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권유정

현재 저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수 중입니다. 러시아학과 학생이라면 정말 많이 들어보고 또 다녀와 본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궁금증이란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살면서 부딪히고 느낀 점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들과 사뭇 달랐습니다. 또한 몇 개월을 살면서 '미리 알았더라면, ~을 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도 남는 터라 후배들이 제 경험을 참고하여 더 성공적인 연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러시아의 차갑고 추운 면만 생각하는 학생들을 위해 저만의 관점과 경험을 토대로 따뜻하고 밝은 러시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 글을 통해 학우들에게 연수, 여행 그리고 해외생활 면에서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선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조사하고 성실히 글을 쓰겠습니다.  

 

Title 여섯번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4-25 12:17 Read 523

본문

푸시킨의 마지막 5

 

 

상트페테르부르크엔 작가의 생가가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의 대문호라 불리는 푸시킨이 마지막 5달을 보냈다고 알려진 아파트는 현재 관광 명소로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번 시간엔 실제 푸시킨이 살았다던 아파트의 내, 외부를 둘러보며 그의 인생과 죽음에 대해 알아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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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는 에르미따쥐 앞 궁정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쭉 가다보면 мойка 운하가 나온다. 운하를 건너왼쪽으로 꺾어 가다보면 푸시킨 호스텔이 나오고 바로 옆에 박물관 입구가 있다. 박물관은 크게 푸시킨이 실제 살았던 아파트와 전시회로 나누어 진다. 매번 박물관을 때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파트 관람을 선택하는 것으로 봐선 쪽이 인기가 많은 듯하다. 표는 러시아대학교 학생증 혹은 국제 학생증이 있으면 학생 할인을 받을 있다. 관람을 견학프로그램 혹은 오디오가이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값에 포함돼 있음)그리고 사람이 적은 평일에 가야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를 빌리기 쉽다. 나의 경우 학생 할인 기준으로 입장권 240루블(입장 50루블 + 오디오가이드 190루블) + 사진 촬영용 200루블로 440루블이 들었다. 휴무일은 매주 화요일과 마지막 금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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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박물관의 다른 묘미는 바로 입구에 있다. 루스끼 무제이도 그렇고 곳도 입구가 건물 모퉁이 지하의 작은 문으로 돼있다. 대부분 이런 입구들은 과거 하인들이 드나들던 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옷을 맡기는 гардеробная 나온다. 곳에서 옷을 맡기고 오디오 가이드를 받으면 바로 박물관 내부를 있다. 견학프로그램을 선택한 경우 자신의 시간대에 맞춰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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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실

 

지하실을 들어가면 가장 먼저 푸시킨과 조르주 단테스의 결투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눈에 띈다. 조르주 단테스는 네덜란드 공사의 양자이자 러시아로 망명한 프랑스군 장교로 푸시킨의 부인 나탈리아를 흠모했다고 한다. 사교계에서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했던 나탈리아는 그와 관련한 여러 염문설에 휩싸이게 되고 때문에 푸시킨과 단테스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심지어 단테스는 나탈리아의 언니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애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둘은 1837 1 29일에 마지막 결투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결투 당일 단테스가 규칙을 어기고 먼저 총을 쏘는 바람에 푸시킨은 크게 부상을 입었고 결국 며칠 사망하였다. 사람 사이의 결투는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민들에게도 뉴스 거리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병문안을 가기 위해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의 지인 혹은 의사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하인들이 다니는 쪽문을 자주 이용하였고 앞엔 병세에 관한 당시 메모가 붙어 있다. 주요 내용은 건강 상태가 전혀 호전되지 않고 있다, 정도이다. 결국 며칠 뒤인 2 10 오후 2 45분경 그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지하실을 나와 한층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그가 살았던 아파트 내부를 구경할 있다. 푸시킨은 발콘스키라는 공작 소유의 건물에서 11개의 방을 빌렸고 1836 9월부터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내에 집을 소유한 적이 없었고 대부분이 빌린 것이다. 모이카강 맞은편의 현재 박물관은 그가 나탈리와의 결혼 6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빌린 집이다. 그의 죽음 주코프스끼의 증언과 각종 문서들을 바탕으로 현재 7개의 방들이 복원된 상태이며 본격적인 관람은 응접실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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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접실

 

푸시킨은 응접실 가운데 탁자에서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자주 하였다. 결투가 있던 날도 아내는 방에서 그를 기다렸으나 오후 4시가 지나도 푸시킨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하인에게 아무도 안에 들이지 것을 당부하며 응접실을 나갔으나 의사 콘스탄틴이 전보도 없이 외투도 벗지 않고 안으로 들어와 나탈리아에게 날의 비보를 알렸다고 한다. 응접실은 그의 지인들과 의사들의 만남의 장소로 자주 쓰였다. 탁자 가운데엔 내부 약도와 투르게네프의 서신이 보관되어 있다. 탁자 맞은편엔 작은 진열장이 있는데 안엔 빨간 유리로 식기와 푸시킨 가문에서 전해 내려왔던 은수저, 국자가 담긴 쟁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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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실

