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7년도 L-fellowship 중앙아시아학과 안근우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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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8-02-04 17:48 | Read | 2,356 |
본문
제 3 장 인도로 가기 위한 준비
시간 : 2017년 7월
장소 : 주한인도대사관, 한국
문화원 행정팀장과 전임 인턴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도로 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생각보다 준비할 것이 많았다. 인턴이긴 하지만 그래도 첫 직장 생활이고 첫 사회생활이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복장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주로 하는 일은 어떤 것이 있는지.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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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비자다. 이 때문에 합격된 후부터 가장 먼저 준비했던 것도 비자였다. 나는 행정팀장에게 어떤 비자를 받아야 할지 물었으나 처음엔 관광 비자를 발급받고 오라는 답을 받았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엄연히 인턴으로 채용되어 가는 것이고 사기업도 아닌 대사관 산하 기관인 문화원이었다. 공관에 채용되었는데 불법적으로 관광 비자를 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전임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엔트리 비자를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엔트리 비자 발급을 위한 서류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문화원 측에선 인턴 근무 기간이 명시된 공식 초청장을 발급해주었다. 하지만 대사관에선 내 비자 승인을 거절했다. 이유는 2017년 5월 관련 법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5월 이후 인도에서 인턴을 하는 경우, 신설된 인턴비자를 받아야하고 임금은 최소 한 달 65,000 INR을 받아야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그래서 다시 초청장에 월급 65,000INR를 받는다는 문장을 추가한 후에야 인턴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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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권을 예매하고 출국 날이 하루하루 다가왔다. 인턴 생활을 위한 대부분의 준비는 마친 상태였다. 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을 전임자에게 물어보아 필수 품목들을 중심으로 짐을 꾸렸다. 날씨에 맞는 옷을 챙기고 생활하며 읽을 책을 챙기고 공부할 것들을 챙겼다. 분명히 준비는 차곡차곡 잘 되어가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하루하루 불안감이 커져갔다. 그 불안감은 물질적인 준비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안감이 아니었다. 그리고 차분히 앉아서 왜 불안해하는지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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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함은 인턴을 ‘왜’ 가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였다. 어떻게 보면 길고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인 6개월. 나는 그 6개월이라는 시간을 무엇을 위해 투자를 하는지, 무엇을 경험하고자 하는지, 혹은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부족했다. 그저 인턴이라는 스펙 한 줄을 쌓기 위해서 6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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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원 인턴을 지원할 때 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은 문화를 느끼고 오는 것이었다. 처음엔 문화원이라는 기관에서 일하며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조금이나마 ‘문화산업’ 이라는 것에 대해 감이 생기기를 바라며 지원했다. 물론 일적인 측면과 함께 인도에서의 생활이라는 측면도 큰 지원동기였다. 몸소 인도라는 나라에 살며 이 나라가 가지는 문화적 요소들을 오랜 시간동안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기 원했다. 하지만 ‘문화’라는 단어와 ‘느끼다’ 는 단어가 가지는 모호함처럼 내가 느끼고자 하는 것 또한 모호했다. 문화를 느낀다는 말을 정확히 표현해내기 어려웠고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명확하게 정해진 것이 아닌 애매모호한 느낌이 강했다. 이러한 이유로 불안감이 올라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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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나는 나를 신뢰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가 ‘문화를 느끼겠다’ 라는 모호한 목표 속에 숨어 나태해질까 겁이 났다. 사실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 유학시절, 그때의 나도 카자흐스탄에 가면 문화의 결정체인 언어를 공부하고 그 나라에 거주하며 문화를 느껴보자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지 못했다. 매일 학교와 기숙사만 왔다 갔다 하는 규칙적인 생활이 반복되었다.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그게 다였다. 현지 학생들과 가깝게 지내지 못해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많지 않았다. 또한 교통수단이 열악하다는 핑계를 대며 여행도 다니지 않았다. 그에 따라 현지 문화를 많이 겪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생활을 마무리하며 크게 후회를 했다. 그래서 ‘문화를 느끼다’라는 말이 갖고 있는 모호함을 스스로 경계하고 나에 대해서도 크게 믿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생각의 결론은 쉽게 났다. ‘가보기도 전에 미리 걱정하고 겁먹지 말자’는 것이었다. 아직 문화원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또한 인턴이 어떤 업무를 담당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작성했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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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느끼고 싶다는 것 이외에도 나는 문화원 인턴을 통해 실무를 알고 싶었다. 이전에 영화제나 연극 축제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어깨 너머로 스태프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본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자세히는 몰랐지만 그 축제와 그들이 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사무실에서 혹은 해당 행사를 기획할 때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비로소 이제야 유사한 업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뿌듯했고 기대했다. 문화계는 도대체 어떤 일을 어떻게 처리해나갈지에 대해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컸다.
