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남아시아

Title [기사] 성범죄에 우는 여인들… 인도 정부는 딸들의 눈물 닦아줄 수 있을까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6-03-22 15:51 Read 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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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 경제 대국 이미지 먹칠하는 뿌리 깊은 남존여비 문화

여성 총리 배출한 나라가
"성폭행 저항하지 말라"… 황당한 남성 우월주의
전 세계에 충격 던지는 강력 성범죄 비일비재

여성에게 잔인한 사회
여성 결혼 지참금 여전, 남편 따라 죽는 풍습도
인도 소년·소녀 과반이 "아내가 맞는 건 당연"

최근 인도에서 두 아이의 엄마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성폭행을 당하고 갓 난 아들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날 델리 근처에선 15세 소녀가 마을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불태워져 숨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신흥 경제 대국으로 떠오르는 국가 이미지에 먹칠하는 성폭행 사건들에 대해 인도 정부도 강력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성범죄에 우는 여인들 일러스트 이철원 기자

끔찍한 사건 잇따라

인도의 성폭행 사건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대담하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진 두 사건만 해도 그렇다. 인도 경찰에 따르면, 지난 7일 우타르프라데시주 티그리에 사는 15세 소녀는 자신의 집 옥상에서 같은 마을에 살던 아제이 샤르마(20)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샤르마는 범행 후 소녀의 몸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소녀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 뉴델리 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만에 숨졌다. 샤르마는 수개월 전부터 소녀를 따라다니며 데이트를 원했으나 거절당하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같은 날 뉴델리 인근에선 28세 여성이 버스 안에서 변을 당했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피해 여성은 세 살 딸과 갓 난 아들을 데리고 가족 행사에 참석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다른 승객이 모두 내리고 난 뒤, 운전사와 안내원은 여성의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버스를 세우고 범행을 시도했다. 범인들은 피해자의 입에 술을 들이부어 정신을 못 차리게 했고 피해자 무릎에 앉아 있던 갓난아기를 바닥으로 내던져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여성의 세 살배기 딸은 버스 구석에 숨어 이 광경을 지켜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은 억지로 마신 술 때문에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했고, 의식을 되찾고 나서야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됐다. 인도 경찰은 두 남성을 집단 강간 및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불과 5개월 전인 작년 10월 16일에도 인도에서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뉴델리 서부 근교에선 집 밖에서 놀고 있던 3세 여아가 실종 신고 3시간 만에 공원에서 몹쓸 짓을 당한 뒤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뉴델리 동부에서도 5세 여아가 3명의 남성에게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 일주일 전엔 4세 여아가 추행을 당하고 흉기에 찔린 채 철로에 버려졌다. 다른 나라였다면 한 건만 벌어져도 수개월 파장이 이어졌을 만한 사건들이었다.

남존여비 문화에서 비롯된 범죄들

인도는 지난 2012년 여대생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다. 당시 남자 친구와 영화를 보고 마을버스를 탔던 여대생은 운전기사 등 6명에게 폭행을 당하고 2주 만에 숨졌다. 전 세계에서 비판이 쏟아졌고 영국 BBC는 지난해 '인도의 딸'이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이 사건을 재조명했다. 하지만 사건 가해자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무케시 싱(29)은 BBC와 옥중 인터뷰에서 "품위 있는 여성은 밤 9시에 밖으로 나다니지 않는다. 여성들이 밤에 외출했다 치한의 공격을 받는다면 비난할 사람은 자신들밖에 없다. 여성 책임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폭행당할 때 저항해선 안 된다. 조용히 성폭행을 허락해야 한다"고도 했다. 앞서 인도 법원은 이 사건 가해자들에게 "인도의 집단 양심에 큰 충격을 줬다"며 사형을 선고했지만, 싱의 발언은 세계인의 분노를 불러온 동시에 일부 남아 있는 인도 남성의 여성관을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성폭력 불감증'을 보여주는 사례는 더 있다. 재작년 인도 동부 자르칸드주에선 마을의회가 성폭행 미수범에 대한 처벌로 범인의 10대 여동생을 성폭행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한 지방의 관료는 "옳은 성폭행도 있고, 잘못된 성폭행도 있다"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인도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가 성폭행 사건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인도에서 29년째 살고 있는 김도영 델리대 사회과학대 교수는 "인도는 힌두교의 영향으로 여성에게 굉장히 폐쇄적인 사회이며 여성이 가정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외부인과의 관계도 금기시한다"면서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인데도 여성의 의무교육 이수율은 지금도 50~60%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힌두교 성전(聖典) 마누법전은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해야 하는 존재'이자 출산을 위한 도구로 보는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이처럼 인도는 남아 선호 가부장 문화가 강하지만 유교 문화와는 또 다르다고 한다. 김도영 교수는 "가부장적 윤리를 강조하지만 유교의 가르침은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기본으로 하기에 가부장에게도 지켜야 할 도리를 강조하지만, 힌두교는 가부장 권위가 절대적이고 상하 관계가 뚜렷해 여성을 상대로 한 근친상간 범죄도 많이 벌어진다"고 했다.

