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세 번째 칼럼 <러시아의 여성의 날 그리고 여성 인권> | ||||
---|---|---|---|---|---|
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8-03-29 11:47 | Read | 1,258 |
본문
러시아의 여성의 날 그리고 여성 인권
1학기에 러시아에서 유학하는 한국인들은 새 학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장 큰 공휴일 중 하나인 ‘여성의 날’을 맞게 된다. 매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기념되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공휴일도 아닐 뿐 더러 다른 나라만큼 중요히 여기지 않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크게 기념하는 러시아의 여성의 날은 조금 특별하게 다가온다. 물론 ‘여성의 날’ 하나만으로 전체를 판단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겠지만, 이 차이에서 비롯하여 한국과 러시아에서 여성 인권이 어떻게 다른 지, 좀 더 확장하여 비교하며 살펴보려고 한다.
러시아에서 여성의 날은 1917년에 가장 큰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러시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2월 혁명은 1917년 2월 23일, 음력으로 여성의 날인 3월 8일에 시작되었다. 기본적인 인권조차 누리지 못하고 살던 제정 러시아 시대에, 비보르크 지구의 여성 노동자들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총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점차 더 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파업과 시위에 동참해 결과적으로 제정 러시아를 붕괴시키고 부르즈아 민주주의를 실현시켰다. 특히 2월 혁명에 뒤이어 일어난 10월 혁명을 통해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 특히 선거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따라서 러시아에서는 3월 8일 여성의 날을 여성의 권리 신장을 기념하여 여성들을 축하하는 의미로 중요하게 여긴다.
현재까지도 여성의 날에는 거의 모든 남자들이 주위 여자들에게 꽃을 선물하고 축하 메시지를 전한다. 길거리에서도 택시에서도 카페에서도 여성들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도 많이 한다. 특히나 3월 8일을 전후로는 향수나 화장품 등을 대대적으로 세일해서 판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본질적인 의미보다는 선물과 형식에 초점이 맞춰져 상업적으로 퇴색한 듯 하지만 그래도 일 년 중 하루라도 그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사실 한 편에서는 여성이라는 것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이 오히려 남성과 동등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 년에 하루 형식적으로 축하받는다고 해서 실질적인 여성 인권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러시아에서 여성의 인권은 어떨까?
‘러시아’하면 굉장히 마초적이고 거친 느낌이 들어서 남성과 여성 인권이 동등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물론 이 짧은 칼럼 하나로 사회 전반의 여러 방면에서의 여성인권을 다 살필 수는 없기 때문에 쉽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겠지만, 적어도 실제로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판단했을 때 러시아 문화는 여성을 존중하는 문화인 것은 분명하다.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인 차이를 인지하고 생활 속에서 이를 배려하는 매너가 기본적으로 배어 있다. ‘무조건적으로 똑같이!’를 강요한다고 해서 동등한 인권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야쿠츠크에서는 오히려 여성의 입김이 조금 더 세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나 권력 등에 정형화된 성역할이나 한계가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에서처럼 여성의 요직 진출에 있어 유리천장이 있다거나 임금 차이가 심하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있는 북동연방대학교의 총장도 여성 분이시다. 기업에서도 만약 사장이 남자라 하더라도 실제 경영이나 총 운영을 하는 부사장은 여자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정에서도 집안일은 엄마의 전유물이 아니며 가족구성원들이 다같이 나눠서 한다. 오히려 가모장적인 분위기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대학에서도 임신을 한 학생들에게 지원금을 주거나 남편과 함께 지낼 공간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기숙사에서 임신한 학생들을 본 경우도 꽤 있었다. 우리나라라면 누군가 임신을 했다는 소문만 들려도 여기저기 입방아에 오르내려 학업을 이어 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삶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분위기가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국가적인 정책이 사회 분위기를 견인한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현실적인 제도가 입법화 된 것인지 정확히 선후관계를 증명하기는 힘들지만 정부 차원에서 실효성있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러시아에서는 둘째를 낳는 경우 지원금과 집까지 주는 정책도 있다. 또한 육아휴직은 아이 한 명당 3년씩 쓸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해고당한다면 노동부에 신고하여 바로 복귀하고 배상도 받을 수 있어 실질적으로도 잘 보장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은 월급을 절반만 받는데, 이 나머지 절반으로 청년 인턴을 뽑아 빈 자리를 메꾼다고 한다. 육아휴직 보장과 청년 일자리 창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렇게 보장된 혜택과 좋은 환경은 조혼하여 임신과 출산으로 여성으로서의 기능을 다한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오히려 남성과 똑같이 하나의 주체로 보지 않고 여자로서의 기능만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분위기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선택에 따른 혜택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가적인 책임은 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입지와 생활 환경을 개선할 생각은 없이 저출산과 비혼에 대한 책임만을 여성에게 전가하고 강요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우선 임신과 출산, 결혼과 같은 기능과 분리하여서도 본질적으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사회 전반에서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 선행된다면 그 후에는 러시아처럼 이 분야와 관련된 복지를 개선하는 정책을 펴도 좋을 것 같다.
러시아에서의 여성의 입지는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잘 살펴볼 수 있다. 애초에 러시아는 여성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 많은 문학 작품의 여자 주인공에 투영되어 있는데, 특히 ‘예브게니 오네긴’ 이나 ‘안나 까레니나’처럼 주체적인 캐릭터가 많은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매스미디어나 문학작품에서 다뤄지는 여성상을 보면 모성애만 강조하거나 성상품화되고 수동적이며 보조적인 역할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입체적인 캐릭터나 다양한 여성상을 다루는 미디어도 하나 둘 등장하며 변화하고 있다. 특히 지금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인권과 젠더 의식에 대한 전체 구조적인 반성과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