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 양성민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제 1GlobalK 리포터로 뽑힌 러시아학과 양성민이라고 합니다.

 

후배들에게 유학 준비과정에 대한 막막함이나, 유학을 가게 무엇을 할지? 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싶어서 Global-k 리포터를 지원하였지만, 동시에 다른 학과 학생들도 춥지 않은 따뜻한 러시아를 느끼며 러시아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7+1 프로그램으로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대학교에 약 6개월 정도 공부할 예정이며, 궁금한 점은 ysmsky1026@nate.com으로 메일을 주신다면 성심 성의껏 대답해드리겠습니다.

Title 열번째 칼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6-06-07 10:41 Read 724

본문


세 개의 민들레(3)

-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여행은 누구에게나 환상을 꿈꾸게 하며, 가슴 속에 추억을 품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여행은 가기 전의 설렘과 그 당시의 고됨과 아쉬움, 돌아온 후의 안도감의 여러 감정들이 교차 될 때 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경험인 것 같습니다. 돌아와서 후회를 하지 않기 매일같이 10시간 이상씩 걸어 다녔던 이번 발트 3국 여행은 아담했고, 아름다웠으며, 바쁘지도, 볼거리가 그리 많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습니다. 특히 라트비아-리가에서 있었던 하룻밤이 이번 여행 중 가장 큰 실수라고 몇 번이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좋았고 더 마음에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눈이 즐거운 음악의 도시

 

 

- 라트비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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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은 피를 하얀색은 희생을 상징하는 라트비아의 국기. 국기는 전쟁 중 상처를 싸맨 모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움 그 자체였던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는 사람들 때문에 한 번, 분위기 때문에 또 한 번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지도를 들고 있는 우리를 보면,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먼저 다가와 유창한 영어와 러시아어로 길을 알려주었고, 중세시대와 현대식 건물들의 과하지 않은 조화와 어느 곳을 가도 끊이지 않았던 음악소리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발트 3국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라트비아의 리가는, 발트3국 전체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경제와 무역의 중심지입니다. 유럽의 명사들에게 사상적 예술적 동기를 부여한 아름다운 도시이며, 세계 최경량 카메라인 Minox(미녹스) 카메라가 최초로 개발 생산된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러시아의 민요로 잘 알려진 ‘백만 송이 장미’도 알고 보면 리가 태생의 작곡가가 작곡한 라트비아의 노래입니다. 많은 우리나라의 대기업들도 리가에 진출해 있어서 발트 3국 중에서는 한국인 교민의 수나 한국과의 교역량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 ‘베를린’의 독일 씬 중 몇 몇 장면이, 이 곳 리가에서 찍혔다는 사실이지만,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하기만 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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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보이는 풍경이 이게 다여서,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

 

 

 

 

- 작은 마을, 리가

 

 

 

리가는 발트 3국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이 가장 추천해준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버스에서 내려 보니 눈앞의 건물은 볼 품 없었고, 다우바강의 물은 어둡고 깨끗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지도를 받았을 때, 구시가지의 작은 크기를 보고 당황을 했습니다. 아쉬운 첫 인상을 뒤로한 채, 숙소로 걷기 시작한지 10분도 되지 않아 도착한 구시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너무 평온했고 거리를 지나다닐 때마다 악기소리가 끊임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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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잡아 2시간이면 구시가지 대부분을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작았던 리가의 구시가지.]

 

 

 

 

- 사랑을 담은 자유의 여신상

 

