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허유중

안녕하세요~ Global-K 4기 리포터 중앙아시아학과 허유중입니다. 저번 3기 리포터에 이어서 이번 4기 리포터로 여러분을 찾아뵙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6개월 동안 카자흐스탄 교환학생으로 알마티에 머무를 예정인데요.

 

3기 때 보여드리지 못했던 다양한 주제들을 이번 4기 활동을 통해 여러분에게 선보이려 합니다. 

 

광활한 영토와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카자흐스탄.이제 다시 한 번 길을 열어보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Title 일곱번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10-31 12:02 Read 640

본문

-카자흐스탄 초대대통령이자 종신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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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카자흐스탄의 대통령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여기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독재국가라는 점이다. (키르기스스탄 제외) 90년대 초에 소련이 붕괴된 이후 위성국가들이 하나 둘 독립하면서 당시 연방 공화국의 서기장을 맡았던 인물들이 중앙아시아의 초대대통령이 되었고 하나같이 죽을 때까지 독재를 했다는 것은 내게 독재 탄생 매커니즘의 새로운 패턴을 알려주었다. 보통 국가 탄생 초기에는 불안정한 정치 상황도 한몫하는데, 군부를 통한 독재가 일반적 인줄 알았던 내게 새로운 유형을 알려준 셈이다.

 

1940 76 .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근처의 샤말간(Шамалған)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엔 철강 노동자로 일했으며, 1962 공산당에 들어갔다. 그리고 1984 카자흐스탄 각료회의 의장에 올랐다.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카자흐스탄 공산당 제1서기에 30년 가까이 앉아 있던 딘무함메트 코나예프 대신에 러시아인 겐나디 콜빈을 서기장에 앉혔지만, 이 때문에 카자흐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후 콜빈이 물러나고 나자르바예프는 1989 카자흐스탄 공산당 제1서기에 올랐고, 1990카자흐스탄 독립 후 대통령 선거에 단독 출마했으며 그대로 당선되었다

-위키백과 출처-

 

 

가문의 정치적 재정적 기반 없이 자수성가한 인물로, 소련 시절 공산당 제 1서기에 올랐다. 이를 바탕으로 독립 후에 카자흐스탄 대통령 선거에 단독출마해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사실 카자흐스탄 독립초기와 같은 어수선한 시기에 적당한 인물이 나올 만한 상황도 아니었으며, 나자르바예프 본인은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공화국 서기장을 맡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국민적 지지와 인식이 관성처럼 작용해서 대통령이 되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현재 그는 6선 대통령이며, 헌법상 초대 대통령만 연임이 가능하므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27년이 넘도록 대통령직을 맡고 있다.

 

그의 독재정치는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종신대통령이라는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카자흐스탄은 경제발전과 개방정도가 타 중앙아 국가에 비해 높기 때문에 그러한 비판이 어느정도 상쇄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대놓고 카자흐스탄 대통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본 적은 없다.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려한다기 보다는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면 진정성 있는 발언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돌려서 요즘은 대통령이 ~했다더라 는 식으로 얘기를 시작하게되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 수 있었다. 보통 여기 오기 전에는 장년층 노년층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기득권 세력일 줄 알았다. 그러나 얘기를 해보면 30:70이었다. 당장 정치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람이 30정도 있는가 하면, 그냥 지금도 대통령이 알아서 잘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70정도 있었다. 젊은 층의 경우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 일부 있었는데 정도는 조금 더 심했던 것 같다.

 

전체적인 평가를 내려보자면, 현직 대통령에 대해 계속 임기를 이어나가는 것은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지만, 그의 행보나 정책에 대해서는 나름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존재했다. 어떻게 보면 독재라는 말도 안되는 행동을 옮기려면 그만한 실리로 사람들을 만족시켜주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카자흐스탄은 당시 우즈베키스탄보다 가난한, 땅만 큰 빈국이었다. 하지만 자원 수출을 통한 경제 성장으로 현재는 중앙아 최대의 부국이 되었다. 또한 그의 행정부의 정책 역시 국민들에게 큰 반감을 사는 정책보다는 오히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여러 혜택을 줌으로써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 외교 역시 친 러시아 정책을 기반으로 하는데, 미국과 중국과의 협력 또한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나름의 균형을 갖추었다. 이 때문에 국외적으로는 유럽의 서방 세력들을 제외하면 딱히 독재에 대해서 무어라 딴지를 거는 국가들도 없고, 국내적으로도 국민들의 불만을 어느정도 제어해냄으로써 부정 선거가 발생해도 불만이 크게 눈에 보이는 움직임으로 발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학교 교양시간에 배웠던 정치경제발전론을 다시 한번 확인 해 볼 수 있었다.

