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7년도 L-fellowship 중앙아시아학과 안근우 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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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8-02-04 17:56 | Read | 2,341 |
본문
시간 : 2017년 12월, 1월
장소 : 델리
12월이 되었다.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12월엔 행사가 1개밖에 없었다. 다들 연말을 되돌아보며 축하하기 바빴다. 또한 나도 그에 맞추어 모아두었던 모든 연가를 써서 여행을 다녀왔다. 연가를 모두 사용하니 말년휴가를 다녀온 병장마냥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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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엔 첸나이 영화제 참가가 있었다. 한국은 Country Focus 부문으로 참가했다. 이를 위해 문화원은 한국 영화 배급사와 영화제 사이에서 영화 전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먼저 문화원에선 영화제 측이 원하는 영화를 요청했다. 상업영화 부문에서는 <원라인>,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사랑하기 때문에>를 요청했고 역시나 예술영화 부문에서는 홍상수, 김기덕 감독의 신작을 요청했다. 그에 따라 각 영화들의 해외배급사를 확인하고 각 배급사에 해당 영화의 첸나이 영화제 상영을 문의했다. 이에 따라 각 배급사는 상영 횟수에 따라 상영비를 책정하고 이를 문화원에 청구했다.
이러한 문화원의 영화 상영비용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했다. (매년 영화 상영계획을 기획해 영진위에 보고서를 올리면 영진위에서 각국 영화제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고 영화 상영 지원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었다.) 다행히 모든 영화 파일을 잘 받았고 약간의 잡음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큰 문제없이 영화제를 마쳤다. 사실 이전까지는 내 스스로에게 내가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일을 하면서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조금 더 깨달았다. 9월엔 재즈, 11월엔 전시 및 공연을 다뤘던 것과 비교했을 때 12월에는 일을 할 때 정말 신이 났다. 물론 관련 일을 하면서도 힘든 때가 있었지만, 이러한 한국 영화들이 인도에서 상영될 것을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그리고 그러한 상영에 내가 일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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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이 되니 슬슬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엔 여행을 계획하지 않아 시간과 돈의 여유가 생겼고 최대한 주변 사람들과 만남을 많이 가졌다. 무엇보다 업무 인수인계가 가장 중요했다. 지난 6개월간의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들을 되돌아보며 내가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잘 해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인수인계를 위해 팀원과 팀장님에게 물어 인턴으로써 필요한 능력이나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에 대해 물어보았다. 먼저 팀장님은 기본적인 것만 잘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사실 기본적이라는 게 말은 쉽지만 실생활에 적용하게 되면 말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그래서 팀장님이 말한 ‘기본적인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인턴으로써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시키는 일을 잘하는 것’이다. 지시한 일에 대해 지시한 대로, 시키는 일에 대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물론 ‘센스’있게 지시하기 전에 판단해서 일을 처리하면 좋겠지만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인턴들에게 그건 조금 과한 요구이다.) 물론 일을 하다보면 급하게 처리하느라 지시한 내용과 다르게 처리하거나 스스로 결정을 내려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인턴은 프로그램팀장의 업무를 함께 처리하는 직책이다. 내가 처리하는 모든 일의 책임은 내가 아닌 팀장에게 있다. 그러므로 시키는 일이던, 시키지 않은 일이던, 일에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서 보고는 필수다. 다음으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인 수헤나 역시 이와 유사한 내용을 필수사항으로 꼽았다. 인턴이 원장님을 포함한 각 부처의 업무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지만 기본 소속은 프로그램팀이므로 프로그램 업무를 우선순위에 두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팀장님이 지시하는 업무를 성실히 잘 수행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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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다른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필수사항을 이야기했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생각하는 필수사항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함이다. 사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약간의 센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일을 잘한다, 못한다’ 평가를 받는 것 자체는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일이 숙련되지 않아 실수를 할 수 있고 앞에서 말했듯이 처음해보는 일이니 충분히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을 성실하게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성실함은 하루아침에 보여줄 수 있는 덕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출근 시간을 지키느냐, 주어지는 작은 업무 하나하나를 꼼꼼히 처리하느냐와 같이 일상생활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를 통해 성실함이라는 덕목이 증명(?)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성실함을 무너뜨리기는 아주 쉽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보다 계약 기간 종료가 다가올수록, 쉬엄쉬엄하자는 악마의 유혹이 시작된다. 반복되는 업무로 대충 해도 티나지 않는 부분들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부분들부터 쉬엄쉬엄하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사실 처음에 성실히 하는 것보다 마지막을 성실히 한다는 게 훨씬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비단 이 문화원 인턴을 수행하는 것과 별개로 일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물론 나 또한 누구에게 충고할 만큼 성실하지는 않지만 다 같이 성실하게 잘해보자는 의미에서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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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 스스로 나의 6개월간의 인턴생활에 대해 차근차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때 마침 친구로부터 한 고민을 들었다. 그 친구 역시 해외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의 고민은 다음과 같았다. 인턴이라는 직책으로 처음 사회생활을 경험해보고, 회사라는 곳에 들어와 일을 하고 있는데, 과연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는지, 배우는 것이 있는지, 보람을 느끼는 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사실 이 문제를 고민하는 것에 대해선 많이 공감했다. 나는 근무하기 전부터 걱정을 많이 했고 근무를 하면서도 여전히 많이 걱정했다. 과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혹은 이 일을 통해 내가 취업할 때 도움이 될까? 혹은 내가 지금 이 일을 통해서 성장한 면이 있을까? 혹은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가? 와 같은 걱정과 고민들이었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근무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한주를 남겨놓은 이 시점까지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물론 아직 납득할만한 답을 내리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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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확실히 느낀 것은 있었다. 그 전과 비교해서 많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경험이라는 재료를 앞으로 어떻게 소화시키느냐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물론 그 경험들이 좋은 경험이었는지 아닌지는 조금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 보람을 느끼는가에 대한 문제는 온전히 자신이 업무에 관심이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직종에서도 같겠지만, 문화업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문화원에서 일을 하면 사소한 부분 하나에도 보람을 느끼곤 한다.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인도 학생들에게 한복을 입혀주고 그들이 좋아해하는 모습을 보거나, 한국 K-pop 아이돌에 열광하며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학생을 보거나,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문화원에서 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만족감이 끓어오르곤 한다. 물론 그런 때가 아닌 하루종일 행정업무를 하며 서류나 문서들을 정리할 때는 ‘내가 스캔하려고 문화원 인턴을 하러 왔나’ 하는 약간의 자괴감이 들곤 한다. 하지만 매일같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보람을 느끼고, 일하는 게 즐겁다는 느낌을 받기 원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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