볼거리도 많지 않은 이 작은 구시가지를 왜 많은 친구들이 발트 3국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으로 뽑았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하면서 다녔던 리가. 각자 다른 의미가 있겠지만, 저는 이 곳 리가가 국민들에 의해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어떤 길을 걸어도 리가에서 최소 4번 이상은 보게 된다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거리는 주변의 공원과 잘 어우러진 곳이었습니다. 1차 대전 종전 후 잠시 독립을 이루었던 1935년에 조성된 이 석상은 라트비아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 ‘밀다’의 모습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42미터 높이의 푸른색 빛이 도는 이 이 여신상은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완공되었고, 라트비아의 자유와 독립투쟁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2차 대전 후 소련에 의해 시베리아로 끌려가거나 독립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지금까지도 추모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라트비아 사람들의 나라를 위하는 마음과 지금까지도 역사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이곳에서 얼마나 이 곳을 아끼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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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자주 보았던 자유의 여신상(왼). 지난 역사를 잊지 않고 지금까지도 많은 꽃들이 놓여 있다. 바로 앞에 있었던 공원(오). 너무 아름다웠지만 사진에 담기지 않은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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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의 동, 서를 나누는 도시 운하는 자유의 여신상을 두고 양 옆에 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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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던 밤거리의 공원은 그냥 좋았다.]

 

 

 

 

- 중세를 거닐다.

 

빌뉴스에서 리가를 거처 탈린으로 올라오면서, 중세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세시대부터 교류와 무역이 활발했던 곳이었고, 그런 건물들 자체를 지금까지 보존하거나 복구하기위한 노력이 도시 곳곳마다 묻어납니다. 중세를 배경으로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볼 수 있는 의상들을 입은 종업원들을 볼 수 있고, 믿거나 말거나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요리법으로 만든 여러 가지 음식들을 맛 볼 수 있습니다. 

 

2-3개의 중세식당을 다니면서 재미있었던 점은 메뉴에서는 엘크(사슴) 고기나 멧돼지 고기, 혹은 칠면조와 같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특이한 음식들을 맛 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빵을 헝겊에서 싸서 준다던가, 영수증을 나무상자에 담아오는 등 중세시대에 정말로 있었을 법한 신선한 문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기의 맛과 재료는 사실 특별하진 않았지만, 특유의 향신료 냄새로 ‘이게 중세의 맛인 건가?’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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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향부터 중세느낌이 물씬 나는 중세식당 ‘Rozengrals’. 중세 옷을 입은 문지기들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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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식당의 컨셉에 맞게 내부는 모두 촛불로 되어있고, 메뉴도 재미있게 만들어져있다.]

 

 

 

 

리가 구시가지에는 발트독일인들과, 리가를 거점으로 삼아 무역활동을 해온 중세 상인들이 건설한 건물이 아주 많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대표적인 건물은 고딕양식의 ‘검은머리전당’인데, 이 건물을 사용했던 ‘검은머리 길드’는 아프리카, 남미 등지를 돌아다니며 무역을 해온 미혼 상인들이 결성한 무역 조합입니다. 이들은 이집트 출신의 한 흑인 성인, ‘모리셔스’를 수호신으로 여겨 건물마다 그 성인의 얼굴을 장식했고, ‘검은머리전당’에 가면 성인 모리셔스를 볼 수 있습니다. ‘검은머리전당’은 여행자나 무역상인들이 리가에 머무는 동안 여관으로서 연회장소로 사용되었던 700 여년의 역사를 지녔지만, 독일군의 폭격으로 인해 80%가 파괴되었고 소련 정부가 완전히 철거해버린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2001년 리가 건설 800주년을 기념하여 위해 새로 복원되었습니다. 리가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만큼, 가장 많은 사람들을 본 곳이었고, 끊이지 않았던 음악소리는 이 곳을 더욱 매력 있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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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르네상스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검은머리 전당. 전당의 입구에선 ‘성(聖) 모자’상과 ‘성(聖) 모리셔스’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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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전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한 ‘성(聖) 모리셔스’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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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무역의 중심지였던 리가에서, 무역상들의 수호신이었던 ‘로날드’를 기리기 위함. 맨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성 베드로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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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자리에 트리가 있다.]

