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7년도 L-fellowship 프랑스학과 송광은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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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09-01 16:00 | Read | 3,027 |
본문
안녕하세요. 로컬리티 센터입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오늘은 코트라 알제리 무역관에서 인턴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송광은 학생과 인터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송광은 학생!
A.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Q. 간단히 자기 소개 한 번 해주시겠어요?
A. 저는 프랑스학과 13학번 송광은이라고 하며 이중전공으로는 광역특화전공을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학기를 끝으로 졸업 예정에 있습니다.
Q. 정말 간단히 소개해 주셨네요. 그러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많은 학생들이 경험해보고 싶은 인턴십 중 하나가 코트라 인턴십인 것으로 아는데, 코트라 인턴십에 관한 설명 부탁드릴게요.
A. 코트라의 인턴십은 2008년 16명 학생의 14개국 코트라 해외무역관 파견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통있는 인턴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보니 현재까지 총 1604명의 학생이 코트라 인턴십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코트라 인턴십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2학년 2학기 이상을 수료해야 하며 현지 언어 능력 등이 요구됩니다. 파견 학생들은 활동 이후 최대 15학점 학점인정이 가능하며 장학금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1604명 중 한 명인 셈이네요. 어떠한 연유로 코트라 인턴십을 지원하게 되셨나요?
A. 지원동기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제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했던 다짐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계절학교를 듣지 않는 것, 나머지 하나는 코트라 인턴십을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회로 나가기 전 미리 회사 생활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보시다시피 목적을 이뤘죠.
Q. 많은 해외 무역관 중 굳이 알제 무역관에 지원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코트라 무역관의 인턴 TO가 매번 다르기 때문에 특정 무역관을 미리 점찍어 두었더라도 당해 해당 무역관에서 인턴을 요청하지 않으면 갈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운이 따라야하죠. 해외 무역관 중 불어를 요구하는 무역관은 파리 무역관, 브뤼셀 무역관, 카사블랑카 무역관, 알제 무역관 정도가 있는데 1전공으로 프랑스, 이중전공으로는 마그레브 지역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사블랑카 혹은 알제로 가고 싶었습니다.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카사블랑카 무역관인데 이미 모로코를 다녀온 경험이 있었고 당시 동기가 카사블랑카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 때는 알제 무역관만 TO가 났습니다. 알제라도 난 게 어디에요. 안 그러면 다음 학기에 갔어야 했는데 그러면 졸업이 늦어지니 코트라 인턴십은 포기할 예정이었어요. 운이 좋았죠.
Q. 인턴 신청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코트라 인턴 신청 팁 같은 게 있나요?
A. 안 그래도 이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저도 고생을 했거든요. 당연하면서도 중요한 것이 인턴십은 가고 싶다고 바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미리 준비를 하셔야 하죠. 예를 들어, 2017-1학기 코트라 인턴십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2016-2학기에 신청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청 기간이 보통 해당 학기 기말고사와 겹치니 사전에 미리 준비를 해놓으시면 좋겠죠? 인턴십 공지는 학교 진로취업지원센터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진로취업센터 사이트(job.hufs.ac.kr)에서 취업, 인턴 관련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필수 조건인 해당 언어 시험 성적도 미리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2016년 11월 말까지는 시험성적을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그 전에 어학시험을 미리 치뤄야 하죠. 저는 그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프랑스어 FLEX 시험을 쳤습니다.
Q. FLEX 시험 성적이 좋으셨나 봐요?
A. 전혀요. FLEX 성적이 그렇게 높지 않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작전을 짰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한 저는 당시 프랑스학과 학과장이셨던 이향 교수님께 추천서를 부탁드렸고 개인적으로 번역 공부할 겸 봤던 마그레브 관련 신문 기사들을 지원 서류로 같이 제출했습니다. 서류 제출 당시 신문 기사들은 관련 없는 서류이므로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래도 부탁드렸습니다. 제가 ‘이만큼 준비했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얼마 후 코트라 알제 무역관 인턴으로 선발되었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Q. 그 때가 언제쯤이었나요?
A. 6월쯤이었을까요?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Q. 8월에 알제 무역관으로 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전까지 어떤 것을 하면서 지내셨나요?
A. 우선 코트라 인턴십에 선발된 외대 학생들과 서울캠퍼스에서 발대식을 가졌습니다. 복장으로 양복을 입고 갔어야 했는데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양복을 입은 날이었죠. 그 날 날씨가 엄청 더워서 집에 오니 셔츠가 땀에 흠뻑 젖었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 후 코트라 본사에서 발대식 겸 OT를 한 번 더 가졌습니다. 이번에는 우리학교 학생들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인턴으로 선발된 학생 모두가 참석하는 날이었어요. 이 날은 편한 복장으로 와도 된다고 해서 정말 편하게 반팔, 반바지를 입고 갔는데 많은 분들이 세미 정장 혹은 정장을 입고 오셔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코트라 본사에서는 해외무역관 인턴이 어떠한 활동을 하는지 전체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Q. 그러면 그 때 알제 무역관 관련 정보들을 들으셨겠네요?
