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허유중

안녕하세요~ Global-K 4기 리포터 중앙아시아학과 허유중입니다. 저번 3기 리포터에 이어서 이번 4기 리포터로 여러분을 찾아뵙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6개월 동안 카자흐스탄 교환학생으로 알마티에 머무를 예정인데요.

 

3기 때 보여드리지 못했던 다양한 주제들을 이번 4기 활동을 통해 여러분에게 선보이려 합니다. 

 

광활한 영토와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카자흐스탄.이제 다시 한 번 길을 열어보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Title 다섯번째 칼럼(2)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9-25 15:02 Read 58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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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실을 나와 복도를 지나면서 고려인 선생님이 벽에 있는 사진들을 가리켰다. 사진들은 연도별로 하나씩 있었는데, 바로 그 연도의 졸업생들 단체사진이었다. 첫 졸업식 때는 졸업생이 겨우 12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로 점차 늘기 시작하더니 5, 60명이 되었다. 이 학교의 1학년부터 12학년까지의 전교생 수는 평균적으로 약 280명 정도라고 한다. 한때는 이 280명중 고려인의 비율수가 70%를 넘었는데 현재는 280명중 70명도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고려인들이 다니는 학교라고해서 고려인 학교라고 마냥 부를 수 없다고 선생님이 설명해주셨다.

 

여기에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실이 몇 군데 있다. 그 중 한 곳을 들어가봤다. 가나다라를 시작해서 한국의 전통 물건들이 놓여져 있었다. 교실은 그리 크지 않았다. 또다른 방에는 IT 교실이 있었는데 한국의 모 대학에서 지원을 해준 덕분에 IT수업을 진행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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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수업 교실에는 이 학교를 졸업한 선배들 중 성공한 고려인들을 소개하는 게시판이 있었다. 법조계에 근무하면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공화국 법을 만드는데 함께한 고려인, 농업 분야에서의 독보적인 위치를 가진 고려인들도 있었다. 문화 예술 쪽도 작가, 시인, 무용수, 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을 날린 고려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고려인 학생을 보고 싶었지만 오후에 갔기 때문에 학생들은 다 하교를 마친 상태여서 볼 수 없었다는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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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과 관련된 곳은 고려인 학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앙아시아 통틀어서 카자흐스탄 알마티에만 존재하는 고려인 극장인 고려극장과, 고려인이 발행하는 신문인 고려일보도 존재한다. 고려 극장은 나도 몰랐지만 이 곳에선 현지인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명성이 높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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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고려극장은 아바야 거리- 로즈바키예바 거리에 위치했었는데 알마티 시내 북부로 위치를 옮겼다. 현재 그 건물은 알마티-한국어교육원이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고려극장에 가보니 규모는 일반 소규모극장에 지나지 않았다. 위치도 아쉽지만 규모도 작아서 사람들이 올지 의문이었다. 명성은 과거의 영광인 것일까라고 생각했는데 순회공연 등을 많이 간다고 한다.

 

고려극장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중앙아시아에 이주된 후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원래 연해주 지방에 거주하고 있을 때부터 만들어진 예술단이었기 때문이다. 고려극장이 주로 보여주는 공연은 극예술에 초점을 맞춘다. 설명하길, 극예술은 한민족의 정신생활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며 실제로 옛날부터 판소리, 무용과 같이 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와 춤을 하는 등의 극적요소가 발전되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제이주 이후로 우슈토베 카라간다 알마티 등을 돌아다니다 알마티에 정착하게 된다. 극장을 여러 번 옮긴 끝에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데, 국가 공훈 배우진들이 많기도 하고 예술단원들의 공연도 내가 카작에서 본 다른 공연들과는 전혀 다른 한국스러운 공연이어서 놀라웠다.

 

카자흐스탄에 강제이주 된 고려인들은 소위 말하는 인텔리(지식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학자들도 꽤 있었고, 예술인도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카자흐스탄 사회로의 진출은 매우 다양하고 일가(一家)를 이룬 경우가 많다. 우즈베키스탄이 당시에 농작물과 목화생산의 주요 지역이어서 농민출신의 고려인들을 많이 이주시켰다고 했을 때, 카자흐스탄으로 왜 농민 출신보다는 지식인들을 주로 이주 시켰는지 의문이다. 참고로 소련에서 강제이주를 시킬 때에는 업종별 직업별로 일정 분류를 해서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작업 효율성도 있지만 관리 감독하기에는 분류해서 이주시키는게 더 편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청산리 대첩의 주역 중 한 명인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도 여기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말년을 크즐오르다 지역에서 보내다가 사망한다. 크즐오르다, 카라간다를 비롯한 중-남부 지역은 물론 카자흐스탄 서부지역에도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되었다.

 

다음은 고려인이 발행하는 신문으로 여기 알마티에 본사를 두고 있는 고려일보다. 고려인 사회의 소식을 추가적으로 전해주는 것에서 특별하며 신문 기사 내용은 한인 신문들과 비슷하다. 중앙아시아 통틀어서 고려인 신문은 이 고려일보가 유일무이하다. 세월이 흘러도 고려일보는 오래된 디자인 그대로를 발행하고 있다. 박물관에서나 볼 것 같은 신문이지만 내용은 다른 한인 신문보다 좀 더 현지에 관해 정확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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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일보에서 고려인 정주 80주년을 기념하여 알마티의 공화국 궁전에서 공연이 열린다는 사실을 보았는데, 그게 바로 21일에 있었던 공연이었다. 알마티에서 가장 큰 문화회관인데, 여기서 고려인 관련 행사가 열린 것이다. 티켓을 미처 구하지 못해서 가지 못했지만 다양한 공연과 축사가 있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대통령을 시작으로 한국의 대통령 축사와 이어지는 각국 외교부, 관련 협회의 축사가 이어진 후, 서울 시립 국악 관현악단의 공연과 합창 공연 등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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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온 고려인 1세대를 시작으로 후손들이 지나온 길도 순탄치 않았지만 지금 이렇게 고려인 사람들이 대부분 잘 살게 되었고, 우리나라 한국과 내가 현재 있는 카자흐스탄과의 우호증진에 가교 역할을 해준 것에 대해 무척 기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득히 먼 곳까지의 디아스포라와 그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것에 대해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부디 밝은 앞날만 있기를 기원한다.

 

이번 칼럼은 카자흐스탄 내의 고려인들의 모습에 대해, 부족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어릴 적에 중앙아시아를 처음 왔을 때 고려인들을 알게 되었고, 올해 초에 와서 칼럼 주제를 선정할 때 고려인을 주제로 꼭 써보고 싶었다. 용두사미가 되지는 않았을까 뒤늦게 걱정이 된다. 고려인들의 역사와 그 아득함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반도도 하루 빨리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한다. 그때가 되면 고려인은 더 이상 고려인이 아닌 한국계 중앙아시아인 혹은 한국계 러시아인 이라고 불러질테니 말이다. 이상 이번 칼럼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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