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7년도 L-fellowship 중앙아시아학과 안근우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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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8-02-04 17:44 | Read | 2,591 |
본문
- 글의 순서
#1.자기소개.
#2.문화원과의 첫 만남.
#3.예술경영지원센터, 인턴을 안 뽑다.
#4.인도로 가기 위한 준비.
#5.기대의 첫 발을 내딛다.
#6.첫 프로젝트. 재즈 페스티벌.
#7.매너리즘, 루틴 업무와의 싸움.
#8.영화제와 함께한 인턴 마지막 달.
+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히다
먼저 이 글이 인턴 수기이기에 내가 왜 이 기관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이유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야할 듯하다. 또한 그 이유가 어디서 기인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먼저 안근우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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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
이름 : 안근우
전공 : 1전공–중앙아시아학과 / 2전공-인도학과
인턴 관련 정보
근무지 : 주인도한국문화원
근무기간 : 2017년 8월~2018 년 1월
내 이름은 안근우이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에 재학 중이다. 학번은 12학번이고 나이는 26살이다. 전공은 위에 밝혔다시피 1전공은 중앙아시아학과, 2전공은 인도학과이다. 보다시피 나의 전공 선택은 살짝 특이하다. 보통의 경우 1전공을 언어를 한다면 2전공은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또는 전공간의 연계성을 고려해 또 다른 언어를 전공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위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중앙아시아와 인도라는 지역은 연계성이 높지 않다. 그래서 전공 교수님을 포함해 선배, 동기들 모두 걱정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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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위와 같은 전공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왜 저렇게 전공을 선택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선 나의 꿈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할 듯하다. 내 꿈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세상을 바꾼다는 말 자체가 너무 포괄적이라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 지 막막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세상의 어떠한 면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도 정확히 정립되어있지 않다. 사실 구체적인 계획이 하루아침에 세워지는 것은 아니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가 생각하는 것 또한 변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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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다른 종류의 예술보다 주제를 뚜렷하고 직접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좋다. 또한 영화 자체가 음악, 미술, 영상 등 다양한 예술의 집합체라는 점에서도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예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파급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 이러한 점에서 이제는 영화가 예술의 한 종류를 넘어 하나의 사회 매체로써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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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꿈을 이야기하고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다. 아마 이 내용이 내가 문화원 인턴을 지원한 것과 어떤 연관이 있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나는 한 나라의 언어가 그 나라의 문화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외국어대학교에 진학했고, 그런 이유로 다른 인문학 전공이 아닌 언어 전공을 선택했다. 그리고 최대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다양한 문화 경험을 통해 조금 더 좋은 혹은 나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인도의 문화를 몸소 경험해보기 위해 이 문화원에 지원했다.
제 1 장 문화원과의 첫만남
시간 : 2017년 2월
장소 : 인도
2016년 나는 카자흐스탄을 다녀왔다. 1전공인 중앙아시아학을 조금 더 깊게 탐구해볼 겸 그리고 실제 중앙아시아는 어떤 곳인지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에 2016년 1학기를 카자흐스탄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보냈다. 그리고 학기가 끝난 후, 러시아를 여행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해외를 나간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완벽한 여행 계획이 짜여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다. 또한 치안상 위험한 나라에 아무런 준비 없이 혹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채 여행하는 것은 상상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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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나는 인도학과를 전공했음에도 인도를 여행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친한 후배가 1학년이 되자마자 인도 여행을 2달씩 다녀온 것을 보고 놀랐으며 한편으론 부러워했지만 그 와중에도 사소한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인도가 여행을 하기에 정말 매력적인 나라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엔 겁이 너무 많았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한 기회로 나에게 돈이 생겼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나는 여행을 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상대방은 어느 나라로 갈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딱히 정한 곳은 없다고 답했고 그는 나에게 인도를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리고 갑자기 근원을 알 수 없는 용기가 갑자기 치솟았다. 그리고 나는 혼자 인도를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그 대답을 하고난 후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두려움이 물 밀 듯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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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행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물론 첫날 온갖 사기와 문화적 충격을 받긴 했지만 여행을 마칠때쯤되니, 그런 충격들엔 무덤덤해지고 오히려 그런 문화적 요소들을 궁금해 하는 나를 발견했다. 온갖 사기와 고난을 모두 겪으며 한 달 동안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델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기차가 빨리 도착을 하는 바람에 3~4시간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그때 다시 문득 인도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며 인도 사람들과 인도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인턴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었겠지만 현재 나의 시기와 상황에서 ‘스펙’에 뒤처지지 않으며 해외에 머물 수 있는 방법으로는 인턴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인턴에 대한 열망은 자연스레 ‘문화원’이라는 기관과 이어졌다. 기본적으로 내가 문화업계에서 일하고 싶기도 했고 내가 이곳에서 더 탐구해보고 싶은 분야가 문화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문화원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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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화원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문화원이 위치한 곳은 남부 델리였다. 여행할 때 많이 가보았던 북부 델리와 달리 남부 델리는 비교적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문화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까진 이 동네의 집세가 이렇게 비쌀 줄은 몰랐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문화원까지 걸어오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문화원에서 일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화원은 주로 어떤 일을 할까?’, ‘이렇게 깔끔하고 정돈되어있는 동네에서 생활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김칫국을 마시던 끝에 드디어 문화원에 도착했다.
