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4기] [브라질-중남미] - 아만찌 팀 (1) [도시, 시민과 소통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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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11-07 12:53 | Read | 1,503 |
본문
탐사 테마
건축은 지어질 당시의 시대와 관련된 여러 요인들이 합쳐진 복합적인 결과이자 예술이다. 한 국가를 전공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 역사와 같은 다양한 분야를 연결하는 능력을 키운다는 점에서, 건축은 지역학을 탐구하는데 좋은 도구(tool)다. 예술로서의 건축이 시민과 동떨어진 개념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건축은 24시간 시민들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즉 도시가 지닌 사회-문화적 특색은 우리가 사는 공간, 건축물과 끝없이 상호작용하며 이러한 건축물들이 모여 형성된 도시는 자신만의 특색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20세기 중남미 국가 중 가장 발달된 건축 문화를 가진 나라를 뽑는다면 어디일까? 바로 브라질이다. 그 시작점은 1920년대 모더니즘 양식과 원주민주의를 기반으로 성장한 상파울루시(市)였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점차 건축의 예술성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브라질의 1930년 혁명은 정부와 건축가 사이의 대화를 가능케 하면서 건축을 도시계획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40~50년대 오스카 니마이어는 예술성과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이루는 건축 창조를 목표로 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20세기 브라질 건축 역사의 한 획인 브라질리아 도시계획 책임자로 활동했다. 브라질리아는 구역별로 계층 간 차이를 둔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적 성격과 함께 건축의 공공성 고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건축의 문화예술성을 잘 표현한 도시계획으로 널리 인정받았다. 꾸리찌바는 브라질리아 건축의 공공성을 보완하며 설계된 도시다. 시민과의 소통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도시계획을 추구했으며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친환경 도시로 발돋움하며 다시 한 번 브라질 건축문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근대 건축 문화는 어떠할까? 한국의 근대 건축은 일제강점기 시대인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1950년대 이후에는 한국에서도 민간이 주체가 되어 언덕 위, 주택가 골목길, 도심 가로 모퉁이 등의 건축물에 예술성을 표현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나 정부가 국가 발전 계획의 일환으로 건축을 예술 산업이 아니라 철저히 경제적 산업으로 여기면서 무분별하게 아파트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20C 브라질 정부가 건축가들과의 소통을 통해 도시계획을 진행했다는 점과는 큰 차이가 난다. 이렇듯 도시건축을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지 못한 정부계획이 오늘날 대한민국 어느 지역을 가도 천편일률적인 건물들만 즐비한 모습을 자아냈다. 공공성과 예술성이 결핍된 앙상한 콘크리트 감옥에서 살아온 한국 시민들에게 건축을 예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형성되기 어려웠다.
브라질 근대건축의 시발점인 상파울루를 시작으로, 브라질의 20C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어진 계획도시 브라질리아,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브라질리아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개선하여 새로운 도시계획 시스템을 정착시킨 꾸리찌바까지, 앞으로 탐사하고자 하는 3개 도시는 브라질 근대 건축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대도시들이다. 이 세 도시는 각각의 도시적 특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명한 건축을 도입하여 세계적인 도시건축의 명소로 떠올랐다. 한국에는 왜 이러한 도시가 없을까라는 의문점에서 시작된 아만찌팀의 이번 탐사는 브라질을 방문하여 우리의 탐사테마를 직접 확인해보고자 한다.
탐사 목표
아만찌팀은 상파울루, 브라질리아, 꾸리찌바와 같이 특색 있는 계획도시를 왜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이번 탐사를 계획하였다. 이러한 우리의 의문은 결국 두 나라가 가지고 있는 건축문화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질문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상파울루, 브라질리아, 꾸리찌바에 관한 자료들과 한국 도시건축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였다. 그리하여 아만찌팀은 브라질과 한국이 가지고 있는 차이점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건축에 대한 인식의 차이’였다.
