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 이재진

대담한 한국인의 브라질 생활기!

안녕하세요. 7+1파견 학생으로 선발된 브라질학과 15학번 이재진입니다.

저는 브라질 최남단 포르투알레그레(porto alegre)에 위치한 pucrs에서 공부하며 브라질에서 생활하며 필요한 것과 평소 남미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던 것에 대해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Title 다섯번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4-25 10:11 Read 843

본문

치라덴치스(Tiradentes)

 

 

 브라질의 421일은 치라덴치스(Tiradentes)’로 공휴일입니다. 많은 나라에서 기념하는 새해나 크리스마스와는 다르게 이름부터 생소한 브라질만의 휴일인 치라덴치스는 무슨 날 일까요? 이번 칼럼에서는 브라질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휴일 치라덴치스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13b19ff8be50c73d3a66ea09ba39a2b8_1493082
<치라덴치스 (Tiradentes)>

 치라덴치스(Tiradentes)는 브라질 공휴일 중 하나로 순교자이자 브라질의 구가영웅인 Joaquim Jose da Silva Xavier에게 경의를 표하는 날입니다

 

 치라덴치스의 유래는 18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브라질에서 가장 중요한 저항 움직임인 미나스의 변절 1789년 미나스제라이스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운동은 당시 미나스제라이스의 악화된 상황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고 주모자들은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의 새로운 사상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변절자들의 대부분은 광산주, 대농원주, 사업에 관여한 성직자, 고급 관료나 변호사 등으로 이루어진 식민지 지도층 인사들이었습니다. 모두 미나스제라이스의 식민지 당국과 연관이 있었고 일부는 사법 기관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변절을 이끈 Joaquim Jose da Silva Xavier는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사업 실패 등 다른 변절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Joaquim Jose da Silva Xavier는 여가시간을 이용해 치과의사로 일하였는데 비하의 의미가 담긴 치라덴치스(어휘상 이 뽑는 의사 라는 의미)’라는 별명은 여기서 연유한 것입니다.

18세기 말 미나스제라이스 사회는 쇠퇴기로 들어섰습니다. 지속적인 금 생산량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 왕실은 여전히 철저히 징수하였고 현지 지도층 인사들과 당시 정부의 긴밀한 관계도 1782년 새로 부임한 지방장관 쿠냐 메네지스에 의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쿠냐 메네지스는 지역 유지들을 멀리하고 자신의 측근들에게만 혜택을 주었습니다. 비록 유지는 아니었지만 치라덴치스 역시 자신의 직위에서 해임되는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였습니다.

 

 쿠냐 메네지스 후임으로 바르바세나 자작이 임명되자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금을 세금으로 징수하기 위해 사용가능한 모든 종류의 금을 거둬들일 수 있었고 그래도 부족할 경우 데하마라는 인두세를 부과할 수 있었습니다. 왕실에 채무를 진 사람들은 물론 정부당국과 일반 시민들 간의 계약에 대해서도 조사하라는 훈령이 내려졌고 당시 정부 전체에 위기감은 팽배해졌습니다. 특히 왕실에 채무가 많았던 사회 유력자 계층은 더욱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데하마의 선포를 예상한 변절의 주모자들은 그보다 한발 앞서 1788년 말 반란을 도모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봉기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였습니다. 1789 3월 계획이 발각되어 주모자들이 고발되었고, 주모자 중 치라덴치스는 리우데자네이루에 그 밖의 주모자들은 미나스제라이스에 투옥되었습니다. 식민지의 수도였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재판은 오래 지속되었고 마침내 치라덴치스와 다른 여러 피고인들에게 교수형이 선고되었습니다. 그러나 선고 몇 시간 후 여왕 도나 마리아 1세의 사면 서한으로 치라덴치스를 제외한 피고인들은 전원 감형되어 브라질 추방형을 받았고 치라덴치스만 1792421일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미나스의 변절이 지닌 중대한 의미는 그 상징성의 힘에서 나옵니다. 치라덴치스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그의 처형 장면, 절단된 시신 등은 학교 수업에서 감동과 전율은 전해 가며 계속 상기되었습니다. 19세기 말 브라질 공화국이 선포되자 치라덴치스는 공화국의 순교자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재판 과정의 음모의 전 책임을 혼자 짊어지고 끝내 처형당하는 치라덴치스의 희생적인 모습은 공화국 선포 후 신화화를 재촉하였습니다. 421은 축제일로 지정되었고 좌파와 우파, 일반 대중에게 순교자로 추앙 받는 몇 안되는 국민적 영웅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외대로 81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교양관 213-1호
031-330-4593~4 / localitycenter@hufs.ac.kr
Copyright (c) 2024 한국외국어대학교 로컬리티 사업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