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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기사] 우즈베키스탄: 1. 카리모프와 그의 나라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6-09-23 10:17 Read 4,628

본문

 

반대파에 대한 잔혹한 고문으로 악명 높은 우즈베키스탄의 독재자 이슬람 카리모프. 헌법을 개정해 종신 집권이라는 영생을 꿈꿨던 독재자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2016년 9월 2일 뇌출혈로 사망한 카리모프. 그의 죽음 뒤에도 우즈베키스탄 민중의 삶은 계속됩니다.

우리에게는 낯선 국가, 우즈베키스탄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과 정치, 사회와 경제를 다시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 연재는 총 10회 이상으로 기획되었습니다. (편집자)

  1. → 카리모프와 그의 나라
  2. 러시아의 붉은 새벽: 혁명, 혼란, 숙청 (이하 발행 예정)
  3. 근대 중앙아시아 지식인들의 탄생
  4. 타쉬켄트와 사마르칸트 파벌의 등장
  5. 두 거인의 시대


우즈베키스탄의 무소불위 독재자 이슬람 카리모프(Islom Abdug‘aniyevich Karimov, 1938년 1월 30일 ~ 2016년 9월 2일)가 얼마 전 죽었습니다.

 

잔인한 독재자 카리모프 

저는 2015년 2월에 우즈베키스탄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17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징그럽게 볼 수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 선거를 홍보하는 수많은 포스터들, 관광지나 박물관마다 안 붙어 있는 곳이 없던 카리모프의 ‘교시’, 그리고 카리모프의 업적을 홍보하는 전시장과도 같았던 국립박물관까지. 우즈베키스탄이 곧 카리모프고 카리모프가 곧 우즈베키스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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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여행 중 한 박물관에서 접한 카리모프의 ‘친절하고'(?), ‘자주적인'(?) 모습.
심지어 한국어로 된 자료다. 자신에 관한 책과 자료를 모아놓은 전시물 중 일부.


카리모프의 통치는 또 그 잔인성으로 악명이 드높았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목화밭에 농번기에 강제로 동원되었습니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쥐꼬리만도 못한 돈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 목화 수익은 모두 부패한 관료들의 주머니로 들어갔지요. 당연히 여기에는 야만적인 폭력이 뒤따랐겠고요. 이에 불만을 품은 인권운동가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하거나 고문당한 후 자취를 감추었으며, 안디잔에서 일어난 대규모 항위시위는 발포로 대응하여 최소 500명 이상이 사망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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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잔 학살(2005)이 일어났던 광장의 모습. 그때의 참혹함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평온하다. 

(출처:Adam Jones, Andijon, CC BY SA, 2012. 7. 10)

 

 

우즈베키스탄에 단순히 관광하러 가도 그 숨막히는 통치를 간접경험해볼 수 있습니다. 기차를 타려면 여권을 네 번 확인 받기도 해야합니다. 방송탑과 지하철역은 사진촬영 금지입니다. 이 나라 공무원들의 그 고압적 태도와 아무 이유 없는 꼬장부리기를 당해보면 정이 다 떨어질 정도입니다.

 

 

우즈베키스탄 vs. 카자흐스탄 

이런 이유들로 억압적 통치와 악명높은 강제노동, 헤어나올 기미가 없는 농촌의 빈곤이 이 나라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미지이고 그 이미지의 중심에는 카리모프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는 다른 모습도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정치, 경제적 안정이 존재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이 처한 조건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유사한 조건을 갖고 출발한 나라들과 비교하면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성과일 수도 있습니다.

 

흔히 우즈베키스탄을 카자흐스탄과 비교하곤 합니다. 카자흐스탄 역시 독재국가에 인권탄압이 이루어지는 국가이긴 하지만 1인당 GDP가 1만 달러가 넘는 높은 성장을 이룩하였으며 우즈베키스탄보다도 훨씬 개방적입니다. 1인당 GDP가 이제야 2천달러 대를 넘긴 우즈베키스탄과 비교하자면 확실히 급이 다릅니다. 때문에 나자르바예프가 일구어낸 위업과 카리모프의 초라한 실적이 많이 비교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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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은 ‘이중내륙국’이다. (출처: 구글지도 ‘우즈베키스탄)

 

그러나 카자흐스탄과의 비교는 제한적인 유용성만을 가진다고 봅니다. 제 생각엔 카자흐스탄이 우즈베키스탄보다 상당히 유리했습니다. 즉, 리더십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기 조건의 격차가 있습니다. 우선 전통적인 농업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보다 더 생산력 높은 토지를 지녔기에 인구가 카자흐스탄보다 더욱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생산가능인구는 상대적으로 적은 대신 계속 늘어나는 부양인구 때문에 우즈베키스탄은 국민들을 먹여 살리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습니다.

또한, 카자흐스탄은 독립 후에 상당한 수가 유출되기는 했어도, 훨씬 생산성이 좋은 러시아계 인구의 비율이 무려 30%에 달했지만,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인 인구가 훨씬 적었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인 인구는 곧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더 수준 높은 인적자본과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인구 구성의 차이는 두 국가의 생산성에 많은 차이를 가져다주었을 것입니다.