제 4 장 기대의 첫 발을 내딛다.
시간 : 2017년 8월
장소 : 인도
드디어 인도에 도착했다. 2월에 왔을 때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여전히 공기는 안 좋았고 정체모를 새로운 냄새들이 어디에나 있었다. 나의 첫 출근날은 8월 16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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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했던 근무복 문제는 사무실을 들어오자마자 사라졌다. 모두 편한 차림이었다. 그리고 편한 차림이 보여주듯, 사무실 분위기 또한 부드러웠다. (물론 그때까지는 몰랐지만 부드러운 분위기 속 미묘하게 살벌한 분위기가 숨어있었다.)
먼저 문화원 구성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문화원의 우두머리는 문화원장이다. 원장님 아래로 각각 프로그램팀, PR팀, 행정팀, 교육팀, 태권도팀이 있다. 나는 그 중 프로그램팀 인턴이었다. 프로그램팀은 문화원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기획 및 진행을 담당한다. 기획은 주로 프로그램팀장과 현지 코디네이터가 담당했다. 그리고 인턴은 주로 행사 진행을 보조했다. (처음엔 기획에 함께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내심 서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보니 6개월 주기로 바뀌는 인턴에게는 큰 역할을 맡길 수 없다는 점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프로그램팀 소속으로 예술팀이 있다. 예술팀은 문화원 내부 갤러리의 전시를 담당했다. 그리고 PR팀은 말 그대로 문화원 행사의 PR을 담당했다. 페이스북을 관리하고 행사에 관한 보도 자료를 작성했다. 행정팀은 문화원 내부의 행정업무와 문화원 건물 관리를 담당했다. 교육팀은 세종학당을 운영하며 인도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담당했다. 마지막으로 태권도팀은 태권도 교실을 운영하며 인도 내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태권도를 전파했다. 또한 인도 내 태권도 인재 육성에 관한 일도 맡았다. 사실 나는 프로그램팀 소속이었지만 한국인 인턴이 나밖에 없는 관계로 거의 모든 팀의 업무에 (조금씩)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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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임자가 나를 인수인계 해줄 수 있는 시간은 오직 3일뿐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인수인계는 3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인수인계를 할 수 있는 루틴업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 루틴업무는 기사 번역이었다. 인도 신문매체에 보도되는 한국 관련 기사들을 매일 스크랩한 후 번역해 한국에 보고하는 것이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3~4개의 한국 관련 기사가 보도되었다. 6문단 길이의 기사 3~4개를 번역하는 것이 하루 업무라고 생각하니 허무하고 살짝은 우울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매달 루틴업무는 재인도한인회에서 발행하는 ‘나마스떼 인디아’라는 잡지에 실릴 문화원 광고를 만드는 일이었다. 위에 설명한 각 팀들로부터 자료를 종합하고 정리해 디자인을 만들어 한인회에 전달하는 일이었다. (한 문장으로 완벽히 설명이 가능한) 이 업무도 그다지 어렵거나 복잡한 업무는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팀의 업무는 루틴업무로 규정되지 않았다. 프로그램팀은 행사를 기준으로 움직였다. 행사가 다가올수록 업무가 많아졌고 행사 당일에는 다른 업무를 다 제쳐두고 프로그램 행사 진행에만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일 매주 프로그램 행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어떤 날은 정말 지루한 날도 있었고 반대로 어떤 날은 눈 코 뜰 시간도 없이 바쁜 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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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개월 전, 메일을 통해 전임자에게 연락해 준비해야할 사항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영어라고 답했다. 하지만 메일을 받고도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문제의 심각성만 걱정하며 공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서자 ‘왜 그 메일을 받고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왜냐하면 모든 의사소통이 영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간단한 자기소개도 더듬거리며 겨우 마쳤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힌디어의 비중이 훨씬 적었다. 현지 직원들도 서로 대화할 때를 제외하곤 힌디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없었다. 무엇보다 충격을 받았던 것은 현지 직원들도 힌디어를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회화 표현들을 제외하고 다소 격식 있는 단어나 생소한 단어를 물어보면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니 사립학교에서는 ‘힌디’ 라는 과목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했다. 