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김주형

반갑습니다~ 실물이 부엉이를 꽤 닯은 브라질학과 김주형입니다.

우리나라와 정확히 지구 반대편에 위치해 시간마저 반대로 흐르는 브라질은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문화와 사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양국 간 여러 분야의 문화요소를 비교하며, 해외 경험이 전무한 제가 이 브라질이라는 국가에서 어떻게 적응을 하고 글로벌 인재로서 어떤 자세로 타문화를 수용해야 하는 지를 생생하게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Title 세번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9-22 14:03 Read 644

본문

문화적 차이와 다름을 수용하는 자세

 

안녕하세요^^ 한 달 만에 인사 드립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개강한 지 한달 정도 지났겠네요. 여름 날씨도 슬슬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여기는…… 계절이 한국과 정반대라서 이제 겨울이 끝나고 여름이 본격적으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겨울 햇빛도 따갑다고 느꼈는데 여름은 정말 상상도 못했던 더위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까맸던 제 피부는 더욱 까맣게 변했습니다. 1년 뒤에는 얼마나 타 있을 지 걱정되지만 그래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밖에 나가 젊음을 만끽하고 싶은 이 곳이 바로 브라질입니다. 여러분도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 그럼 이번 칼럼의 주제에 대해 설명드릴 텐데요. 이번 칼럼의 주제는 바로 문화적 차이와 다름을 수용하는 자세입니다. 천연자원이 없어 외국과의 교류가 무척 중요한 우리나라의 특성상 한국인 만큼 외국어 교육에 열중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죠. 비슷한 문화를 가진 아시아권 국가의 언어뿐만 아니라, 아예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서양권 국가들의 언어까지 배우느라 한국인들은 참 고생이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 같은 교환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온 교환학생들이 별다른 공부도 하지 않고 여기 브라질에 와서 포르투갈어를 마치 자국어처럼 능숙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외국어를 배우는 경우가 흔할 지는 몰라도 다른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배우는 경우는 드물죠. 이 때문에 저 또한 이곳에 와서 한국이라는 색안경으로 브라질이란 세상을 보며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할 뻔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유학 생활이 제게는 아주 값진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자기주장 강한 고집불통으로 유명했던 제가 매일 새로운 상황들을 겪으며 스스로 바뀌고 있죠. 물론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기름지고 짠 음식, 느려터진 인터넷, 질서가 없는 생활습관, 답답한 교통 시스템 등 모든 것들이 불편했고 제게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브라질 사람들은 저와 다르기 때문에 제가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면 반대로, 이건 아니지 않나 싶은 상황에서도 제가 어떻게 그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법도 많이 배우고 있지요. 따라서 이번 칼럼에서는 브라질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어떻게 다르고, 또 우리는 그 차이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 제 스스로 고민했던 것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 한국인의 이타심 vs 브라질인의 이기심

 

일단 가장 먼저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입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가 사고방식의 차이를 유발하기 때문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서양의 차이를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로 나누어 생각하듯이 한국과 브라질도 이타심과 이기심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조직 내에서 한국인들은 나와 타인의 관계를 중시하며 조직을 개인보다 상위 개념으로 보는 반면, 브라질인들은 나 자신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이 조직보다 하위에 있지 않습니다. 대학교 강의실에서의 학생들의 모습을 예로 들까요? 한국에서 강의를 할 때, 질문을 하는 학생 수는 브라질보다 훨씬 적습니다. 때로는 질문을 하더라도 매우 조심스럽거나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언제든지 질문 사항이 생기면 교수님의 말을 끊어서라도 당당하게 질문합니다. 질문을 하는 목소리의 데시벨도 한국보다 훨씬 크구요. 그 학생의 질문 때문에 수업의 진도에 차질이 생기거나 수업마감시간이 좀 지연 되도 누구 하나 불만을 가지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한국인들은 단합이라는 미덕을 통해 많은 역경을 극복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는 단합에 반하는 행위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으로 치부될 때가 많죠. 하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이 개인을 경시한 집단주의를 맹신하는 탓에 발생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위와 같이 강의실의 모습을 예로 들겠습니다. 대부분 수업에서 궁금한 점이 있어도 당당하게 질문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걱정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이걸 모른다는 사실을 남들이 안 좋게 볼 까봐혹은 내가 질문을 함으로써 수업시간이 늦어지고 남들이 그것을 싫어할 까봐라는 걱정입니다. 지식의 전달이 가장 중시되어야 하는 교육 현장에서 자신에 대한 남들의 시선이 우선시 되고 있죠. 또한 모두가 수업시간이 늦어질 것을 걱정한다면 결국 전체적으로 아무도 충분히 배우지 못한 채 시간만 낭비한 꼴이 돼 버릴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의 집단주의는 타인과 공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어 강한 시너지 효과를 내지만, 종종 특정한 상황의 핵심을 놓쳐버리는 경우 또한 많습니다.

