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허유중

안녕하세요~ Global-K 4기 리포터 중앙아시아학과 허유중입니다. 저번 3기 리포터에 이어서 이번 4기 리포터로 여러분을 찾아뵙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6개월 동안 카자흐스탄 교환학생으로 알마티에 머무를 예정인데요.

 

3기 때 보여드리지 못했던 다양한 주제들을 이번 4기 활동을 통해 여러분에게 선보이려 합니다. 

 

광활한 영토와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카자흐스탄.이제 다시 한 번 길을 열어보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Title 열여섯 번째 칼럼 (1)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8-01-26 10:36 Read 806

본문

 

중앙아시아 탐구 3부작

3편 실크로드- 과거와 현재

 

중앙아시아 탐구 3부작 중 마지막 편으로 전공 강의 시간에 중앙아시아의 역사라는 수업을 들은 것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계획했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화를 소개할까아니면 이슬람화를 소개할까고민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의 고대부터의 역사를 토대로 이 두가지 주제를 소개하기란 정말 내 역량으로도 부족하고 내용도 다소 복잡했다. (적어도 필자에겐) 대신 이들보다 강의 시간 비중은 작지만 중앙아시아라고 하면 꼭 나오는 것에 대해 3부작 마지막 칼럼에 소개하기로 결심했다. 그렇다. 이번 칼럼의 주제는 실크로드이다. 실크로드의 과거와 현재에 관해서 여러분들께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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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길이라고 하면, 사막위로 낙타에 짐을 가득 실은 채 캬라반들이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움직이는 그런 이미지가 많이들 떠오를 것이다. 동서양 문명&무역 교역로를 의미하는 관용구로 쓰인 이 비단길, 실크로드라는 단어는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라는 독일의 지리학자가 이 교역로를 연구하던 도중에 가장 많이 거래되는 품목이 비단이었다는 점을 착안해서 만들어진 단어다. 독일어로는 '자이덴슈트라쎄(Seiden Straße)', 이 역시 비단길이라는 의미이다.

 

강의시간에 배운대로, 이 자이덴슈트라쎄 혹은 실크로드라고 명명된 비단길은 3개의 길 중에 오아시스와 사막으로만 이루어진 길을 칭한다. 그래서 3대 비단길로 알려진 해상 실크로드와 초원 실크로드는 포함하지 않지만 실크로드라는 관용구가 널리 쓰이는 만큼 이 칼럼에서는 실크로드라 함은 이 3대 교역로를 모두 칭하는 것으로 편의상 정하도록 하겠다.

