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김찬희

안녕하세요, 한국외국어대학교 브라질학과 김찬희입니다.

저는 아너스 프로그램을 통해 2018년 1학기부터 1년 동안 브라질의 깡삐나스 주립 대학교에서 연수를 받고 인턴을 하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K-네트워크 리포터로 활동하면서 브라질에서만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지는 ‘브라질’과의 거리를 당기는 리포터가 되겠습니다!​
Title 여덟 번째 칼럼 <브라질 역사 도시, 오우루 쁘레뚜 (A Cidade de história, Ouro Preto)>…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8-05-21 13:04 Read 533

본문

 

4. 오우루 쁘레뚜의 역사A história de Ouro Preto

 

오우루 쁘레뚜의 원래 이름은 ‘Vila Rica[빌라 히까](부자 마을)’였습니다. 이 마을은1711년에 세워졌으며, 금 순환기인18세기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 후에는 미나스 제라이스와 상파울루의 통치자였던 Antônio de Albuquerque Coelho Carvalho의 이름을 따 ‘Vila Rica de Albuquerque[빌라 히까 지 아우부께르끼](아우부께르끼의 빌라 히까)’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D. João V에 의해 도시의 수호 성인이라 여겨졌던 ‘Pilar’를 기리기 위해 ‘Vila Rica de Nossa Senhora do Pilar’라고 다시 한번 이름이 바뀌게 됩니다.

 

1720년에는 미나스 제라이스 지역의 새로운 행정구의 수도로서 선정되었고, 1823년에는 포르투갈 왕실가가 브라질에 도착하면서 Ouro Preto라는 이름과 함께 도시로 발전하게 됩니다. 1839년에는 ‘Escola de Farmácia(약학 대학)’이 지어졌고, 1876에는 ‘Escola de Minas(미나스 학교)’가 지어졌습니다. 이 학교는 브라질에서 많은 광물 발견을 하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시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 마을을 찾는 이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우루 쁘레뚜는 1897년에 미나스 제라이스의 주도로 선정되게 됩니다.

 

금을 찾아 이곳으로 모여든 포르투갈 등의 유럽인들은 철학과 미술 등의 문화와 예술을 번성시켰으며, 바로크 양식(Barroco Mineiro)을 새로히 부활시켜 건축물뿐만 아니라 조각, 그림, 음악, 시 등 전반적인 문화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 도시가 현재까지도 문화적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우루 쁘레뚜는 금광으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 이외에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더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1789년에 이 곳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려는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운동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하였지만, 브라질의 독립운동의 첫 움직임이 이루어졌다는데 있어서 아주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운동을 이끌었던 찌라덴테스(Tiradentes)’는 다른 혁명을 막으려는 포르투갈 정부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브라질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존경을 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이며, 그의 이름을 한 수많은 거리와 마을들이 있답니다.

 

 

5. 오우루 쁘레뚜의 성당 As Igrejas de Ouro Preto

역사 도시 오우루 쁘레뚜에는 총13개의 구역(Distrito)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 중 저는 ‘Distrito-Sede’라는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오우루 쁘레뚜의 시내가 위치해 있는Sede에는 총18개의 크고 작은 교회와 예배당이 존재합니다. 대부분이 포르투갈 식민지 당시의 건물들이며 그 중에는 최근에 건설된 것도 약간 섞여 있습니다. 최근에 건설된 것은 반드시 도시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전통적인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모두 아름답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우선 그 중에 한 성당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1) Igreja Nossa Senhora do Pi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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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Igreja Nossa Senhora do Pilar


 

처음으로 소개할 오우루 쁘레뚜의 성당은 바로`Igreja Matriz de Nossa Senhora do Pilar[이그레자 노싸 세뇨라 두 삘라르]’입니다. 사실 원래 이름은 `Basílica Nossa Senhora do Pilar’이지만 편의상Igreja(성당)로 더 많이 불리는 듯 합니다. 이 성당은 오우루 쁘레뚜 내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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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성당의 내부

 

‘Igreja Matriz de Nossa Senhora do Pilar[이그레자 마뜨리즈 지 노싸 세뇨라 두 삘라르]’는 엄청난 양의 금으로 장식된 제단과 섬세하게 조각된 장식들을 지닌 전형적인 브라질식 바로크 건물입니다. 이 성당을 짓는데 사용된 금이400kg그램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성당 내부는 유럽의 어느 성당 못지 않게 화려한 모습을 자랑합니다.

 

성당 내부를 둘러보면, 복도를 둘러 싼 양 옆6개의 제단에는 당시의 사회적 단체, 조직들이 각각 표현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천장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데요. 어린 양 조각을 중심으로 복도에 중간에 서서 천장을 바라보면 십자가의 두 가지가 서로 바뀌어 보이는 시각적 효과가 연출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당을 방문하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이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되어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이 칼럼을 읽은 여러분께서는 후에 이 성당을 방문하실 때 한번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이 성당은1696 혹은, 1700년에 지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앙심의 회복이라는 명목 아래1712년에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성당의 이름 또한 후원자Pilar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그는Vila Rica (현재의 오우루 쁘레뚜)에서 가장 돈이 많고 유명한 후원자였으며, 성당을 짓기 위해 많은 조직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 노고를 기리기 위해 성당의 이름을Pilar라 지었고 사후에는 그의 명복을 기원하며 수많은 훈장을 수여하였다고 합니다.

 

 

오늘은 브라질의 역사 도시, 오우루 쁘레뚜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칼럼 내용이 다음 칼럼, 오우루 쁘레뚜 여행 가이드를 좀 더 흥미롭게 읽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 칼럼을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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