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 이정현

여러분이 브라질에 온다면 분명 다앙한 관심사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인 이민사회, 한국인이 쉽게 가질 수 있는 관심사 그리고 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브라질을 분석하여 브라질 남동부 지역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어떤 사업으로 브라질을 이끄는지 써 보고, 세계 시장을 리드하는 브라질의 항공 사업과, 항공사 취업 준비에서 포르투갈어와 브라질학을 살리는 법에 대해 써 보려 합니다. 

Title 열번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8-24 11:11 Read 612

본문


열 번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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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지난 1학기가 종강하고 저는 브라질 이외의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여행했습니다. 빡빡한 일정인지라 깊게 연구하고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그 동안 칼럼을 쓰지 못했네요.. 이번 칼럼에서는 브라질 밖 각 국가들과 남미 대륙 전체 대해 제가 느낀 점을 바탕으로 소개해보겠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남아메리카 대륙은 유럽 이베리아 반도의 두 나라에 의해 양분되었습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에게 다른 지역은 모두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현재 남아메리카 대륙의 공식 언어도 과거 식민 모국의 언어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지역은 다른 원주민 언어를 공용어로 지정해 놓았기는 하지만 스페인어를 주로 사용하고 현재까지 프랑스의 해외 주인 프랑스령 기아나는 불어 가이아나는 영어 그리고 수리남은 네덜란드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가 식민 모국의 언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또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각 나라는 서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브라질을 떠나서 처음으로 방문한 아르헨티나에 대해서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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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의 공식 명칭은 República Argentina 한국어로 아르헨티나 공화국입니다. 아르헨티나에 대해서 느낀 결론부터 말하자면 왜 한때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 이렇게 무너졌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의 리오델라플라타(Río de la plata) 부왕령으로 스페인 식민 역사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하고 스페인 국내 사정으로 인해 호세 데 산 마르틴 장군이 독립을 이룩했습니다. 이후 해외 농업 이민이 밀려들면서 근대화가 되었고 세계 굴지의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비민주적인 정치상황 하에서 경제성장을 이룩하던 아르헨티나는 아직까지도 아르헨티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후안 페론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크게 변했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페론 대통령은 친 노동자, 빈민 구제에 큰 비중을 두면서 사회복지를 키웠습니다. 에비타로도 알려져있는 그의 부인 에바 페론은 노동 계급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며 남편의 정책을 도왔습니다. 이후 군사독재시기에는 인권탄압,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 패배, 하이퍼인플레이션 등 악재가 겹쳤습니다.

 

결국 2000년대 초반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고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후 키르츠네르 부부가 대통령 직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들은 대외 채무를 모두 갚고 아르헨티나 경제를 안정선 상에 올려 놓았습니다. 이후에 집권한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페론처럼 빈민층을 돕기 위해 예산을 너무 많이 집행해서 페소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부채질 했습니다. 이후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환율에 대한 중앙정부의 간섭을 중지하여 페소화 가치의 하락세를 안정시켰습니다.

 

