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다섯번째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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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04-19 13:09 | Read | 1,278 |
본문
안녕하세요. 오늘은 브라질의 여성인권에 대해서 얘기해보려 합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브라질은 “Dilma Rousseffe”라는 여성대통령을 가졌던 나라입니다. 여성대통령도 있었고, 개방적이라는 브라질의 이미지 덕에 여성의 인권이 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쉽죠. 과연 브라질의 여성 인권은 만족할 만한 수준일까요? 아니면 겉으로는 개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남성우월주의에 여성 인권이 남성보다 훨씬 열악한 한국과 다를 바가 없을까요? 이번엔 브라질의 여성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오늘날, 남녀 성별 간 갈등이 심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페미니즘”의 정의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페미니즘이란 좁은 의미로 “여성이 불평등하게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여성의 사회, 정치, 법률상의 지위와 역할의 신장을 주장하는 생각” 보다 더 넓은 의미로 “ 계급, 능력, 성별, 인종, 나이, 등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어떤 종류의 사회적 “차별”을 반대하고 또한 없애기 위한 노력 “ 넓은 의미로는 이름에서 “Femi”라는 말이 쓰이긴 했지만 여성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종류의 차별은 반대하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네요. 칼럼 처음에 결론을 내는 것 같긴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해서 조사하기 전에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차별 받는 문제이니 남성들은 자연스럽게 관심이 적은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페미니즘을 단순히 “남녀의 성적 갈등”이라고 생각하기 보다 “사회문제”라고 생각하니 마땅히 나서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먼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관심이 없는 남성들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고, 어떤 방해와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더욱더 적극적으로 알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용기를 내어 문제임을 알리는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이제 본격적으로 브라질의 여성인권 및 여성 운동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브라질은 그 시절 조선이 그러했듯 여성은 자신의 가족의 “남성들”의 “재산”이었습니다. 조사하면서 읽은 브라질 칼럼에 의하면 사유물의 느낌이 강한 단어인 “Propriedade”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 시절 브라질의 여성 인권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식민지 시절 여성운동은 주로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참정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이혼 할 수 있는 권리,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등이 있었습니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기는 1500년부터 1822년까지 입니다. 그 시절 한반도는 조선시대인데 조선시대 여성들이 저런 주장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인 것에 비하면 브라질은 과거부터 한국을 앞서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1822년 포르투갈에게서 독립한 후의 브라질에서는 그간 투쟁의 결과로 여성에게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브라질 여성 운동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Nísia Floresta”는 브라질 최초의 여학교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이 때 까지도 아직도 여성들의 참정권은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노동시장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1907년과 1917년의 일어난 “재봉사들의 파업”이라고도 불리는 큰 파업으로 인하여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절 면직 공업은 주로 여성의 노동력으로 생산되었는데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에서 이주해온 여성 노동자들이 더 나은 권리를 찾기 위해 움직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파업의 결과로, 하루 8시간 노동과 여성의 야간노동을 금지하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한반도가 일제치하로 고통받고 있던 시기입니다. 이 시절 한반도 노동자의 권리는 더 침해받으면 침해받았지 나은 것은 없던 것에 비교하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브라질 국민들의 모습은 존경할 만한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도 민주주의를 이룩한 후에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1917년에는 세계 노동자 협회 ( Organização Internacional do Trabalho e a aceitação de mulheres no serviço público)의 여성 협회 ( Conferência do Conselho Feminino )에서 동등 임금을 주장하기로 의결하였습니다.
브라질 여성 참정권 운동은 같은 시기에도 계속되었습니다. 1922년에는 브라질 여성 진보 연맹(Federação Brasileira pel progresso Feminino)도 설립되었습니다. 이 단체는 주로 여성 참정권과 더불어 노동시장에의 자유로운 접근을 주장했습니다. 1928년에는 최초의 여성 투표가 이루어지고, 최초의 여성 시장을 선출했습니다. 두가지 모두 나중에 취소되었지만 브라질 여성 시민권 문제에 큰 진보를 이뤄낸 사건이었습니다. 그 후 1946년에는 “Getúlio Vargas” 정부에서 법으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포함해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했습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들어서면서 1962년에는 여성의 사회활동에 대해서 남편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필요 없게 되었고 1977년에는 이혼할 수 있는 권리가 확립되었습니다. 1988년에는 성별, 나이, 인종, 사회적 지위로 인해 임금이나 직종을 차별하는 것을 법으로 다시 한번 금지했습니다. 1990년에는 부모에 친권에 대해 평등한 아이들의 권리까지 보장했습니다.