‘이중내륙국’이라는 지리적 조건  

더하여, 카자흐스탄은 내륙국이긴 하지만 러시아, 중국과 긴 국경선으로 맞닿아 있고 카스피 해도 끼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물류가 오가기 편합니다. 반면 우즈베키스탄은 세계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다는 이중내륙국입니다. 이중내륙국은 내륙국들하고만 붙어 있는 내륙국들로, 사실상 바다로 나가려면 국경을 무조건 두 번은 넘어야 하는 나라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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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은 ‘이중내륙국’이다. (출처: 구글지도 ‘우즈베키스탄)

 

거기에 붙어 있는 나라라고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처럼 폐쇄적이거나 적대적인 빈국이어서 큰 도움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소련 시절의 철도 네트워크 같은 것이 단절되어서 큰 피해를 입었죠. 이런 점들은 오히려 제품의 수출입에 마이너스로 작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악조건을 생각하면 우즈베키스탄이 카자흐스탄보다 빈곤한 것은 사실 당연한 것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이 목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지리적인 제약 때문입니다. 제프리 삭스는 볼리비아의 과도한 원자재 경제 의존에 대해 의문을 품다가 이 나라가 안데스 산맥이라는 험준한 산악지형을 끼고 있는 내륙국이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즉, 운송비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가가 높고 지대추구가 쉬운 산업에, 즉 실질적인 국가의 개발과는 동떨어진 산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처럼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경제를 운영하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저임금을 경쟁력으로 삼아 수출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일반적인 개발전략을 채택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자연히 소련시절부터 해오던 목화 농사 이외의 대안은 전혀 고려될 수조차 없었고 이에 기반을 둔 정치인의 착취체제가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즉, 카리모프의 학정은 우즈베키스탄의 빈곤 원인이기도 하지만 더 거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우즈베키스탄의 지리적, 인구학적 악조건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밑바닥 10억”

폴 콜리어그렇다면 우호적이지 않은 내륙국을 가지고 있는 여타 빈곤국의 상황은 대체 어떻길래 제가 카리모프의 우즈베키스탄이 이들보다 그나마 낫다고 한 걸까요? 폴 콜리어(Paul Collier, 사진)는 [빈곤의 경제학]을 비롯한 그의 저작들에서 “밑바닥 10억”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세계화를 통한 개발도상국들의 추격에도 합류하지 못하고, 되려 빈곤의 덫에 걸려서 옴짝달싹 못한 나라들을 가리킵니다.

이들 ‘밑바닥 10억’ 국가 중 많은 국가가 내전과 쿠데타로 이은 사회의 붕괴와 그 뒤에 찾아온 기근과 대대적 전염병으로 지옥이 되었습니다. 최소한의 생존조차 보장받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물론 아예 근본도 없던 부르키나파소,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와 비교가 되는 것 자체가 과거 세계 초강대국의 일원이었던 우즈베키스탄 입장에서는 비참하긴 하지만, 그만큼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가 1992년에 출범했을 때의 조건은 정말 열악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위치의 나라들이 국가와 사회가 붕괴했지만, 우즈베키스탄은 어찌 되었건 국가를 유지하고 있고, 세계적 저성장 시대에도 거시경제 지표는 그래도 양호한 편입니다(통계가 조작이라고 말이 많지만요). 카리모프의 죽음으로 이 경찰국가의 모든 미래가 안갯속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제한적이나마 성장세가 유지될 수만 있다면 우즈베키스탄은 밑바닥 10억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이 악조건 속에서도, 국민의 피와 눈물로 물들긴 했지만, 나름의 안정과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건 이런 비교 속에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콜리어의 저서 [빈곤의 경제학] (The Bottom Billion)은 밑바닥 10억 국가가 끝없는 빈곤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이유, 네 가지 덫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네 가지 덫은 분쟁과 내전의 덫, 천연자원의 덫, 나쁜 이웃을 둔 내륙국의 덫, 작은 나라의 나쁜 통치의 덫이 그것이죠. 하나하나 소개해보면서 우즈베키스탄의 상황과 대비해보겠습니다.

밑바닥 10억 국가의 네 가지 덫 

첫째, 내전의 덫

밑바닥 10억 국가들은 내전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내전은 빈곤 때문에 일어나고 빈곤은 내전으로 더욱 강화됩니다. 또한, 빈곤한 국가에서 막대한 부를 안겨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천연자원의 존재는 내전을 촉발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입니다.

또한, 서로 간의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 상이한 민족집단 혹은 부족집단과 같은 ‘국가 하위 정체성’ (Subnational Identity)이 우세한 곳에서는 천연자원 통제를 놓고 내전 위험이 더 높아집니다(그래도 기본은 빈곤이고, 그다음이 천연자원이지만요). 아직 탐사도 제대로 안 된 막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상이한 민족집단과 부족 정체성이 존재하는 우즈베키스탄은 내전이 일어나기 매우 알맞은 나라인 셈이죠.

