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열 다섯 번째 칼럼 <인도 영화에 가무가 들어가는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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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8-07-31 11:24 | Read | 1,1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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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영화에 가무가 들어가는 이유
대다수의 인도 영화에는 인터미션(Intermission)에 가까운 춤과 노래가 들어간다. 희비(喜悲)를 가리지 않는 이 영화적 요소에 대해 필자는 항상 궁금하게 생각했다. 저 가무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 누가 저런 가무를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델리대학교의 특강 중에선 현역 배우로 활동하고 계시는 쿨지트 싱(K. Singh) 교수님과 함께 조별로 연극무대를 기획하고 연기하는 강의가 존재했다. 처음 한 달간 이론 강의를 수강할 때 따로 위와 같은 의문점에 대해 질문했고, 실마리로 작용할 개념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인도 영화․연극의 원형인 산스크리트 드라마(Sanskrit Drama)와 이런 예술 활동에 가무가 포함되게 된 이론적․실질적 이유에 대해 다뤄볼 예정이다.
1. 산스크리트 드라마
그리스 비극(Greek Tragedy)과 함께 극예술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산스크리트 드라마는, 전자와는 달리 정확한 탄생 시기를 짐작할 수 없다. 초기 산스크리트 드라마가 구전(口傳) 형식으로 전해지던 탓이다. 하지만 B.C 5세기에 산스크리트 문법학자로 활동했던 빠니니(Pāṇini)의 『Ashtadhyayi』와 까탸야나(Kātyāyana)의 『Varttika』를 편찬․해석한 B.C 2세기의 서적, 『Mahābhāṣya』에 그 존재가 짤막히 언급된 바 있다. 때문에 인도의 학자들은 『Mahābhāṣya』를 기반으로 B.C 5세기에 최초의 드라마가 등장했다고 추정한다.
산스크리트 드라마는 다양한 주제 – 사랑, 정치, 음모, 영웅담 등 – 를 다룬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킨 대표적 극작가로는 바사(Bhāsa)가 있는데, 비록 깔리다사(Kālidāsa)의 후광에 묻혀 대중적인 인지도는 크지 않으나, 라마야나․마하바라타와 같은 서사시(Epics)에 기반한 영웅담 및 설화․사랑 심지어 동화까지 드넓은 주제와 장르를 소화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다음에 언급될 산스크리트 드라마의 정형(定形)에 얽매이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2. 바라따 무니(Bharata Muni)와 『Nāṭya Śāstra』
B.C 3~1세기 사이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바라따 무니는 음악학․극작법 연구자로 ‘인도 연극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그가 저작한1) 저서 『Nāṭya Śāstra』 때문이다. 『Nāṭya Śāstra』는 행위 예술을 묘사한 6,000여 편의 운문과 극의 순서․무대의 구조․의복․화장․음악․연기와 몸동작 등 연극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 중에서 연극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 요소는 라싸(Rasa)였다.
산스크리트어로 라싸는 ‘맛’ 혹은 ‘본질’을 의미한다. 저서에서 바라따 무니는 라싸를 여덟 종류로 – 사랑(Śṛngāra), 기쁨(Hāsya), 경멸(Bībhatsa), 분노(Raudra), 동정(Kāruṇya), 용맹함(Vīra), 공포(Bhayānaka), 경탄(Adbhuta) - 분류했다. 극작법 학자 월레스 다체(W. Dace)는 라싸는 “심미적 기쁨에 의해 변모된, 극(劇)의 조화를 구성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이라고 해석했다. 즉, 라싸를 통해 극의 기승전결(起承轉結)에 감정의 고저(高低)가 조절되며, 이로 인해 관객을 향한 전달력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바라따 무니의 라싸는 단순히 연극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음악․춤과 후대 영화에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바라따나뜨얌(Bharatanatyam)․까타깔리(Kathakali)․오디씨(Odissi) 등의 지역 전통 무용에서 라싸는 아빈나야(Abhinaya)라는 형식으로 남아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전통 음악에선 경멸․분노․공포를 제외한 라싸의 요소들을 선율로 표현하는 걸 정석으로 삼는다. 『Nāṭya Śāstra』와 라싸의 등장 이후, 오늘날까지 영화와 연극에서 선보여지는 가무의 초기 형태가 잡혔다는 게 학계의 이론적 정설이다.
1) 작품의 방대한 자료량 때문에, 『Nāṭya Śāstra』는 공저(共著)된 작품이란 주장도 있다.
3.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한 학설
반면 학계의 일각에선 단순히 라싸라는 개념 때문이 아닌, 보다 실질․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가무가 포함된 산스크리트 드라마가 성행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찬드라굽타 2세와 깔리다사(Kālidāsa)가 공존했던 4~5세기2)를 태동의 시기로 본다.