 여행 중에 가장 그 나라를 잘 표현하면서 여행자 입장에서 그 나라를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입니다. 아르헨티나는 아르헨티나 페소를 사용합니다. 상당한 양의 외화를 가지고 여행하는 여행자 입장에서는 화폐가치가 큰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르헨티나 페소화는 가치가 굉장히 불안정합니다. 경제가 안정되고 현 마크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기존에 2배 이상 차이가 나던 암환율과 공식 환율 차이는 몇 센트 차이가 나지 않게 바뀌었지만 아직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음 대선에서 키르츠네르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페소화 가치는 폭락하고 있고 현제 달러당 17.8 페소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제가 아르헨티나를 떠난지 불과 1주일 만에 달러당 0.5페소가 올랐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암환율로 17.3이 최고 환율이었는데 공식 환율이 그렇게 올랐고 아마 암환율은 18페소가 넘게 거래되었을 것 입니다. 또한 2016년에 신권 200페소와 500페소가 발행되기 전에는 100페소가 최고액 지폐였는데 미화 100달러 지폐 몇 장을 환전하면 지갑이 접히지 않을 정도의 100페소 지폐를 받았습니다. 구매력을 보장하는 화폐 가치는 그 나라 경제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페소화 가치가 점점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면 남미 판 짐바브웨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다음 대선 결과에 따라서 페소화 가치는 큰 폭으로 변동할 것 같습니다. 외국인 입장에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완벽히 알기는 어렵지만, 긴 시간동안 평등을 위한 정책을 폈던 아르헨티나는 다시 경제라는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평등을 위한 정책을 필 대통령이 당선되려 하자 변동하는 페소화 가치를 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르헨티나 경제를 위해 어떤 대통령이 필요한 지는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경제 이외에 아르헨티나의 이미지는 굉장히 무질서하고 서로 싸우면서 살아야 자신의 것을 지킬 수 있겠다는 것 이었습니다. 관광객이 많은 장소에 영어가 가능한 사람들이 너무 적은 점, 휴대폰 칩을 사는 데에도 서로 다른 곳에 가보라면서 떠넘기기, 분명 전 사람이 한 것을 그 곳에서는 할 수 없다고 나몰라라 하는 점, 무질서한 가운데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정해진 매뉴얼이 없는 점, 비효율 적인 규칙으로 효율적인 방법을 막는 고집 등 아르헨티나가 무너진 이유를 알 것 같았고 1차산업 생산품의 세계 가격에 따라 경제가 크게 변동하는 취약한 구조를 갖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백호주의를 편 나라, 그러한 백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절대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 불친절로 앞으로도 유쾌한 나라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타인을 배려하고 친절한 아르헨티나 사람들도 많겠지만 대다수의 이미지는 부정적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할 때에는 절대 만만하게 보이면 안되고,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스페인어로 강하게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또한 너무 저렴한 것은 몇 배로 엉망일 수도 있으니 적당히 중간 정도의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다시 아르헨티나에 방문하게 된다면 아르헨티나 사람과 직접 하게 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아르헨티나 밖에서 정리하고 직접 일을 하게 되는 일은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때의 선진국이었지만 지금은 후진국으로서의 모든 특징을 그리고 가능성을 억제하고 발전을 가로막는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아르헨티나 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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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는 남미에서 가장 시민의식이 잘 발달 되어있고 한국하고 가장 비슷한 현대사를 겪은 칠레로 이동했습니다. 남미의 모든 나라가 그렇듯 뭔가를 하려고 하면 사고가 나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이동할 때에는 안데스 산맥을 지나게 됩니다. 칠레 국경은 해발 3600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처음 넘어가려고 했던 날에는 칠레 국경에서 시설 문제때문에 국경을 닫고 하루가 더 지체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에서는 근무가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근무 시간이 끝나면 나가버리고 짧은 근무시간에도 일을 제대로 하지 않지만 칠레는 근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큰 일이 있어야 그러한 조치를 취하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칠레의 첫 인상은 독재를 겪은 나라답게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각자 맡은 일을 제대로 하려는 의지가 보인다는 것 이었습니다. 여행하기에는 아르헨티나나 다른 남미 국가들 보다 칠레가 훨씬 더 편했습니다. 수도 산티아고에서는 유럽 여행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또한 좁고 긴 국토를 가지고 농사품을 많이 수출하는 나라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하지 않다시피 하는 세관검사도 몇 시간에 걸쳐서 철저히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버스로 국경을 통과하는 경우 어느 나라 국민이던 버스에서 내려서 집을 모두 엑스레이로 스캔해야 하고 규정 외의 물건이 적발되면 해명해야 했습니다. 남미에서 관료주의로 인해 쓸데없이 엄격한 다른 나라에 비해 칠레는 정말 필요에 의해 법을 엄격하게 정하고 집행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국경을 통과하고 수도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아르헨티나와 다르게 정말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도로의 경계가 분명하고 난폭 운전을 하지 않는 등 선진국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치에 관한 견해는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적절한 수준의 독재는 나라를 정돈하는 데에 꼭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재자들은 경제 발전으로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 하려 하고 칠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이상보다는 당시 가장 효율적인 미국식 모델을 택하고 실용주의 정책을 많이 펴서 한국과 비슷한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의 모습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칠레는 민주화로 대표되는 진보세력과 경제성장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으로 나뉘는 한국과 같이 좀 더 급진적이었지만 살바도르 아옌데와 민주화를 노래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로 대표되는 민주진영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로 대표되는 군사독재세력, 경제 발전을 우선하는 보수 새력으로 나뉘어 한국과 정치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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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바도르 아옌데는 1970년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선거로 사회주의 정권을 세웠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아르헨티나의 페론 대통령처럼 빈민을 위한 정책을 폈고 이로 인해 기존의 기득권층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평등 정책을 피던 중 1973년 군부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에 의해 축출되었습니다. 피노체트는 쿠데타 과정에서 대통령 궁인 모네다 궁에 폭격을 가했고 아옌데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Tengo fe en Chile y su destino”(나는 칠레와 그 운명을 믿는다)라는 말을 남기고 살해되었습니다. 이후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17년 동안 친미정책을 펴고 잔혹한 인권탄압을 저질렀습니다. 현 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의 부친도 당시 피노체트의 인권탄압에 희생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피노체트가 철권통치를 펴며 칠레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했지만 그 시기 칠레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과 함께, 민영화, 규제 철폐 등으로 경제성장을 이뤄냈습니다. 역사는 항상 양면이 있고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점을 칠레 여행에서 배운 것 같습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습니다. 칠레인들이 지금 누리는 발달한 선진 자본주의 경제는 당시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는 없고 또한 그 시기 벌어졌던 범죄, 인권탄압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피노체트의 독재로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정돈된 나라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민의식, 교통질서, 경제상황 모든 것이 가장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재가 끝난 후 아직 독재의 잔재를 깨끗이 치우지 못했지만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칠레는 경제성장과 민주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습니다. 