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4기] [유라시아] - 러시안룰렛 팀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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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11-06 11:11 | Read | 1,449 |
본문
-모스크바(2017.08.09.~2017.08.11.)
» 이즈마일로보 시장
상트로 넘어가기 전, 우리는 이즈마일로보 시장으로 향했다. 러시아에 간다고 했을 때 다들 “기념품은 꼭 이즈마일로보 시장에 가서 사는 거 알지?”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이즈마일로보 시장은 외국인들에게도 매우 유명한 곳이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만큼 소매치기가 많아 우리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념품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입구부터 수백 개의 마트료쉬카가 보였다. 일반 기념품점을 가면 그젤, 호흘로마, 마트료쉬카, 파베르제의 달걀 정도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찾기 힘든 빨례흐, 조스토보를 포함해 그젤, 마트료쉬카, 호흘로마, 파베르제의 달걀 등이 모두 있었다. 비록 빨례흐와 조스토보, 호흘로마는 많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호흘로마는 세묘노프에서 갔던 매장에 비해서 가격이 비싸서 딱히 싼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도 일반 매장보다는 싼 가격이었다. 그리고 세묘노프에서 봤던 제품들은 약간의 하자로 인해서 할인 하는 제품이니 ‘이 곳의 가격이 나쁜 가격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료쉬카나 그젤은 확실히 기념품점에 비해서 가격이 쌌다. 일반 기념품점의 가격에 50~70% 정도에 해당하는 정도랄까. 충동구매 욕구가 불타올랐다. 우리가 계속해서 돌아다니는 동안 많은 상인들이 우리에게 호객행위를 했다. 우리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러시아어로도 말을 걸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 와중에 몇몇 분들이 한국어로 먼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 러시아를 돌아다니면서 ‘니하오’라는 말은 꽤 들어보았지만 ‘안녕하세요’ 소리는 처음 들어보았기 때문에 무척 신기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중국인과 한국인을 잘 구별하고 우리에게 한국어로 말을 건 것이었다. 우리가 한국어로 반응을 하니 이윽고 한국어로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놀랄 정도였다. 심지어 점심을 먹으러 갔던 샤슬릭 가게의 주인분도 한국말을 썼다. 이 신기함도 잠시 점점 상트로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에 봐두었던 마트료쉬카, 컵 등을 사고 나왔다.
-상트페테르부르크(2017.08.11~2017.08.15)
» 백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7시 40분쯤 도착을 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도착할 때쯤에는 해가 뉘였뉘였하지 않을까 했는데 보통 한국 여름의 4-5시 정도의 느낌이었다. 짐을 숙소에 놓고 나와 늦을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도 밝았다.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10시쯤 나왔을 때 해는 진 것 같았는데 밤처럼 어둡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백야는 아니었지만 밤 10시라는 시간에 비해 밝은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더 돌아 다니고 싶었지만 피곤해서 숙소에 들어가 쉬기로 했다.
»페테르부르크 그리고 황실도자기, 임페리얼 포셀린, императорский фарфор
17세기 말 표트르 대제가 즉위하면서 러시아를 유럽처럼 만들겠다는 서구화 정책으로 러시아는 서유럽화를 겪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표트르 대제의 서구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다가가려는 향한 강렬한 마음으로 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를 계획하고 건설했다. 심지어 수도도 옮기기 까지 한다.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이어서 그런지 페테르부르크의 길들은 반듯하고 쭉쭉 뻗어 있는 느낌과 건물들도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느낌을 줬다.
