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허유중

안녕하세요~ Global-K 4기 리포터 중앙아시아학과 허유중입니다. 저번 3기 리포터에 이어서 이번 4기 리포터로 여러분을 찾아뵙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6개월 동안 카자흐스탄 교환학생으로 알마티에 머무를 예정인데요.

 

3기 때 보여드리지 못했던 다양한 주제들을 이번 4기 활동을 통해 여러분에게 선보이려 합니다. 

 

광활한 영토와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카자흐스탄.이제 다시 한 번 길을 열어보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Title 열다섯 번째 칼럼 (1)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8-01-26 10:32 Read 797

본문


중앙아시아 탐구 3부작

2편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Большая игра)- 과거와 현재

 

독자들은 그레이트 게임-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이라는 책을 읽어보았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고등학생 시절 중간 정도까지 밖에 읽지 못했다.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도 양이지만 그 당시에 중앙아시아에 대한 지리도 몰랐고 세계사적인 흐름도 몰랐기 때문에 읽다가 포기한 책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해 알기에는 이 책만큼 좋은 책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러시아의 남진 정책에 맞서 영국의 견제를 시작으로, 19세기 초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초에 마무리된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을 칭한다.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용어는 당시 영국군 장교 아서 코널리의 편지에 처음 언급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중앙아시아의 정치-경제 외교적인 이슈들이 발생할 때마다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전 칼럼에서 카스피해의 영유권 문제를 다뤄보고 난 후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기 위해선 왜 그레이트 게임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대체 ?’ 발생했을까?

 

몽골제국의 그림자를 벗어난 뒤,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 이후 국력을 키워가던 러시아는 영토 확장에 대한 꿈을 키우면서 

지리상 맞닿은 아시아로 진출할 생각을 갖게 되었다

런데 당시 인도를 점령하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깃발을 아시아에서도 제 맘대로 휘날리던 영국은 

지금껏 드넓은 지역을 거머쥐고 있는 러시아의 아시아 진출 소식에 바짝 긴장하게 된다.

 

뜻하지 않은 소식에 놀란 영국은 러시아가 그러했듯 정보 수집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대방을 극도로 자극하는 일을 무작정 벌일 수 없던 양국은 개인 첩보원들을 순례 여행객, 상인 등으로 위장시켜 두 국가 사이의 무풍지대에 불게 될 회오리 조짐을 다각도로 탐색했다

나중에는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구분하는 게 무의미할 만큼 확대된 이 게임은 이렇듯 손에 땀을 쥐는 정보전에서부터 벌어졌다.

 

1907년에 영-러 협약을 맺어 1차 게임을 종결짓게 되는 영국과 러시아는 결과적으로 이곳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들어버렸다.

<출처 : [책동네 서평] <그레이트 게임-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이 말하는 국제관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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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지역 및 캅카스지역 일대에서 벌어진 그레이트 게임의 판>

 

재밌는 사실은 영국과 러시아 모두 중앙아시아에서 서로 전면전을 벌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크림반도에서의 러시아 남하를 막기위해 영국군이 참전한 것을 제외하면 중앙아시아에서는 냉전과도 같은 서로에 대한 탐색전과 정보전의 연속이었다.

 

그레이트 게임은 앞서 인용한대로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위해 영국의 저지였고 그 무대가 중앙아시아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중앙아시아에 국한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지만 좀 더 세계사와 우리 한국사를 찾아보면 전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근현대사 수업 시간에 배웠던 영국의 거문도 무단 점령 사건그리고 일제의 한반도 침탈을 서구 열강이 용인하게 된 계기 중 하나인 영일 동맹은 여기서 기인한다. 거문도 점령사건은 러시아의 한반도 남진을 견제하기 위한 영국의 무단 점령이라고 우리는 배웠다. 칼럼을 쓰기 전까지는 이 무단 점령 사건이 단순히 한반도를 노리려는 것에 국한된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한 만리장성, 아니 억리장성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특히 영일동맹은 일본이 영국의 러시아 남진정책 저지선 구축의 아웃소싱-하청(?)을 받아서 러시아의 남진을 막고 대신 한반도를 점령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그레이트 게임이 끝나고 발발한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영국의 동맹으로써 승전국의 지위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고 그로 인해 전세계에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공고히 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한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도 이 그레이트 게임과 궤를 같이 한다. 예를 들면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한 크림반도 전쟁은 물론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지역 분쟁에 영-러 모두 연루되어있다. 서쪽부터 중-동유럽을 경계로 시작하여 흑해, 캅카스 지역, 카스피해, 중앙아시아, 위구르, 그리고 극동아시아로 분류되던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앞서 말한 억()리장성의 구축이었다. 마치 인도를 비롯한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 영국이 유럽의 오랑캐로 분류되는 러시아의 남진정책에 맞서 건설한 무형(無形)의 요새처럼 말이다.

