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7년도 L-fellowship 브라질학과 장예경 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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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08-29 15:38 | Read | 2,272 |
본문
4장. 중소기업 인턴?
“취직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해”
목표로 하는 취직 기업이 대게 그러하듯, 인턴 또한 보통은 대기업에서 하길 원한다. 특별한 기업이 아니고서야 중소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평생을 일하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도 인턴을 결정하기까지 다소 고민이 많았다. 아너스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기에 어찌 되든 인턴을 한 학기 해야 하긴 했으나, 이왕이면 그 인턴을 대기업이나 대사관 혹은 대학교 등 소위 말하는 ‘괜찮은’ 곳에서 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좋은 곳에 취업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커온 탓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취업에 도움이 되는 인턴은 취업하고자 하는 기업 혹은 분야와 관련된 인턴을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인데, 나는 자동차 관련 직업은 생각도 해본 적 없기 때문에 더 망설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인턴 생활을 하게 된 것에 감사하며 만족한다. 먼저 말한 것처럼 나는 자동차 관련 업계에 대한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애초에 자동차는 관심 분야가 아니었고, 제조업 분야는 더더욱 관심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분야가 좋으니 인턴을 해보라는 글이 아니다. 다만 관심분야가 아니더라도 인턴으로 생활하며 경험하면서 좁게는 취업 시장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넓게는 본인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산업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음을 밝힌다.
취업 시장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1차 서류만 해도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기업에 이력서를 넣는 요즘의 취업난을 겪는 학우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말일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을 해도 모자랄 때 왜 비관심분야에 에너지를 쏟느냐고도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비관심 업계라고 해서 비관심 직종만 존재하는 회사는 아무 곳도 없다. 어느 회사든 재무, 회계, IT, 구매, 마케팅 등의 부서 중 하나라도 갖고 있지 않는 회사는 없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MSB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라고 해서 자동차 부품을 오직 만들기만 하는 회사는 아니다. 분명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부서, 제품을 만들기 전 계약을 체결하는 부서, 제품 판매로 생긴 이익을 관리하는 부서, 인재를 관리하는 부서는 어디든 존재하고 이 회사 또한 그렇게 돌아간다. 중소기업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기업의 규모가 작은 덕분에 다양한 부서와 다양한 직무에 대한 파악을 할 기회가 더 많다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부서는 개발팀이다. MSB의 개발부서 팀원들은 생산할 제품의 수주를 따오는 팀원, 생산할 제품의 원자재를 구매하는 팀원, MSB에 납품하는 협력사들을 관리하는 팀원, MSB가 납품을 가야 하는 고객을 관리하는 팀원, 제품의 가격을 관리하고 Cash Flow를 관리하는 팀원 등 여러 역할을 하는 팀원들이 모여 개발팀을 이루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조직이다. 보통의 대기업은 ‘구매’, ‘판매’ 등 각각의 직무 별로 세세하게 조직되어 있겠지만, 만약 내가 그 중 한 부서의 인턴이었다면 해당 업무 외에 다른 부서의 업무를 익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즉, 나는 MSB의 개발팀에 배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 자체를 비롯해구매, 기획, 생산, 판매, 재무 등 여러 업무를 익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직무에 대한 개념이 딱히 없던 나에게 이번 인턴 기회는 큰 배움의 장이 된 것이다. 아는 직무라고는 영업과 마케팅뿐이었던 내가 구매, 생산, 재무, 회계, 경리, 무역 수출입 관리, 기계 보수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 직접 6개월동안 지켜보고 그 업무를 도와주며 더 자세히 알게 됐고, 이로 인해 내가 어느 직무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해 생각해보며 진로를 정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됐다. 또한 회사라는 조직에 내가 들어갈 때, 그 안에서의 내 성향이 어떤 지도 파악했기 때문에 차후 졸업을 한 뒤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에 이번 인턴은 큰 도움이 됐다.
마무리하며,
사실 처음에 인턴을 시작할 땐 포부가 가득했다. ‘내가 뭐든 좋게 만들어야지, 내가 무엇에든 도움이 돼야지’ 하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회사 법인장님은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나에게 이런 말씀을 했다.
“너희들을 뽑아서 회사가 달라질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아. 너희들이 딱히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뽑은 것도 아니고. 단지 한국 학생들에게 기회를 더 주고 나라에 이바지하기 위해 뽑은 거야.”
초반의 의욕 가득한 나에게 찬물을 얹는 말이었다.
사실 저렇게 말씀하실 만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들어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큰 회의에 들어갔었다. 이 회사의 주 고객인 현대 본사 출장자들과의 미팅이었다. 나는 이제 막 들어온 신입 인턴이었고, 고객사의 중요한 사람들과 이 회사의 모든 주재원 및 관리직 현지 직원들이 참석하는 그 회의에서 내가 통역을 해야 했다.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회의에 들어가기 전, 비록 일주일도 안 되는 그 시간 동안 나름 공부한 것들을 혼자 복습하며 머릿속에 계속 단어들을 상기시키며 준비를 했다. 그리고 회의에 들어갔고, 결과는 아주 실패였다. 인사말 몇 마디를 제외하고 내용에 대한 통역은 하나도 하지 못 했고, 나를 대신해 결국 법인장님이 직접 영어로 통역을 했다. 아무래도 이 일이 있은 후라 더더욱 차가운 말씀을 하셨을 지도 모르겠다.