당시 북인도는 찬드라굽타 2세가 다스리는 굽타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다. 찬드라굽타 2세는 비록 불교와 자이나교의 존재를 용인했으나, 힌두교의 전파를 꿈꾸던 독실한 힌두교도였다고 전해진다. 비록 대중들에게 힌두교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으나, 아쇼까 대왕이 선양시킨 뒤 거대한 종교 세력으로 성장한 불교를 넘어서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때마침 에프탈(Hephthalites)3)의 연이은 침략으로 인해 북인도 지역의 불교 교단들이 타격을 받자, 찬드라굽타 2세는 힌두교 포교를 위해 궁정시인이었던 깔리다사를 위시하여 보다 대중 친화적인 산스크리트 드라마를 퍼뜨린다.
당시 유행하던 산스크리트 드라마는 비장미․숭고미․신성함4)을 부각시키던 나따까(Nataka)였다. 하지만 궁정에서 사용하는 산스크리트어5)로 극작(劇作)되고, 주요 후원자들이 왕족․귀족이었던 탓에 앞서 제시된 일부 요소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간적인 부분들은 표현이 미흡하거나 억제되는 성향이 강했다. 나따까의 대척점(對蹠點)적인 장르로는 쁘라까라나(Prakaraṇa)가 있는데, 중산층․하층민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전자와 다르게 치정(癡情)․부(富)․속물적 권력처럼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주제로 하며, 당시 서민들의 언어였던 쁘라끄리뜨(Prakrit)로 대본이 작성되었다.
이전까지 학자․상류층들에게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산스크리트 드라마는 나따까였고, 쁘라까라나는 그저 서민들의 세속적인, 한 마디로 천박한 예술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찬드라굽타 2세는 쁘라까라나를 저열하게 – 동시대 지배자들과 비교 – 여기지 않았다. 쁘라까라나와 나따까는 중요한 교집합 – 극중의 문제를 해결하는 영웅과 해피엔딩 - 을 가지고 있었고, 조금만 보완한다면 세속적인 부분을 줄이고 힌두교의 교리․신화․개념을 자연스럽게 퍼뜨릴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등장한 혼합적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서사시 마하바라따(Mahābhārata)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극작품으로 만든 샤꾼딸라(Shakuntala)다. 궁정시인이었던 깔리다사의 손길을 거쳐 나따까로 처음 선보여졌으나, 수행 도중 성적으로 유혹당하는 현자․버려진 여아가 겪는 고생․[인세(人世)의 기준으로] 천한 여자와 대왕의 결혼처럼 속인(俗人)들도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다수 포진하여 당시로써 나따까 중에선 꽤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또한 이 시기부터 바라따 무니의 라싸에 의거한 가무와 무대형식이 다수 등장했다고 전해진다. 상류층과 고위층의 전유물에 가까웠던 산스크리트 드라마가 민중에게 전파된 찬드라굽타 2세의 치세(治世) 때문에, 산스크리트 드라마와 유사 예술 장르들에 가무가 추가되었다 주장하는 학설도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2) 깔리다사의 실제 생존 시기는 불분명하나, 그가 저술한 작품들의 등장시기와 비끄라마디뜨야(Vikramāditya)라고 불리던 왕의 밑에서 일했다는 기록 등을 토대로 찬드라굽타 2세의 통치 시절을 깔리다사가 존재했던 때라고 보는 게 정설이다.
3) ‘백훈족(White Huns)이라고도 불리는,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을 주 무대로 삼았던 훈족의 일계.
4) 나따까의 주인공들은 신 혹은 왕과 귀족이었으며, 주로 신화 속의 현자․우주적 섭리 등에 대해 다뤘다.나따까의 주인공들은 신 혹은 왕과 귀족이었으며, 주로 신화 속의 현자․우주적 섭리 등에 대해 다뤘다.
5) 산스크리트어는 계층에 따라 단어의 종류․문법적 구조 등이 판이했다.
4. 마치며
인도 영화를 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 적어도, 필자가 만나본 이들 - 은 영화 속 가무의 존재의의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극의 흐름을 해친다거나, 비극적인 영화에 일견(一見) 희극적이다 못해 우스꽝스러운 가무로 인해 조소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필자의 이번 칼럼이 인도영화 속 가무가 조금은 비중 있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요소임을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참고자료 출처:
인도 문학사(L.Renou, 세창미디어, 2004)
International Journal of English Language & Translation Studies(A.Ibkar, Univ. of Sebha,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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