표트르 대제는 유럽 이곳 저곳을 방문하면서 기술을 배워 오는 등 여러 분야에 왕성한 호기심을 보였다. 그 중 도자기 제조의 비밀과 관련된 것들을 추적하여 황실 소유의 도자기 생산시설을 건설하고자 했으나 그의 생에서는 이루지 못했다. 이러한 그의 바람을 그의 딸 엘리자베트 여제가 이어 과학자 드미트리 비노그라도프를 고용해 도자기의 비밀을 알아내게 했다. 그는 그젤 클레이(Gzel clays), 올로네츠 수정(Olonets quarts), 석고(alabaster) 등의 현지의 원재료들을 사용하여 도자기 제조의 비밀을 독자적으로 발견하고 그와 관련된 여러 기술들을 발전시켰다. 이와 동시에 러시아 최초의 도자기 장인을 육성하였다. 그렇게1744년에 러시아 최초의 도자기 요장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설립되었다. 그렇게 비나그라도프가 만든 도자기는 사실상 18세기 말까지 유럽 최고의 도자기였다.
이 요장은 로마노프(Romanov) 왕가의 소유로서 러시아 황실만을 위한 테이블 웨어 등을 만들었는데, 1765년 예카테리나 대제(Ekaterina the Great)가 요장을 재정비 한 이후로는 전 유럽에 “The Imperial Porcelain Factory”로 알려졌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모든 도자기는 개별적인 작품으로 여겨졌으며, 황실과 귀족들을 위해 소량만이 생산되었다.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일부는 판매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1844년에 요장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도자기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해당 박물관에서는 도자기 생산ㆍ발전과정을 보여주는 2만 점의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다. 예술 아카데미(Academy of Arts) 출신의 장인들이 도자기의 디자인과 데커레이션에 참여했던 1750년부터 1820년 사이에 만들어진 아이템들도 있다.
임페리얼 포셀린 공장 및 박물관을 도착하니 들어서자마자 공장에서 만든 물건을 파는 매장가 있었다. 그리고 우측으로 좀 더 들어가면 매표소가 있었고 그 매표소는 박물관 방문자를 위한 매표소였다. 박물관투어는 평일 2시마다 있다고 했다. 우리는 작품들이 쭉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도 좋았지만, 이 곳에서만 할 수 있는 공정과정을 보며 설명을 듣는 공장투어를 먼저 하기로 했다. 공장투어를 하고 싶다고 하니까 내부 사무실로 안내를 해줬다. 체험코스(Мастер класс)가 진행되는 방 같았다. 그 곳에서 우리는 동의서 3장을 작성하고 주문서를 가지고 아까 보았던 매장에 가서 값을 지불했다. 여기서도 큐레이팅을 신청하는 곳과 돈을 내는 곳이 달랐다. 러시아어와 영어가 가능했는데 그쪽에서 당연히 영어로 신청해주셨다. 외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대도시이어서 인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자기 공장의 위상에 의한 것인지 영어 설명이 있다는 것이 매우 반가웠다.
임페리얼 포셀린 공장 탐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아쉬웠던 점은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였다. 우리가 사진으로 비밀을 알아낼 수 있거나 그런 것이 아니지만 공장 측 요구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덕분에 설명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공장 안에는 우리 외에도 탐방을 온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그룹이 있었고, 우리 뒤에도 한 팀 더 있었다. 러시아인들 같아 보였는데 단순히 매장에서 구경하거나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이 끝이 아니라 이렇게 공정과정을 보는 투어를 신청하여 다니는 모습에서 해당 포셀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가이드는 임페리얼 포셀린에 대한 위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하게 간단한 역사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도자기를 만드는 점토에 들어가는 재료 몇 가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바로 해당 돌덩어리가 무엇인지 매치되지는 않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표적인 재료 그젤 클레이(Gzel clays)/화이트 클레이(white clay), 올로네츠 수정(Olonets quarts), 석고(alabaster) 등이었던 것 같다. 선반에 올려져 있는 재료 이외 약 40여가지의 재료들을 각 필요한 비율에 따라 가루로 만들어 물과 함께 섞어 만든 반죽도 보여주었다. 반죽이 분리 되어서 위에는 물 아래에는 가루가 그대로 살아있는 것 같은 묽은 반죽 같은 점토가 있었다. 직접 만져보라고 해서 손가락으로 찍어봤다. 묽은 반죽에 약간 손가락을 타고 흘렀는데 금새 손가락 표면에 굳었다. 어릴 때 점토를 가지고 놀고 나면 손에 묻은 점토 느낌과는 확실히 달랐다. 부드러운 느낌이 손가락을 감싸고 있었고 접히는 부분에는 주름에 따라 반죽이 붙어있었다.