한국에서 상파울루, 브라질리아, 꾸리찌바와 같이 아름답고 특색 있는 도시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바로 건축을 예술문화의 한 장르로서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덧붙여 건축의 공공성, 즉 도시 설계가 시민을 위해 이루어지는 국가차원의 공익추구가 아니라 대부분 자본주의에 입각한 투기목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상파울루는 아만찌팀이 브라질에 처음으로 도착하는 장소이자 브라질 최대의 대도시이다. 20세기 급격한 경제발전을 시작으로 덩치가 커지기 시작한 상파울루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서울과 가장 비슷한 도시라고 볼 수 있다. 경제의 핵심 중심지로서 상파울루에는 하나 둘 씩 다양한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당시의 건축물들은 여러모로 비슷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파울루시는 도시에 미적 생기를 불어넣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에 유명 건축가들을 통해 아름다운 외관의 건물을 도시에 설계하기 시작했고 인공 녹지 조성과 미술관 설계 등을 통해 도시의 심미적 변화를 꾀하였다.
브라질리아의 도시계획을 이해하기 위해선 왜 그리고 어떻게 이 도시를 설계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브라질리아의 신도시 계획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당대의 브라질 대도시들이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점에서 탈피하기 위함이었다. 무분별한 개발로 녹지는 사라지고, 부족한 교통 인프라 등등 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개발과 성장을 명목으로 훼손되어 갔다. 이에 브라질 정부와 오스카 니마이어는 도시가 시민들의 삶의 터전임을 재고하기 위하여 기존의 도시들과는 완전히 다른 신도시, 브라질리아를 계획했다. 오스카 니마이어는 시민들에게 햇빛과 녹지, 탁 트인 넓은 공간을 다시 돌려주었고 시각적으로 매우 휼륭한 현대건축물과 잘 닦인 도로를 선물했다. 완전히 새로운 도시 건축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편리하고 쾌적한데다 아름답기까지한 브라질리아는 1987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며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브라질리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 꾸리찌바는 브라질리아와는 달리 본래 존재하던 도시를 생태도시로 탈바꿈한 사례이다. 흥미로운 것은 꾸리찌바가 브라질리아의 단점을 보완하며 한 단계 더 발전한 형태의 도시건축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꾸리찌바를 지금의 생태도시로 만드는데 가장 크게 일조한 이는 前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이다. 당시 브라질의 대도시들이 브라질리아를 모델로 삼아 발전하는 양상에 의문을 제기한 레르네르는 ‘기존의 도시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새로운 인공도시를 짓는 것은 곧 전통의 와해를 가져오고 도시 구성원의 공동체적 결속력의 약화로 이어지는 일이다.’ 라며 브라질리아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도시건축의 공공 기능을 보완하려 했다. 이에 자이메 레르네르는 꾸리찌바를 완전히 탈바꿈하는 것 보다 기존의 패턴을 유지하고 보완하는 형식으로 시민을 위한 생태도시를 만들고자 했으며 진정한 시민을 위한 도시계획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편리함과 심미성을 갖춘 도시를 지향했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시민 스스로 능동적인 참여를 하게 만듦으로서 시민 본인이 진정한 도시의 주인임을 인식할 수 있는 도시 행정까지 갖추었다. 이러한 꾸리찌바의 철학은 “보다 나은 도시에 대한 꿈은 언제나 그 주민들의 머릿속에 있다. 내일의 시민인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을 다루는 일보다 더 깊은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없다”라는 레르네르에 말에서 잘 나타난다.