문화원은 내가 인도에서 보았던 어느 건물보다도 깔끔했다. 건물 밖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어 안전한 인상을 주었다. 내부엔 독립된 전시공간이 있어 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있었다. 그리고 지하엔 대청마루를 떼어 놓은 것 같은 공간과 각종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큰 강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여기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체 모를 자신감과 용기가 생겨 3층 문화원 사무실로 향했다. 구체적으로 언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이 무작정 사무실로 박차고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다니는 학생인데 혹시 여기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자 당시 한 한국인 직원분이 내 질문에 답해주었다.
“저희는 따로 인턴을 뽑지 않고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일괄적으로 선발해서 보내줘요. 만약 인턴으로 근무하고 싶으신 거면 예술경영지원센터 홈페이지 참조해서 지원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부끄러움이 느껴져 서둘러 사무실에서 나왔다. 내려오는 도중 계단에서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며 넘어지기도 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하고 버릇없었으며 준비성조차 없었지만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제 2 장 예술경영지원센터, 인턴을 안 뽑다
시간 : 2017년 4월
장소 : 광화문 예술경영지원센터
그 후 나는 2학기 인도문화원 인턴 채용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2016년 공고시기를 보며 17년의 채용 공고가 언제 날지 매일매일 들어가 체크하였다. 그리고 16년 모집에 사용하였던 지원서 양식에 따라 지원서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예술경영지원센터라는 곳이 내가 하고자하는 일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접적으로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하고 활발한 예술 활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예술가들을 지원해주고 그러한 교류의 장을 만들어 주는 곳이었다. 또한 예비 예술경영 전문가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나도 매일 홈페이지를 접속했던 터라 꽤 괜찮아 보이는 프로그램에 참가 신청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턴 채용 공고가 어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 프로그램은 그저 맛보기라는 마음가짐으로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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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청했던 프로그램이 진행되던 날. 광화문에 위치한 예술경영지원센터로 갔다. 당시 내가 참가했던 프로그램은 ‘선배에게 듣는 문화예술 JOB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으로써 문화예술계 종사자 선배들을 초대해 예술경영 실무에 관한 내용을 나누는 자리였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지금 내게 기억 남는 것은 한마디였다. 선배들이 문화예술계에 관심이 있는 취업준비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도망쳐’였다. 급여 및 직원 복지 상황이 다른 업계에 비해 현격히 안 좋은 것을 이유로 하는 농담반 진담반의 조언이었다. 그 조언이 이후 나는 ‘그럼에도 당신들이 이 업계에 남아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질문했고 내 질문에 그들은 ‘제가 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사회를 좋게 만들고 건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대답에 격하게 공감했다. 그리고 그 대답 직후 센터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었다.
‘17년에는 예산부족의 문제로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문화원 인턴 채용을 하지 않는다.’
매우 좌절했다. 물론 인도라는 시장이 워낙 크기에 크고 작은 기업들이 많았고 인턴 자리를 구하고자 하면 어렵지 않게 다른 기업ㆍ기관의 인턴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흥미도 없는 일을 하기 위해 내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주인도한국문화원 인턴에 대한 의지를 다잡았다. 그런데 마음속에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지금 문화원에선 인턴이 일하고 있을 텐데 그 인턴이 끝나면 새 인턴을 뽑지 않을까? 굳이 예술경영지원센터에만 목매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내가 직접 지원해보면 되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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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월에 용기를 냈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었다. 그리고 주인도한국문화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직원 20명 중 무작위로 4명을 선정해, 내 소개와 함께 현재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2학기 인턴을 뽑을 계획은 없는지, 혹시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채용할 계획인지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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