남미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 중의 하나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미국을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점도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군사독재시기 잔재를 치우자는 시위가 많이 일어나고 권위주의 등 많은 사회 문제가 있지만 높은 수준의 국민이 있으니 앞으로도 잘 발전해 나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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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볼리비아로 이동했습니다. 볼리비아는 남미 최빈국으로 그 경제적 격차를 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남미는 국경을 차로 넘을 수 있기 때문에 번호판에 소속 국가가 적혀 있습니다. 볼리비아와 가까운 이웃나라 국경에 가보면 볼리비아 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는 이웃나라 보다 더 낡고 오래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볼리비아는 불리한 지역에 자리잡고 어떻게 보면 불쌍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독립 후에 페루와 연합하여 칠레와 벌인 태평양 전쟁에 패배하여 태평양에 접하고 있는 나라에서 내륙국으로 변했습니다. 심지어 당시 빼앗긴 영토에 칠레 최대의 구리 광산이 있어서 칠레는 그로 인해 경제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볼리비아는 황량한 안데스 고지대와 아마존 저지대만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잃어버린 해안 영토는 계속해서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데 칠레가 그 지역을 포기할 리가 없고 볼리비아는 다시 바다를 가진 나라가 될 날에 대비해서 페루 국경의 티티카카 호수에서 해군 훈련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볼리비아의 정식 명칭은 볼리비아 다민족국가 입니다. 보통 나라들의 정식 명칭과는 좀 다른 점을 알 수 있는데 볼리비아가 처해있던 정치현실에 많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볼리비아는 많은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원주민이 많고 백인들은 소수인데, 원주민들은 주로 안데스 산악지역에 거주하고 백인들은 산타크루즈 시를 중심으로 저지대 아마존 지대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황량한 안데스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원주민들의 경제력이 백인의 경제력보다 훨씬 밀리고 심지어 공화국임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은 투표권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가 당선되어 원주민들의 권리를 증진시키고 모든 민족을 동일하게 보고 있지만 그 경제적 차이는 메워지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유니 소금 사막 등 볼리비아가 가지고 있는 관광 자원이 원주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안데스 산악 지역에 위치해 있어 산업 기반이 거의 없는 원주민들에게 경제적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직접 방문해보니 나라 전체가 어려운 것은 잘 알지만 관광업을 나라의 큰 산업을 키우기 위한 투자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유니 사막 투어의 중심지가 되는 우유니 시는 난방이 잘 되지 않는 건물이 많고 흙먼지가 날리는 황량한 모습이 있습니다. 사막은 자연 그대로 보존하되 도시 지역은 관광객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게 깨끗하게 정돈하고 일교차가 큰 사막 기후를 극복할 수 있게 건물들도 개량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볼리비아에 있는 관광자원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세계의 여행객들 특히 유럽과 동아시아 젊은이들이 많이 찾고 있는 지금을 기점으로 관광업을 잘 키운다면 발전의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볼리비아를 더 편하고 깨끗하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그러한 노력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유니 시의 여행사들은 급증하고 있는 한국, 일본, 대만, 홍콩의 여행객들을 위해 아시아 손님 맞춤 서비스나 여행 상품에 대한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 아시아 각국의 언어로 후기를 적어 놓는 등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 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발전이 현실의 때가 묻지 않은 원주민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인 티티카카 호수를 넘어서 페루로 이동했습니다. 페루가 그렇게 발전한 나라는 아니지만 볼리비아 국경을 넘으니 좀 더 정돈되고 활동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볼리비아는 페루와 비교해서 좀 지치고 죽어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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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 페루 부왕령의 중심지로 잉카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잉카제국의 언어인 케추아어가 아직도 공식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잉카의 영역은 페루를 넘어서 볼리비아와 칠레 북부 아르헨티나에 미치지만 잉카의 수도인 쿠스코나 다른 중요 유적들은 페루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어 잉카에 관련된 관광 수입은 페루가 가장 혜택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잉카로 인한 관광 수입이 많아서인지 페루는 볼리비아보다 더 세속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민 의식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고 관광업이 나라의 큰 수입이다 보니 사람들은 최소의 관광객으로 최대의 수입을 올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페루에서는 어이없는 사기를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작년에 이어서 두 번째로 방문했지만 이번에도 수 차례의 사기와 상식을 벗어나는 일을 당했습니다. 같은 잉카의 후예인데 순진한 볼리비아 사람들과는 달리 떼가 더 묻은 페루 사람들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잉카의 현실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잉카제국은 피사로에게 정복된 후 철저히 스페인화 되어갔습니다.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도 시내에 남아있는 몇 개의 잉카 유적을 제외하고는 스페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페인 풍 도시로 변했습니다. 여행객들은 찬란했던 잉카제국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마추픽추와 근처 정글 지역에 남아있는 잉카 유적을 보기 위한 기점으로 삼고 시내 관광에는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있지 않습니다. 식민 통치로 인해 자기들의 본 모습을 잃어버린 점에서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리마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내려온 페루 부왕령의 수도이자 현재도 페루의 수도입니다. 리마는 스페인이 만들고 운영한 도시인 만큼 잉카의 흔적은 페루 원주민들 말고는 찾기 어렵습니다. 완벽히 스페인 식민 도시의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보이고 있어서 페루와 다른 남아메리카 국가의 경제적 현실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리마는 크게 미라플로레스 지구와 구시가지 지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거 중국이 잘 살게 되기 전 선전과 홍콩의 차이가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두 구역은 엄청난 경제적 차이를 보입니다. 먼저 구시가지에는 페루의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설이 몰려 있고 스페인 식민지 시절 중심지였던 만큼 많은 유적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변으로 엄청난 무질서와 냄새, 열악한 교통 인프라를 보입니다. 상징성만 없었다면 페루 고위 공직자들이 당장에 미라플로레스 지구로 건물을 이전하고 싶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백인 등 이민자들 보다는 페루 원주민들의 비중이 더 많은 구시가지가 리마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반대로 미라플로레스 지구는 서울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정돈되고 발달한 모습을 보입니다. 태평양에 접한 미라플로레스는 남미 전역에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기업의 본사와 은행, 그리고 전 세계적 호텔 체인과 거대한 쇼핑몰들이 몰려 있는 곳 입니다. 또한 치안이 불안한 구시가지와는 달리 거리마다 경찰이 배치되어 있어 다른 곳과는 달리 위험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페루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들과 스페인계 후손들이 많이 보였고 잉카의 후손들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였습니다. 리마가 작은 남아메리카를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원주민들의 비중이 많은 나라라고 해서 그 나라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백인들의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미의 그 어떤 나라도 아시아의 폐쇄적인 나라보다 개방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원주민이 주가 되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경제적으로 원주민이 타 민족보다 우월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를 가나 백인보다는 원주민 혹은 유색인종이 많았고 가난하고 위험한 지역, 부유하고 안전한 지역을 번갈아 가면 인종 구성이 크게 변했습니다. 원주민이 강력한 문명을 갖지 못했고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새로 만든 나라와는 달리 페루나 볼리비아 같은 잉카 사람들은 식민 지배를 누구도 원치 않았습니다.

