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일곱 번째 칼럼 <야쿠츠크의 미인대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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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8-05-28 12:20 | Read | 3,449 |
본문
“야쿠츠크의 미인대회”
야쿠츠크 북동연방대학교에는 미인대회가 자주 열린다. 학과별 혹은 단과대별로 주최되기도 하고 학생회 같은 조직에서도 주최하기도 하는 학교 행사이다. 학과에서 주최한다고 해서 작은 발표회 같은 규모가 아니라 수십개의 스폰서를 받고 홀을 대관하여 진행하는 꽤 큰 행사다. 한국에서는 미스코리아나 지역 미인대회 말고는 이렇게 작은 단위로는 미인대회를 열지 않기 때문에 처음 미인대회를 보러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놀랍기도 하고 거부감도 들었었다. 지금은2018 년인데(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의견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야쿠츠크에서는 여성을 상품화하고 미의 기준을 고착화시키는 미인대회가 학과 단위로도 자주 열린다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달 후 직접 참가할 기회가 생겨 2주간의 준비 프로그램과 파이널 쇼를 경험해보니 이것은 편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인대회가 미녀대회가 아님에도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은, 보통은 여자들만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녀를 같이 뽑는 경우도 있는데, 직접 참가해봤던 ‘Miss & Mister International’도 혼성이었다. 남자 참가자 7명, 여자 참가자 7명을 선발해 2주동안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짝을 지어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사실 “Miss & Mister International”(이하MM)은 이번이 처음으로 진행된 미인대회였다. 따라서 일반적인 미인대회와 기본적인 틀은 같지만 조금은 다르다. 예를 들면 보통 미인대회는 아무래도 외모나 몸매와 같은 미적인 부분도 결과에 크게 관여한다. 규모가 크고 입지가 있는 학과에서 진행하는 미인대회 같은 경우에 비키니 평가도 있을 정도다. 이런 말만 들었을 때는 정말 여기도 여성에게 강요되는 미적인 코르셋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MM은 이와 달리 외적인 부분보다는 ‘국제미인대회’ 타이틀에 맞게 자신의 고향과 그 문화를 잘 소개하는 것에 중점을 더 두었기 때문에 참가할 마음이 생겼었다.
또한 미인대회라고 해서 단순히 외적인 면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체력 등 여러 방면에서 팔방미인을 선정한다. 이처럼 여러 단계를 거치기 위해서2주 간 거의 매일 모여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첫 단계는 지식 테스트였는데, 세계사나 러시아 역사와 관계된 문항들 그리고 시사상식을 묻는 시험을 치렀다. 이 외에도 깊은 사고력을 테스트하는 어려운 문제들도 있었다. 두 번째는 체력 테스트였는데, 유연성테스트, 단거리달리기, 윗몸일으키기, 멀리뛰기 등 다양한 신체능력을 테스트했다. 건강한 신체도 평가 기준에 들어가는 점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 파이널 쇼를 위해서 워킹이나 말하기 연습, 표현력을 길러주는 특강들도 진행되었다. 특히나 워킹 같은 경우는 음악에 맞춰 무대에 올라야 하기 때문에 실제 모델 분이 오셔서 포즈나 워킹을 봐주셨다. 진짜 직업모델이 되지 않는 이상 모델 워킹을 해볼 기회는 거의 없을 듯 한데 이런 특별한 경험도 해볼 수 있게 되어서 신기했다. 그리고 온라인투표에 쓰일 프로필 촬영이나 전통의상 촬영 등을 위해 스튜디오나 협찬 가게에서 촬영을 했는데 이 또한 한국에서는 비용과 시간적인 측면에서 자주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이러한 특강들로 매일 만나는 와중에 동시에 파이널 쇼를 위해서 여러 스테이지를 준비해야했다. 첫 번째는 각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자신의 모국어로 자신의 국가에 대해 소개하는 스테이지였다. 예쁜 한복을 찾기 힘들었지만 이런 전통 의상들을 대여해주는 곳에서 한복을 빌릴 수 있었다. 한국 외에도 중국, 일본, 아르메니아, 인도네시아, 몽골, 타르키즈스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과 함께여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전통의상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야쿠츠크에도 한국을 아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이번 스테이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세계적인 한국의 위상과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소개할 공식적인 기회였기 때문에 어떤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지 고민이 많았었다. 