둘째, 천연자원의 덫

자원의 저주와 지대추구국가 문제는 이제 일반적인 상식이 되긴 하였지만 구태여 설명하자면 첫째로 자원 위주로 무역이 돌아가면 네덜란드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외화가 국내로 많이 유입되면 국내 산업 경쟁력이 고사하고 수입이 늘어나, 자원 분야 이외의 산업이 발전하지 못합니다. 이는 빈곤을 고착화시키죠.

또한, 지금 저유가로 베네수엘라에 카오스가 펼쳐졌듯 국제시세에 오락가락하기에 외부충격에 몹시 약합니다. 천연자원 일변도로 발전한 경제는 이런 종류의 외부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할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지대추구 국가는 국민들이 자국 정부를 감시할 책임도 느끼지 못하고 정부를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자원을 팔아서 돈을 충당하지 세금을 걷어서 충당하지 않거든요. 천연자원으로 빈곤이 고착된 상태는 곧 내전 위험을 높입니다. 특히 가격변동으로 인한 통제 불가능한 외부충격이 왔을 때는 더더욱 그렇죠.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 우즈베키스탄은 매우 막대한 자원보유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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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콜리어, [밑바닥 10억] (2007)

 

셋째, 나쁜 이웃을 둔 내륙국의 덫

우즈베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을 옆에 둔 것으로 대충 설명되지 않을까요? 우호적이지 못해서 내륙국이 주변국을 시장으로, 물류 이동 루트로도 써먹을 수 없다면 역시 성장에 제약이 걸리게 됩니다. 더욱 안 좋은 것은 옆의 국가들에 혼란이 발생하여 경제적으로 위축될 경우 그것이 스필오버 효과로 국경을 넘어 자국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은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을 빼면 실질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지도 못했고 오히려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내전으로 얼룩진 똑같은 밑바닥 10억이죠. 이 또한 우즈베키스탄의 안정과 성장을 위협합니다.

넷째, 나쁜 통치의 덫

부패로 인해 행정이 사실상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경제가 굴러갈 수 없는 상황을 뜻합니다. 사회에 최소한의 공공재도 제대로 공급될 수 없는 극단적 저신뢰 상태로 가게 되는데, 우즈베키스탄 공무원들은 세계 최악의 부패 국가의 공무원답게 이런 측면에서 매우 악명이 높죠.

이를테면 차드는 중앙정부가 보건당국에 내려준 예산의 1%만 현장 의료기관에 지급된 악명높은 재정 누수를 보여줬는데, 아무리 소련 공산당의 거버넌스가 파탄 났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겠습니다만, 하여간 중앙아시아의 행정이나 관료들의 수준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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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의 밤거리 (출처: Giorgio Minguzzi, “Tashkent by Night”, CC BY SA)

 

‘카리모프 이후’의 우즈베키스탄 

보시다시피 우즈베키스탄은 이 모든 덫에 대체로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 사례에 잘 맞는 다른 나라들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콩고민주공화국, 부르키나파소, 말리, 차드, 르완다, 우간다 등이 있죠. 다시 말해 우즈베키스탄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는 단순한 리더십의 문제라고 보기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이런 나쁜(표현이 좀 약하다면, ‘잔학한’) 리더십은 무에서 출발하거나 독재자의 악의만으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뿌리깊은, 몇 개는 아예 말 그대로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한 원인이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지금 막대한 불확실성 국면으로 진입했다고는 하지만, 말리나 르완다처럼 내전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카리모프의 통치는 극악하긴 하였지만, 우즈베키스탄은 국가로서는 최소한의 생존과 안정을 보장해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정책을 썼고 무슨 우연이 있었기에 이럴 수 있던 걸까요. 그리고 근본적인 물음. 그 시스템은 지속 가능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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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카리모프 대통령(오른쪽)의 초청으로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왼쪽)의 모습. 둘은 카리모프 생전에 ‘절친’이었다고 한다. 

(출처: Republic of Korea, CC BY SA, 2009. 5. 11)


이 글에서는 그런 의문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왜냐면 독립 당시부터 우즈베키스탄이 처했던 문제들에 카리모프가 대응한 전략은 향후 이 나라가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지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조직은 경로의존성, 즉 과거의 조건과 선택으로 인해 조직이 걸어간 길을 관성에 따라 걷는 성향이 있습니다. 카리모프 사후 체제는 당연히 카리모프가 근 30년 가까이 만들어놓은 체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바꿔말하자면 카리모프가 선택한 전략들도 나름의 경로의존성 위에 기초해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즉, 미래 우즈베키스탄의 향방을 그나마 따라가기 위해서는 카리모프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살펴봐야 하고 그 배경을 알기 위해선 역시 카리모프가 집권할 당시 우즈베키스탄의 상황을 알아야 하며, 또 그걸 배태한 모국, 소비에트 연방의 내부사정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됩니다. (계속) 

 

 

 

임명묵 기자

 

2016/09/23 10:17 슬로우뉴스 '우즈베키스탄: 1. 카리모프와 그의 나라' 원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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