 

냉전의 19세기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냉전이 그레이트 게임의 연장전이다라고 주장할 정도로 

9세기 세계 정세와 그 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위키백과- ‘그레이트 게임항목에서 인용>

 

이렇게 보면 20세기 중반부터 발생한 냉전이 사실 그 이전부터 지속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주연이 바뀌었을 뿐이다. 우리가 아는 20세기 중반의 냉전을 기준으로 한다면 현재에는 신()냉전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레이트 게임은 과거의 구()냉전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과 러시아라는 구()냉전 구도에서 미국과 러시아라는 냉전 구도로 이어지고, 이제 신()냉전 구도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구도로 이어진다. 조연으로는 한반도 남-북한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들인 셈이다. 이렇게 따지면 냉전의 역사를 넓게 보았을 때, 200년이 가뿐히 넘어가는 셈이다.

 

그레이트 게임이 시작되자, 영국은 러시아가 남진할 시에 어디로부터’ / ‘어떤 루트를’ / ‘어디로 갈지에 대해 알아내고 싶어했고 대비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군인들과 탐험가들을 상인과 현지인으로 위장시켜 정찰을 보냈다. 앞서 언급한 책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명이나 사람이름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의 저자는 정부관료, 외교관, 대외정세 따위에 지면을 할애하지 않고 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더 생소했고 더 흥미진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앙아시아는 1800년대에 미지의 땅으로 알려져 있었다. 현재에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이 중앙아시아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니 그 때 당시엔 더 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자동차가 드물고 전화연결도 안되는 시대였으니 이 탐험가이자 모험가들은 직접 발로 뛰는 수 밖에 없었다. 기록하고 이동하고 다시 기록하고를 반복하면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정보를 습득해나가는 동안 이 중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죽었다. 그런 사람들의 일대기가 모이고 쌓여서 영국은 정보수집에 만전을 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영국인이라서 영국의 탐험가들과 정보원들을 중심으로 서술했다는 점 그리고 영국 우선주의라는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당시 중앙아시아에는 페르시아-카자르 왕조가 있었다. 이 카자르 왕조는 테헤란을 수도로 삼고 북쪽 중앙아시아 상당부분과 서쪽 캅카스지역(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및 흑해 연안 지역)을 보유,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까지 남쪽으로는 지금의 이란 지역을 갖고있던 광활한 영토를 가진 국가였다. 현재 이란의 전신이었던 팔레비 왕조 이전의 왕조가 바로 이 카자르 왕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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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러시아 제국의 남진이 시작되자 카자르 왕조는 전면전을 벌이게 되고 우수한 서구의 무기 앞에 카자르의 열악한 전투력은 대패한다. 이로 인해 카자르 왕조는 캅카스 지역 전부와 중앙아시아 지역 핵심 도시인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등 대부분을 빼앗기고 만다. 이를 보고 있던 영국은 재빠르게 카자르 왕조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공격하여 자신들의 지배 하에 두게 된다. 여기에 프랑스까지 가세하여 카자르왕조는 제국주의 서구 열강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처지가 된다. 결국 20세기 초에 입헌군주제 등 근대화 움직임이 불게 되고 이에 경악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저지하고자 하였다. 이후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인해 세계가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카자르 왕조는 쿠데타로 인해 멸망하고 팔레비 왕조가 세워진다. 페르시아의 역사를 보면, 현재 이란이 왜 그렇게 서방 국가들을 경계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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