 

역사에 가정이란 것은 없지만 스페인이 신대륙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잉카의 역사는 좀 더 길어 졌을 것이고 결국 유럽보다 더 강해져서 힘으로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원치 않는 식민화로 여전히 과거 식민 모국에서 온 사람들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그들에게 의존하여 살아가는 현실은 분명 이상합니다. 경제적인 측면 뿐 아니라 언어 문화적 측면에서도 스페인의 흔적은 어디를 가나 남아있고 심지어 언어도 그들의 고유 언어를 잃고 스페인어 만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했습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 지역이 식민지가 되거나 식민지를 가졌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를 연 두 나라로 가장 먼저 식민지를 개척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남아메리카는 가장 먼저 그리고 아직도 유럽의 영토가 존재하는, 제국주의로 인한 피해를 가장 많고 길게 입은 대륙입니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지에 대해서 가장 많이 느낀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남아메리카 스페인 식민지였던 나라를 보면 스페인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한국도 남미국가들 보다는 훨씬 짧은 시간 동안 식민지배를 당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언어와 문화에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수 백 년 심지어 스페인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는 식민 모국의 흔적이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식민지였지만 남미 국가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식민 모국보다 더 커진 브라질, 스페인과 유럽계 백인들이 주인 아르헨티나. 그보다는 덜하지만 백인의 비중이 상당한 칠레, 모두 원주민의 비중이 큰 다른 나라보다 경제력이 더 나았습니다. 식민화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 모두 원주민이 열등해서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백인들이 주된 나라는 그대로 유럽의 것을 옮겨 오기 편했지만 다른 나라는 기존의 문화와 충돌하고 유럽과는 맞지 않음에도 억지로 받아들여야만 했기에 지금 오류가 나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 백 년이 흐른 미래에서는 스페인의 흔적 모두 전통이 되겠지만 여행 내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면치 못하는 원주민들이 안타까웠습니다.

