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여섯번 째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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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12-28 10:58 | Read | 684 |
본문
주제: 언어는 존재의 집이자, 언어의 한계는 자기 세계의 한계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자, 언어의 한계는 자기 세계의 한계이다.” – 비트겐슈타인
영국의 언어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사용이 우리의 정신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언어의 한계가 곧 사용자의 사고체계를 한정짓는다고 보았다.
이런 언어의 정의는 ‘한 사람이 제 2외국어를 구사하는 동안 그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해당 문화권의 것처럼 변하는 게 아닐까?’는 호기심이 들게 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독특한 포르투갈어 표현을 소개하고, ‘사용자의 사고체계에 영향을 주는 역할’로서의 의미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1. 상태동사Estar+ 전치사 com + 감정명사: 지금 ~한 상태다.
포어에서는 ‘estar(상태동사 be동사)+ 감정형용사’ 형태뿐 만 아니라, estar + com(전치사 with) 그리고 감정명사를 더하여 감정 및 느낌을 표현한다.
(나는) 바쁘다. : (Eu) Estou com pressa.
(나는) 머리가 아파 : (Eu) Estou com dor de cabeça.
(나는) 네가 그리워 : (Eu) Estou com saudade de você.
(나는) 배고파 : (Eu) Estou com fome.
(나는) 무서워 : (Eu) Estou com medo.
(나는) 더워/추워 : (Eu) Estou com calor/frio.
위 포어 문장은 ‘나는 지금 (이 순간) ~한 감정/느낌과 함께 있다.’ 정도로 직역해볼 수 있는데, 한국어에서는 주격조사 ‘는’ 다음에 오는 서술어가 주어의 움직임, 상태, 성질 따위를 직접적으로 수식하는 반면, 포어에서는 주어의 ‘일시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동사estar과 전치사 com에 연결된 명사가 주체를 간접적으로 수식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렇게 구조적 차이를 지닌 언어는 결국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용자의 사고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포어 사용자의 경우 주체와 감정의 연결성이 약한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보다 객관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나아가 ‘이런 식의 언어구조를 가진 브라질인이 한국인보다 자기인식능력(EQ의 한 종류)이 좋다.’ 라는 가설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Gallop에서 151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어제 하루 동안 느낀 긍정적인 감정 5가지, 부정적인 감정 5가지를 열거해보시오.’라며 자아인식능력을 수준을 조사한 결과, 총 국민 수 대비 위 테스트에 성공한 사람의 수의 비중이 큰 순으로 브라질은 공동 8위(52%) 한국은 공동 17위 (42%) 를 차지했다. 물론 조사결과가 가설을 입증한다고 볼 수 없지만, 적어도 ‘대체로 브라질인이 한국인보다 자기인식능력이 좋다.’라는 점은 사실로 밝혀진 셈이다.
사실 위 가설의 증명보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의의가 있었던 건, 포어를 배우면서 실제로 감정표현에 있어 좀 더 솔직하고 의연해지는 등 실제로 어느정도 내 성격도 변화했다는 점이다. (사실 브라질에 온 뒤 현지인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성격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런 성격의 변화는 중고등학생시절부터 국내에서 외국어학습을 하며 종종 느껴온 바이다.) 이로써, 우리가 외국어를 공부하는 목적이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에만 있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언어체계에의 적응과 함께 발생하는 사고체계의 변화경험을 통해 더 깊은 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자기자신의 내면적 개발이 가능하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 ‘미안 바빠서..’ 라는 변명은 그만! 그냥 솔직하게 Não estou animada. (별로 놀 기분이 아니야.)라고 말하는게 낫다.
우리나라 사람은 ‘바쁘다.’는 이유를 대고 또 받아주는 데 관대한 편이다. 나도 한국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이나 약속에서 ‘바쁘다.’는 말을 버릇처럼 쓰던 기억이 있다. 돌아보면 그럴때마다 은연 중에 ‘내가 너보다 바쁘다. (잘 나간다)’는 메시지로 상대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진 않았을까 걱정이다. 물론 (나의 기준에서) 정말 바쁜건 맞았지만, 감당안될 만큼의 일을 벌여놓고 끝내지 못한 것 역시 스스로를 과대 평가한 내 책임이지 않았을까.
포어에는 (주로 놀러가자는) 제안을 거절할 때 쓰는, 보다 참신하고 합리적인 표현이 있다. 바로 ‘Não estou animado(a).’로 직역하면 ‘신이 안 난다.’ 혹은 ‘기분이 안 좋다.’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브라질 친구들끼리 파티나 모임에 가기 전에 서로 갈 의사가 있는지 묻고 답하는 대화에서 자주 들어볼 수 있다.
A: Meninas, tem uma festa legal hoje a noite. Alguém está animada?
(애들아 오늘 밤에 재밌는 파티가 열린다는데, 누구 가고 싶은 사람?)
B: Estou.
(나 갈래!)
C: Não estou animada.
(나는 별로 갈 기분이 아니야.)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다. 유학 초기, 나는 현지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따로 오랜시간 공부해야했고, 누적된 피로때문에 파티에 가자는 제안을 자주 거절해야 했다. 그런데 “Desculpa, tenho muita tarefa.(미안, 숙제가/할일이 많아서..)”라고 말할 때마다 친구들은 알았다고는 하지만서도 어딘가 서운한 기색이 역력랬다. 이렇게 몇 번의 거절이 반복되면서 더 이상 친구들과의 사이가 어색해지는 게 싫었고, 어떻게 하면 완곡하게 거절할 수 있을 까를 생각하다 “Estou não animada.”(별로 기운이 없어.)라는 표현을 발견하게 됐다. 이 표현을 쓰면서 좋았던 건 “바쁘다.”고 단정짓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지금 (내 상태가) 기운이 안난다.”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아픈 건 아닌지 나에 대한 걱정을 해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요새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피곤하다. ‘고 하면, “좀 쉬어가며 해.”라든가 “뭐 도움필요 한거 있으면 말해”처럼 위로 섞인 반응이 온다. 또 사적인 일이나 고민때문에 우울한 경우, “왜 기운이 없어?”라는 친구의 물음에 답하다보면 한 두시간짜리 고민상담으로 이어지기도한다.
이처럼 나와 뭔가를 함께하길 제안하는 사람들에게 “바쁘다.”는 한 마디로 대화가 단절되고 상대방과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것 보단, “기운이 없어.” 혹은 “신이 안나.”라며 솔직히 기분을 털어놓음으로써 추후 상대방과 공감을 나눌 수 있는 대화를 전개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고, 더 인간적이다. 바쁘다는 말을 달고사는 한국인에게 이러한 깨달음은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앞으로는 누군가의 제안을 거절할 때, ‘지금 놀러 나갈 기운이 아니다.’라며 조금이라도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고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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