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열번째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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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06-25 15:32 | Read | 7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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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만이 즐기는 ‘다차(дача)’에서의 여유
지난 주말, 러시아어 교수님의 초대를 받아 노보시비르스크 근교 콜리반에 위치한 다차에 다녀왔다. 러시아 문화 수업시간에 책으로 배운 그 곳에 드디어 가 본다는 설렘에 출발 2일 전부터 얼굴 팩도 하고 이것저것 사들이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다차(дача)란, 통나무로 지은 집과 텃밭이 딸린 주말농장과 같은 집을 말한다.
놀라운 것은 도시에 사는 사람 중 70% 이상이 다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집이 두 개라는 소리인데, 러시아 평균 소득이 우리나라보다 적은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도심을 잠깐 벗어나면 다차가 줄지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다차는 러시아인들에게 일상이다.
별장의 개념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처럼 반드시 도심에서 멀리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도심에서 100~200km 내에 위치해 있으며 멀리 위치할수록 값이 싸다. 내 러시아 친구의 별장은 노보시비르스크 중심지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고 했다. 또한 다차는 주로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경우가 많다.
공산사회 때부터 노동의 고단함에서 잠시 벗어나 러시아인에게 휴식처이자 안식의 공간이 되어준 다차의 시작은 1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의 서구화·유럽화를 위해 힘쓴 표트르 대제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여름용 별장을 짓고, 귀족들에게도 주말용 별장의 생활화를 명령한다. 또한 1890년대에 철도가 본격 상용되면서 평민들에게도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러시아 정부가 다차를 갖고 싶어 하는 직장인들에게 이를 무상 분배하면서 러시아인들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되었다.
나를 초대해주신 선생님의 다차는 노보시비르스크 중심지에서 마르슈르트카를 타고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토요일 오전 8시 반에 출발해 그 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주변의 다차에는 다른 가족들이 와서 그들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보통 다차는 겨울에는 추워서 여름에만 자주 이용하는데 그 곳에는 여름동안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와서 살고 계셨다. 1년 만에 보는 자식 얼굴에 행복해 하시면서 우리 학생들도 기쁘게 맞아주셨다.
특히 다차 주변이 오비강 중류와 맞닿아 있어 수영복을 입고 수영하는 어린이와 태닝을 하는 부모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시베리아라고 하기 힘들 정도의 그늘 하나 없는 무더운 날씨에 나도 뛰어들고 싶었지만 옷을 챙겨오지 못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사실 선생님의 다차는 오래되어서 시설이 그다지 잘 갖춰져 있지는 않았다. 싱크대가 없어 우물에서 길어온 물이나 빗물을 사용해야 했고, 화장실도 외부에 작은 오두막으로 대신했고, 걸어서 15분 정도 나가야 맥주와 먹거리를 파는 매점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다차를 가득 메우는 가족들의 정겨움과, 일상에서 벗어나 교외에서 보내는 재충전의 시간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러시아인들이 다차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1985년 발생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정책으로부터 목숨을 건져준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주성과 창의성이 무시된 집단주의·획일화 사회, 극도의 통제를 바탕으로 한 계획경제와 관료사회에서 갑작스러운 개방과 개인의 영역 보장은 오히려 혼란을 가져왔다. 루블이 폭락하고 인플레이션이 폭등하고 실업자가 무수해진 경제위기 속에서 러시아인들은 다차에서 생산한 감자와 오이로 대규모 기아 사태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차에서 맛있는 요리를 해 먹고, 꿀 같은 낮잠도 자고, 카드게임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늦은 저녁 집에 돌아왔을 때 마음이 너무도 든든했다. 그들이 왜 다차를 사랑하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여름이라 모기와 벌레가 너무 극성이어서 가려운 다리를 부여잡고 한동안 고생을 좀 해야 했다.
우리나라와 같은 많은 나라들은 국토 면적이 넉넉지 않아 주택문제만으로도 벅찬 반면, 러시아는 그 넓은 땅에 서쪽에 치우쳐 있는 인구 분포로 인한 ‘빈 땅’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차를 택했다.
다른 나라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독자적인 다차 문화는 러시아의 여유로움과 안정적인 삶, 바쁜 일상에서 어떻게 한걸음 물러서 숨을 내쉴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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