 

반대로 브라질에서 생활하다 보니 개인주의, 이기심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제가 머물고 있는 숙소의 회의 때마다 많이 느끼는 부분인데요. 회의는 전체적으로, 공동으로 모은 생활비로 사고자 하는 물품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내고 토의를 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첫 회의에서 놀랐던 점은, 모든 개인이 남들의 수요나 효용과는 관계가 없는데도 순전히 본인이 희망하는 물품을 구매하길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이었다면 남들의 질타를 받을 행동이었기에 홀로 외국인인 저는 난 상관없다고 하며 묵묵히 있었죠. 하지만 이런 개인 플레이 때문에 회의가 산으로 가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본인의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설득하려 서로 노력합니다. 그러면 상대방 또한, 본인의 희망사항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욕구도 존중해주죠. 한국처럼 정치적 역학관계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되는 경우와는 많이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결국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단 한 사람의 승자만 나왔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가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개인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패턴이 시간이 갈수록 숙소 구성원 간의 소속감을 단단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비록 결론을 도출해내는 과정은 복잡했을지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다수결에 의해서 크게 손해를 보는 소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한다는 면에서 개인주의, 이기심에 관한 저의 관점이 크게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유교적 상하관계

 

유학생활을 하신 분들이라면 아마 초기에 본인보다 연장자인 외국인을 대할 때 많이 어색한 느낌이 있었던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지배적인 유교정신에 따라 연장자, 상급자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존댓말을 쓰는데 외국어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물론 존중의 의미를 표하는 호칭이나 서술어 등은 종종 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말 만큼 상대방에 따라 문장 구조와 길이가 획기적으로 변하는 언어는 찾기 힘들 것입니다. 언어뿐만 아니라 행동 또한 많이 변하죠. 가족들과 밥을 먹을 때는 집의 가장이신 아버지가 먼저 한 술을 뜨셔야 다른 사람이 식사가 가능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연장자가 먼저 자리에 앉는 등 이런 유교적 상하관계 문화는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도 브라질에 오고 나서 초반에는 친구의 부모님과 같은 연장자를 만날 때면 최대한 예의 바른 표현을 쓰려고 노력했지만, 부족한 실력 때문에 말만 버벅거리다가 연습이 많이 필요한 외국인으로 인식되는 경험이 아주 많았습니다. 또한 저와 같은 학교로 온 후배가 캠퍼스에서 저를 보고 등 굽히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브라질인들이 저게 뭐 하는 건가하는 눈초리로 보는 바람에 여기서는 평범하게 지내자고 서로 약속한 적도 있지요. 브라질에서는 사회적 교육이 필요한 어린이가 아니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서로 큰 형식 없이 편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또한 서로 예의범절이 어느 정도는 필요한 교수와 학생, 혹은 직장 상사와 부하 등의 관계에 있더라도 그 국한된 범위를 벗어나면 친구처럼 친근하게 지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죠.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의 유교적 상하관계 문화가 오히려 오늘날 한국사회를 경직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재 한국인들은 상하관계에 기초한 가족주의를 추구하는 모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에 대한 구분을 확실히 하는 동시에 가족과 같은 친밀감을 통해 최고의 단합을 끌어내는 것을 원하죠. 문제는 그 친근해지는 과정에 대한 부담을 하위 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진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학 문화와 직장회식 문화를 예로 들어봅시다. 한국의 대학 신입생들은 입학하자마자 오리엔테이션이라는 학교 행사에 참여해 선배들과 첫 만남을 가집니다. 하지만 추억을 만든다는 명목 하에 본인이 원하지 않는 장기자랑과 음주를 강요 받는 경우가 많죠. 또한 학과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인원은 소위 아웃사이더가 된다는 은연 중의 우려도 만연합니다. 선배들과 친해지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직장회식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 회식을 한다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고된 하루를 마치고 화목하게 술 한잔 한다는 개념이 아닌 직장 상사의 시중을 드는 강압적 문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물론 이러한 문화들을 개선하고자 하는 사회적 움직임들이 많이 늘고 있긴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직 우리 생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위의 예와 같이 상하관계에 기초한 가족주의는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양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의사소통이 일방적인 강요로 변질되어 버리죠. 결국 아랫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며 대접을 받으려는 상위 계층과 그런 상위 계층을 모셔야 하는 하위 계층 간의 갈등이 발생하고, 이 패턴이 반복된다면 그 사회는 경직되고 분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 유학생활을 통해서, 누군가의 윗사람으로서 혹은 아랫사람으로서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고 노력해야 그 사람과 진실된 교류를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선입견을 없애고 처음부터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브라질 사람들과 일한 다는 것 : 책임과 제이칭뉴(Jeitinho)

