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열번째 칼럼 | ||||
---|---|---|---|---|---|
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6-07-08 10:46 | Read | 1,105 |
본문
문학의 길을 따라 걷는 여행 – 도스토예프스키 (그의 일생)
▲지하철역 도스토예프스키역 앞에 작가의 동상.자세히 보면 사색을 하고 있는데 마치 나를 안타깝게 보는거 같다?
안녕하세요. 저번 시간에는 세계의 명작 '죄와벌'을 바탕으로 떠나는 여행을 했습니다. 세계 유네스코 지정 도시로써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가 아닌 방랑자와 가난한 이들이 사는 어두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습을 담은 작품속 배경을 찾아다녔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작가 개인의 일생을 짦게나마나 돌아보는 여행이 될 것입니다. 준비 되셨나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집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의 모습
1878년 10월 초,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와 그의 가족들은 얌스키 거리에 이사를 옵니다. (현재 지명: 도스토예프스키 거리) 그리고 이곳은 1881년 1월 28일 도스토예프스키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거처이기도 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아내와 나머지 가족들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소련 시절에는 공동주택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나서 얼마 후, 도스토예프스키의 거처를 하나의 박물관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집니다. 그 결과 1928년 모스크바에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에 첫 박물관이 개장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1956년 기념비 설립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150주년 생일을 맞이하여 1971년 11월, 박물관이 문을 엽니다.
70년대 후반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됩니다. 1878년 왕립 과학 아카데미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러시아 문학 부분의 기자로 초빙했으며 그 후 1년 뒤, 국제 문학 회의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당대 최고의 문학가이자 명예 회원으로 인정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스토예프스키네 집을 방문했었습니다. 문제에 조언을 구하고 때로는 자선 행사의 목적으로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그는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는 특별한 최면 능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진짜 최면술이 아닌, 사람을 끌어 들이는듯한 화법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살짝 높지만, 듣는이들의 마음을 꿰뚫는 목소리 그리고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가 내뿜는 기운은 방 안의 청중들을 매료했다.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이 시대에는 없다.
명작의 요람 – 도스토예프스키의 서재
▲많은 명작들이 탄생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은밀한 서재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아파트에 3년이상 살지 않았으며 항상 저렴한 곳을 선호했습니다. 작가의 지인들은 그가 살던 곳은 매우 검소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아파트의 가장 핵심이 되는 방은 바로 서재 입니다. 그의 서재는 '출입금지' 구역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다른사람들이 들어오는걸 극도로 싫어했습니다.(물론 아주 친한 친구들은 예외입니다.) 또한 강박증이 있어, 모든 물건들은 각자의 자리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의 딸이 적어놓은 노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습니다. '서재의 물건들은 각자 정해진 위치가 있었다. 모두 아버지가 집필 활동을 할 때 가장 편한 위치에 배치했다고 하셨다. 신문지 뭉치, 담배 편지 대출받은 책 등 어느 하나 예외는 없었다. ' 이 서재가 특별한 이유는 이곳에서 푸시킨을 위한 연설문 그리고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집필했기 때문입니다.
▲서재의 시계는 그가 세상을 떠난 시각에 맞춰져있다.
▲생전 작가가 즐겨피던 담배(가지런한 모습을 보니 왠지 작가의 손길이 묻어있는듯 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 –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방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는 일생을 바쳐서 그녀의 남편에게 헌신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가의 삶과 문학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준 사람입니다. 그녀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집필 활동을 할 때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가지의 일화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의 초본을 적으면 그의 아내가 검토하여 다음날 이어서 쓸 수 있게끔 했다고 합니다. 또한, 남편이 집필한 책들을 홍보, 금전적인 문제 해결, 집안일 등 매사 문제가 발생해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작가는 그녀를 소설 앞부분에 '가장 친한 친구'로서 묘사하는 한편, 주변 사람들은 '안나 같은 아내가 있으면 러시아 전체의 삶이 행복할 것이다.'라는 평도 했습니다.
▲안나의 서재(책상에는 그녀의 남편 사진이 놓여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사후 37년간 그녀는 작가의 작품과 그의 생에 대한 자료를 수집 및 편집을 했으며 몇년 뒤 '모스크바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이 열렸을 때 그녀가 다년간 모은 자료가 초석이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하루
▲하루에 한 번 가족들이 모였던 식탁. 여기서 무슨 이야기들을 나눴을까?
도스토예프스키는 항상 저녁 11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 저녁 6시를 제외 하고는 다같이 식탁에 모이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밤부터 새벽까지 정해놓은 분량을 끝내고 낮에 잠을 즐겼는데 기분이 좋을때면 해가 질 때까지 깨우지 말라고 잠꼬대를 했다고 합니다. 또 그는 마시는 차에 강한 자신감을 가졌는데 러시아 전통 찻주전자 '사모바르'에 물은 항상 뜨겁게 해놓도록 당부하며 혹시 '실수'로 아내가 끓인 차를 마실때면 '내가 잠시 미쳤나보군' 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작품활동 말고 쇼핑을 참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는 블라디미르스키 거리와 넵스키 거리를 활보하며 단골 빵집에 가서 점심거리를 사고 꿀, 잼, 사탕과 같이 달달한 간식거리도 즐겨 먹었습니다. 하나의 특징은 커피를 좋아했는데 거의 입천장이 델 정도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취미였다고 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침묵'은 자신의 소설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환경이자 '벗' 이었습니다.
맺는말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10번째 칼럼을 마지막으로 저와 동행하는 러시아 여행은 이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처음 계획은 유학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어났던 일들 중심으로 주제에 맞춰 풀어나가는 형식이었지만, 러시아의 더욱 새로운 모습을 소개 시켜드리고 싶어 칼럼을 쓰면서 계획을 바꿨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제 나름대로 유학,경제,문화 그리고 문학 이 모든 면들을 조금씩은 보여드린거 같아 시원 섭섭합니다. 앞으로 또 기회가 있으면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