사실, 자존심도 상했고, 억울했다. 들어온 지 이제 며칠 된 신입에게 이런 큰 회의의 통역을 시키는 것도 당황스러웠고, 그걸 통해 내 실력을 판단하려는 것도 억울했다. 더군다나 이 실패가 나를 판가름하고 주재원들이 나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된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그 선입견으로 나에게 일을 부탁하지 않고 굳이 스스로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직원들과 소통하려 하는 것에 너무 슬퍼졌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나를 통한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그 말에 직접 반박을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열심히 하고, 잘 하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게끔 하고 싶었다. 따라서 비관심분야이긴 하지만 회사에 대한 공부도 더 많이 했고, 딱히 필요 없을 궁금증도 해결하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다 찾아가며 질문하며 시간을 보냈다. 초반에 업무가 없는 시간 동안 혼자 트레이닝 자료를 보며 공부하고, 현장에 가서 직접 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복습했다. 통역 중에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다 메모를 해놨다가 업무 후에 현지 직원에게 가서 물어보고, 번역 중에도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전부 다 질문하고 다녔다.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지는 모르겠다. 사실은 그저 ‘대학교 졸업도 아직 못한, 브라질에 한 6개월밖에 머물지 않은 학생 인턴에게 뭘 바라겠나’ 싶기도 하다. 그런 생각들이 문득문득 들었지만 초반엔 억지로 하던 공부들에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자동차에 문외한인 내가 자동차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배우는 이 과정들에 재미가 붙었고, 뭔가 하나를 질문해도 성심 성의껏 열을 대답해주는 현지 직원친구들이 있어서 더 즐겁게 일하며 공부했다. 언젠간 내가 없어서 불편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노력했다.
“Você é uma graça.”
어느 날 평소와 같은 회의가 끝난 후 같은 팀 현지 직원이 해준 말이다.‘당신은 신의 은혜입니다’라는 뜻이다. 다소 거창한 말인 듯싶지만, 또 한국과 달리 브라질이 표현이 크기 때문에 더 가볍게 말했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너무나도 값진 한마디였다. 인턴 시작과 거의 동시에 법인장님의 차가운 말을 듣고 그냥 시간만 보내려고 하루하루 출근했다면 절대 들을 수 없을 말이었을 것이다. 그 동안의 내 노력을 알아봐 준 한마디라는 생각에 이 문장이 머리와 가슴에 깊게 박혔다.
이어서 비자 취득을 위해 이과수를 다녀오느라 회사를 며칠 비우고 다시 돌아온 날, 내가 전담하는 한국인 주재원 분이 “너 없는 며칠 동안 얼마나 불편했던지 모르겠다.”라고 말해주셨다. 또 내가 소속된 개발팀과 법인장님의 식사자리에서 현지 직원들과 편하게 대화하는 나를 보시고는 이전에 단 한번도 나에게 통역을 부탁하신 적이 없던 법인장님이 내게 통역을 부탁하셨다. 비록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단순히 통역을 부탁하신 사소한 행동이 나에게는 내 노력을 알아보셨고 내 능력 또한 인정한다는 행동으로 보여 혼자 기뻐했다.
사실 인턴을 하면서 모든 순간이 좋을 수는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퍽퍽한 삶, 억울한 일, 불합리한 상황에 마주치는 순간이 더 많았다. 지금까지도 한국 기업의 특징인 상하수직적이고 지나친 위계질서를 불평하는 일이 더 많다. 게다가 큰 관심과 애정이 없는 업계의 인턴이기 때문에 초반엔 흥미도 크지 않고 열정 또한 크지 않았다.
하지만 내 직속 상관과 내가 속한 팀의 현지 직원들에게만큼은 도움이 되겠다는 하나의 목표라도 설정하고나니 관심 없었던 자동차 부품 공부에도 열정이 생기고, 이 시간들이 값지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 목표를 성취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면서는 하루하루 더 보람찬 하루를 보내게 됐다.
어쩌면 그 힘든 과정에서 내가 얻은 건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는 힘과 그 방법을 스스로 찾는 길인 것 같다. 지금 이 곳에서 배우고 겪은 일은 나중에 꼭 회사에서가 아니더라도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으로 남은 것이다. 회사 생활을 견뎌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생각보다 조직에 잘 적응했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였지만 학교 밖, 혹은 졸업 전에 배우지 못한 채 사회에 나갔으면 다소 혼란스러웠을 수 있는 것들을 배우고, 그 안에서 내가 얻어 가는 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피라시카바에서 보낼 수 있게 된 6개월을 감사하며,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마무리하며 해외에서 인턴을 하면서 학점을 받고, 학교 밖에서 좋은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학교 관계자분들과, 이 보고서를 통해 항공비까지 지원해주는 로컬리티 프로그램 관계자분들께도 감사하단 말을 남기며 보고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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