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금정빈

안녕하세요! 한국외대 인도학과에 재학 중인 금정빈입니다. 17년 2학기에 인도 델리대학교로 교환학생을 오게 됐는데요! 
Global-K 리포터로서 저의 목표는 한국에서 문헌으로 다소 실감하기 어려웠던 인도 ‘문화’를 중심으로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 5개월간 머무르며 인도, 인도인의 삶을 직접 관찰해 전해드리겠습니다. :) ​
Title 열한번 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12-28 10:49 Read 524

본문

독립을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티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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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북부, 히말라야 아래쪽에 위치한 맥레오드 간즈(Mecleod Ganj)는 고산 1,800미터에 위치해 타 지역과는 다른 건물 양식과 문화를 가진다. 이 도시는 몇몇 사람들에게 히말라야의 작은 티베트로 불리기도 한다. 이는 중국을 떠나야 했던 티베트 난민들의 망명 정부가 들어선 애틋한 땅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한국인과 비슷한 생김새를 띤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했기 때문에 뉴델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건물 양식과 평화로운 도시 분위기를 즐기던 도중 한 포스터가 필자의 이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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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MISSING’이라는 포스터로 포스터마다 사라진 사람의 얼굴 사진이 있었고 사진 밑에는 나이, 이름에 대한 인적정보와 그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있었던 장소에 대한 것들이 적혀져 있었다. 필자가 인도에 생활하면서 인도인 친구, 인도인 교수님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티벳 사람은 친절하고 거짓말 하지 않는다.’라고 들어왔던 터라 착한 티벳 사람들이 무슨 일일까?’라는 궁금증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포스터 사진을 찬찬히 보니 나이든 어른도 있었지만 필자의 또래처럼 보이는 대학생 남녀, 심지어 청소년도 있었다. 한국 경찰서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수배범 포스터와는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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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MISSING 포스터를 지나쳐 근처에 위치한 주스가게의 벽화를 보면서 궁금증이 더욱 깊어졌다. 이러한 궁금증은 기념품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한 가게에서 조금이나마 해결될 수 있었다.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티셔츠, 가방, 모자에는 ‘SAVE THE TIBET’ 또는 ‘FREE TIBET’이라는 문구가 프린트 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맥레오드 간즈는 무력을 발휘하는 중국과의 분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있는 티벳 정부가 망명해 있는 곳으로 티벳을 정치종교적으로 이끄는 달라이 라마가 머무는 곳이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맥레오드 간즈에 위치한 TIBET MUSEUM도 방문해 보면서 여전히 진행중인 중국과 티벳사이의 분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보게 되었다.

 

티벳(Tibet)의 역사

국가로서의 티벳은 기원전 127년 얄렁 왕조의 설립으로 시작되어 3세기 동안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였다. 이후 821~823년 중국과 티벳 사이에 체결된 공식적인 평화협정에 따라 양국의 국경선이 구별되어 자신의 영토에서 행복하게 살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중국과 티벳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고 있을까?

 

- 중국 VS 티벳, 분쟁 발생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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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티벳 망명정부의 입장으로는 1945년에 중국이 독립국인 티벳을 침공한 이후 중국의 불법적 지배를 받아왔다는 입장을 계속 고수해오고 있다. 반면, 중국은 ‘700년 전 티벳은 중국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라는 이론을 통해 권리를 주장하며 중국과 티벳의 관계는 순전히 국내 문제라며 이 분쟁이 국제적으로 조명 받는 것을 꺼려하며 현재까지 분쟁이 계속 되고 있다.

 

- 인도 맥레오드 간즈에 자리 잡은 티벳인들의 생활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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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분쟁의 시작은 1949년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티벳의 국경을 넘으면서 시작되었다. 1911년에서 1950년까지 티벳은 외국의 부당한 영향력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모든 면에서 완전히 독립된 국가로 존재했다. 하지만 소규모의 티벳 군대를 패배시킨 중국군은 티벳의 반을 점령하고 중국정부는 "티벳의 평화적 해방을 위한 17조항의 협정"을 강요했다. 중국의 티벳 점령에 대한 저항이 특히 동부지역에서 심화하자 티벳불교 사원 파괴, 승려와 지역 지도자들을 감금하는 등 중국의 탄압은 극도로 강화된다. 이를 계기로 티벳인들이 민중 봉기를 일으키고 중국군이 무력으로 제압하자 라싸 지역에서만 87,000명의 티벳인들이 목숨을 잃고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렇게 현재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티벳인들은 인도 북부 히말라야 근처에 생활터전을 잡고 있다.

 

-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 된 ‘SAVE THE TI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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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6> 

1950년 티벳 봉기, 2008년 티베트 소요 사태(티베트 승려 600여명이 티베트 독립운동 49주년을 기념해 중국 정부에 대해 항의 시위를 했으나 중국 정부의 무력진압으로 사태 격화) 등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 되면서 이는 더 이상 티벳과 중국, 두 국가만의 분쟁을 넘어섰다. 즉 세계 각국에서도 중국과 티벳의 분쟁을 지켜보며 자신들만의 의견을 표출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일화로 2011년 영국 챔피언 리그에서 메시가 골을 넣자 축구 유니폼을 들어올리며 ‘FREE TIBET'을 보여주었다. 이 밖에도 미국 워싱턴에서 티벳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미국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필자는 맥레오드 간즈에 방문해 MISSING 포스터, 티벳 벽화, SAVE THE TIBET 문구가 적힌 티벳 기념품을 보면서 티벳과 중국과의 분쟁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필자처럼 중국과 티벳 분쟁에 대해 자세히 몰랐던 독자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티벳 민족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의 독립을 위해 티벳인들은 고군분투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림 출처

그림 2. Kasauli effect? 10 hotels lose power in McLeodganj, 70 on list, Shri Puri,

TNN

그림 5. 146th Tibetan Buddhist Monk Self-Immolates in West China, Associated Press, Christopher Bodeen


내용 출처

A Historical Overview of Tibet by Michael Van Walt Praag (http://www.tibetoffi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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