육 시장이 누구나 좋은 대학에 가보겠다는 소망을 품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크롱의 개혁 정책은 지난번 철도 파업에서 다뤘던 것처럼, 조금은 효율적인 측면으로 나라를 운영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학교 개혁도 마찬가지로 낙제자를 줄이고 학교의 효율성을 늘리기 위해 학생들을 줄세우겠다는 방침인데, 어떻게 보면 소수자, 약자로 볼 수 있는 이들에 대한 프랑스의 시선은 조금 남다른 것 같습니다. 동성애자에 대해서도 관대한 것처럼, 이러한 사회적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대해 몇 번씩 기회를 더 주고 같이 가려는 모습이 지금의 프랑스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교육에 관해서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기 어려운 만큼, 한국에서도 정말 많은 논쟁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 나라에 맞는, 또한 모두가 만족하는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정말 해결하기 힘든 문제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교육에 관해 또 다른 소개할 내용이 있으면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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