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첫번째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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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6-03-08 09:58 | Read | 566 |
본문
신비한 야만의 나라 인도, 떠난다는 것에 관하여
인도로 떠남의 시작은 머물 곳을 정하는 것과 항공권 발권에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직접적으로 떠난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지만 숙소를 정하고 항공권 발권을 하는 순간 떠나는 것은 현실이 된다. 인도는 흔히 사람들이 미지의 세계 그리고 신비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집단 강간사건이 발생하는 위험한 나라로도 생각한다. 이러한 인도로 떠날 때 준비해야 할 것은 많지 않다. 내가 머물 곳과 바람처럼 자유로운 마음가짐 하나면 충분하다.
인도로 떠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인도에 대한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도를 정신과 명상이 발전한 신비한 나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면에는 인도는 현실적으로는 무능하고 발전가능성이 없는 후진국이라는 멸시가 깔려있다. 이러한 양면적인 생각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알아야 인도에 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인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인도를 수동적이고 정적인 이미지의 나라로 만드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제국주의 영국이다. 제국주의 영국은 인도를 지배하려는 욕구에 의해 인도를 비합리적인 원시와 야만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규정을 통해 인도와는 반대로 자신들은 진보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했다.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집단인 제국주의 영국이 비합리적이고 야만적인 인도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로 제국주의 영국은 인도를 넘어 동양의 식민지배를 정당화 했다. 이렇게 서양이 동양을 비합리적인 야만국으로 규정하는 행위는 동양을 지배하려는 욕구와 필요에 의해 시작되고 정교화되며, 실제로 식민지 정책과 맞물려 더욱 발전했다.
그러나 현시점에 인도를 지배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우리는 왜 인도를 현실적으로 무능한 나라, 요가의 나라, 강간의 왕국이라는 둥 온갖 야만적인 것은 인도와 연관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서양의 제국주의적 정복욕과는 또 다른 인도에 대한 욕구가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인도를 열등한 ‘동양’으로 타자화하면서 우리 자신을 발전한 서양과 동일시한다. 이렇게 타자를 규정함으로써 곧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제에 의해 이류 민족으로 전락당한 경험이 있는 우리는, 이제 먹고 살 만해지니까 인도에게 동양을 전담시키고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자아상을 갖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잠재의식적으로 인도와 같은 동양으로 동일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인도는 신비한 나라도, 야만적인 나라도 아니다. 신비함, 야만적이라는 생각은 선입견을 형성해 우리가 인도를 직관적으로 경험하는데 방해 할 뿐이다. 늘 꿈꾸지만 갈 수 없었던 인도를 떠나면서, 그들과의 만남, 그들이 먹는 것, 그리고 그들의 이동수단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있어 죽음과 삶, 그들의 신들의 공간에 관해 선입견 없이 직관적으로 경험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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