 

거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그의 초상화가 눈에 띈다. 그림의 원본은 현재 모스크바 뜨레쨔꼬쁘스키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푸시킨은 증세가 악화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의사가 거실 한쪽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보며 고통을 표현해도 된다고 하였지만 이마저도 거절했다. 아마 그는 거실 뒤쪽에서 모든 대화를 듣고 있을 아내를 안심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와중에 황제 니콜라이 1세에게 단테스와의 결투에 대한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황제는 답변으로 남은 가족들을 보살피겠다는 호의적인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황제의 푸시킨에 대한 애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죽음 시신 처리부터 장례 절차까지 일일이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현재 이들의 서신은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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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도/ 나탈리아 자매의

 

복도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나탈리아의 방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녀의 소지품들이 주로 전시돼 있기 때문이다. 방에는 그녀가 푸시킨으로부터 받은 편지와 소지품들이 보관돼 있다. 당시 푸시킨은 문학 잡지 современник 발행하는데 썼으나 잡지가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끌지 못하였고 경제적으로 많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대신해 그녀는 돈이 되는 물건들을 팔아 넘겨 생활을 유지했다. 창문의 가운데엔 젊은 시절 그녀의 초상화가 놓여있다. 또한 방의 바로 왼쪽엔 나탈리아 자매들(예카테리나, 나탈리아, 알렉산드라) 살았던 방도 일부 공개돼 있다. 시골의 그리 넉넉지 않은 가정 출신이었던 자매들은 당연히 신부감으로서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나탈리아의 아름다움은 모든 것들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벽엔 자매의 초상화와 그녀들의 든든한 지원자였던 이모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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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방은 아이들이 자주 지냈던 곳이다. 바닥엔 푸시킨 가문에서 기증한 나무 장난감들이 놓여있다. 푸시킨에겐 자녀(마리아, 알렉산드르, 기오르기, 나탈리아) 있었으나 가운데의 진열장엔 위로 아이들의 초상화가 놓여 있다. 대신 방의 왼쪽 벽면에 나탈리아의 초상화가 따로 걸려있다. 방의 켠에 놓인 병풍 뒤에서 유모는 아이들의 젖을 물리곤 했다. 또한 방문 옆엔 그의 첫째 마리아가 세례를 받을 당시 입었던 옷과 연필로 스케치된 자녀들의 그림이 놓여있다. 그는 자신의 첫째 딸을 자주 машечка라고 부르며 귀여워했다. 스케치된 그림은 푸시킨의 죽음 그의 영지인 미하일로프쓰꼬예에서 여름을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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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 출구

 

아이들의 방을 지나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푸시킨의 서재가 나온다. 책장엔 그가 직접 모은 4000권이 넘는 책들과 만권이 넘는 외국 도서( 17개국어) 보관돼 있다. 책상에서 그는 자신의 중편소설 '대위의 '(Капитанская дочка) 완성하였고 표트르 대제의 역사에 관한 편찬 작업을 시작하였다. 서재 왼쪽 편엔 그가 아끼던 자수정이 달린 지팡이를 비롯해 3개의 지팡이들이 놓여있다. 서재 입구 바로 옆엔 단테스와 결투를 벌이던 입었던 조끼와 셔츠가 그대로 보관돼 있어 그날의 분위기를 상세히 느끼게 도와준다. 서재 소파 책상을 보면 청동으로 램프가 보인다. 램프는 훗날 기증된 물품으로 램프 등불 아래서 시로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Евгений Онегин) 집필했다고 한다. 서재를 나오면 출구로 통하는 복도가 있다. 복도의 한쪽 벽면의 진열장엔 그의 시신을 본떠 만든 석고 마스크와 머리카락이 담긴 메달이 놓여있다. 진열장 위엔 영면한 푸시킨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걸려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것의 장점 하나가 바로 작가들의 생가를 직접 방문하여 그들의 , 넓게는 러시아인의 삶을 그대로 느낄 있다는 점이다. 그냥 수업시간에 배울 시험때문에 억지로 외웠다면 곳에선 자연스레 궁금해 하고 알맞은 답을 얻어갈 있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의 태도에서 많이 배운 같다. 가령 생가 보존을 위해 방마다 사람을 배치하는 것부터 해서 체계적인 견학 프로그램까지. 또한 관광지이지만 러시아인들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할 정도로 그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주말엔 아예 하나 둘러보는 데도 차례를 지켜야 정도였다. 연인끼리 혹은 노모를 모시고 가족이 관람을 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문학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언젠가 우리 나라 대표 관광지 하나로 박경리 문학관이 포함될 날을 기대하며 이번 칼럼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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