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이수정

안녕하세요 로컬리티 Global -K 3기 러시아학과 14학번 이수정입니다.
 
저는 이번 학기 시베리아에 위치한 러시아 제 3의 도시 노보시비르스크(Novosivirsk)에서 7+1 파견학생으로 수학합니다. 저는 엔게우 대학 생활과 러시아 문화에 대해 경험과 지식을 섞어 칼럼을 게재할 것입니다.
기타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자유롭게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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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열한번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6-26 20:33 Read 613

본문

러시아에서의 산책의 큰 의미 : 걷고 또 걷고

 

 

 

벌써 러시아에서 생활한 지 4달이 다 되어가는 이 때, 노보시비르스크에 와서 처음으로 러시아 친구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아는 선배가 노보 유학 시절 친해진 친구를 미리 소개시켜 준지라 한국에서부터 미리 연락을 주고받은 뒤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 얼굴을 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친구는 걷자!(Давай гуляем!) 라고 말했다. 이를 시작으로 나는 지난 네 달 동안 러시아 친구들과 수없이, 아주 많은 시간 동안 거리를 걸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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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은 산책(Гулять[굴랴찌])을 참 좋아한다.

이는 날씨가 좋고 나쁘고와 관계가 없다. 비나 눈이 와도 괜찮고, 해가 떠 있으면 더욱 굴랴찌 하기 좋은 날이 된다. 보통 한국에서는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며 친해지는 경향이 있어 함께 카페나 분위기 좋은 식당에 가는 반면, 러시아인들은 만남에 있어 목적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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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부분의 사람들도 걷기를 좋아하지만 러시아인이, 그 중 특히나 학생들이 더 굴랴찌를 선호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산책을 하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러시아의 대학생들도 대부분 부모님으로부터 등록금을 받아서 공부한다. 특히나 엔게우는 러시아 내 10위권에 손꼽히는 명문 대학인만큼 과제도 많고, 등록금도 모스크바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대학에 비해 비싼 편이라고 했다. (엔게우의 어문학부에서 공부하는 내 친구의 등록금은 한 학기에 47000루블, 1년에 94000루블. 대략 한 학기에 약 90만원 정도이다.) 물론 등록금이나 물가가 한국만큼 비싸지는 않지만 러시아의 최저시급이 약 2천원인 것을 고려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또 대학원생의 경우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갑이 넉넉지 않은 학부생들에게는 최소 150루블이 넘는(약 3천원)이 넘는 밥 한 끼, 커피 한 잔도 절약의 대상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시베리아의 날씨가 시시각각 변한다는 데 있다.

 

내가 겪은 시베리아는 아침에 해가 쨍쨍하다가도 저녁에 번개가 치고, 비가 폭풍처럼 오다가도 순식간에 하늘이 맑아지는 곳이다. 매일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선생님의 첫 질문이 ‘오늘 날씨가 어떻냐~?’는 것일 정도로 그들에게 좋은 날씨의 의미는 생각보다 큰 듯 했다. 겨울이 길고 추운 만큼 비교적 날씨가 좋은 여름날에는 자주 거리 나가 해를 보고 자외선을 쐬어주는 것이 그들의 불문율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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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아직 이해하기 힘든 러시아어를 거리의 소음 속에서 걷고 듣고 대화하자니 벅차게 느껴지기도 했고, 목적 없이 그리고 언제 끝난다는 기약 없이 걷는 것이 낯설기도 했다. 커피를 마셔도 С собой(테이크 아웃)가 익숙한 그들을 따라가기에 내 다리는 너무 자주 그리고 빨리 아파왔다. 햇볕이 쨍쨍한 날, 쉬지 않고 아카뎀 근처를 3시간동안 이야기하며 걸은 날에는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생활 속 작은 습관으로 건강을 지키고 있었고,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걷다가 마주쳐오는 나비 떼에 함께 웃고, 갑자기 흩날려 오는 눈을 함께 맞으며 정을 나눴다. 한편으로 나는 그제서야 러시아의 거리에 왜 벤치와 쓰레기통이 많은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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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내가 공부하는 엔게우 근처의 아카뎀고로독에는 굴랴찌에 적합한 공원이 딱히 없다. 대신 걸어서 30분 거리에 Обское море(압스꼬예 바다) 라는 호수가 있다. 사실은 호수지만 바다라는 호칭을 쓸 만큼 넓고 파도치는 곳이어서 겨울이든 여름이든 아카뎀고로독의 사람들이 자주 가서 해변을 거니는 곳이다. 육교도 건너야 해서 생각보다 힘들 수는 있지만 특히 여름에는 산책도 자주 가고, 자외선을 받으며 수영도 하고, 샤슬릭도 구워먹을 수 있는 아주 여러모로 유익한 공간이니 아카뎀고로독에 온다면 꼭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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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Обское мор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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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Обское мор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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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학생들과의 Обское море에서의 추억

 

 

보통 한국인들은 여름에는 더워서 빨리 볕을 피해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로 들어가고, 겨울에는 추워서 빨리 난방이 빵빵한 실내로 들어가기 바쁘다. 하지만 러시아에 온 뒤로는 날씨를 이기는 법을 배운 듯하다. 산책으로 지갑과 건강을 동시에 지키는 러시아인들을 보며, 아마 나도 한국에 돌아가서 굴랴찌 전도사가 될 것도 같은데, 무더위를 뚫고 과연 친구들이 함께 걸어줄 지가 의문이다.

 

작성일 2017.6.25일 기준 환율 19.10루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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