 

평소 브라질에서 일하는 한국 분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책임입니다. 서로 생각하는 책임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업무 상의 갈등이 많이 일어나곤 하지요. 대체로 브라질 사람들은 한국인들과는 달리, 자신이 속한 조직의 문제와 자기 자신의 책임 간에 필연적 연관성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서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국의 경우 그 부서를 책임지고 있는 부장을 질책하지만 브라질의 경우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발생시킨 특정 직원의 책임이라 생각하죠. 또한 한국의 직장생활에서는 비록 본인의 업무가 아니더라도 조직의 필요에 따라 기꺼이 그 일을 하는 희생정신이 미덕으로 여겨지지만, 브라질의 경우 자신에게 할당된 업무를 넘어서는 노동은 부당한 처사이며 사소하게 초과된 업무더라도 언제든지 법적 문제로 직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브라질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겪는 주요 애로사항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훗날 제가 통역 인턴을 할 시, 단순히 메시지만 번역하는 일뿐만 아니라 이런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다리 역할 또한 충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식의 책임 부여 방식이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낯선 개념이어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을 야기할 가능성이 충분히 높기 때문입니다. 평소 한국의 인사 관리 시스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그들이 맡고 있는 직급에 대한 책임이 그저 부담이 아니라 조직 내 역할의 중요성을 의미한다는 것 또한 충분히 각인 시켜야 하죠. ‘한국인들은 당신이 우리 조직 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때론 당신의 도움이 절실이 필요하다라는 식의 연민과 동정을 자극하는 호소도 함께 이루어진다면, 그들에게도 문화적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인들이 낯설어할 수도 있는 브라질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인 제이칭뉴(Jeitinho)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이칭뉴란 우리나라 말로 유도리, 융통성이라는 뜻으로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국의 관시와 비슷한 맥락이 있죠. 한 마디로 어떤 일을 그때 그때 융통성 있게 잘 넘기는 행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체로 제이칭뉴는 비일상적이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고의적으로 규칙, 규정, 절차를 무시하며 단기적인 해결방향을 도출합니다. 보통 이기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지며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기술을 주로 사용합니다. 너무 지나치게 사용하면 사회적인 부패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브라질 사람들이 일상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사회적 규범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제이칭뉴는, 모든 일을 계획에 의해서 명확하게 처리하는 한국인들의 성향과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브라질에 진출해 있는 한국의 LG, 삼성, 현대, 기아 등의 대기업들과 그 하위 계열사들과 같이 전체적인 경영 시스템과 인사관리 시스템이 매뉴얼로 정해져 있는 곳에서는 위험도가 더 높아지죠. 따라서 브라질 현지 직원들과 평소에, 어떤 분야의 업무에서는 제이칭뉴가 허용되고 어떤 분야의 업무에서는 반드시 객관적인 매뉴얼을 따라야 하는지 의사소통이 충분히 되어 있지 않다면 기업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브라질이 사회적, 정치적 환경이 급변하기 쉬운 환경임을 고려한다면 제이칭뉴의 성격을 띤 현지인들의 업무처리 방식도 존중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여기서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느꼈던 한국-브라질 사람들 간의 가장 큰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 해봤는데요. 지구 저 반대편에 위치하여 사소한 것 하나부터 너무나 다른 문화를 가졌기에 이 곳에 적응하는 게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차이를 이해하며 그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성장동력이라 생각하면 저절로 다시 힘이 나기도 합니다. 또 좁은 우물을 벗어나 세상을 좀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죠. 글로벌 인재가 되길 꿈꾸는 외대 여러분이라면, 학과에 관계 없이 이 주제에 대해 스스로 진지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음 칼럼으로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Tachu(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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