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한승희

안녕하세요? 한국외대 중앙아시아학과에 재학 중인 글로벌 K네트워크 리포터 5기 한승희입니다.
먼저 약 6개월간 독자 여러분들에게 중앙아시아와 관련된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
저는 주로 중앙아시아의 인문학적 요소들에 대해 글을 쓸 예정입니다.
현지에서 소식을 전하는 만큼 최대한 생생하고 흥미로운 칼럼으로 만나요~​
Title 아홉 번째 칼럼 <고려인에 대하여>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8-06-20 09:49 Read 741

본문

안녕하세요? 올해 가장 추웠던 날에 알마티에 도착하였는데 어느덧 벌써 무더운 초여름이 찾아왔네요. 여러분께서는 우리나라와 중앙아시아간의 접점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히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대표적으로 과거 실크로드를 통한 무역과 최근 의료, 에너지, 경제 분야 등의 협약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이외에도 다양한 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고려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오늘 칼럼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아마 전공자가 아니라면 학창시절 한두 번 듣고 지나쳤을 법한 단어일 텐데요. 그렇다면 고려인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없을까요? 고려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바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고려인의 뜻과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흔히 인터넷에 고려인을 검색해보면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동포 등으로 많이 설명되곤 하지만 사실 고려인의 정확한(국어사전) 뜻은 ‘주로 옛 소련 지역에 사는 우리 겨레’라는 뜻입니다. 중앙아시아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을 뿐 에스토니아나 러시아 등지에서도 적지 않은 수의 고려인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역사는 흔히 알려진 것보다 더 오래 되었습니다. 러시아 측의 사료에 따르면 1863년 조선 후기 식량난과 탐관오리 등을 피해 조선인 13가구가 두만강을 건너 ‘지신허’라는 제정러시아 지역으로 이주하였다는 공식 기록이 있습니다. 이들은 해외를 단순 방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으며 이주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고려인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들을 계기로 1869년까지만 하더라도 4,500여 명에 달하는 고려인이 이주하였다고 하는데요. 이는 1863년 이후 본격적으로 러시아 지역으로의 이주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많은 독립투사들이 항일운동을 위해 이곳으로 이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곧 소련 정부에 의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 당하고 맙니다. 그 이유는 바로 러일전쟁 때문이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주적인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의 외모가 너무나도 비슷하여 분간이 어려웠고 일본인들이 조선인으로 위장하여 간첩 활동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고려인들은 당시 소련 연방의 서기장이었던 스탈린의 명령으로 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 당하였고 현재까지 많은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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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이 강제 이주 후 처음으로 정착한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지역에 위치한 비석.

(출처: ebs세계테마기행 카자흐스탄을 가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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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강제 이주 경로(출처: 고려인이주15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하필이면 ‘고려’인일까요? 고려인 이주의 시작인 1863년은 고려가 망한지 약 400여 년이 훌쩍 지난 시기였는데도 말이죠.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영어로 ‘KOREA’인 이유와 같습니다. 당시 러시아 사람들은 이들을 ‘카레예츠’라고 불렀는데요. 이는 ‘고려’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렇다 보니 고려인들은 스스로를 조선인보다는 ‘고려 사람’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뒤로 고려인들의 발자취 속에서 조선이나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보다는 고려라는 흔적으로 많이 남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고려극장, 고려 신문 등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고려인에 대한 잘못된 상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제이주는 고려인만 억울하게 당한 것이다?

1937년 9월부터 11월까지 고려인들은 강제로 열차 짐칸에 실려 결국 허허벌판에 내려지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토굴을 만들어 그곳에서 그 해 겨울을 보낸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한 채 강제로 이주를 당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시 고려인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들이 강제 이주를 당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러시아 민족도 유산계급에 속했을 경우 가차 없이 유배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려인만 강제 이주를 당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고려인들은 아직도 농사를 짓고 산다?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어떤 이는 농사를 지으며 살 것이고 또 다른 이들은 다양한 직업을 갖고 사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루머는 소연방 당시 고려인들의 농업 생산량이 월등히 높았으며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예상합니다. 과거 어느 재단에서는 고려인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씨앗과 종자 등을 대량으로 보내주었으나 정작 그 혜택을 본 대상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로 고려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정보가 부족했던 탓입니다.

 

그렇다면 고려인은 소련 연방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었고 현재는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을까요? 예로부터 고려인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특히나 소비에트 연방에서의 고려인은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민족이었는데요. 당시 소비에트 연방은 고질적인 식량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벼농사’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고 관련 기술을 가진 민족은 당시 중국계 무슬림 민족인 둥간족과 고려인뿐이었습니다. 이에 많은 고려인들이 기술을 전수해주었고 그 결과 벼농사에 대한 생산량이 월등히 높아졌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고려인 노동영웅이 탄생했고 예컨대 ‘김병화 콜호스(당시 소연방의 농업 형태로 집단 농장을 뜻한다)’처럼 집단농장 앞에는 고려인의 이름이 붙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고려인은 소연방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활약할 수 있었으며 사람들의 인식 또한 매우 긍정적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소련이 붕괴되고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고려인들은 부지런함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는데 심지어 중앙아시아 현지인들에게 ‘고려인들은 모두 부자이다’라는 말이 항간에 생겨날 정도였고 고려인과 결혼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현지 규모 2위의 은행인 K사의 은행장, 국회의원, 고급 프랜차이즈 식당 K사의 창업주 등 다방면에서 고려인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고려인은 3세대에서 8세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존재하지만 이들 중에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랜 기간 이곳에서 생활하며 이곳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분명히 스스로가 고려인이라고 생각하며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 전통 춤이나 악기, 요리 등을 잊지 않고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외모와 말이 조금은 다르더라도 이러한 모습은 이들이 바로 우리의 동포라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고려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현재 고려인이 겪고 있는 문제들 중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비자 문제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자의 종류에는 A~F유형 그리고H유형이 있는데요. 주목할 것은 바로 H비자(2단계로 구분)와 F(6단계로 구분)비자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F비자의 경우 한국과의 왕래가 더욱 용이하고 그 기간도 상대적으로 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H비자의 경우 그 기간이 짧으며 다양한 취업 경로 없이 단순노동만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학생의 경우에는 고등학교를 졸업 후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하죠. 물론 각 비자는 용도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므로 여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고려인에게 주로 발급되는 비자에는 H유형(H-2비자의 명칭은 방문취업 비자)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미동포, 재일동포, 재중동포 등의 경우 주로 F유형(F-4비자의 명칭은 재외동포 비자)의 비자를 발급받는 것과는 매우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고려인들 또한 우리의 재외동포이지만 이러한 차이점이 고려인에게는 힘든 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입법부에서는 고려인 추방방지법에 대한 개정안을 2017년 발의하였으며 현재 개정이 진행 중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며 칼럼을 마치겠습니다.

 

이상, 알마티에서 9번째 칼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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