대한민국에서 건축은 더 이상 예술의 영역이 아닌 투자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건축은 필연적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예술이다. 모든 사람이 24시간 내내 접하며 사는 매체로서 항시성과 당연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건축은 우리사회에 매우 큰 파급효과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상파울루, 브라질리아, 꾸리찌바는 시대순의 차이는 있으나, 결국 도시건축이 지녀야할 편리성, 생태성, 조화성, 심미성 등을 잃지 않았고 도시의 주인이 시민임을 중점에 두어 설계된 도시라는 점에서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도시 건축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은 많이 다르다. 특히나 도시를 건축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대한민국 국민들조차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 자조한다. 제 3공화국이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도시 주택 개발을 경제적 산업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아파트 공화국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본래 아파트란 고밀도를 목적으로 갖는 도시형 주거 형태이다. 그러나 이미 주택 보급률 100%를 넘은 상태에서 도시와 농촌에까지 무분별한 아파트 난개발이 이루어지는 것은 결국 정부, 기업, 개인으로 이루어지는 건축주가 건축을 경제적 목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한국이 건축에 갖는 인식의 맹점은 건축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무한한 시간 동안 남아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간 터전이 된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획일화된 건축은 편리하다고 인식하기 쉬우나 이것은 착각이다. 편리성이 올바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문화적, 생리적 특징이 갖는 차이를 자세히 검토하고 존중해야 한다. 건축의 편리성이란 결국 이 건축물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의 편리성에 초점을 맞추어야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건축이 가진 편리성은 전형적인 산업 자본주의의 경제적 효율성에 기인하지만 그 대상이 건축이라는 점에서 효용성과는 다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전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 개의 건축물을 짓더라도 그것이 진정으로 시민을 위한 건축인지 고민해야 하고 다소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건축을 문화예술의 분야로서 인식하고, 건축의 공공성을 고려하는 태도가 궁극적으로 상파울루, 브라질리아, 꾸리찌바와 같은 도시가 한국에 생겨날 수 있는 변화의 시작이다.
아만찌 팀은 브라질에 도시건축으로 인정받는 도시들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건축, 시민과 소통하다’는 주제로 상파울루, 브라질리아, 꾸리찌바 세 도시의 탐사를 마쳤다. 탐사 전에 아만찌 팀이 가졌던 도시들의 밑그림과 직접 도착해 피부로 느낀 각 도시의 차이 그리고 그 곳에서 배운 것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탐사 내용
상파울루 7.13-16 / 7.27-28
상파울루는 브라질 최대의 도시다. 사실 상파울루는 도시 건축 자체가 의미 있는 도시이기에 방문했다기 보다 브라질의 대표적인 대도시가 어떠한 도시 건축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를 탐사하러 방문한 곳이었다. 그러나 가장 짧은 시간을 머문 탐사 장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만찌 팀은 상파울루의 도시건축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배움을 얻었다.
아만찌 팀에게 상파울루는 대도시와 녹지공간의 조화로서 기억되는 도시이다. 상파울루는 서울 면적의 약2.5배, 인구가1200만에 달하는 세계적인 대도시이다. 브라질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답게 대표적 중심지인 아베니다 파울리스타(Avenida Paulista)는 대한민국 서울의 번화가를 압도하는 규모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고층건물들 사이마다 자리잡고 있는 나무들과 녹지, 그리고 고층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이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강남대로변을 연상시키는 아베니다 파울리스타가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서울보다 널찍하게 조성된 인도와 대로변 그리고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는 건물들, 중간 중간 도시에 지친 눈을 쉴 수 있도록 하는 나무들 덕분이다. 특히나 감명 깊었던 것은 상파울루의 랜드마크인 상파울루 미술관 앞에 조성된 공원이다. 미술관 쪽에서 바라보는 공원의 모습 또한 아름다웠으나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가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것이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였다. 공원의 우거진 녹지로 인해 주변의 고층 건물들이 모두 가려지고 온전히 녹음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서울 대로변 마천루의 인공녹지로는 느낄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강남대로변을 연상시키는 아베니다 파울리스타가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서울보다 널찍하게 조성된 인도와 대로변 그리고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는 건물들, 중간 중간 도시에 지친 눈을 쉴 수 있도록 하는 나무들 덕분이다. 특히나 감명 깊었던 것은 상파울루의 랜드마크인 상파울루 미술관 앞에 조성된 공원이다. 미술관 쪽에서 바라보는 공원의 모습 또한 아름다웠으나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가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것이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였다. 공원의 우거진 녹지로 인해 주변의 고층 건물들이 모두 가려지고 온전히 녹음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서울 대로변 마천루의 인공녹지로는 느낄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만찌 팀에게 상파울루의 결정적인 이미지를 제공한 곳은 일요일의 아베니다 파울리스타였다. 아베니다 파울리스타는 매주 일요일마다 시의 주도하에 차량을 완전히 통제하고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곳으로 탈바꿈한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친구, 연인, 가족 단위로 나와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평일에는 이들의 삶의 일터가 되는 공간이 주말에는 산책을 즐기고, 브라질기업이 제공하는 무료 자전거를 이용하여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일명 콘크리트 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일요일의 파울리스타 대로변은 주말에는 일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브라질인들의 가치관과 상파울루 시민을 향한 정부의 애정과 배려심이 있었기에 탄생한 공간이었다.