앞서 칼럼에서도 설명했듯이 우선적으로 야쿠츠크에서는 한류의 인기가 엄청나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 영화, K-POP 등을 언급했고 동계 올림픽과 역사, 전통 등에 대해서도 간략히 소개했다. 특히 다른 미인대회에서1등 상품 부상으로 한국 여행티켓을 줄 정도로 최근 한국 여행의 수요가 높다고 들어서 직접 한국 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는 한국 여행을 당부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다음은 장기자랑이었는데, 각 참가자가 노래, 춤, 악기 연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장기를 뽐내는 스테이지였다. 자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취지에 맞게 민족 전통 춤을 추거나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는 굳이 전통적인 춤이나 노래를 하기보다는 현대적인 K-POP이 훨씬 인기가 많고 반응이 좋을 것 같아서 야쿠츠크에서 유명한 한국 노래와 춤을 준비했다. MM 준비 스태프들 중에도 한국어를 할 줄 알 정도로 한국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많아서 한국을 잘 모르는 친구들일지라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유명한 곡들을 고를 수 있었다.
다음은 테마에 맞춰 직접 의상을 제작해서 선보이는 ‘아방가르드’ 스테이지였다. 이 테마는 매 미인대회마다 달라지는데 예를 들어 ‘날씨’라는 테마가 주어지면 각자 구름, 태양, 번개, 눈 등을 표현하여 의상을 제작하는 것이다. MM의 테마는 ‘자국의 신화나 전설’이었다. 유명한 장군 같은 캐릭터를 표현한 의상도 있었고 전설 속에 존재하는 동물을 표현한 의상들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전설 중에 유명하고 ‘아방가르드’하게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가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구미호’로 정했다. 구미호의 꼬리를 구현해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실제 털천까지 구입해 최대한 싱크로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이 사실 정말 쉽지 않았는데 주위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아서 무사히 잘 준비할 수 있었다. 살면서 구미호 코스프레를 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덕분에 정말 특이하고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다음은 드레스와 정장을 입고 로맨틱한 커플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스테이지였다. 이 스테이지를 준비하기 위해서 드레스들도 몇 벌 입어보면서 한국에서는 웨딩드레스가 아니면 드레스를 입어볼 기회가 거의 없는데 외국처럼 프롬 문화라도 생기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화려하고 반짝반짝한 드레스들은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졌다. 쇼 당일 날 백스테이지에서 이렇게 여러 단계들을 정신없이 준비하면서 메이크업을 받는 동시에 머리를 손질하고 옷을 갈아입고 하는 즐거운 경험도 해볼 수 있었다. 2주 동안 힘들었지만 즐겁게 열심히 준비한 것들을 성공적으로 선보이고 마지막 시상식에 섰을 때는 후련하면서도 벌써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 선해서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직접 참가해보니 처음 미인대회가 열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생각했던 것들보다 훨씬 좋은 취지로 다양한 즐길거리와 경험을 선사해준 미인대회였다. 한국에서는 평생 경험해볼 수 없는 여러 특이하고 신기한 경험들뿐만 아니라 함께했던 많은 외국 친구들과 도움을 준 러시아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기에 MM에 참가한 것은 이곳 야쿠츠크에 와서 했던 수많은 선택들 중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참가 결정을 할 때 용기를 준 친구에게 정말 감사하다. 누군가 교환학생을 오거나 외국에 나가게 된다면 처음 해보는 것들을 많이 접하게 될 텐데, 한국에서의 내 모습과 주위 시선에 얽매이지 말고 뭐든지 우선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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