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다섯번째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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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6-11-21 14:12 | Read | 753 |
본문
다섯 번째 칼럼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를 가다!
모로코 사람들은 모로코에 여러 개의 수도가 있다고 말한다. 문화의 수도라고 불리는 마라케시와 페스, 경제 수도로 불리는 카사블랑카 그리고 모로코의 국왕 모하메드 6세가 있는 행정 수도 라바트. 모로코에 온지 막 3개월이 지난 현재, 그동안 업무와 초대로 라바트를 방문한 적은 여러 번 있지만 개인적으로 라바트 구경으로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00만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대서양과 접해있는 지중해의 보석,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를 가 보았다.
[라바트의 기차역인 라바트 아그달 역. 라바트 아그달 역과 라바트 빌 역이 라바트의 주요 기차역이다]
1. 하산 타워와 모하메드 5세 묘
카사블랑카의 기차역인 카사포트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라바트(카사블랑카와 라바트의 까지 거리는 약 85km이다). 라바트 아그달 역에서 내리자마자 역 입구에는 손님들을 기다리는 쁘띠 택시가 줄지어 서 있었다. 도시의 차분한 느낌에 걸맞게 파란 쁘띠 택시의 색깔이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택시를 잡고 목적지인 하산 타워로 출발했다. 일반적으로 승객이 타면 미터기를 누르는게 정상이지만 하산 타워까지 가는 금액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이 운전기사는 미터기를 누르지 않고 출발했다. 그렇게 십분 정도를 달리고 그가 부른 금액은 10 디르함. 한화로 약 1200원 정도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모로코의 택시는 가격이 저렴하다. 운전기사들의 곡예운전에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모로코의 택시는 더할 나위 없는 교통수단일 것이다.
하산 타워에 도착하고 나서 제일 처음 보이는 풍경은 전통 복장을 한 뒤 말을 타고 입구를 지키는 2명의 경비병들이다. 만지는 것은 안 되지만 같이 사진을 찍는 것은 가능해서 경비병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한 자리에 계속 서 있는 것이 고역일 텐데 가만히 있는 말이 대견하고 불쌍하기도 하였다]
입구를 지나서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바로 하산 타워(Tour Hassan)였다. 하산 타워는 무와히드 왕조의 술탄 중 한명인 ‘야쿱 알 만수르’가 스페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모스크이다. 원래는 그의 군대가 모두 들어갈 만큼 크게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완공되기 이전에 그가 사망하는 바람에 모스크의 터가 될 기둥과 모스크 첨탑인 ‘미나렛‘만 남아있었다. 첨탑도 현재는 44m 높이이지만 예정대로라면 그의 두 배의 길이가 되었을 것이다.
[정면에서 본 하산 타워. 예정대로라면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모스크가 될 수 있었는데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측면에서 바라본 모스크 터와 하산 타워]
하산 타워와 마주보고 있는 건축물이 바로 모하메드 5세 묘이다. 모하메드 5세는 현재 국왕인 모하메드 6세의 조부이며 1912년 이후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의 선두에서 싸웠고 1956년 3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성취하여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모로코의 근대화를 위해 힘쓰다가 1961년 서거하였는데, 모하메드 5세를 기리기 위해 1962년부터 1969년까지 7년 동안 400명이 넘는 장인이 공들여 완성한 것이 모하메드 5세 묘이다. 수많은 장인이 노력이 보여 주듯이 실내는 물론 실외 세세한 장식 하나하나까지 정교한 조각과 장식을 자랑했다. 모하메드 5세 묘 실내에는 현재 국왕의 아버지인 하산 2세와 작은 아버지의 관이 함께 안치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모하메드 5세의 관이,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하산 2세와 그의 형제의 관이 위치하고 있다. 동서남북 각각 위치한 입구에는 들어오는 길에 보았던 경비병과 같은 복장을 한 경비병이 늠름하게 서있었고 실내 각 모서리에도 경비병이 서 있었다.
