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양경주

안녕하세요!

글로벌K 리포터 4기로 활동하게 된 중앙아시아학과 양경주입니다.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의 교환학생 기간 동안 Global-K Network를 통해 현지 이야기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한번은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 이슈가 되는 이야기와 관련된 정보들을, 다른 한번은 우즈벡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을 담은 리포트를 작성할 것입니다!​

Title 두번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9-11 10:51 Read 443

본문

계획 도시, 타슈켄트? 소련 도시 타슈켄트?

 

안녕하세요!

지금 한국은 쌀쌀한 가을이 되어 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제가 있는 이곳 우즈베키스탄은 여전히 햇빛이 쨍쨍한 가을입니다.

 

최근 우즈베키스탄은 91일 독립기념일, 95일 한국과의 월드컵 예선전 그리고 91일부터 실행된 우즈베키스탄의 은행환율이 암시장 환율이 같아져 은행에서도 1달러에 약 8000 숨으로 거래를 할 수 있게 된 일 등! 많은 일이 존재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 대해서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 처음 와서 느낀 점은 도시의 도로가 매우 널찍하게 깔려 있다는 점과 도로 주변에 가로수들이 참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도로에는 가로수들이 즐비하고 잔디들 밑에 설치된 스프리쿨러들로 물을 주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또한, 거리를 다니며 타슈켄트가 매우 계획적으로 세워진 느낌이 들었고 이런 생각을 시작으로 이 칼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타슈켄트는 1966년 존재했던 대지진으로 인해서 무너졌다가 다시 세워진 도시입니다!

 

타슈켄트는 튀르크어로 돌의 도시로 11세기부터 쓰이던 지명입니다. 타슈켄트가 우즈베키스탄의 중심이 된 건 1930년에 소련 시절 우즈벡 지역의 수도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과거부터 역사적인 교역도시이기는 했지만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와 같은 큰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타슈켄트 지역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역사를 살짝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앙아시아는 당나라와 아랍의 전투였던 탈라스전투에서 아랍의 승리로 페르시아인들과 유목 투르크인들이 공존하며 이슬람화와 정착화가 일어났습니다. 실크로드 교역의 활성화로 중앙아시아의 발전이 일어났지만 몽골의 침략으로 폐허가 됐습니다. 이후 티무르 제국의 등장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에 16세기 이슬람사원인 모스크들과 새로운 도시들이 건설되기 시작했고 17-18세기의 경제성장은 우즈벡 지역을 중앙아시아의 경제적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의 경제적 중심지가 된 우즈베키스탄 지역은 19세기 중반 제정 러시아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타슈켄트에 정복 직후부터 러시아인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지는 않았지만 중앙아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중심지로 타슈켄트가 주목되면서 러시아인들이 타슈켄트 부근에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중심지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정 러시아 당시 타슈켄트에 유입된 러시아인들은 자신들만의 구역인 러시아인 타슈켄트 지역을 만들어 우즈베크인들이 사는 타슈켄트와 구분을 지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구역인 러시아인 타슈켄트를 유럽적인 도시 형태를 갖추도록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의 등장은 타슈켄트를 구분된 도시가 아닌 소비에트 연합의 통합된 소비에트 타슈켄트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시 이 노력은 타슈켄트 도시의 현대화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전통사회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시도도 포함했습니다.

또한, 제정 러시아 당시 식민지지역을 소련의 동등한 일원으로 포함시키기 위한 모델이 타슈켄트가 되었기에 제정 러시아 당시에는 해체해야 한다고 했던 구도심들을 개발하고 타슈켄트를 하나의 소비에트 도시공간으로 통합시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인 전통도심을 도시 공원으로 만들고 관개수로들을 만들며 현대도시의 모습들로 채워나갔습니다. 또한 소비에트식의 아파트가 타슈켄트의 큰 보편화된 주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96426일 타슈켄트에 일어난 대지진은 이전에 발전되고 개발되어 온 타슈켄트를 지진과 화재로 상하수도, 전력, 가스 공급체계 등이 붕괴시키었습니다. 이 지진으로 인한 도시 붕괴는 타슈켄트의 구도심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소련식의 새로운 도시 형태를 건설하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타슈켄트 도시의 우즈베키스탄 전통적 구조를 사라지게 하고 도시의 전반적인 주거 환경, 교통시설들을 현대적으로 구비한 행정 도시로의 재건을 초래했습니다. 지진 2년 후에는 지하철 계획을 세워 1972년 착공해 1977년 개통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소련의 타슈켄트 재건 계획으로 많은 러시아인들이 타슈켄트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타슈켄트의 도시 역사적 배경은 타슈켄트 내에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적 요소와 러시아적 요소가 상호 공존하는 배경이라고 볼 수 있지만 1991년 소비에트연방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의 도시 개발은 소비에트 시기의 영향으로부터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구조적인 재개발보다는 소비에트 시기의 건물의 외관적 변형, 도로나 광장 등의 이름 등을 전통과 관련된 이름으로 변경하는 등 시도를 하였습니다.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만의 독자성과 정통성을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기 전으로 찾으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련시기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분은 소련 시기 주요 도시 이름을 도로 명칭으로 사용하였는데 독립 후 우즈베키스탄은 단지 소련 도시가 아닌 단순히 자국의 도시 이름으로 바꾸어 도로 명칭을 사용하였습니다.

 

여전히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는 소련시대의 모습들에서 벗어나거나 발전을 하기보다는 그 모습들을 유지하는 양상을 더 많이 띄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대다수의 아파트들이 소련시대에 건설되었으며 많은 박물관들, 공원들과 지하철역들 또한 타슈켄트 대지진 이후 소련시대에 건설된 것들이 많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자신들만의 정체성과 국민성, 민족성을 가지려는 많은 시도들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많은 부분들이 여전히 소련시대의 잔재로 남아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중 하나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정 러시아와 소비에트 공화국 당시의 모습들을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도시 건설, 발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 소비에트 공화국 당시 계획돼 재건된 타슈켄트의 모습 속 넓은 도로들, 많은 공원들과 가로수들의 긍정적인 모습들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이러한 긍정적인 부분들을 잘 유지하며 도시의 발전과 변화를 계획하는 방법을 논의하며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정체성, 민족성을 강요하는 것만큼 자신들의 특성을 더 살리며 여러 방면에서 구소련의 모습을 벗어나는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 어떠한가 생각됩니다.

실제로 언어적, 문화적인 방면에서도 구소련 시대의 영향이 아직도 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첫 번째로는 타슈켄트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또다른 소비에트 공화국의 영향인 러시아어, 키릴어와 관련해 우즈베키스탄의 공식 언어인 우즈베크어와 러시아어, 라틴문자와 키릴문자에 관해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다음 칼럼에서 뵈어요! 감사합니다.

 

[출처: 중앙아시아 전통도시 타슈켄트의 문화 다원성과 도시구조 변화 김상철(2015), 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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