브라질리아7.16-20
상파울루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만찌 팀이 도착한 도시는 브라질의 계획 수도 브라질리아였다. 1960년 완공되어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도시이니만큼 아만찌 팀에게 브라질리아는 가장 기대되는 목적지였다. 비행기의 선체 모양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구도와 브라질이 배출한 세계적인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볼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정상 밤늦은 시간에 브라질리아에 도착한 아만찌 팀은 지인의 도움으로 공항에서 숙소까지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도착 이후 숙소로 이동하며 가장 처음 아만찌 팀이 브라질리아로부터 받은 이미지는 ‘광활하고 삭막하다’였다. 상파울루의 고층건물들에 익숙해 있던 우리에게 브라질리아의 뻥 뚫린 평야와 거침없이 뻗어있는8차선 대로변은 색다른 이미지를 주었다. 아무것도 없던 고원의 땅을 다지고 인공도시를 세워 올렸다는 사실답게 브라질리아의 넓은 평야는 광활했고 삭막해 보였다.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되고 난 이후에 마주한 브라질리아는 상파울루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우선 오스카 니마이어의 건축물들이 도시 경관과 이루어지는 방식들이 아름다웠다. 브라질리아의 머리부분, 즉 비행기의 앞 선체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에 주로 위치하고 있는 오스카 니마이어의 건물들은 주정부관련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넓게 펼쳐져 있는 평야에 놓여져 있는 오스카 니마이어의 건축물들은 특유의 백색과 부드러운 곡선들로 이루어져 미래적이고 독특하면서도 주변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경관을 만들어냈다. 완벽하게 좌우대칭형의 도시 모습을 가진 브라질리아에서 눈에 띄는 그의 작품들은 주변의 삭막한 공기를 정화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건물들의 외형은 건축물의 사용의도에 맞는 의미를 대표하고 있어 브라질리아 시민들과 이곳을 찾는 방문객에게도 공간의 의의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의 건축물 중 가장 대표적으로 뽑히는 대성당과 의회 두 곳의 공간을 통해 오스카 니마이어의 가치관을 볼 수 있었다. 아만찌 팀이 브라질리아 탐사 중 가장 먼저 찾았던 대성당은 외관부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의 가시면류관의 형태라고도 하고 신이 양손을 겹치고 있는 형태라고도 하는 대성당은 단연코 브라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이다. 내부 역시 매우 인상적인데 오스카 니마이어가 작품에 늘 사용하는 흰색과 파란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유리 모자이크가 브라질리아의 고원의 강렬한 햇빛과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위쪽으로 올라가며 좁아지는 형태의 외관은 내부에서 그 설계 이유를 찾을 수가 있는데, 기울어진 벽면덕분에 작은 소리가 생생히 전달되게끔 의도된 것이라 한다. 실제로 한쪽 벽 끝에서 이야기를 하면 다른 쪽 벽 끝에서 뚜렷하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대성당이 사람으로 가득 차더라도 뒤쪽에 위치한 사람들이 예배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의도된 것이라 한다. 대성당은 그 명성답게 아름다웠으나 아만찌 팀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위치였다. 성당은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로운 신분으로 들어와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마땅함에도 오스카 니마이어의 대성당은 주거지역이 아니라 정부 청사들이 가득한 지역에 가까이 위치해 그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어 보였다. 실제로 대성당이 처음 지어질 때에는 종교에 관계없이 그 누구라도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와서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직 가톨릭 신자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브라질리아에서 접근성의 문제는 비단 대성당 뿐 만이 아니라 후에 탐사 전반에서 계속 지적되는 문제가 되었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오스카 니마이어의 작품인 국회의사당 역시 건축물의 외부와 내부가 조형미와 의도를 적절히 조화시켜 뜻 깊은 공간이었다. 대표적으로 국회의사당의 외관은 이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국회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건물의 양쪽에 저울처럼 위아래로 균형을 맞추고 있는 접시모양은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의 화합과 균형을 의미하며 가운데에 높게 서있는 건물은 브라질리아 평야의 해가 솟는 아름다운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라 한다. 고위 정부 관료들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내일을 꿈꾸자는 신수도의 의미를 그대로 담은 것이다.