 

일정한 공식이 있는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나름의 요점은 이렇다. 하나의 사회에 파이가 있고 사회구성원들은 각각 파이의 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그 파이가 경제성장으로 점차 커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파이도 커지리라 기대하고 열심히 정부 정책에 참여를 하게 된다. 개발도상국의 경우엔 파이가 눈에 띄게 불어나니깐(경제성장률이 높고 경기가 활성화 되므로) 현 정치제도의 문제점을 찾아서 고치려는 노력의 목소리보다는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따라 열심히 본업에 충실하게 된다. 하지만 일정시간이 지나면 파티가 끝나게 되고 경제 위기와 경제 침체기로 인해 파이의 성장 속도가 둔화되면서 사람들에게 돌아갈 파이의 몫이 줄어들게 된다. 인구가 늘어감에 따라 나눠야 할 파이도 줄어들게 되니 말이다. 결국 정부 정책만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수준이 되자 점차 불만이 쌓이게 되고 이는 사회참여로 이루어지게 된다. 사회참여로 정치 제도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게 되는데 점차 거세질수록 정치적 불안정이 발생하게 된다. 이론은 여기까지이다. 그 이후는 크게 2가지로 나뉘겠다. 정치 제도가 바뀌던지 아니면 계속 유지되면서 오히려 후퇴하게 되던지 말이다. 이 이론을 처음 들었을 때는 흥미롭다고 생각했는데 꼭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한창 경제 성장 중인 80년대에 민주화를 일궈냈으니 반례가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과 터키의 상황은 현재로써는 정치 제도(독재)가 유지되면서 오히려 더 후퇴되어가는 결말을 맞게 되었다고 본다. 우즈베키스탄 역시 경제 발전이 둔화되면서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 안디잔 사태가 발생하였다. 카리모프의 잔인한 진압으로 우즈베키스탄의 민주화는 더더욱 후퇴했다.

 

카자흐스탄은 야당 탄압(국회 의석수 과반은 물론 99% 수준의 의석수를 갖고 있는 일당우위제’-(독재당)에 따라 여당은 누르오탄당이 있지만 야당도 2개 정도 존재한다.)과 언론 통제를 계속하고 있는데, 나자르바예프는 초대 대통령에 오른 뒤 정적 감시를 위해 자신을 향한 야당 및 언론의 비판을 불법화했고, 모든 사회단체에 대해 의무등록제를 시행했다. 그 밖에도 반정부 성향의 인사들을 체포 및 투옥했으며, 카자흐스탄 정보기관은 시민들의 개인 스마트폰 대화 내용을 감시하는 데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또 다른 폭로로는 이러한 독재 권력으로 대통령과 친인척들이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나라의 독재를 보든 거의 클리셰에 가까운 수준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엉망진창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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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한때 카자흐 대통령의 신뢰를 얻었던 일리예프가 카자흐스탄의 비리에 대해 폭로한 적이 있었는데, 일리예프는 카자흐스탄 정보국의 부국장이었으며, 카자흐스탄 세무당국의 고위 공직자이자 주 오스트리아 대사였다. 놀라운 것은, 일리예프가 나자르바예프의 사위였다는 점이다. 결국 폭로로 인해 2007년 일리예프와 일가족은 누르슬탄의 총애를 잃고 납치와 정부전복 혐의로 궐석재판을 받아 징역 40년형을 언도받았으며, 살인과 고문, 돈세탁 혐의로 기소되어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검사들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알리에프는 혐의를 부인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혐의 중 일부는 대통령의 짓이라며 대통령을 고발했다. 알리에프는, 나자르바예프가 야당세력에 대한 고문과 살인 등을 저지르고 있으며, 수 조 달러의 거액을 해외의 비밀 계좌에 숨겼다고 한다. 실제로 러시아측 자료에 따르면 나자르바예프 가족의 자산은 7억 달러(7천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사실 7억달러도 최소값이지 평균값도 안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대통령의 사위였고 승승장구했던 그는 2015년 빈의 교도소에서 옥사했다. 일각에서는 암살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럼 카자흐스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직은 경제 성장 중이니 알 수 없다. 하지만 현재 나자르바예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시기

에 민주화를 이뤄내기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가 언론통제를 잘하고 있는 것이 한몫 단단히 하고 있기도 하며, 국제적으로도 큰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국민들의 단결력이 부족하다. 여기 카자흐스탄은 영토가 넓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인구가 영토에 비해 적다 보니 골고루 인구가 분포되어있다.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는 SNS가 있다 한들 교류가 활발하지 않아서 진정한 민주화가 실현되기 위한 상호간의 소통이 많이 부족하다. 카자흐스탄 내에서 국민의 의식과 인식, 전통적, 문화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민주화는 요원하다. 사실 현대 민주 정치는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만 잘해준다면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지만,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고 결과에 만족한다고 해서 과정이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는 식의 생각은 바람직하지 못한 자세이며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것이란 것은 불보 듯 뻔하다.

 

다만, 2017 4월 대통령 본인이 주도하여 의회를 통과시킨 헌법 개정안에 본인 스스로 서명을했는데, 내용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키고 내각과 의회의 결정에 대한 거부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의 권력의 분립을 한층 뚜렷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미 2020년까지인 현 임기를 마치고 최고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겠다고 밝힌 바가 있어서 카자흐스탄의 민주화와 정치 개혁이 이루어질지 기대가 된다. 약속을 지킨다고 가정했을 때 비로소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니 아직 속단하기는 이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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