이제 그 반죽을 이용해서 도자기 모양을 잡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가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은 안 하셨지만 우리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우리나라는 반죽을 만들어서 회전판에 올려 놓고 빚는 도자기들이라면, 이곳에서는 모형 틀에 반죽을 부어 넣은 뒤 굳히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도자기라고 하면 접시, 컵, 사기 그릇과 같은 식기와 꽃병 등을 떠올리게 되는데 여기서는 달랐다. 컵, 찻잔, 접시 등과 같은 식기는 물론이고 꽃병 외에도 사람 또는 동물 도자기 인형 등 무궁무진하게 다양하고 섬세한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주전자, 티팟을 만들게 되면 몸통 틀, 뚜껑 틀, 손잡이 틀이 각 각 따로 존재한다. 그것에 각각 반죽을 부어 넣고 틀에 얇게 남을 수 있게 모양과 크기에 따라 일정 시간(약1~2분) 놔둔 뒤, 남은 반죽은 틀을 거꾸로 들어 빼낸다. 우그리고 굳히기에 들어간다. 만드는 모양의 크기에 따라 건조시간은 달라진다. 작은 것의 경우 20~30분이면 다 마르기도 한다. 반죽이 마르면 틀을 제거한다. 덜 마른 것의 경우 점토처럼 뭉쳐지고 모양이 잡혀있을 정도로 건조되면 된다. 하지만 아직 단순 건조과정을 거친 것이기 때문에 매우 연약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옆에서 확인해 보라고 주는데 정말 약간의 힘만 주어도 쉽게 부셔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열처리 과정이 전이라 연약함도 있었지만 틀의 모양을 담아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점토로 얇게 모양을 잡아 놓았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다. 점토가 마르기 전에는 회색빛을 띠다가 완전히 건조되면 하얀색을 띈다. 이렇게 모양을 잡아주는 틀은 약 30번을 쓰면 새로운 것으로 교체해야 된다. 틀을 만드는 부서가 따로 있고 그곳에서 도자기의 디자인을 결정하고 틀 교체를 위한 새 틀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제 틀로 모양이 잡힌 부분들은 함께 붙이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은 조각들이 약간의 물기가 있을 때 진행 된다고 한다. 조각들을 함께 붙이는 반죽도 클레이를 만들 때 사용 되는 재료들이 같이 들어가지만 다른 비율로 해서 만든 것이다. 작품이 섬세해서 조각들이 많을수록 오래 걸린다. 어떠한 작품은 한 모양 완성시키기 위해 조각들을 붙이는 데에만 2~3주가 걸리고 있는 것이 있다고 했다. 월~금 8:00~16:00의 작업시간이 들어가는데 말이다.
제품들은 2단계의 과정을 꼭 거처야 하는데 첫 굽기는 900도에서 24시간 동안 진행된다. 첫 굽기가 끝나면 도자기가 단단해졌기 때문에 이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거나 유약 칠을 해도 된다. 두 번째 굽기는 1300~1400도에서 48시간 동안 진행되고 나면 완성 되는 것이다. 굽기 전 보송보송했던 도자기가 고온의 오븐을 지나고 나오니 반짝반짝한 도자기로 변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총 2번의 굽기를 거쳐야 하는 것이 전통이지만, 비스크(?)포셀린이라고 최고 온도에서 한 번 굽기 후 조각을 한 뒤 완성되는 작품도 있다. 해당 작품은 디테일이 살아있어 더 현실감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1차 굽기가 끝난 후에 유약 칠을 하는데 신기한 것은 이 유약 또한 아까 보여준 재료를 가지고 다른 비율로 섞어 만든 것이다. 먼저 유약을 잘 섞은 뒤 마른 도자기를 해당 유약에 담가서 얇게 코팅을 시킨다. 유약은 빛을 내며 투명하게 묻어 있다가 금새 마르면서 색이 탁해진다. 해당 유약을 씻어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묻혀도 되고.