여성 총리를 배출하는 등 여성의 사회 진출이 과거보다 활발해졌다 해도 여전히 인도의 많은 지역에선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강하다. 여름 해변에서도 대다수 여성은 수영복이 아니라 겉옷을 입고 물에 들어가고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몸을 감싸는 힌두 전통 의상을 입고 다니는 여성이 많다. 여성 속옷을 파는 직원 대부분이 남자인 것 역시 여성의 낮은 사회 진출도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인도 주재 코트라(KOTRA)의 한 직원은 "시골에선 아직도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해 여아를 낳자마자 죽이는 사례가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여성이 막대한 결혼 지참금을 부담하는 풍습은 1961년 공식 금지됐지만 여전히 행해지고 있고, 아내가 숨진 남편을 따라 죽는 풍습 '사티'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수년 전 유니세프 조사에선 15~19세 인도 소년 57%와 소녀 53%가 '아내가 남편에게 맞는 것이 당연하다'고 답한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인도 계급 문화인 카스트제도 역시 성범죄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가장 하위 계층인 수드라 계급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잦다는 것이다. 수드라 계층은 힌두교에서 환생(윤회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불가능해 수드라 계층 남성에 의한 성범죄도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전체에서 수드라 계급은 인구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도의 경제 불평등 심화와 성비 불균형도 성범죄를 키운다고 분석한다. 빈부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하위층이 범죄 유혹에 취약하며,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4000만명 적은 것도 성범죄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사형 선고 등 강력한 대책

2012년 여대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인도 정부는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집단 성폭행이나 미성년자 성폭행 범죄에 대한 최저 형량을 기존 두 배인 징역 20년으로 높이고,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법을 강화했다. 예전엔 성범죄가 일어나도 가족 합의가 있으면 경찰이 수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젠 성범죄 신고가 들어오면 반드시 경찰이 수사하도록 했다고 한다.

작년 12월 인도 법원은 네팔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살해한 파담 싱(39) 등 공범 7명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여성이 여전히 범죄와 차별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와 남성 편향적인 체제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히는 등 성폭행 사범에 대한 사형 선고도 잇따르고 있다.

올해 초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경찰 당국은 성범죄 전과자 60만명에게 신년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문자는 '당신과 당신의 휴대폰은 항상 감시되고 있다. 행동을 바로잡기 바란다. 우리는 올해가 당신에게 좋은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또 성범죄 피해 여성에게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지원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인도의 성폭력 범죄가 과대 포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인구가 많다 보니 범죄 건수가 많은 것일 뿐 인구 비례로 따져 보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성범죄 건수에서 인도는 9건으로 스웨덴(190건), 영국(99건), 독일(56건)은 물론 우리나라(40건)보다도 훨씬 적었다. 이 통계에 대해선 인도 여성의 침묵으로 공개된 사건 수가 적은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인도연구원장을 지낸 이옥순 연세대 교수는 "영어권 언론매체의 접근이 어려운 중국과 달리 인도는 서방 언론의 취재가 쉬워 인도의 성폭행이 실제보다 부각되는 경향도 있다"고 했다.

한편 인도에선 외국 여성들을 노린 성범죄 사건도 적지 않 다. 코트라 관계자는 "인도 남성들은 외국 여성들의 성 의식이 개방적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노리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내일투어 직원 김광수씨는 "동남아 지역만 해도 남성과 여성 관광객 비율이 반반이지만 인도는 남자 8, 여자 2 정도 된다"면서 "특히 여성 여행객들에겐 밤에 다니지 말고 야간열차도 가급적 타지 말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강훈 기자 권순완 기자 이철원 일러스트 기자

 

2016/03/22 3:49 조선닷컴  '성범죄에 우는 여인들… 인도 정부는 딸들의 눈물 닦아줄 수 있을까' 원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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