대체로 이 실크로드 교역로는 중국의 장안을 기점으로 이탈리아의 로마까지를 종점으로 하는 무지막지한 길이를 자랑한다. 그만큼 고된 여정이며 시간과 비용도 많이들 뿐더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무역로이다. 좁은 의미로서의 실크로드(여기서는 사막길을 의미한다.) 역사는 한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가는 길은 초원길이 주로 쓰이는 루트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나라의 위에는 흉노가 있었는데 그 흉노가 초원길을 장악하고 있어서 흉노의 대선우에게 통행세를 내고 통행증을 받고 지나가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한나라는 한 무제가 장건, 곽거병 등을 통해 서역 개척 및 흉노 정벌에 나서기 전까지는 국방력이 흉노에 비해 열세였다. 그 당시에도 어마어마한 인구와 땅덩어리를 가진 중국이 유목국가에 굴복하는 상황이 상상이 안되지만 어쨌든, 한무제 이전까지는 계속해서 손실을 감내하고 초원 교역로를 통해 무역을 했다. 한 무제 이후에는 사막길을 개척해냈고 파미르 고원과 천산산맥을 지나가는 천산남()로 및 천산북()로를 통해 중앙아시아 지역과 교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당나라 시대에 이르렀고, 중국의 왕조 중 가장 번영하는 시기를 구가하게 된다. 중국 역사가들에게 중국 역사상 가장 손꼽히는, 번성했던 왕조를 물어본다면 열에 여덟은 당나라 때라고 답할 정도라고 중국 문화 교양시간 때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당나라의 수도 장안은 동서 문명 교류가 만나는 국제도시였고, 국방력도 강대했으며 주변 유목, 토속 국가들을 제압해 나감에 따라 영토 또한 한족 국가로서는 최대의 크기였다. 사실상 그 당시 세계 1위의 국가였던 셈이다. 사막길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던 당나라도 삽질(?)을 한번 하게 된다. 이미 사막길은 당나라에서 주도하는 권한과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진 왕조 교체기 싸움에 끼어든 것이다. 결국 파미르 고원에서 벌어진 탈라스 전투에서 대패하게 되고 당나라는 사막길의 주도권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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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의 이슬람 국가들이 사막길과 그 북쪽의 초원길을 장악하게 된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역사는 실크로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전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유럽과 중동으로 가는 길이자, 아시아로 가는 길, 태평양으로 가는 길은 이곳을 중심으로 한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의 고대 왕조와 도시들은 유서 깊은 실크로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들이 많다. 그 중심 중에서도 중심은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히바 등이었다. 어릴 적 우즈베키스탄의 이러한 도시들을 갔을 때 동방과 서방과는 다른 이질적인, 그렇다고 중동과 같은 것은 또 아닌, 그런 건물양식과 음식, 사람들의 모습에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경험을 했었다. 수많은 민족들이 모여 살면서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는 모자이크 모델을 갖춘 곳인 듯 하면서도, 한데 섞여서 이국적이고 전혀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용광로 모델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이전에 갔었던 오트라르 역시 실크로드의 중심도시이자 관문이었고 내가 1년 동안 살았던 알마티 역시 중심 교역로는 아니었지만 간선으로써 캬라반들이 지나가는 도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카자흐스탄에 왜 실크로드 관련 도시나 유적이 그렇게 많지 않을까?’에 대한 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북부에 속하기 때문에 실크로드 고유의 사막길이 아닌 초원길이 주가 되었을 것이다. 사막길로 교류하기 이전에, 사막길에는 오아시스라는 휴게소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징검다리 식으로 횡단이 가능하다. 반면 초원길은 유르타나 게르와 같은 임시거처를 설치하고 주변의 강이나 호수에서 물을 구해오면 그만이다. 대상단이 사막길과 초원길을 동시에 가로질러 횡단한다고 할 때, 머무를 곳과 마실 물이 필요한 곳은 사막길 밖에 없고 이런 사막길 중간중간에 상단을 위해 휴게소가 되는 도시들이 있으니 그 도시들의 역사가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사마르칸트, 부하라와 같은 도시들이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환학생 1년을 하면서 카자흐스탄에 불만이었던 점은 도무지 자연경관 빼고는 인문, 역사적인 도시가 다른 중앙아시아 지역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내 어리석은 시선으로는 카자흐스탄이 우즈베키스탄에 비해 빈 깡통과도 다름없는 술에 물탄 것 마냥 희미한 정체성으로만 보여졌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듯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해하려는 내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이 글을 보는 학우분들이 있다면, 카자흐스탄에 가서 공부하실 때 이 점 잘 숙지하시고 가셔서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물론, 자연경관이 좋은 곳은 기대 이상으로 많아서 여러 가볼 곳이 많다는 장점도 있다..

 

실크로드 중 사막길의 역사를 간단히 알아보았다. 초원길은 사막길이 개척되기 이전에 사용되던 교역로로써 그 역사는 가장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바닷길은 대량 물류수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고 대항해시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활성화 되었던 루트였다. 이를 고대 해안 도시들로부터 잇따라 그 증거를 찾아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한반도의 삼국시대 때 신라에 중앙아시아식 유물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울산 부근에 위치한 항구에서 해양 실크로드를 통해 온 아라비아-중앙아시아 상인들과의 교류는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며 백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고려시대의 개성 부근에 있던 벽란도항이 국제 항구로 여겨졌던 것 또한 중국과 일본에 대한 대외 무역뿐만 아니라 해양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의 교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공학과를 들어오기 전까지 실크로드가 단순히 사막을 건너는 무역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전공 강의 시간에 초원길과 바닷길이 있었다는 사실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과거에 대한 실크로드를 알아보았으니 이제 현재의 실크로드에 대해 알아볼 차례이다. ‘현재에도 실크로드가 존재할까?’라고 자문해봤을 때, 필자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교통이 그 때와는 달리 월등히 발달한 현대사회에 실크로드 따위는 아무래도 과거의 유물이자 관용구 같기도 했다. 반대로 유라시아 전역을 걸친 도로 등을 고려해보면 그게 현대사회의 실크로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스로 현대에도 실크로드가 있다.’ 라고 자신하게 된 계기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1학기가 종강하고 찌는 듯한 여름이었다. 필자는 모 대학의 모의유엔에 대사단으로 참가하게 되어서 한창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주제가 마음에 들어서 한번도 경험해보지도 않았던 모의유엔에 대사단으로 덜컥 참가하게 되었는데, 주제는 이것이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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