브라질 여성 인권의 역사와 발전한 과정을 보니, 중간중간에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 많은 단체들이 있었습니다. 비록 브라질도 군사독재가 종식된지 오래 되지 않았고 여성의 권리를 쟁취한 운동이 민주주의가 없던 시기에 이루어졌지만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 행동에 나서는 브라질 사람들의 모습은 한국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이런 운동을 거쳐서 현재 브라질의 여성 인권은 어떠한 모습인지, 또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운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기 힘들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직장 내에서의 성희롱과 유리천장, 언제 어느 곳에서나 여성은 성적 대상화되고, 밤 거리 지나다니는데 70퍼센트의 여성들이 공포를 느끼는 것, 결혼 후의 독박육아, 대리효도 등 여자로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지게되는 부당한 의무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브라질은 어떠할까요? 보다 생생하게 들어보기 위해서 한 브라질 여학생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개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한국보다 더 나을 줄 알았지만 다른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현실 직장에서는 브라질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임금을 더 적게 받는다고 합니다. 또한 “남성들의 일”이라는 편견이 강해서 엔지니어 같은 일을 찾으려 하면 그 업계 안에서 항상 성차별에 시달려야 한다고 하네요. 개인의 능력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직종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또한, 임신한 여성에 대한 차별도 한국과 비슷했습니다.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임신을 하게 되면 공공연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법으로는 여성의 권리가 잘 보장 되어있는 편입니다. 브라질 노동법에 따르면, 여성이 근무하다가 임신하면 일정기간 유급휴가를 줘야하고 그 기간동안 고용주는 피고용인을 해고할 수 없습니다. 대개 법이 잘 마련되어 있으면 사회에서 남녀 차별이 적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브라질 여성들은 그러한 부당한 차별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인 듯 합니다. 흔히 서양 문화는 하나하나 모두 분배해서 자기가 맡은 일을 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실적인 브라질 가정에서는 청소는 여자들의 일이고 남자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가정 일에 손을 떼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브라질의 한 광고 입니다. 적혀 있는 표어는, “굴레를 깨자 여성을 향한 폭력을 고발하자”라는 뜻입니다. 모든 차별은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고 그 차별의 강도를 매길 수는 없습니다. “폭력” 또한 어떤 경우에서도 틀렸고 절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성차별이 더해진 폭력이라면 정말 끔찍하고 최악인 범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슬프게도, 광고에 정부기관의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여성에 대한 폭력이 브라질에서도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브라질 여성들이 더욱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저런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페미니즘과 여성인권 문제는 어느 나라에서든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논쟁거리인 것 같습니다. 조사하면서 느낀 점은, 브라질 여성들이 분명이 한국 여성들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 입니다. 제가 수학하고 있는 대학에서도 여성인권에 대한 벽보가 많이 붙어있고, 행진을 하기도 합니다. 도심에서는 여성인권에 관한 큰 시위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느 민주주의 사회에서나 마찬가지이듯 브라질 내에서도 그 시위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는 듯 합니다. 방법이 과격하다 또는 잘 대변하지 못했다 등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적극적인 의견표출로 인해 과거보다 확실히 눈에 띄게 여성인권이 나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 인권 상황이 비슷하다고 해도 이러한 적극성은 두 나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몇 한국 여성들은, 페미니즘 시위가 일어났을 때 반발하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면 받을 공격이 어마어마하다 라며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을 변호하곤 합니다. 하지만, 군사독재를 끝냈던 민주주의의 힘이 그랬고, 지금까지 개선되어온 여성 인권이 그렇듯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옳고 꼭 바뀌어야 하는 것이라면 어떤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고 용기내서 나서는 모습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기를 금기라고 말하고 문제를 문제라고 제기하면 배척하는 한국 문화의 한계일까요...? 문제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려 하는 브라질 사람들의 모습이 굉장히 부럽고 존경스러웠습니다. 물론 한국도 군중심리에 민감해서 다수가 원하는 일에는 거침없이 의견을 제기하고 참여하곤 합니다. 얼마전 있었던 촛불시위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소수의 의견이라면 나서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브라질의 페미니즘 시위 사진과, UNICAMP에 붙어있는 여성인권 관련 벽보와 벽화를 소개하면서 이번
칼럼을 마치겠습니다.
위 사진들은 브라질 여성운동을 찍은 사진입니다. 남성을 뜻하는 기호에 여성을 뜻하는 기호가 저항하는 것이 시위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번째 사진에서 “Direitos das mulheres são direitos humanos”라고 표현한 것은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라는 것에서 브라질에서의 여성운동은 “남녀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불평등의 사회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에서 시위에 여성들 뿐 아니라 남성들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사회문제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브라질 법에 따르면 임신한 여성은 출산 후 4개월에서 6개월동안 합법적으로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고 그 기간동안 고용주는 해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성들은 배우자가 출산 후 단지 5일간의 휴가 밖에 받지 못합니다. 누구에게나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은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성들도 동참한다면 보다 더 나은 평등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입니다. 하지만 직접 브라질 학생들과 대화한 바에 따르면, 아직도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에서 마초이즘이 만연하고 마초이즘으로 인해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현실 생활에서 한국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죠. 충격적인 것은 브라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도 남성들이 다리를 본다고 치마를 무릎 위 길이까지 줄여서 입지 못하게 했다는 것 입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있었던 브라질에 대한 생각과 너무 달라서 놀랐습니다. 또한 브라질의 이미지만을 통해서 쉽게 단정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수학하고 있는 UNICAMP의 여성운동 벽보를 보겠습니다.
학생들이 매일 지나가는 학생식당 기둥에 있는 벽보입니다. 위에 사진에서 보였던 기호도 있고, 여성의 선택권을 강조하는 낙태찬성 포스터도 보입니다. 학교 내에서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반대하는 분위기도 적고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존중하는 분위기 입니다. 하지만 브라질 학생의 말에 따르면 대학 안에서만 동성애, 페미니즘이 용인되고 대학 밖에서는 여전히 혐오하는 시선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반대하는 것이 한국보다 심한지 덜한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느낀 것은 브라질인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과 지금까지 많은 것을 이루었고 여러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한국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함께”해결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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