[외부에서 바라본 모하메드 5세 묘. 휴일이라 관광객이 북적인다.]
[각 입구에 배치된 경비병. 한 관광객이 사진을 같이 찍으려 그의 곁으로 가고 있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것이 모하메드 5세의 묘이다. 그 위로 하산 2세, 모하메드 6세의 작은 아버지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 주변에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이 인상적이다.]
[내부 전경. 어느 한 곳이라도 허투루 장식된 곳이 없다. 내부 각 모서리에도 경비병이 있다.]
[모하메드 5세 묘 천장 사진]
2. 라바트 메디나
라바트의 랜드 마크인 하산 타워와 모하메드 5세 묘를 구경하고 나서 발길을 돌린 곳은 라바트 메디나였다. 메디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성지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슬람 도시 중 교외에 건설된 구 시가지를 ‘메디나‘라고도 한다. 메디나 구역의 특징은 성벽이 구 시가지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상업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경제 구역이라는 것이다.
[메디나의 입구. 사진에 있는 벽 안쪽으로 메디나 구역이다. 입구부터 자리를 잡고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즐비하다.]
어느 도시의 메디나든 소매치기나 몸조심, 길조심 하라는 조언을 듣고 잔뜩 긴장해서 들어간 메디나는 외국인이라 현지인들의 주목을 한 눈에 받는 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화로웠다. 오히려 우리나라 재래시장에 온 것 같이 빽빽이 들어선 상점과 여기저기서 호객행위 시끌벅적하여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약간 이국적이고 익숙하지는 않지만 싫지는 않은 향신료의 오묘한 냄새와 좁은 공간에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로코 사람들을 보니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모로코의 모습이 느껴졌다. 옷, 신발, 향신료, 그릇, 카펫에서 거북이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구경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 덧 점심시간이 되어 메디나 구역 안에 있는 모로코 음식점에서 따뜻한 따진을 먹은 후 다음 장소로 향했다.
[미로처럼 얽혀진 수많은 메디나 골목 중 하나]
[메디나 구역 촘촘히 들어선 상점들. 찍을 때는 있는 것을 몰랐지만 앞에 모자를 쓴 아저씨는 모로코 전통 복장을 하고 양가죽에 들어있는 시원한 물을 파는 사람이다. 보통 사진을 찍으면 몇 디르함씩 쥐어주어야 하는데 사진을 찍고 후다닥 지나가서 저렇게 쳐다보는 모습이 찰나에 찍혔다.]
[북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인 따진. 고기과 야채 소스를 빵과 함께 곁들여 먹는다. 음식에 대한 칼럼은 추후 게시할 예정이다.]
[메디나로 가는 길에 찍은 관공서 알림판. 위쪽부터 아래로 아랍어, 베르베르어, 프랑스어 순이다. 네 번째 칼럼에서 쓴 것처럼 베르베르어 사용자를 위한 안내도 간간히 보인다. ]
3.카스바 우다이야에서 만난 아지즈
메디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발길을 돌린 곳을 카스바 우다이야였다. 메디나의 성벽이 상업, 경제 구역을 위한 성벽이라면 카스바는 군사, 요새를 위한 성벽이다. 카스바 우다이야 옛날에 성채와 곡물창고 감옥으로 쓰였었다. 12세기 말에 지어진 정교한 모양으로 조각된 우다이야 문을 지나면 흰색, 파란색으로 칠해진 주택가가 펼쳐진다. 주택가 골목골목마다 흰색과 파란색 바탕이 그림처럼 칠해져 있었고 아름다운 색에 이끌려 가다보니 방향감각을 상실할 정도로 골목에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길을 잃어버린 필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유창한 영어가 들려왔다.
