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권유정

현재 저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연수 중입니다. 러시아학과 학생이라면 정말 많이 들어보고 또 다녀와 본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궁금증이란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살면서 부딪히고 느낀 점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들과 사뭇 달랐습니다. 또한 몇 개월을 살면서 '미리 알았더라면, ~을 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도 남는 터라 후배들이 제 경험을 참고하여 더 성공적인 연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러시아의 차갑고 추운 면만 생각하는 학생들을 위해 저만의 관점과 경험을 토대로 따뜻하고 밝은 러시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 글을 통해 학우들에게 연수, 여행 그리고 해외생활 면에서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선사할 수 있도록 열심히 조사하고 성실히 글을 쓰겠습니다.  

 

Title 아홉번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6-14 10:41 Read 557

본문

칼리닌그라드 여행기

 

흔히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유럽을 향한 창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기, 유럽에 둘러싸여 있는, 그리고 유럽을 아예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러시아의 도시가 있다. 바로 칼리닌그라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실 4월말에서 5월 사이에 간 거라 늦은 감도 있고 또 쓸만한 주제거리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매력이 존재하며 또 개인적으로 처음 경험해 보는 것들이 많았던 곳이라 한번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칼리닌그라드(Калининград)?


- 지리

지리부터 설명하자면 러시아의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다. 얼마나 서쪽이냐 하면 칼리닌그라드의 북쪽은 리투아니아, 남쪽으로 폴란드, 서쪽으로 발트해가 접해있다. 이쯤 되면 아예 러시아 땅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연한 러시아 영토이다. 다만 1946년 이후로 러시아에 편입되었으니 그 역사가 길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부동항, 해군기지 및 관광지로서 러시아 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도시의 기원을 찾고자 한다면 과거 동프로이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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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의 유래

칼리닌그라드는 125591일 튜턴 기사단(오스트리아 빈 출신)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1773년부터 1945년까지 동프로이센의 주도 역할을 하였다. 건설 초창기 이 도시를 독일어론 Königsberg, 러시아어론 Кёнигсберг라고 기록하였으며 한국어로 따지자면 퀴니히스베르크가 공식 명칭이다. '왕의 산'이란 뜻으로 이 명칭의 유래로 가장 널리 퍼진 설이 도시 형성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던 체코의 왕을 기리기 위해 위와 같이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체코, 폴란드, 리투아니아 같은 주변국들 내에선 이 도시(정확히 말하면 도시 중앙에 위치한 성*)를 가리키는 명칭들이 따로 존재했다. 러시아 내에선 표트르 대제 시기까지 Королевец (Королевецъ) 혹은 Королевиц замок라는 명칭이, 그 이후론 1945년까지 쭉 독일어 버전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 1721년까지 쿄닌스베르크라는 명칭은 이 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성을 가리키는 용도로만 쓰였다.

 

