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열세 번째 칼럼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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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8-01-02 11:04 | Read | 8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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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의 고대도시 오트라르

그래서 주말과 시험을 안 보는 날을 합쳐서 다녀와야했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1박 4일 ‘투르키스탄'과 '쉼켄트’라는 도시였다.
쉼켄트는 카자흐스탄 제 3의 도시로 60만에 가까운 인구를 보유한 도시이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쉬켄트로 가는 주요 거점 도시이자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 남쪽지역과 시베리아를 잇는 철도가 지나가는 곳으로서 교통과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우즈벡인(최대도시 알마티보다 우즈벡 수도인 타슈켄트와 더 가까운 위치로 인해 우즈벡인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과 카자흐인이 대다수인 도시인데 그래서인지 도시명도 우즈벡어로는 침켄트, 카자흐어로는 쉼켄트라고 불리어진다. 뜻은 쉼-(잔디)과 켄트-(마을, 도시)가 합쳐져서 잔디 도시 정도가 되겠다. 카자흐어를 도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사용할 수 있었고, 많은 회화를 도전 해볼 수 있어서 배운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반면, 투르키스탄은 (카자흐스탄에서 그나마 중앙아 역사 유적과 실크로드 유적을 볼 수 있는) 유서 깊은 도시로 이슬람교의 성지 순례 중 하나인 야싸위 영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가서 보니 생각보다 영묘의 웅장한 모습에 어렸을 때 보았던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 광장이 눈앞에 살짝 아른거렸던 것 같다.
영묘에 대한 설명은 이유진 리포터의 2기 칼럼에 게재되어 있다. 필자는 투르키스탄의 다른 유적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오트라르라는 곳이다. 먼저, 알마티에서 투르키스탄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하며 투르키스탄->쉼켄트->알마티로 오는 길도 모두 기차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왕 가는 김에, 한달 뒤에 타게 될 시베리아 횡단열차 예행 연습으로 다양한 종류의 객실을 선택해서 타보자고 마음먹었다. 우선 저번 칼럼에서 작성한 아스타나에서 타고 온 스페인에서 만든 탈곡 열차 4인실 쿠페는 이용했으니, 이번에 갈 때는 구형 열차 룩스(2인실)를 타고 올 때는 차례로 쁠라치카르타(6인실)와 좌석 칸을 타보기로 했다.






안내문에는 전설적인 일화도 적혀있었다.
이 사람의 전생인지 현생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곁에서 받드는 제자였다고 한다. 어느 날 무함마드와 그의 제자들이 감을 먹으려고 하는데 무함마드가 그 순간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계시는 ‘너(무함마드)가 먹으려는 그 감은 너의 시대 이후 4백년 뒤에 태어날 아흐메드를 위해 정해진(운명) 감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함마드가 ‘누가 이 감을 아흐메드라는 사람에게 전해줄 것이냐?’라고 묻자 아르스탄 밥이 나서서 ‘신(알라)께 제게 4백년의 삶을 주시도록 요청하신다면 제가 그 감을 전해주겠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안내문에 이어진 내용에 따르면, 실제 역사 문헌에 호자 아흐메드 야싸위(투르키스탄의 명물 야싸위 영묘의 주인공인 그 야싸위)의 스승은 아르스탄 밥이었고 그 감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이지만 말이다.
영묘의 내부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큰 석관이 있는 묘가 있고 마을의 이장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사원 내부가 궁금해서 둘러보다가 사람들이 어느새 이장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앉아있길래 혼자 서있기 뭐해서 나도 무릎을 꿇고 앉았다. 카자흐어로 말하는 것 같았는데 희한하게도 정말 한 단어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덕담이나 경전의 구절을 낭송해주는 것이라 분위기상 짐작만 할 뿐이었다. 의식이 끝나고 이장분들이 내게 중국에서 왔냐고 물으셔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이 먼 곳을 어떻게 찾아올 생각을 했냐며 반갑게 악수를 건네시고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다음 사람들이 또 입장을 하려 해서 인사를 드리고 사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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