[카스바 우다이야 정문]
[카스바 우다이야 주택가의 한 골목길. 파란색은 기회, 흰색은 평화와 사랑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아지즈’라고 소개하며 공인 가이드라고 말했다. 그리고 능숙한 영어로 나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러다가 필자가 프랑스어를 한다는 것을 알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는데, 라바트로 관광차 왔다고 하니 자신이 이곳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공인 가이드라고 하며 공짜로 해줄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결국에는 터무니없는 수고비를 요구한다는 것을 익히 들었고 낯선 사람이 호의를 베풀면 응당 그 이유가 반드시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침착하게 수고비를 지불해야 하는지, 가격은 얼마나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가격은 300 디르함. 300 디르함이면 거의 3일치 식비보다 많았다. 하지만 흥정할 때는 지불하는 쪽이 유리한 법, 그렇게 학생이고 돈이 얼마 없다고 설왕설래를 하다가 결국에는 처음의 반값인 150 디르함으로 낙찰되었다. 이것도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마침 설명도 없이 혼자 구경 다니는 것도 지루해지기 시작했던 참이라 큰 맘 먹고 지출을 결정하였다. 그래서 150 디르함이 아깝지 않도록 보이는 것마다 질문하고 이제껏 궁금했던 것도 모두 물어보았다. 벽은 왜 파랗고 하얀지, 저긴 어디고 이 건물은 무엇인지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모로코에서 태어난 아지즈는 카스바 우다이야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살고 있으며 아버지도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20년 동안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했고 프랑스에도 14년 동안 살았다고 한다. 그의 프랑스어가 다른 모로코 사람들보다 익숙하고 듣기 편했던 이유가 프랑스에서의 오랜 체류기간이었던 것이다. 30분이 넘는 가이드 시간 동안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필자를 포토 존에 데려다 주어 사진도 찍어주고 대서양이 보이는 풍경도 보여주었다. 그렇게 가이드가 끝나갈 무렵, 그는 필자가 마음에 든다(?)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차를 한잔 대접해 주고 싶다고 하였다. 라바트에 오기 전에 읽었던 모로코 여행 후기를 보면 가이드가 가이드를 마치고 대개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로 데려가 강매를 해서 끝이 씁쓸하게 난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이미 150 디르함으로 합의를 보았고 언제 또 모로코 사람의 집에 방문해 보겠는가? 그것도 카스바 우다이야 있는 집에! 마치 우리나라 벽화마을에 사는 사람의 집에 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카스바 우다이야 언덕에서 찍은 사진. 건너편에 보이는 곳이 쌀레 지구이다]
[카스바 우다이야에서 찍은 전경. 도로 옆에 평야에 조그맣게 보이는 것이 하나하나 모로코사람들의 묘비이다]
[포토 존이라며 사진을 아지즈가 찍어준 사진. 아쉽게도 배터리가 다 되어 그와 같이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그의 집으로 들어갔고 아지즈는 설탕을 듬뿍 넣은 민트티를 가져다주며 편히 있으라고 하였다. 아지즈의 집은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아늑했으며 라바트와 대서양이 한눈에 보이는 풍경에 위치해 있었고 따사로운 햇살이 집안 전체를 가득 채웠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주름살이 깊게 패인 얼굴에 선한 눈을 가지고 있던 아지즈는 은퇴 후 아내와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소일거리 겸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렇게 달콤한 민트티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아지즈는 아버지뻘의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개방적이었으며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이슬람 국가에서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며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고 했다. 따뜻한 민트티를 마시자 긴장되어있던 몸이 점차 풀렸고 아지즈와도 대화하기가 더욱 편해졌다. 그리고 어느 덧 기차를 탈시간이 되자 그는 나중에 다시 라바트로 오면 꼭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주며 나가는 길 까지 배웅해 주었고 비쥬(양 볼을 서로 대며 하는 프랑스식 인사)까지 하며 멀리서 온 이방인에게 작별인사를 해 주었다. 그렇게 짧았던 라바트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슈크란 아지즈, 다음에 만나요.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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