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 박상우

안녕하세요, 3기 글로벌 K-네트워크 인도-남아시아 리포터 박상우입니다.

저는 앞으로 현지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생생하게 풀어나갈 계획입니다. 현지에서 몸소 느끼기 때문에 인도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글을 쓰고 현지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지는 칼럼을 준비하는 게 수월하리라 전망됩니다.

칼럼 주제는 인도의 종교, 문화, 경제 등으로, 인도를 체험한 지 얼마 안 된 저와 인도를 잘 모르는 독자들이 부담 없이 수용이 가능한 주제를 바탕으로 준비할 것입니다. 정치와 역사와 같은 주제들은 향후 리포터 활동 기간 후반부에 소개할 계획입니다. 

Title 열세번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7-11 11:20 Read 556

본문

열세 번째 칼럼: 알수록 매력적인 종교, 시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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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9D%B8%EB%8F%84

 

 

 오늘은 인도의 종교와 관련한 칼럼을 쓰고자 한다. 인도에는 힌두교, 이슬람, 기독교, 시크교, 불교, 자이나교 등 6개의 대표적인 종교들이 있다. 하지만 대표적이라곤 해도 힌두교가 인도 인구 중 약 80%에 가깝기 때문에 인도의 종교가 힌두교와 기타 종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힌두교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종교가 이슬람과 기독교이다. 그리고 시크교, 불교 그리고 자이나교는 셋의 종교 비율을 합쳐도 약 3% 정도 내외이다.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그리고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종교이다.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는 인도 신도 비율에서 낮은 비율을 기록할 뿐 세계적으로 대표 종교에 포함되는 종교들이다.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의 신도수는 각각 12억 명, 4억 명, 5억 명 정도 된다. 하지만 시크교와 자이나교의 경우 생소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두 종교 중 이번 칼럼에서 시크교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시크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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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머리에 쓰는 터번과 칼 한 자루가 시크교를 연상시키는 상징이다. 또한 그들은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아선 안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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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크교 신도들은 위 사진과 같이 현대 복장을 입더라도 터번을 착용하는 것만큼은 잊지 않는다. 그리고 시크교의 다른 상징인 칼 역시 현대에 와서도 긴 칼 대신 작은 칼을 지니고 다닌다고 한다. 그들의 터번 착용에 대한 철저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들은 미군, 영국, 캐나다 등 나라의 군인 혹은 경찰일 경우 본 복장 대신 터번을 쓸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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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은 직접 찍은 것인데, 시크교 신자들을 인도의 수도인 델리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인도 신도 중 약 1.7%정도만 차지하지만 의외로 힌두교 다음으로 자주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이슬람 신도들은 주로 타지마할이 위치한 아그라에 많이 있어서 이슬람교 대신 시크교들을 보다 자주 볼 수 있는 듯하다.


시크교의 이념
 이 시크교는 현재 종교로서의 인정을 받고 있지만 본래는 힌두교 내의 개혁운동으로 보고 있다. 시크교는 이슬람교와 힌두교를 혼합한 성격을 띠고 있다. 중요한 점은 그 두 종교에서 나쁜 점들을 제외하고 좋은 점들을 선별했다는 것이다.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를 부정했고, 고기 섭취를 인정하고, 여성 차별을 철폐하는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다음은 시크교의 원칙들이다

1. 앞으로는 사람을 구루(지도자)로 받들지 않는다. 대신 시크교 경전 그란트가 지도자 역할을 한다.
2. 모든 시크교도는 동시에 모두 지도자이다.
3. 모두가 평등하다. 신분의 높고 낮음도 없고, 남녀노소의 불평등 또한 없다. 모든 이를 품어야 한다.
4. 아름다운 우주의 본 모습, 그것이 바로 하나뿐인 신이다. 우리는 그 하나 됨을 명상하고 서로를 감싸 안아야 한다.

 

 

5. 불필요한 의식도 필요 없고, 억압도 필요 없다. 격식을 따지지 말라. 

 이 원칙들을 보면 현대 기준으로 보아도 상당히 도덕적이며 평화와 평등을 중요시함을 알 수 있다. 필자의 경험이지만 실제로 시크교 신도들이 겉으로는 매우 무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친절한 신도들이 많다. 시크교 신도들은 대부분 골격이 크며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있어서 이들을 마주치는 순간 경계가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로 시크교 신도들은 겉과 다르게 매우 친절하다. 택시를 탈 때 힌두교 신자의 기사보다 시크교 신도의 기사가 확연히 친절함을 경험할 수 있다. 시크교 신도들은 힌두교 신도 기사들처럼 무뚝뚝하기보다 유쾌하게 대화를 시도하고 승객들에의 편의를 최대한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시크교의 역사
 시크교는 구루 나낙에 의해 15세기 후부터 18세기 초에 걸쳐 인도의 펀자브 지역에서 발전한 종교이다. 이 시크교는 수많은 박해와 전쟁과 시련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전투적, 호전적인 성격이 강한 겉모습을 띠게 되었다.

