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양현정

안녕하세요. Global-K Network 3기 리포터 양현정입니다.

현재 한국외대 러시아학과에 재학 중이며, 7+1 파견학생으로 모스크바의 러시아 민족우호대학교(РУДН – 루덴) 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Global-K Network 리포터로서 러시아 유학 정보부터 문화, 예술, 경제 분야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칼럼을 작성할 계획입니다.

​많은 학우 분들께 유익한 정보 드리도록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qmelqmel9597@naver.com 으로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Title 일곱번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5-29 10:46 Read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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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то последний?(누가 마지막인가요?)-러시아인들의 독특한 줄서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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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에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신기하게 여겨지는 문화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특이하고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러시아의 줄서기 문화였다. 특히나 서류처리가 복잡하기로 악명높은 루덴의 예비학부 입학과정에서 이런 문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아직까지 러시아식 줄서기 문화를 가장 잘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경험부터 말해보자면, 처음 이런 줄서기를 해 본 것은 예비학부 입학을 위한 신체검사 때였다. 신체검사는 루덴의 대학병원에서 진행되었는데, 이는 모든 유학생들이 거쳐야 할 필수적인 코스로 결핵검사, 안과, 치과 등등 총 9개 정도의 검사가 요구되었고 각각 다른 9개의 방 앞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이를 위해 막상 방 앞에 가보면 사람들이 차례로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줄을 서고있었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규칙없이 의자에 앉아있었고 나는 가는 곳마다 그들에게 Кто последний?(누가 마지막인가요?)라고 물어야만 했다. 그럼 그들중에 누군가 Я(저에요) 라고 대답을 해왔다. 마지막 사람을 기억 두었다가 사람 다음순서로 들어가야만 했고, 역시 뒤에 오는 사람이 누가 마지막인지를 물어보면 답해주어야만 했다. , 누군가 볼일이 생겨 잠깐 다른 곳을 다녀오게 되면 자신의 순서 앞,뒷사람에게 Занимайтесь моё место( 자리좀 맡아주세요)라고 말하고 다녀온다.

 

 여기서 첫번째로 받은 문화충격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끼리 스스로 순서를 정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은행이나 병원 같은 곳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줄을 설 경우 대부분 번호표 기계라는 제 3자를 통해서 줄을 선다. 그래서 한국 같은 경우는 앞뒷사람과 서로 말하지 않고도 번호표라는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순서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줄을 서면서 사람을 기억하고 앞뒷사람과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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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로 러시아식 줄서기를 경험해본 것은 기숙사를 구할 때였다. 루덴은 기숙사도 학생이 직접 방을 둘러보고 계약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원하는 기숙사동이 있다면 기숙사 최고 사감을 만나서 이야기 후에 싸인을 받아야만 했다. 당시 그를 만나기 위해서 하루에 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줄을 섰다. 여기서 알게 된 러시아인들의 또 다른 줄서기 방식은,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당일 이른 아침부터 기숙사 사감의 방 앞에 방문하여 종이에 자신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어 놓는다는 것이다. 이때 러시아인들은 자신의 순서를 확인하게 되고, 자신의 순서에 맞춰 몇 시쯤 방문하면 되는지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사감이 일하는 오후시간에 다시 방문하여 기다린다.

 

 이렇게 줄서는 방식은 유명한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에서도 아직까지 존재한다. 학생 할인을 받아 공연을 관람하길 원하는 학생들이 인기있는 공연이 진행될 때 아침 일찍 극장을 방문하여 이름을 써 놓고, 학생전용 티켓판매가 시작될 오후쯤 다시 와서 종이에 적힌 순서대로 줄을 선다고 한다. 위와 같은 러시아인들의 모습은 구 소련시절이나 소련해체 직후에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학교 같은 몇몇 기관에서만 이렇게 줄을 선다. 현재는 러시아에도 번호표 기계를 도입해서 대부분의 패스트푸드 점이나 은행을 가면 번호표를 발급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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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아직까지 몇몇기관에 남아있는 러시아식 줄서기가 공산주의의 잔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 소련시절 러시아 사람들은 배급문화를 가졌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항상 줄서기를 해야만 했고, 나름 편리성을 갖춘 그들만의 줄서기 방식을 터득했던 것이다. 번호표라는 시스템이 없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서기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다.

 또 당시의 배급 줄서기에 익숙해져서인지, 이들은 자신의 앞사람이 일을 빨리 끝내지 않아도 재촉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린다. 물론 느긋하게 기다린다고 그 날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러시아인들은 자신의 근무시간이 끝나면 자신의 방 앞에 몇 명이 줄을 서있던지 신경쓰지 않고 매정하게 퇴근을 해버린다. 그렇게 되면 줄을 서던 사람들은 내일 다시 처음부터 줄을 서야함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그런 초연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음은 이런 불편함 마저 이곳의 사람들에겐 아마 익숙해져서 당연시 되어버린것 같다

 물론 행정적으로만 본다면 이러한 줄서기 문화가 매우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것은 사실이다. 또 러시아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빨리 바꾸어야 할 문화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러시아식 줄서기가 사라질때쯤 누군가는 번호표 기계와 함께하는 개인주의적 사회보다는, 사람들과 줄을 서며 소통하던, 사람 간에 조금이나마 정이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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