모형을 완성하고 굽기만 해도 작품이 완성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색과 그림이 들어간 도자기는 크게 2가지 방법으로 그려진다. Under-glazed와 over-glazed인데, 유약을 바르기 전에 그리느냐 유약을 바른 후에 그리느냐 차이이다. Under-glazed 접시의 경우 그림 부분을 만졌을 때 매끈하며 어떠한 음식이든 올려먹어도 되고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되고 오븐에 넣어도 된다. 이 기법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은 대체적으로 색이 단조롭고 어둡다. 이유는 도자기를 두 번 굽게 되는데 그 열을 견딜 수 있는 물감의 색의 스펙트럼과 종류가 몇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림이 약간 번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Over-glazed 접시의 경우 그림 부분을 만지면 그림이 느껴졌다. 볼록볼록 붓이 지나간 자리가 남아있다고 해야 하나 그랬다. 이 기법으로 그린 그림에서는 다채로운 색과 밝은 톤의 색을 볼 수 있었다. 더 섬세하게 그려진다. 일단 한번 유약을 칠해 구운 도자기 위에 물감으로 그리면서 물감이 견딜 수 있는 온도로 여러 번 굽는데 약 8번 정도 반복한다. 설명만 들어도 너무나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작품을 다시 보니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림이라고 다 같은 그림이 아니었고 그냥 도자기 위에 그림만을 쓱쓱 그려 넣은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손이 많이 가고 하나하나 작업을 해서 수공예가 아니라, 오랜 연구와 시도로 알아낸 반죽 비법과 물감과 온도에 대한 과학적 고찰이 있었을 것만 같았고 해당 수공예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자부심이 느껴졌다.
의외의 작은 반전도 있었다. 데칼이라는 기법인데, 우리가 흔히 로마노소프 도자기라고 하면 떠올리는 ‘코발트 넷(cobalt net)’의 무늬의 경우는 일일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종이에 무늬가 그려져 있고 그것 위에 물감으로 따라 그리고 특정 액체를 바르고 건조시킨다. 그리고 필요할 때 물에 담기면 종이와 물감이 분리되고 그 물감을 스티커처럼 도자기 위에 씌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약 칠을 하고 2차 굽기를 한다. 금으로 데코레이션을 하는 경우는 맨 마지막 단계에서 진행 되는데 그 이유는 금이 견딜 수 있는 온도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코발트 넷(cobalt-net)에서 겹치는 부분에 금박이 그려져 있는데 그것은 특수한 도장을 사용해 손으로 다 찍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티스트들의 작업실을 지나오며 나왔는데 한 작업실에 1~2명의 아티스트들이 페인팅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큰 꽃병 같기도 하고 항아리모양에 손잡이가 달린 도자기에 완성된 그림을 카피를 하고 있었다. 카피를 한다고 해도 다 개인이 손으로 그리는 거라 기계가 만드는 것처럼 동일한 작품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작품 하나하나가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한 도자기를 굽게 되면 크기가 작아지는데 그에 따라 그림도 도자기를 따라 오므라든다. 이것을 고려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도 모두 아티스트의 몫이라고 했다. 단순히 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그려야 하니 그림만을 잘 그린다고 해서 아티스트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 아티스트를 육성하는 고등교육기관이나 프로그램이 있냐는 질문에 지금 일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은 30~40년을 일한 베테랑 아티스트 들이고, 신입 아티스트가 들어올 경우 아주 쉬운 작업부터 시켜서 트레이닝을 시킨다고 답해주었다.