 

 

 

 

- 재미있는 리가

 

리가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는 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진 속 트리가 있는 곳은, 전설에 의하면 1510년 겨울 길드 회원들이 그 자리에 갖가지 장식을 한 전나무를 세우고 밤새도록 즐긴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검은머리전당’ 옆으로 보이는 건물은 ‘성 베드로 성당’입니다. 1200년대부터 짓기 시작했으나 여러 차례 전쟁으로 파괴되었다 복구된 이유로 종탑까지 올라가면 바로크, 고딕,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3세기 리가 상인들의 헌금에 의해서 건설된 이 성당은 리가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처음에는 가톨릭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종교개혁이후 루터교회로 바뀌었습니다. 리가의 성당이나 교회 첨탑에는 십자가가 아닌 수탉이 있는 것을 확일 할 수 있는데, 성서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고, 항구도시인 만큼 높은 곳의 건물 꼭대기를 수탉모양의 풍향계로도 활용했다고 합니다. 성당 바로 앞은 소원을 빌 수 있는 ‘브레멘 음악대’ 동상을 볼 수 있습니다. 리가를 건설한 대주교가 독일의 브레멘 출신이어서 브레멘 시에서 기증한 동상으로 높은 곳의 있는 동물의 코를 만질수록 소원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저는 돼지코를 만지면서 러시아어 향상과 이곳에 다시 올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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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지만, 바로크, 고딕,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는 ‘성 베드로 성당’(왼). 브레멘 음악대 동상(오).

닭까지 높이는 2미터 정도이다.]

 

 

 

 

- 눈뜬장님..

 

리가를 돌아다니면서 하루라는 짧은 시간과 더불어 건축양식에 대한 무지로 눈으로 직접 보고도 마음으로 느껴지지 않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특히, ‘세 형제의 집’을 보고서도 ‘그냥 다르게 생겼네..’ 정도로 생각했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세 형제의 집’은 15C~18C에 각각 지어진 각각의 건물들입니다. 꽤 유명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친구랑 이 곳을 몇 번이고 헤맸었는데, ‘설마 이건가?’ 하고 지나갔던 곳이 설마 이 곳이었습니다. 15C 고딕양식, 17C 더치 매너리즘, 18C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이 건물들은 생각보다 평범했지만, 역사적인 사료로 보았을 땐 정말 신기하다고 느꼈습니다. 현재 가운데 건물은 건축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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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18세기(바로크 양식), 17세기(더치 매너리즘), 15세기(고딕양식)에 각각 지어진 건물이다. 가운데는 현재 건축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축물에 무지한 이런 저도 다행히 유일하게 구분할 수 있는 양식이 있었는데, 바로 ‘아르누보(Art Nouveau)’입니다. 아르누보란 1885년에서 1905년 사이에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의 명칭으로 회화, 건축, 실내장식, 그래픽 등에서 일률적이고 모방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예술입니다. 태양을 형상화한 모양과 각종 식물들, 몽상적인 사람의 얼굴, 신화에 나오는 신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아르누보 건축물 들을 볼 수 있는데, 유럽적인 소재에 국한하지 않고 이집트, 이슬람, 자연 등 다양한 요소들을 일반 건물에 과감히 차용한, 당시로써는 상당히 획기적인 건축양식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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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보기에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아르누보’양식.]

 

 

 

특히 아르누보가 유행하던 시대에 리가는 부유한 항구도시였으며, 성당중심주의, 이탈리아적인 건축양식을 배제하고 라트비아의 사상을 화려한 장식에 융합시킨 리가의 건축물은 유럽 건축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르누보로 손꼽힌다고 있다고 합니다. 구시가지와 멀지 않은 곳에 ‘아르누보’ 양식이 밀집된 거리가 있기도 하지만, 돌아다니는 내내 쉽게 ‘아르누보’ 양식을 찾아 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리가는 어쩌면 정말 하루면 충분한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작 하루 있었던 곳이 이렇게 깊은 여운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 작은 구시가지에서 일주일을 돌아다녀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작고 볼거리가 많지도 않지만, 실망이 아닌 설렘과 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곳이 과연 얼마나 많을 까요? 리가에서도 곳곳에서 ‘발트의 길’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었고 여러 건축물들은 전쟁의 아픔을 뒤로한 채 복구가 되기도, 지금까지도 복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생소했지만, 알고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이 곳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lag-map_of_Latvia.svg

http://www.inspired-tours.com/2015/03/interesting-attractions-riga-capital-of.html

http://www.hanse.org/en/hanseatic-cities/riga.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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