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네번째 칼럼(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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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09-25 13:57 | Read | 790 |
본문
고향으로부터 6천km, 낯선 땅에서…
<고려인 강제이주 및 정주 80주년>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이 작은 마을 우슈토베가 별 볼일 없는 곳이라는 것은 마을에 도착하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 딱히 카자흐스탄과 관련된 문화재가 있는 것도 , 또는 역사가 깊은 곳도 아니었다 . 하지만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에게 근현대사 사건에 있어서 상당히 특별한 장소였다 . 장소를 설명하기 이전에 한국 근현대사를 잠시 되돌아 보도록 하자 . 다음은 고려인에 관한 것이다 .
<때는 1900 년대 초반 , 한국은 일본의 강제 점령 하에 있었다 . 19 세기 중엽부터 시작해서 가난한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찾아 국경을 넘어 연해주로 이주하면서 서서히 형성되었다 . 고려인의 이주는 일제강점기 인 1920 년대 초에 두드러졌다 . 1917 년 ~ 1926 년에는 고려인들이 거의 170,000 명으로 3 배로 늘어났고 , 블라디보스토크 농촌 인구의 1/4 을 넘었다 . 이러한 상태에서 , 구소련의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으로 러시아 동부의 고려인 단체에 대한 고려인 자치령이 모스크바 에서 논의되었으나 , 토지에 대한 경쟁을 우려한 지역 러시아인의 반대와 일본에 대한 정치적인 고려로 1925 년에 최종적으로 거부되어 , 결과적으로 그 반대의 정책이 등장하였다 . 하지만 , 그보다 작은 고려인 자치구는 허가되었고 , 한국어 학교와 신문이 설립되었다 . 한편 , 중앙 정부는 1926 년 12 월 6 일 채택된 비공개 계획을 승인하였다 . 이는 구소련을 따르지 않는다는 의심이 있는 하바롭스크 북부에 거주하는 88,000 의 고려인의 절반을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 이러한 이주 정책은 정치적 , 재정적인 여러 가지 이유로 1930 년 이전까지는 시행되지 않았으나 , 1930 년을 시작으로 충성심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고려인들은 북쪽 지방으로 강제로 이주되었다 . 초기에는 작은 숫자였으나 이것이 종종 구소련의 첫 번째 민족 청소 로 여겨지기도 한다 . 소련당국은 1935 년부터 3 년 동안 2,500 명의 고려인을 "일본 간첩"이란 혐의로 총살하기도 했다. 대규모의 이주는 일본의 침략의 구실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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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리티센터 작성일
수 있다는 우려로 1937년까지 연기되었다.>
- '고려인' 위키백과-고려인의 강제 이주에 대한 배경 인용
(본문 내용 중 추가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덧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