우리가 본 곳은 주로 페인팅이 이루어지는 부서였고 그 외에도 도자기를 굽는 곳, 틀을 만드는 곳 등이 다 다른 부서로서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량으로 생산되는 공장도 있기는 한데, 그곳에서는 몇 가지 종류의 포셀린만 만들고 대부분은 수작업을 이루어진다고 했다. 다만 공장에서도 모두 기계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 손이 많이 가서 기계작업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공장 같은 경우는 안전성의 문제로 투어가 되지 않아서 사진으로 대신 구경할 수 밖에 없었다.
투어를 마치고 나니 뭔가 아쉬웠다. 친절하게 영어로 설명해주려던 가이드에게 고마웠고 덕분에 많은 것을 알고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마지막 투어가 마치고 나니 우리가 보아왔던 수공예품들은 단순히 실용적 사용뿐만 아니라 각각이 예술 작품으로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전에는 단순히 수공예품에서 보여지는 화려함에 나도 모르게 그림에 초점을 두고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공정과정을 살펴보고 나니 페인팅을 하는 부분은 모든 프로세스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우쳐줬다. 물론 페인팅 부분에서는 창의력과 섬세함도 요구가 되지만 그것이 페이팅 부분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뒤에 페인팅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오는 그 과정이 각 수공예품들이 자신만의 특징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설명을 듣고 나니 사전 조사에서 보았던 말이 이해되었다.
모든 섬세한 페인팅 데커레이션은 전적으로 핸드페인팅으로 이루어지며, 단순한 그래픽 패턴은 전사지를 제작하여 기물에 패턴을 옮기고 페인팅아티스트가 마무리를 한다. 로모노소프는 독자적이며 탁월한 본차이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로모노소프의 본차이나는 전통적인 경질자기와 비교하여 현저한 백색을 띠며, 두께가 가장 얇고 견고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높은 투명도와 섬세한 데커레이션은 아름다움과 함께 기술적인 면에서의 높은 완성도를 느낄 수 있다.
» 러시아 제국의 궁전 에르미타쥬(эрмитаж)와 러시아 박물관의 러시아 민속 공예
에르미타쥬를 방문하러 궁전광장에 들어섰다.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너무 아름다웠고 많은 사람들로 광장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가보니 군용품을 전시를 하고 있었다. 해당 전시회를 둘러보는 사람도 있었고 지나가는 길에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도 신기해서 가는 길에 몇 가지를 구경하면서 겨울궁전으로 갔다.
티켓을 끊고 입장을 하는데 여기서도 간단한 소지품 검사가 진행됐다. 가운데에 큰 중앙계단처럼 보이는 것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주로 러시아 궁전의 모습과 당시 물건들 예카테리나 여제가 수집한 물건들, 에르미타쥬에서 수집한 물건들, 여러 유럽국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단 2층에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방과 작품들 물품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전시되어 있는 것들이 소유품의 모두가 아니라고 하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눈으로 다리로 느꼈다. 방이 너무 많아서 안 간 방이 어딘지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인지 모든 곳을 둘러보지 못 했던 거 같다. 에르미타쥬는 세계 대형 박물관에 손꼽히는 곳이다. 그만큼 많고 다양한 작품들을 기대하며 간 것인데, 아무래도 황실에서 수집했을 법한 물건들 위주였기 때문에 민속 수공예품과 같은 것들은 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화려하고 다양한 포셀린은 보았다. 전시가 되어있는 포셀린 옆에 적힌 이름에는 자국생산 한 것들 보다는 프랑스와 같은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다양한 포셀린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 황실에서 포셀린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 대한 결과로 황실 도자기 공장(Императорский фарфоровый завод)까지 생겨났으니 말이다. 비록 에르미타쥬에는 없었지만 러시아박물관에서 해당 공장에서 만든 작품들을 꽤나 볼 수 있었다.