마치 우리가 고등학교 때 사회나 과학을 선택하듯 학생의 선택에 따라 힌디 수강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오히려 대부분 영어를 쓰는 것을 편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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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였던 것은 집을 구하는 문제였다. 인도에 오기 전, 나는 1주일간 지낼 호텔을 미리 예약해두었다. 호텔 숙박비를 사비로 결제하다보니 문화원에서 최대한 가깝지만 최대한 저렴한 곳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와서 보니 첫 2주엔 ‘임시체제지원비’ 라는 비목으로 숙박비가 지원됐었다. (인도문화원에 한정되어 지원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문화원에 지원할 생각이 있는 분은 꼭 미리 확인하길 바란다.) 델리는 한국 기업들이 포진되어있는 그레이터 노이다, 노이다, 구르가온 지역에 비해 집값이 비싸다. 물론 델리라는 지역 자체도 매우 넓기 때문에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문화원에 위치해 있는 남부 델리 대부분 지역의 집값은 비싸다. 그래서 나는 쉐어하우스에 살기로 결정했다.
보통 쉐어하우스는 공용 공간(주방, 거실, 테라스)과 개인 공간(방, 화장실)로 나뉜다. 우리 집의 경우 한 집에 방 세 개가 딸려있으며 각 방엔 화장실과 에어컨이 비치되어 있다. (이와 같은 경우를 3BHK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B는 Bedroom, H는 Hall, K는 Kitchen을 지칭한다). 이러한 쉐어하우스 매물을 찾아볼 때는 중개인을 고용하는 경우와 고용하지 않는 경우로 나뉜다. 중개인을 고용하는 경우, 해당 지역의 매물들을 중개인이 정리해서 전달해주면 그 중 몇몇 집을 선택해 직접 방문하여 확인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보통의 과정이다. 중개인을 이용하면 일일이 해당 지역의 집을 검색하는 등의 수고를 줄일 수 있다. 그로 인해 조금 더 빠르고 손쉽게 많은 집을 볼 수 있다. 물론 단점으론 중개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는 점이 있다. 평균적인 중개 비용은 계약이 성사된 집 월세의 절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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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중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중개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집을 알아보고 거래하는 경우도 있다. 나 또한 중개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집을 구했다. 페이스북에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가 있다. 이름은 ‘Flat & flatmates (south delhi chapter)’이며 공개 그룹이라 누구든 쉽게 가입할 수 있다. (링크 : https://www.facebook.com/groups/sonia1234/). 남부 델리 지역의 다양한 매물이 올라오고 월세와 위치가 마음에 든다면, 게시물 게시자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연락하여 방문 일정을 조율하면 된다. 방문할 때 유의할 점은 낮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특히 여자의 경우).
아무래도 남의 집에 혼자 들어가 집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범죄가 일어날 확률이 크고 실제 성추행 및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계약이 성사되면 대부분의 집이 Security라는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요구한다. 처음에 이 돈이 무슨 돈인지 혼란스러웠지만 알고 보니 보증금이었다. 평균적으로 한 달 월세를 Security로 요구한다. 원래 보증금은 계약을 만료할 때, 아무 문제가 없다면 돌려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인도에선 아무 이유 없이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마지막 달 월세를 내지 않고 해당 월세를 보증금으로 대체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물론 이 방법도 집주인의 경우에 따라 가능 여부가 달라진다). 현재 나의 경우는 25,000INR의 집세와 가정부 월급, WIFI, 수도요금을 포함하는 관리비 5,000INR 그리고 전기요금을 납부하고 있다. (전기 요금은 에어컨 사용 여부에 따라 차이가 크다. 여태껏 최대 금액은 6,000INR, 최소 금액은 400INR을 납부했다.)
위의 사진처럼 게시물은 집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가까운 전철역은 도보로 몇 분이 소요되는지 등의 매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때때로 Fully Furnished가 아닌 경우가 있다. 최대한 fully furnished를 찾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비용을 조금 들이더라도 중개인을 이용해 몸과 마음의 평안함을 유지하며 스트레스를 덜 받고 집을 구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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