- 러시아가 되기 까지

퀴니히스베르크는 1919년 유럽 최초로 공항(Девау)이 세워질 정도로 지리적 요충지였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48월 영국의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결국 410Дер Дона라는 탑(현재 호박 박물관 자리) 위에 빨간 깃발이 걸림으로써 독일령 도시로선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5년 포츠담 회담을 통해 퀴니히스베르크는 일시적으로 소련에 양도되었으며 후에 퀴니히스베르크 주 국경에 관한 협상이 체결됨으로써 완전히 소련의 영토가 되었다. 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던 독일인들은 1947년까지 거의 모두 독일로 추방되었다. 현재 명칭인 칼리닌그라드는 194674일 소련의 혁명가인 미하일 이바노비치 칼리닌을 기릴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다.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가 된 이후 일부 도시들이 옛 명칭을 되찾은 것과 달리 (예를 들면 레닌그라드의 경우 상트페테르부르크 명칭을 되찾음) 칼리닌그라드는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행기를 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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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날은 오후 늦게 도착한데다가 비까지 오는 바람에 대충 숙소에 짐만 두고 밥을 먹으러 갔다.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이었는데 나는 라그만을 시켜 먹었다. 우즈베키스탄의 문화인지 모르겠는데 밥을 먹는 중간중간에 무용수가 와서 벨리댄스 같은 춤을 췄다. 여러 무용수가 돌아가면서 한 명씩 나와 춤을 추는데 어떤 흥이 오른 손님이 무대에 난입해 같이 댄스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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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여행은 이 날부터 시작됐다. 처음 숙소를 나왔는데 꽃이 펴 있길래 엄청 놀랐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트는 4월 말이라 해도 너무 추워서 잠바를 입고 다닐 정도라 꽃은 고사하고 새싹도 보기 힘들었었다. 또한 상트의 경우 소련 시기부터 존재해왔던 아파트 양식인 сталинкахрущёвка가 많이 보이는 반면에 칼리닌그라드는 단독 주택들이 많아서 마치 유럽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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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날 танцующий лес(춤추는 숲)이라는 유명한 숲을 가려고 했는데 견학 프로그램이 이미 다 차서 대신 호박섬을 갔다. (칼리닌그라드는 호박 보석이 많이 나기로 유명하다.) 시외버스를 타고 나가야 이 섬에 들어갈 수 있는데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주거지는 잘 없고 오래된 호박 박물관이나 폐허들이 많아서 꼭 중세시대 유럽에 온 느낌이었다. 호박 박물관을 한 군데 구경한 뒤 바로 이 섬을 둘러싸고 있는 발트해를 보러 갔다. 학교에서 하도 많이 들은 바다 이름이라 실제로 어떨지 궁금했었는데 엄청 광활하고 조용했다. 날씨가 안좋아서 그런지 관광객들도 잘 들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짧게 구경을 마치고 바로 시내 쪽으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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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닌그라드에 온 기념으로 독일 음식점에서 각종 소세지와 샐러드, 술을 시켜 먹었다. 그 뒤 퀴니히스베르크 성당 쪽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 날 마르슈르뜨까와 택시를 탔었는데 확실히 교통비가 상트에 비해 싸다고 느꼈다. 마르슈르뜨까는 22루블, 택시의 경우 공항에서 시내를 가는 것 마저 200~300루블 선이었다. 그래서 주로 택시를 타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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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은 본격적으로 танцующий лес를 가기 위해 여행사에서 알려준 장소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 뒤 버스를 타고 숲 내부까지 이동했는데 이동하는 내내 가이드가 쉬지 않고 설명을 해줬다. 열정적인 분이셨다. 나중에 우리 일행을 보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봐 주기도 했는데 중국인 3, 대만인 2, 그리고 나 혼자만 한국인이라 그냥 퉁쳐서 중국에서 왔다고 했다. (우리 일행 외엔 전부 러시아인 이었다. 그 만큼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휴양지로서 인기가 높은 곳이다.)Танцуюший лес는 나무가 마치 춤춤 추는 것 같이 휘어져 있어서 지어진 명칭인데 куршская коса()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 공원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숲 내에서도 들어가 볼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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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도 어느 정도 구경하고 나면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면 대부분 숲 뒤의 길을 따라 쭉 올라가는데 그 곳에서 신기한 광경을 마주했다. 나무랑 풀이 자라는, 마치 사막 같은 모래사장이 나왔다. 알고 보니 куршский залив()이었다. 이 공원만의 독특한 자연 경관으로 인해 전망대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도 어렵사리 전망대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뒤 바로 바다 쪽으로 향했다. 가이드가 40분 정도의 시간밖에 주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돌을 줍거나 사진 찍느라 정신 없었다. 그렇게 구경을 마친 뒤 우리는 호박 박물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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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퀴니히스베르크가 칼리닌그라드가 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дер дона라는 탑의 꼭대기에 빨간 깃발이 꽂힌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이는 퀴니히스베르크가 더 이상 독일령 영토가 아님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사건이다. 이 탑 자리가 현재 호박 박물관(музей янтаря) 자리인데 역시 꼭대기에 빨간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박물관 내부엔 호박이 종류별로 전시돼 있어 눈길을 사로 잡았다. 특히 박물관 아래층에서 실제 호박을 팔기도 하는데 친구들이 다들 호박을 좀 사가겠다며 한시간이 넘도록 구경했다. 우리 나라에선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호박 보석을 착용하는 것에 반해 중국에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선호하는 보석이라고 한다. 또한 중국에선 여행을 가면 가족부터 친구까지 기념품을 챙겨주는 것이 문화라고 한다. 덕분에 나도 평생 볼 호박을 여기서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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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녁으로 간단하게 шаурма라는 난에 싸먹는 음식(서브웨이 샌드위치 비슷함)을 사 먹었다. 갑자기 가게 안에 동양인이 6명이나 몰려 오자 주인 분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 보셨다. 그래서 일일이 국적을 설명해 줬더니 다들 러시아어로 대화를 하냐며 신기해 했다. 알고 보니 주인 분도 아르메니아 사람이었다. 비록 러시아에 와 있지만 가게 안엔 러시아인이 한 명도 없는 신기한 상황이었다. 끼니를 해결하고 저녁 7시쯤에 퀴니히스베르크 성당에서 열리는 연주회를 보러 갔다. 우선 표 값이 300루블 안팎으로 싸면서 양질의 연주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인지 기둥 뒤 자리까지도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성당에 1789년 러시아의 작가 카람진이 다녀갔을 정도로 유서 깊은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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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1, 마지막 날

