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세 번째 칼럼 <프랑스 우화와 한국 전래동화 비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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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8-03-28 11:53 | Read | 1,657 |
본문
현재 디드호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수업 중 ‘한국 고전’(Etudes classiques de la Corée)이란 과목을 수강 중인데, 한문으로 이루어진 짧은 글들 예를 들어 사자소학이나, 불교 경전에 적힌 짧은 우화들을 같이 해석하는 수업입니다. 한국에서 자란 저에게도 상당히 생소한 공부지만, 수강하는 학생들 수준도 높고 특히 가르쳐주시는 교수님의 학문적 깊이가 정말 깊어서 수강할 때마다 깜짝 놀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저번 수업 시간에 ‘십송률’(불교 경전의 일부)에 나온 우화 하나를 같이 해석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와 더불어 교수님께서 프랑스의 유명한 우화인 La fable de la fontaine를 추천해주셔서 읽어보고 흥미로운 점들이 생겨 이번 칼럼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수업시간에 다루었던 우화를 먼저 소개하자면, 두 마리의 수달이 큰 물고기를 잡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다 옆에 지나가던 여우에게 공정하게 나눌 방법을 물어보게 됩니다. 하지만 여우의 꾀에 넘어가 쓸모없는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은 수달들이 갖고, 여우는 자신이 불법을 아는 자이므로 몸통을 가져가겠다고 말하는 내용입니다. 동물들에 대한 사람이 정한 일반적인 이미지가 두 나라 비슷하게 형성된 것이 신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여우는 이 우화에서 꾀가 많은 역할로 등장하는데 이는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때에 따라 자칼(개와 비슷한 동물)이 여우와 비슷한 역할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자칼은 늑대와는 조금 다른 동물로 우리나라에는 없는 아프리카, 유럽 남부에 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여우 대신에 살쾡이(삵)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십송률 우화에서 주인공인 수달에 대해 언급하자면,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멸종위기종입니다. (프랑스에서도 한국처럼 멸종위기동물을 지정하여 국가차원에서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수달이 한국에서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프랑스에서도 여러 동화에서 나타나며, 많은 학생들이 알고 있어서 귀여운 동물은 어디서나 통한다고 느꼈습니다.
뭔가 얄밉고 민첩한 살쾡이의 이야기 속 이미지를 따옴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la fable de la fontaine은 라 퐁텐이란 프랑스의 시인이자 동화 작가가 쓴 동화집을 의미하며, 프랑스에서 초중고를 나온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프랑스 대표 동화집입니다. 고대 인도 문학과 이솝 우화에 영감을 많이 받아 1668년에서 1695년까지 발표한 시문으로(우리나라 설화와 같은 글 형식이 아닌 게 특이했습니다) 프랑스 언어의 시적 기능이 잘 살려진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읽어보면 한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으며 세태에 대한 풍자 느낌이 이솝 우화보다 훨씬 강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처음에 읽었을 때, 예를 들어 여우는 뭔가 꾀가 많고 늑대는 약간 바보스러운 모습들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동화와 라퐁텐의 동물들이 역할면에서 크게 다른 점이 없다고 느꼈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동화도 창작 동화가 아닌 이상 이솝 우화를 가져온 경우가 많고 라퐁텐도 이솝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이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솝 우화와 라 퐁텐 우화가 다른 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라 퐁텐 우화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그리고 이솝 우화의 “개미와 베짱이”와 비슷한 “매미와 개미”편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매미는 여름을 온통 노래만 불렀기 때문에 겨울이 왔을 때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먹을 것이라곤 파리 한 마리나 작은 벌레 한 마리도 없었다. 매미는 이웃 개미집에 배고픔을 호소하러 갔다. 새봄까지 연명할 얼마간의 곡식을 꾸어 달라고 간청하러 간 것이다. 개미에게 그녀는 말했다.
“8월까지는 동물의 신의에 걸고 꼭 원금에 이자를 합쳐서 갚겠어요.”
개미는 빌려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그의 단점이었다.
“여름에는 무엇을 했나요?”
하고 꾸러온 매미에게 말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래만 부르고 있었어요. 당신이 듣기에는 좀 언짢았겠지만”
“노래를 불렀다고요? 그것 참 좋군요. 그럼 이제부터 춤을 추어 보시지요.”
많은 동화들의 본보기로 평가받고 있는 이솝 우화는 작가에 의해 정해진 교훈이 미리 글로 나타나는 형식을 취합니다. 라퐁텐 역시 교훈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위에 나타난 “매미와 개미”처럼 열린 결말을 취하고 글이 마무리가 되는 글들도 많이 있습니다. 즉, 사람에 따라서 이 이야기를 읽은 후 여름에 미리 준비를 하지 않았던 매미를 비판할 수도 있고, 혹은 인정이 없는 개미를 너무하다고 생각할 여지를 남겨둔 채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넘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래동화와 라퐁텐의 우화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흥부 놀부, 콩쥐 팥쥐, 토끼의 간 등 대표적인 우리나라 전래 동화들의 가장 큰 특징은 선과 악이 분명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권선징악의 규칙에 따라 철저하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구분되어 마지막에 악이 항상 벌을 받음으로써 교훈을 준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라퐁텐은 항상 명확한 교훈을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전갈과 개구리’와 같은 라퐁텐 우화 속 이야기는 무슨 의도를 가지고 글을 적었는지 개인적으로 알아차리기 어렵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통 교육에 있어서 유교 사상에 기초하여 선을 항상 따르기 위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먼저 구분하는 게 어릴 때부터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선과 악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전래동화들이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왔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자신의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이 초중고부터 실시되고 있어 라퐁텐과 같이 독자에게 온전히 생각할 거리를 넘기는 동화가 프랑스 교육에 참 알맞은 동화집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대 창작 동화들을 조금만 살펴보면, 이제는 권선징악에 지나치게 치우친 구조가 아닌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다방면의 능력 계발을 할 수 있게끔 조금씩 추세가 변한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올바른 교육 방식인지는 감히 정하기 어렵지만, 둘 다 모두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이 좋기도 하면서, 깔끔하게 떨어지는 결말이 없이 애매하게 끝나는 게 싫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옛날의 호랑이가 나올 법한 그런 아득한 분위기의 한국 전래동화들이 저에게는 친근감있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동화라는 매체 하나만으로 다양하게 생각할 거리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재밌었고, 앞으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좋은 참고 공부를 했다고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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