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이수정

안녕하세요 로컬리티 Global -K 3기 러시아학과 14학번 이수정입니다.
 
저는 이번 학기 시베리아에 위치한 러시아 제 3의 도시 노보시비르스크(Novosivirsk)에서 7+1 파견학생으로 수학합니다. 저는 엔게우 대학 생활과 러시아 문화에 대해 경험과 지식을 섞어 칼럼을 게재할 것입니다.
기타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유롭게 연락 주세요~

 

dhfpswl0325@naver.com 

Title 열두번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6-29 15:34 Read 605

본문

 

손님을 반기는 러시아인 ― 초대받은 자의 자세

 

 

 

 

바로 오늘 낮에 엔게우 여름학기 수업을 들으면서 친해진 러시아 친구 크리스티나의 집에 초대 받아 다녀왔다. 정식으로 시간약속을 잡고 초대받은 것은 처음이라 나름대로 많이 떨렸지만 손님으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러시아 친구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지켜야 할 점과 미리 알아두면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 러시아인의 생활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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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에 대해 가지는 흔한 고정관념이자 인식 중 하나가 바로 гостеприимный(손님을 반기는)한 특성이다. 실제로는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이 정말 그렇다.

보통 한국에서는 얼굴을 익힌 지 2주도 채 되지 않은 외국인을 사적 영역인 집에 초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의 러시아 친구들은 처음 만난 바로 그 날 배가 고프지 않냐며 나를 집에 데려가 보르쉬를 끓여 주기도 하고, 본인의 집에 언제든 놀러오라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곤 했다.

 

크리스티나에게 정식으로 초대를 받은 뒤, 예전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예의바른 손님이 되기 위해 마트에 들러 초콜릿을 샀다. 러시아인의 집에 방문할 때는 빈손으로 가면 안 되고, 반드시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 선물한다는 자체가 중요하므로 무엇을 준비 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보통 차와 함께 마시기 좋은 케익, 초콜릿과 같은 디저트류의 선물이 무난하다. 보통 러시아인들은 식후 그 디저트를 그대로 내어주곤 했다.

 

집에 도착한 뒤 현관에서부터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예전에 책에서 읽은 후 항상 주의하는 점인데, 러시아에서 문지방이나 출입구 사이에서 인사하는 것은 ‘너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둔다’는 좋지 않은 의미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내어 이를 주의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러시아 집의 구조상 특징 중 하나는 신발을 갈아 신는 공간이 따로 없는 점이다. 보통 현관 앞에 신발을 벗어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 것이 일반적이다.

크리스티나는 아직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약혼자인 남자친구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사실 소비에트 시절부터 러시아에서 대학생의 결혼은 아주 흔한 일이며, 최근에는 20대 초반에도 크리스티나처럼 동거와 같은 사실혼을 많이 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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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는 손님을 위해 블린을 굽고 있었다. 부엌이 넓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좁은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보통 한국에서는 요리하는 부엌과 손님을 접대하는 거실이 별개로 존재하지만, 러시아인들에게 부엌이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요리도, 설거지도, 음식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하는 곳이다. 음식을 먹는 바로 앞에서 블린을 굽는 크리스티나의 등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신기한 문화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 나는 이 날 ‘러시아인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는 반드시 공복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100% 체감했다. 한국의 인정 많은 할머니들의 권유만큼이나 러시아 집주인의 권유도 이에 못지않았다. 크리스티나는 찻잔이 비워지기 전부터 끊임없이 чёрный 차와 зелёный 차 중 무엇을 더 마실지를 물었고, 배가 부르다는 말에도 끊임없이 블린을 구워냈다. 그와 동시에 산책을 다녀와서는 무엇을 먹을 것인지를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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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잠시 집 앞 공원에 나가 오리를 구경하며 산책을 하고, 다시 돌아와 사과잼을 넣은 пирог을 먹기까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동양에 관심이 많은 집주인들과 6.25전쟁에 대해, 북한과 김정은에 대해, 본인들의 파란만장한 연애사에 대해, 벽장에 꽂힌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러시아인의 수다 본능을 새삼 느끼면서 이야기 소재의 무궁무진함에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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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나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가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그 의미가 좀 더 색다르고 특별하다. 쉽게 웃지 않고,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그들이기에 개인적인 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자는 암묵적인 그리고 기분 좋은 제안이다. 또한 나와의 관계를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소중히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번에 느꼈지만 러시아인의 집에 손님으로서, 특히 외국인 손님으로서 가는 것은 초대한 주인만큼이나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러시아 친구가 당신을 집으로 초대한다면 하루를 통째로 비우고 진심을 잘 전달하여 그들과 더욱 가까워지는 소중한 기회로 삼길 바란다.

 

 

 

 

사진출처

https://russiafocus.co.kr/arts/2014/02/17/43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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