 1606 무굴 제국의 모든 종교에 관용적이던 황제 악바르가 죽자 그 뒤를 이은 자한기르 때부터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고, 이후 자한기르의 뒤를 이은 샤 자한의 지시로 시크교 지도자가 처형당하면서 처음으로 '다른 종교가 우릴 공격하면 그때만은 칼을 뽑으라'는 방어책으로 군대 양성을 하였고 저항했다. 이 때에 확립된 것이 시크교도의 상징물들인데, 장발, 긴 머리를 감싸 활동성을 증대시키는 터번, 스스로를 보호할 검 등이 있다. 

 시크교와 힌두교를 탄압하고 박해함으로써 각 지방에서 일어난 강력한 반발로 인해 점차 무굴 제국은 쇠퇴하게 되고 19세기 초 '펀자브의 사자' 란지트 싱을 중심으로 뭉쳐 펀자브 지방에 시크 왕국을 건설하고 아프간 일부를 점령하기까지 하여 세력을 떨치며 인도를 정복한 영국과도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이 전쟁을 시크 전쟁이라고 한다. 시크교도들은 분전하였으나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었고, 결국 이들이 살던 펀자브 지방은 다시 타국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영국군에 의한 약탈이나 여러 문제로 골치를 썩긴 했어도 일단 영국은 강압적으로 개종을 요구하지 않았기에 무굴 제국 때와는 달리 그럭저럭 평화롭게 유지됐으며 영국은 종종 시크교 병사들로 구성된 부대를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두었다. 그러나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하고 종교에 의한 국가 분열이 이뤄지면서 서서히 시크교도들도 자기들의 나라를 가지려는 이념을 가지게 된다.

 시크교를 보면서 느낀 것은 겉은 칼을 차고 있고 저항의 역사를 지니고 있어 호전적인 느낌이지만 사실 시크의 이념은 평화를 추구한다. 즉 그들은 무력을 꼭 써야 할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 평소에는 항상 평화를 추구한다. 또한 평화 이외에도 평등, 자유, 편리 등을 추구하는데 이는 매우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불필요한 의식이나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 힌두교에서는 제사의식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브라흐만 계층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다. 그에 따른 비용은 물론 아래 계층 신도들이 부담을 한다. 하지만 시크교는 그런 점들을 철폐하려 한 듯 하다.
 
 그들은 또한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신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회교와는 달리 여성들의 평등이 보장된다. 그리고 시크교도들은 미신에 의존하지 않은 합리적인 관례우주를 지향하고, 양자역학에 대한 현대적 과학 관념에 의존한다.

 

 

 시크교에 독단적인 신조는 없다, 진실을 추구할 뿐. 시크교도들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명상을 한다 열과 성을 다한 명상이 인간 의식의 무한과 유한 사이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시크교의 목표는 신과 하나 되는 것이다. 시크교도들은 신의 숨결에 목메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도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신에 대한 기억만으로 믿음을 갖는다. 시크교인들은 신의 이름을 하루 종일 되뇌며 스스로를 신의 존재에 맡기고 신의 발끝에 엎드려 항복하도록 교육받는다.

 

 


 필자는 시크교가 힌두교보다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힌두교는 계급을 나누고 그에 대한 차별적인 부분들이 굉장히 많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힌두교의 정치적인 부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을 수월하게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 및 이용을 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 차별적인 부분들을 철폐시키기 위해, 반항하고자 시크교가 탄생했다. 시크교는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나뉘어진 신분에서 탈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대 시크교의 비율은 굉장히 낮고 매 년 시크교도의 인도 내 종교인 비율 현황을 보았을 때 앞으로도 수치가 크게 성장할 것 같지가 않다. 힌두교들은 시크교의 신분 평등사상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바꾼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만큼 인도인들에게 힌두교가 깊게 뿌리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힌두교도 아니고 시크교도 아닌 필자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고 있자면, 힌두교의 불합리한 부분들이 시간이 지나도 쉽게 철폐되지 않는 점들이 안타깝다. 탄생의 순간부터 인생의 많은 부분들이 열의와 노력 등은 무관해지는 힌두교의 이념이 특히 그렇다. 만약 인도인들의 80%가 힌두교가 아닌 시크교였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것이다. 문화는 물론 경제와 정치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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