 

계속해서 말했듯 남아메리카 각국은 각자의 뚜렷한 특징이 있고 문화가 다릅니다. 한국에서 남미라는 말로 일반화 시키지 못 할 정도입니다. 대학에서도 지역학을 배울 때 너무 다른 여러 지역을 한꺼번에 너무 쉽게 묶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럽도 각 나라마다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유럽연합으로 서로의 부족함을 보안하고 결국에는 국경을 무너뜨리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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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연합의 성격은 다르지만 남미 국가들은 각자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서 통합하고 있습니다. 칠레와 페루 콜롬비아 그리고 멕시코까지 참여하는 태평양 동맹과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그리고 우루과이가 참여하는 메르코수르가 바로 그것입니다. 각 동맹은 관세 통합과 지역 통합을 목표로 하고 운영되고 있습니다. 세계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남미에 있지만 각 나라마다 국경에 갇혀서 서로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브라질은 남미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크고 산업이 발달해서 저렴한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파라과이나 볼리비아에서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아르헨티나의 농산품이 역내 식량공급이 되고 있습니다. 각 회원국의 경제 격차가 크고, 그 중에는 세계적으로 봐서도 경제가 가장 혼란한 수준의 회원국도 있는 것 그리고 회원국 간의 정치 성향의 차이로 빚어지는 충돌과 그를 조율하는 것 등 유럽연합이나 나프타 보다 부족한 점이 한참 많지만 서로 보안해 가고 있습니다. 벌써 인적교류는 기아나와 수리남 그리고 프랑스령 기아나를 제외한 역내 모든 나라가 여권 없이 신분증으로만 여행할 수 있게 하여 더욱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이웃나라에서 서로 이웃나라 번호판을 달고 운행하는 차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의 식민지배로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영향을 받은 문화도 비슷하여 통합에 있어 다른 나라보다 더 이점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G20에 속해 있는 나라들도 있고 정말 가난한 나라도 있는 대륙, 식량이 부족해서 약탈이 일어나지만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들도 있는 대륙이 바로 남미입니다. 식민지 역사로 인해 아직 어려움이 있고 독립 이후에도 슬픈 현대사로 인해 어려움이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미 식민지로 통합되고 서로 보안이 됐던 지역이라 재통합의 가능성이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분명 경제적으로 어렵고 위험하고 혼란스럽지만 미래의 미국, 중국 이후의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충분한 지역인 것 같습니다. 과거부터 끊임없이 존재해온 그 가능성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상호 경제적 보안과 동시에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교육에 대한 투자 그리고 고질병인 부패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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