러시아 박물관도 미하일 궁전을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1898년에 러시아 예술과 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박물관으로 개관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들어간 곳에 포셀린과 유리로 된 작품들이 있었는데 황실포셀린공장과 국가포셀린공장 등에서 만들 작품들이 쭉 놓여있었다. 황실도자기 공장에서 보지 못한 더 다양하고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포셀린 이외에도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과 이콘화가 쭉 놓여있었다. 에르미타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예술박물관에서는 이콘화를 볼 수 있었다. 두꺼운 나무에 그린 그림부터 화지에 그린 그림까지 다양했다. 전시회를 통해 기존 소장품 외 작품들도 볼 수 있었다. 궁전이었던 만큼 많은 방들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모든 방들을 구경하지 못했던 거 같다.
처음 방문한 층을 구경하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보니 러시아 민족 예술 부분이 있었다. 우리 주제와 관련이 되어서 얼른 들어가 보았다. 처음에는 나무로 만든 다양한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것들이 있었다. 세묘노프(семёнов)에서 돔무제이(дом-музей)라고 집을 개조해서 박물관처럼 쓰고 있는 곳을 방문했었을 때 보았던 물건들을 또 다시 볼 수 있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몇 가지 조스토보(жостово)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두 사진 모두 쟁반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인데 작업되는 도시에 따라서 배경이 되는 색과 그림이 달랐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까 그젤(гжель), 호흘로마(хохлома)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다시금 그젤의 작품들을 보면서 황실도자기와의 차이점으로 느끼는 점은 황실도자기가 더 얇고 더 섬세하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면, 그젤의 경우 도자기에 러시아적 느낌이 나는 그림들이 또는 러시아 동화를 담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박물관에 있던 호흘로마(хохлома) 작품이 오래된 것들이라 그런지 그 동안 봐왔던 것들과는 색감이 조금 달랐다. 빛에 바랜 느낌이었다. 요즘 작업되는 작품들의 그림과 색의 칠이 더 디테일해진 느낌이 들었다. 해당 박물관에서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술들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 외에도 그젤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드는 도자기 느낌의 장난감, 나무를 조각한 작품 등이 있었다. 해당 부분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러시아 큰 땅덩어리에 많은 숲이 있고 그곳에서 얻어지는 나무로 만든 전통 공예품들이 많다는 생각을 들었다.
» 결론
러시아문화를 공부할 때 마트료쉬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적은 있으나 그 외 수공예에 대해서 접하기 힘들었다. 원어민 교수님이 수업 중에 곁다리로 언급을 하시는 경우가 있었지만 모든 학생들이 러시아의 다양한 수공예품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우연한 경로로 마트료쉬까 이외에 다양한 수공예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것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서 탐사주제로 정하게 되었다. 러시아 수공예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아도 2차 정보로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계적이었다. 직접 해당 수공예품을 구매하거나 박물관을 다녀온 블로그 글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수공예품에 대해 조사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불가능해서 몇 가지 정도로 추려서 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것은 그젤(гжель), 호흘로마(хохлома), 마트료쉬까(матрёшка), 황실도자기(императорский фарфор)였다. 사전조사 당시 사진들을 보며 예상한 바로는 단순히 기념품 이거나 예쁜 식기 정도였다. 하지만 현지에서 공장에서 가이드의 설명과 같이 다녔던 러시아인들, 기념품가게에서 본 러시아인들, 박물관에서 본 작품들을 보고나니 그것은 기념품이나 실용적 용도를 위한 물건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이었다. 탐사를 하면서 공장투어가 쉽게 접근 가능하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리고 많은 러시아인들이 단체 관광이 아닌 개인적으로 신청해서 오는 모습과 같이 투어를 하는 동안 느낀 점으로 수공예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이번 탐사를 통해 러시아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다. 큰 영토와 미국과 함께 세계에 영향력이 큰 나라인데 그 이면에 전통 예술을 고수하고 끊임없이 연구 개발하는 모습, 사계절 내내 추울 것 같지만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공원에서 분수를 볼 수 있는 여름, 표정도 말투도 무뚝뚝하지만 가끔은 먼저 다가와서 도와주는 친절함, 도움요청에 끝까지 챙겨주는 다정함 등 러시아에서 경험하기 전까지는 느끼지 못한 점들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 보고서를 통해 우리가 받은 느낌이 전달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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