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활동보고서 - 유라시아트랙] 마그넷팀 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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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07-12 14:44 | Read | 4,180 |
본문
In-depth Research Project(4)
(이어서)
(예시)
표준어 | 제주도 방언 |
첫째(남자) | 큰놈 |
둘째 | 셋놈 |
셋째 | 말잿놈 |
냇째 | 작은놈 |
첫째(여자) | 큰년 |
둘쨰 | 셋년 |
셋째 | 말셋년 |
넷째 | 작은년 |
조카 | 조캐 |
동서 | 동새 |
장인 | 가시아방 |
장모 | 가시어멍 |
시아버지 | 씨아방 |
시어머니 | 씨어멍 |
부부 | 두가시 |
어서오세요 | 혼저옵서예 |
점심먹었습니까? | 점심먹었수과? |
언제왔습니까? | 언제왔수과? |
오늘 왔습니다 | 오늘 왔수다 |
없습니다 | 어수다 |
예쁩니다 | 곱닥허우다 |
어디가십니까? | 오데감수광? |
남자 | 소나이 |
여자 | 지지빠이 |
감자 | 지실 |
처녀 | 비바리 |
제주도 방언 형성 및 표준어 유입에 영향을 준 역사적 사건
제주도는 일찍이 고려시대 원의 지배를 받았고 그들 언어의 향으로 제주어가 표준어와는 다르고 중국말과 흡사하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 몽고와의 접촉이 제주어에 영향을 미쳤다.
중앙관료의 정치가 신분의 많은 유배인들이 제주로 보내졌고 이들은 제주도민들을 교육하며 여생을 살았다. 따라서 유배기간 동안 많은 제자들을 길러 내여 교육과 계몽활동을 통해서 죄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교육자로 존경을 받았던 인물로 기록 되었다. 이들의 존재는 제주 사회의 일부에 제주어가 타 지역 언어와 꾸준한 접촉을 유지하게 하다 할 수 있다. 김정의 『제주 풍토록』, 김상헌의 『남사록』, 정온의 『동계집』, 김춘택의 『북헌집』, 김정희의 『완당전집』, 김윤식의 『속음청사』 등에 의하면 제주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타 지역의 언어와는 다르다는 기록을 간혹 남기고 있다.
제주어의 형성에 결정적인 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사건이 출륙금지령이다. 거의 200 년 간 지속된 금지령으로 인해 제주는 ‘바다에 떠 있는 감옥’으로 비유되는데, 제주 사람들은 타 지방과 연결이 단절되어 폐쇄된 생활을 위하여야만 하다. 한반도와는 분리된 폐쇄된 제주의 지리적 환경이 제주어 형성의 근본 원인이라고 한다면, 인위적 단절은 제주어의 독자성을 촉진한 역사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식민지 시대는 본격적인 교육제도의 도입과 인구(선생님) 유입으로 인해 제주어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선 이 시기에 조선어 교육의 확대는 제주 사회에 제주어 이외의 언어가 본격적인 도입되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제주어가 지배적이던 사회에 표준어가 도입되면서 이중 언어 사회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황국식민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학교에서는 일본어로만 교육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일본어 몰입교육은 일본어 어휘가 제주어에 많은 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일본어가 마치 제주도의 희귀한 토속어인 줄 알고 쓰이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된 것은 36 년간의 일제치하의 조선어 말살 어문정책 아래 우리의 말과 글을 없애서 일본어만을 사용하도록 강요했던 결과이다.
6.25 전쟁은 제주에 대규모의 인구 유입을 촉진하면서 이는 제주어와 표준어의 자연스런 접촉을 야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6,25 초에 제주와 경상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북한군이 점령하게 된다. 표준어 화자들의 급격한 이주로 제주에서 널리 사용하기 시작된 표준어가 제주어에 많은 언어적 영향을 주었음을 의미한다.
→ 60년대 이후 제주도내 제주어 사용 세대는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2000년대부터 제주어를 보존하려는 현상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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