A. 아니요, 이 때는 인턴 모두가 모인 자리이다 보니 해외 무역관의 전반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알제 무역관 관련 정보는 당시 알제 무역관에 근무하시던 인턴 분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Q.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 주시겠어요?
A. 누군가 인턴으로 선발되면 그 정보가 현지 무역관으로 전달되고 현지 무역관에서 메일로 연락을 줍니다. 저 또한 알제 무역관에 근무하고 있는 인턴들로부터 비자 취득 방법부터 사소한 정보들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알제리의 경우 주의할 점은 8시간 정도 시차가 있기때문에 답장을 바로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답장을 받기 위해 적어도 이틀 정도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출국하기 전에 다량의 정보를 한꺼번에 물어 보기보다 질문이 생각날 때 바로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전임 인턴 분들과 연락했을 때 중요한 것부터 사소한 것까지 전부 물어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많이 귀찮으셨을 것 같네요. 그래도 이런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궁금한 것들은 꼭 물어보세요. 같은 나이 또래이며 앞서 몇 개월 간 근무한 전임 인턴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굉장히 유용하거든요.
Q. 그럼 이제 알제 무역관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할까요? 그 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알제리에 대해 알려주시겠어요?
A. 알제리를 이야기 하기 이전, 마그레브에 대해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그레브란 크게는 이집트를 제외한 북아프리카 전체를 작게는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를 가리키는 지정학적 개념이며 세 국가는 과거 프랑스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아랍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사회 곳곳에 아랍의 문화가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마그레브를 ‘머리는 유럽, 가슴은 아랍, 발은 아프리카’로 부르기도 합니다.
<알제리 국기 및 알제리 지도>
마그레브 국가에 속하는 알제리는 한 마디로 ‘다양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나, 단일 민족이라는 말로 표현을 하고는 하잖아요? 이에 반해 알제리는 다양함이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까닭은 역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알제리가 위치하고 있는 북아프리카는 여러 나라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선사시대에는 북아프리카의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누미디아인(현재의 베르베르인)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 후 기원전 1세기 로마가 이들의 땅을 점령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알제에서 서쪽으로 70km 떨어진 곳에 티파자(Tipaza)라 불리는 로마 유적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7세기에는 이슬람 제국이 북아프리카를 점령하였으며 당시의 영향으로 오늘날까지 이슬람교가 북아프리카 국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그 이후 16세기 초에는 이베리아 반도를 통해 건너온 스페인이 알제리의 서쪽 일부를 점령했기 때문에 지금도 알제리 서쪽 일부 지역(오랑 등)에서는 스페인의 향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1513년에서 1830년까지 오스만제국이 북아프리카를 점령했고 이 때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튀니지 그리고 알제리 세 국가의 구분이 명확해 졌습니다. 마지막으로 1830년부터 1962년까지 프랑스가 알제리를 점령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프랑스의 영향력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제리 공항과 도로의 간판은 모두 프랑스어로 쓰여져 있으며 알제리 공무원들은 프랑스어로 행정처리를 합니다. 또한 프랑스어가 알제리의 공용어라는 사실도 이를 잘 뒷받침해줍니다.
이러한 다채로운 역사는 알제리 언어인 데리자(Darija)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프랑스어, 아랍어, 베르베르어, 스페인어의 일부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 바로 데리자입니다. 학술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알제리 친구의 말에 의하면 데리자는 약 프랑스어 40%, 아랍어 40%, 베르베르어 15%, 스페인어 5% 정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 주말에 무엇을 하실 건가요?‘ 라는 뜻을 가진 데리자 ’Wache hadire fe la fin de semaine?’에서 Wahce hadire는 베르베르어이며 fe는 아랍어, la fin de semaine는 불어입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문화가 혼종되어 구성된 것이 바로 알제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제리인들의 피부색도 굉장히 다양합니다. 대부분은 중동인과 같은 피부색을 지니고 있지만 알제리인 중 피부가 백인처럼 하얀 사람, 피부가 흑인처럼 검은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음식마저 영향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의 영향으로 인해 아침으로는 주로 바게트를 먹습니다. 한 번은 알제리 전통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오스만 제국 시대의 음식이었습니다. (오늘날 터키에서도 이 음식을 먹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보고 한 번은 알제리 친구에게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원래 너희 것이 아니잖아?’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 친구는 ‘너의 말이 맞아. 그런데 이제 우리 것이 되었고 이러한 것들이 바로 알제리야’ 라고 대답했어요.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세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생각해보면 한국도 마찬가지잖아요? 한국적인게 뭐죠? 우리의 전통이라는 것들도 역사를 추적해보면 여러 문화가 집합된 것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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