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허유중

안녕하세요~ Global-K 4기 리포터 중앙아시아학과 허유중입니다. 저번 3기 리포터에 이어서 이번 4기 리포터로 여러분을 찾아뵙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6개월 동안 카자흐스탄 교환학생으로 알마티에 머무를 예정인데요.

 

3기 때 보여드리지 못했던 다양한 주제들을 이번 4기 활동을 통해 여러분에게 선보이려 합니다. 

 

광활한 영토와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카자흐스탄.이제 다시 한 번 길을 열어보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Title 네번째 칼럼(1)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9-25 13:57 Read 534

본문


고향으로부터 6km, 낯선 땅에서

<고려인 강제이주 및 정주 80주년>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9 월이 중순에 접어들 무렵 나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300km  조금 넘는 거리에 위치한 작은 도시 우슈토베에 다녀왔다 우슈토베는 카자흐어로  (Үштөбе)이다 우슈 (Үш)는 숫자  3 을 토베 (төбе)는 언덕 정상을 뜻한다 가기전에 생각하길 , ‘언덕이나 산이  3 개 있는 곳 인가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막상 가보니 평지가 대부분인 동네였다 .

이 작은 마을 우슈토베가 별 볼일 없는 곳이라는 것은 마을에 도착하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딱히 카자흐스탄과 관련된 문화재가 있는 것도 또는 역사가 깊은 곳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에게 근현대사 사건에 있어서 상당히 특별한 장소였다 장소를 설명하기 이전에 한국 근현대사를 잠시 되돌아 보도록 하자 다음은 고려인에 관한 것이다 .

 

<때는  1900 년대 초반 한국은  일본의  강제  점령  하에  있었다 . 19 세기  중엽부터  시작해서  가난한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찾아  국경을  넘어  연해주로  이주하면서  서서히  형성되었다 . 고려인의  이주는  일제강점기  1920 년대  초에  두드러졌다 . 1917  ~ 1926 년에는  고려인들이  거의  170,000 명으로  3 배로  늘어났고 블라디보스토크  농촌  인구의  1/4  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구소련의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으로  러시아  동부의  고려인  단체에  대한  고려인  자치령이  모스크바 에서  논의되었으나 토지에  대한  경쟁을  우려한  지역  러시아인의  반대와  일본에  대한  정치적인  고려로  1925 년에  최종적으로  거부되어 결과적으로   반대의  정책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그보다  작은  고려인  자치구는  허가되었고 한국어  학교와  신문이  설립되었다 한편 중앙  정부는  1926  12  6  채택된  비공개  계획을  승인하였다 이는  구소련을  따르지  않는다는  의심이  있는  하바롭스크  북부에  거주하는  88,000  고려인의  절반을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주  정책은  정치적 재정적인  여러  가지  이유로  1930  이전까지는  시행되지  않았으나 , 1930 년을  시작으로  충성심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고려인들은  북쪽  지방으로  강제로  이주되었다 초기에는  작은  숫자였으나  이것이  종종  구소련의   번째  민족  청소  여겨지기도  한다 소련당국은  1935 년부터  3  동안  2,500 명의  고려인을  "일본 간첩"이란 혐의로 총살하기도 했다. 대규모의 이주는 일본의 침략의 구실이 될

댓글목록

로컬리티센터님의 댓글

로컬리티센터 작성일

수 있다는 우려로 1937년까지 연기되었다.>

- '고려인' 위키백과-고려인의 강제 이주에 대한 배경 인용


(본문 내용 중 추가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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