이 날은 숙소에서 멀지 않은 칼리닌그라드 동물원으로 향했다. 러시아에서 가장 큰 동물원이며 1896년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 명성에 걸맞게 동물의 종류부터 규모까지 다양했다. 그 다음 날인 노동절까지 쉬는 날이었기 때문에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정 량의 돈을 내면 양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양들이 배가 불러서 인지 먹이를 주려고 하면 도망갔다. 또한 곰의 나라답게 곰 우리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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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이 마지막 날이었는데 비행기 타기까지 시간이 남아서 다시 퀴니히스베르크 성당에 들렀다. 그 곳에서 당일치기로 오르간 연주 콘서트 티켓을 구매한 뒤 공연 전까지 호박 및 기념품을 구경했다. 칼리닌그라드 출신자 중 가장 유명한 이가 바로 프로이센의 철학자 엠마누엘 칸트이다. 그는 후에 이곳 콜레지움 알베르티눔(알베르티나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정도로 이 도시와 연관이 깊다. 그래서인지 러시아 철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이 새겨진 기념품이 자주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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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오르간 연주를 들으러 미리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이 곳 오르간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르간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또한 1695년에 오르간이 설치되었을 정도로 그 역사도 깊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으로 한 번 크게 훼손 된 적이 있기 때문에 복원된 지 얼마 안된 성당 이기도 하다. 밑에서 찍어서 잘 안보이지만 연주자가 가운데에 움푹 들어간 공간에서 연주를 했다. 처음 오르간 연주를 들어봤는데 굉장히 몽환적이고 오묘한 소리가 났다. 또한 악기는 벽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데 연주자는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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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마치며


사실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로운 도시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좋았지만 외국인들과 가는 첫 여행이라는 점에서 더 뜻 깊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처음부터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나만 중국어를 못하다 보니 의사소통 하면서 답답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배려하고 의견 조율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또한 미숙한 러시아어로라도 서로의 나라와 살아온 길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만약 한국에 있었더라면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 러시아에선 외모부터 가치관까지 전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부딪히며,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서 배우게 되는 것들이 단순히 러시아어를 잘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 들어 느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여행이 나에게 많은 동기부여를 심어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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