오스카 니마이어는 국회의사당 뿐 만 아니라 주변의 삼부광장, 대통령청사, 외무부청사 등등 정부 관련 부처들 역시 각각의 의미를 되새기는 아름다운 외관으로 디자인했는데 이는 브라질리아의 일반 시민들은 출입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록 시민들은 출입할 수 없으나 엄연히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건축뿐만 아니라 공간의 의미를 되새기는 외형을 통해 브라질리아의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도록 고려한 오스카 니마이어 고민의 흔적이다.
오스카 니마이어는 국회의사당 뿐 만 아니라 주변의 삼부광장, 대통령청사, 외무부청사 등등 정부 관련 부처들 역시 각각의 의미를 되새기는 아름다운 외관으로 디자인했는데 이는 브라질리아의 일반 시민들은 출입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록 시민들은 출입할 수 없으나 엄연히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건축뿐만 아니라 공간의 의미를 되새기는 외형을 통해 브라질리아의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도록 고려한 오스카 니마이어 고민의 흔적이다.
그러나 아만찌팀은 브라질리아 도시가 가지고 있는 큰 취약점을 발견하였다. 신도시 건설 당시 도로공간과 보행 공간을 분리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잘 정비되어있는 자동차 도로와는 달리 보행자를 위한 인프라와 공간이 확충되지 않은 것이다. 즉 운전자가 보행자보다 배려 받는 도시가 브라질리아였다. 편리한 도로 이용을 위해 넓게 조성된 대로에는 놀랍게도 횡단보도가 전무했다. 때문에 브라질리아 시민들에게 무단횡단은 이미 관습으로 굳어진 듯 보였다. 넓은 평야에 각각의 공간들이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써 쾌적한 녹지시설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을지 모르나 자가용이 없는 일반시민들에게는 큰 불편함이었다. 높은 소득수준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서도 자동차를 이용해야만 했다. 사막과 같은 기후를 가진 브라질리아에서 뜨거운 태양을 견디며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도보지역이 황폐할 뿐만 아니라 그늘이 조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만찌 팀이 만났던 브라질리아의 시민들 역시 이러한 도시의 문제점을 매우 잘 인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브라질리아의 시민들은 도시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브라질리아 신도시가 만들어진 이유와 그 의의를 이해하고 있었다. 오스카 니마이어가 정부기관들을 아름답게 건축한 이유를 알고 있었으며 브라질리아가 지닌 도시 디자인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음 으로서 스스로가 브라질리아의 시민임에 자부심과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도시 건축의 의의와 탄생의도를 이해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이 지적하는 브라질리아의 문제는 단순한 불평이나 비난이 아닌 건강한 비판이 되어 시민들과 정부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꾸리찌바7.20 - 27
아만찌 팀이 방문하는 세 곳의 도시 중 가장 많은 탐사기간을 할애하는 만큼 꾸리찌바는 우리 팀에게 있어 가장 탐사열의를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꾸리찌바는 어떤 도시이기에 세계적인 생태도시로 꼽힐 수 있었던 것인지, 서울이 도입한 버스 환승 시스템의 청사진이 어떠한 모습인지 등등 바람직한 도시 건축의 예로 꼽히는 꾸리찌바에서의 일주일을 짧은 기간이나마 직접 살아보는 경험을 통해 꾸리찌바 시민의 입장에서 도시를 바라보려 했다.
꾸리찌바에 도착해 숙소로 가는 길, 아만찌 팀이 처음으로 했던 말은 “여기 나무 진짜 많다!”였다. 숙소로 달리는 내내 택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울창한 나무들이 우리로 하여금 꾸리찌바가 생태도시임을 다시 상기시켰다. 실제로 택시 운전수 분께서도 ‘꾸리찌바는 나무가 정말 많아요. 공원이 많아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쾌적한 도시죠’라며 꾸리찌바 자랑을 늘어놓으시는 모습을 보며 좋은 탐사의 시작이 되겠구나 라는 것을 모두 직감했다.
