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안병현

1년간 파리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을 글로 남기고자 리포터를 지원했습니다. 해외 거주한 경험이 전혀 없으며 자취 경험도 여기서 처음인 저에게 모든 것이 생소한 만큼 보고 느낀 그대로 칼럼에 적겠습니다.

칼럼은 파리 지역 탐구, 프랑스 문화 체험, 유학생 꿀팁 이렇게 3가지 큰 방향을 가질 예정이며 교환학생을 준비 중인 모든 학우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Title 열번 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12-26 14:45 Read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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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명품에 대해(1)-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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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오기 전, 고급 호텔 수영장에서 라이프가드로 일하며 여비를 모았었다. 호텔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정말 부유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어서 관련 잡지도 명품 관련 잡지로 수두룩했고, 수영 레슨비도 한 회에 10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비싼 곳이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물론 레슨의 질이나 호텔 내에서 판매하는 물건들, 다양한 컨텐츠들이 좋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높은 가격으로 받을 수 있는 이유가 최고의 럭셔리 호텔이라는 이미지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부유한 이를 상대로 한 명품 산업 전략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따라서 명품 브랜드로 유명한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된다면, 이러한 브랜드들에 대해 하나씩 관련 전시도 찾아가보고 매장도 방문해보면서 명품이 왜 명품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다. 그에 대한 첫 걸음으로 Yves Saint Laurent 전시를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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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관련포스터


저 포스터를 본 날은 독일로 여행을 가려고 공항을 가려던 중 집 앞 지하철 역 안에서였다. 개인적으로 나중에 명품 산업 브랜드에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었는데 생로랑 관련 전시를 파리에서 한다는 저 포스터를 보고 여행에서 다녀온 뒤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사실상 생로랑에 대한 내 첫 만남은 누나 화장품이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이 화장품에 열광하는지, 이러한 명품 브랜드 화장품에 사람들이 열광을 왜 하는 것인지 궁금한 마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생로랑에는 화장품 말고도 패션, 가방 등 다양한 물건을 취급하고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생로랑 화장품은 사실 디자이너인 이브 생 로랑과 큰 관련은 없다. 왜냐하면 이브 생 로랑은 주로 패션에 집중했던 디자이너였고 코스메틱 계열은 엘프 사노피라는 다른 그룹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 패션 역사상 큰 발자취를 남긴, 우리 누나 말고도 많은 이들의 애장하는 화장품 이름인 Yves Saint Larent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마음에 전시를 찾아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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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패션쇼를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 모습

 

전시장에 처음 들어가자마자 옷을 맡기고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가면 큰 텔레비전이 하나 놓여져 있다. 이 화면을 통해 이브 생 로랑의 그동안 최초이면서 파격적인 전시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는데, 이브 생 로랑은 정말로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은 디자이너였다. 그 중 하나가 시스루 룩인데, 1967년 페미니스트들은 브래지어처럼 여성을 억압하는 속옷을 태워버리자고 주장하며 여성 인권 신장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맞추어 이브 생 로랑은 19681월에 속옷을 입지 않은 채로 가슴이 다 비쳐 보이는 파격적인 시스루 룩을 선보였는데, 텔레비전을 통해 보이는 패션쇼에서의 의상은 정말 파격적이었다. 현재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입고 다니는 이 패션이 생각보다 꽤 오래되었다는 점도 신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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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인 패션 발자취가 탄생한 그의 작업실

 

전시가 열린 이브 생 로랑 박물관은 실제로 이브 생 로랑이 약 30년 동안 작품을 디자인하고 창작했던 이브 생 로랑 쿠튀르 하우스를 개조한 곳이다. 따라서 전시장 안에는 실제 그가 디자인을 하던 공간을 그대로 보존한 모습의 방도 구경해볼 수 있었다. 위대한 디자이너여서 책상에는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도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었다. 내가 쓰는 연필과 똑같은데 쓰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구나 생각하니 조금은 기분이 묘했다. 그가 생전에 보던 책들도 볼 수 있었는데, 중국과 일본에 관련된 책들이 꽤 책장 속에 있어서 신기했었다.(아쉽게도 한국에 관련된 책은 없었다!) 알고보니 이브 생 로랑은 프랑스가 아닌 알제리 출신으로 어린 시절을 남아프리카 오랑에서 보냈었는데 이러한 유년 시절 경험이 이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다양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이 탄생했었다. 1977년에는 중국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보이기도 했으며 민속적인 이국 취향의 유행을 선도하기도 했었다. 고고한 오트 쿠튀르 무대에 흑인 모델을 세운 최초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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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얼리에도 관심을 가졌었다.

                                                                              그림자 모양이 나비인 점이 인상적 


생로랑은 당시 우아한 것이 일반적이었던 패션 형태에서 벗어나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젊은 스트리트 감성을 도입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여성의 권리에 대한 시대적 흐름에 맞춘 정장 바지 등을 도입하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절대적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흐름도 읽어 반영된 제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상 패션에 있어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본 적도 없어서 전시를 찾아가고도 그냥 유명하다는 것만 알았을 뿐 이해하는데 조금은 힘들었지만 이러한 점들이 생 로랑이라는 브랜드를 높은 수준의 브랜드로 만들었다고 느끼게 되었다. 다른 브랜드들에 대해서도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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