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7년도 L-fellowship 브라질학과 박수현 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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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08-28 10:58 | Read | 2,486 |
본문
5 월,
내가 사는 곳이 Unicamp 대학 앞이라서 학생들과 친구를 맺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대학교 축제에도 가고 운동회도 갔다.
대학교 축제에 갔을 때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 다음날 출근하는데 지각을 한데다가 속이 너무 안좋아서 고생했다. 분명히 알람을 맞춰놨지만 한시간 넘게 듣지 못하고 벤을 놓쳤다. 일어나서 옷만 갈아입고 물 한통 챙겨서 바로 uber를 타고 회사로 왔다. 책상에 1.5리터 물통을 딱 올려놓고 오전 중에 다 마셨다. 지각한데 다가 아마 나한테서 술냄새가 엄청 많이 나 모든 사람들이 눈치를 챘겠지만 다행히 혼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점심 시간이 되자 가끔 가는 부페식당에 직원들과 갔는데 이것저것 담아 놓고 속쓰려서 먹지 못하고 반 이상을 남겼다. 오늘같은 날은 딱 짬뽕 한그릇 먹고싶다는 생각만 했다.
축제에서 친해진 여자친구들이 집에 불러 점심도 해주고 학교에서 하는 운동회에 초대해주었다. 브라질 대학교 운동회는 정말 신난다. 삼바리듬에 맞춰서 악기를 연주하고 모두가 춤도 추고 응원을 한다. 맛있는 음식들도 팔고 물감으로 얼굴에 칠하면서 미친 사람들처럼 즐긴다. 역시나 브라질은 축구의 나라였다. 분명 평범한 학생인데 축구를 하는 걸 보면 국가대표나 다름 없다. 여자축구도 예외는 없었다. 브라질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보다 눈치를 안보기 때문에 운동회에는 치마를 입은 남학생, 벗고 다니는 여학생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예전 같으면 당황하고 놀랐을텐데, 브라질에 2년 정도 있다 보니까 정말 익숙했다.
점심에 초대해준게 고마워서 내가 불고기를 하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보고 고기를 재워서 가져갔는데 모두가 맛있어했다. 그 날 또 다른 Unicamp 학생들과도 알게 되었다. 브라질은 정말 친구하기 쉽다. 먼저 다가와 주고 궁금한 것도 눈치 보지 않고 물어본다. 한국인이 서양인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처럼 브라질 사람들은 동양인에 대해 관심이 많다. 특히나 요새 한북 관계가 논란이 되고 있어서 북한에 대해 많이 물어봤다. 나는 그럴 때마다 북한과 한국의 관계를 볼리비아와 브라질로 비교한다. 우리가 북한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다양한 단어들이 다르고 억양도 굉장히 다르다. 마찬가지로 볼리비아와 브라질 사람들은 서로 이해는 하지만 그 말을 따라하기는 어렵다. 또한, 볼리비아는 브라질보다 낙후된 국가인데 내가 북한을 바랄 볼 때 그런 시선이라고 말을 한다.
그 다음으로 물어보는게 케이팝과 관련된 질문이다.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브라질에서 굉장히 성공을 했고, 현재 한국 아이돌인 방탄소년단이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방탄소년단이 누군지도 몰랐는데 브라질 친구가 한명 한명 이름을 말하면서 알려주었다. 브라질에서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지만 워낙 인구가 많기 때문에 그들이 모이면 굉장한 숫자가 된다. 방탄소년단이 브라질에서 콘서트를 할 때는 만석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보고 강남이 어떤 곳인지 많이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로가 있는데 그 곳에는 없는게 없으며 24시간 할 것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24시간 밝은 곳이 있다는게 너무 놀라워 하며 위험하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너가 술취해서 길가에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안전하다고 말해줬다.