처음으로 만난 꾸리찌바 시민께서 자랑하신 대로 꾸리찌바는 ‘녹지의 도시’ 임이 분명했다. 아만찌 팀이 주로 방문한 바리귀 공원, 땅구아 공원, 꾸아리 공원(꾸아리 공원은 방문 당시 공연 일정이 잡혀있어 직접 들어가볼 수는 없었으나 외관에서 보이는 규모만으로도 거대한 녹지임을 알 수 있었다)의 주요 공원들 외에도 길거리를 걷는 내내 녹음이 우거진 광장이나 공원을 만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각각의 공원들은 모두 시민들에게 휴식과 놀이의 공간으로써 제 기능을 다하고 있었다. 게다가 단순히 녹지 제공의 기능뿐만 아니라 바리귀 공원이나 땅구아 공원은 각각의 공원이 뚜렷한 특색을 가지고 있어 관광의 부가적인 기능까지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바리귀 공원은 인공 조성된 녹지가 아닌 자연생태공원으로서 꾸리찌바의 명물 카피바라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심 속 공원이다. 인공 조성 녹지가 아닌 만큼 바리귀 공원은 아만찌 팀이 브라질에서 방문했던 수많은 공원들보다도 가장 우거진 숲을 자랑하고 있었다. 많은 꾸리찌바의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도심 속 자연과 카피바라를 보기 위해 이 곳을 찾고 있었다.
이와는 다르게 땅구아 공원은 인공 폭포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인공 조성 녹지다. 땅구아 공원 역시 인공 조성 녹지임을 믿기 어려울 만큼 우거진 나무들로 가득했으나 무엇보다도 유명한 것은 인공 폭포 위에서 바라보는 석양이다. 아만지 팀이 방문 하였을 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석양을 기다리며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석양이 저무는 것을 보며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꾸리찌바가 이토록 아름다운 녹지를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1970년 자이메 시장의 취임이다. 자이메 시장이 도입한 ‘그늘과 신선한 물’ 프로젝트는 도시 전역에 나무를 심고 하천을 보존하여 주민들이 스스로 물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적인 환경관리 방식이었다. 이 프로젝트에 힘입어 1971년에 주민1인당 불과0.5㎡의 녹지만을 가진 황폐한 도시였던 꾸리찌바는 오늘날 주민1인 당 64.5㎡의 녹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 수치는 한국의 대도시 평균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넓고(서울 기준 주민1인 당5.35㎡ 녹지 보유), UN과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한 수치의 약5배나 되는 엄청난 면적이다. 자이메 시장의 환경관리 프로그램 성공은 타선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꾸리찌바에서 자이메 시장이 가져온 변화는 단순히 녹지 조성뿐만이 아니다. 그는 도시에 녹지를 조성하는 것 뿐만 아니라 도시의 교통 시스템과 사회 영역, 교육 영역까지 다방면에 있어 시민을 위한 도시 디자인에 힘썼다. 자이메 시장의 가장 성공한 프로젝트 중 한가지가 바로 앞에서 언급했던 버스 환승 시스템이다. 산업화로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한 당시의 브라질 대도시들은 자동차 도로나 지하철을 정비하기에 바빴으나 자이메 시장은 도로 건설이나 지하철 도입대신에 세금을 적게 지출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도시 교통을 정비할 아이디어를 냈다. 도로 위의 지하철 노선을 만들어 시민들의 편의를 극대화하기로 한 것이다. 아만찌 팀이 실제로 이용한 버스 환승 시스템은 예상보다도 훨씬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있었다. 원통형의 정류장을 통해 버스를 환승, 승 하차 할 수 있었으며 버스 승강대와 동일한 높이로 플랫폼이 제작되어 장애인들이 승하차를 쉽게 할 수 있는 휠체어 리프트가 항상 설치되어 있었다. 꾸리찌바시는 원통형 정류장의 도입을 통해 승객들의 승 하차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불필요한 엔진의 공회전을 줄였다. 이 정류장의 도입으로 화석연료 소비와 대기오염을 실제 30% 정도 저감시켰다. 후에는 한 번에 약250명의 승객을 싣을 수 있는 이중 굴절형 버스를 도입해 도로 위의 지하철이라는 프로젝트의 이름이 무색하지 않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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