5월에 한국은 휴가가 넘쳐났다고 한다. 석가탄신일, 어린이날, 투표일까지 해서 연속으로 휴가가 있지만 나는 그 휴가를 누리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다행히 한국회사가 휴가인 바람에 몇몇 직원들은 편해졌다. 5월 8일은 한국의 어버이날인데 브라질은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이 나눠져있다. 아마도 이혼 가정이 많기 때문에 차라리 나눠져 있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에 가족들을 만나라고 죄수들을 풀어준다고 한다. 길에서 죄수들을 이송하는 차도 보았는데 나는 정말 이해할 수 가 없다. 그들이 과연 부모님을 봬러 갈 것인가 ,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을까? 그런식으로 죄수들을 보내면 나중에 돌아오는 사람 수도 적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시간 힘들게 잡아 넣은 범죄자들을 그런식으로 풀어주는 것도 이해가 안되고 리메이라가 당분간 더 위험해질 것 같아서 걱정되었다.
일요일에는 친구들과 함께 켈멜시에 갔다. 교회에서 하는 행사로 음식을 팔고, 아이들을 위한 게임도 있고, 빙고게임도 있고, 밴드도 있다. 교회에서는 이 수익을 가지고 교회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고 운영한다고 한다. 수익을 얼마나 남기려는 건지 생맥주가 7헤알, 꼬치 요리가 5헤알이나 했다. 평소에 파는 거에 비하면 너무 가격이 비쌌다. 그치만 성당 안에 세르타네주를 부르는 밴드가 있어서 너무 신났다. 처음 브라질에 도착했을 때는 세르타네주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한국의 트로트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자주 듣다보니 나름 좋아하는 가수도 생기고 가사를 외울정도로 듣게 되었다. 브라질에서는 어떤 타입의 노래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는게 일반적이다. 한국에서는 그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브라질에는 워낙 노래 종류마다 매니아 층이 두껍기 때문에 음악 타입에 따라서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6월 달에 소과장님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회사에 알렸다. 그동안 품질 생산을 맡아서 이끌어주셨는데 이제 DAS 정책상 한국에 들어가신다. 직원들은 소과장님을 통해 일을 할 때 시스템에 맞게 하고 문서작성하는데 있어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소과장님이 품질팀 아날리스트와 팀장을 불러서 회사를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전하셨다. 과장님이 그래도 가장 대면했던 팀이라서 사이가 깊었다. 과장님이 많이 혼내는 것도 품질팀이고 가장 아끼는 것도 품질팀이 였다. 품질팀은 과장님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과장님에게 배운게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한국에 가시는 거에 대해서 너무 아쉽다고 하셨다. 아마 과장님이 가시고 많은게 변화될 것 같다. 품질 생산을 우리 선배이신 경영 재정 과장님이 맡으신다고 하는데 브라질 DAS가 아무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다.
인턴이 끝날때 까지 셧다운 기간을 빼니 한달 정도 남았다. 나는 포르투갈어를 정말 좋아하지만 회사에서 통역사로써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건 굉장히 스트레스받고 너무 막중했다. 그렇지만 통역을 하면서 너무 포어에 대한 질문이 많이 생겼다. 그런데 그걸 대답해줄 사람이 없었고 배울 방법도 없었다. 인턴을 하면서 대학원에서 포어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좀 더 포어를 틀리지 않게 말하고 싶고 전문적인 단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대학원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이번 인턴을 통해 내 마음의 확신이 왔다. 물론 대학원이 끝난 뒤에 직업을 언어쪽으로 갖고 싶지는 않지만, 현지인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면서 브라질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 현지인들과 비교했을 때 언어로 뒤쳐지지 않는 준비된 직원이 되고 싶다. 또한, 브라질 노동법에도 관심이 생기고 인적자원 부분을 더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현대 직원들을 만나면서 한국인 직원을 아직까지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브라질 직원보다는 좀 더 꼼꼼하고 희생하면서 까지 회사 일을 하는 한국식 마인드를 가진 한국인을 원하고 있었다. 나만 준비가 된다면 나를 써먹을 사람이 있다는게 굉장히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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