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ity Challenge

해외탐사 프로그램 ‘Locality Challenge’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 알고 계십니까? ‘Locality Challenge’는 자신이 공부하는 지역을 직접 탐사하는 해외탐사 프로그램입니다.

참여하는 학생들은 탐사지역에 관해 인문·지역학적 탐구과정을 실시해 계획을 수립·발전시키고, 각 지역의 지역학적 효용가치를 재발견하며 도전정신을 배양하게 됩니다.

‘Locality Challenge’를 통해 학생들은 인터넷과 책에서만 보던 지역을 눈으로 직접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으며, 광역특화전공 내 4가지 트랙의 오지성 지역을 팀원들과 함께 구석구석 탐사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됩니다.

Title [3기] [마그레브] - 인샬라 팀 [영상으로 들여다 보는 프랑스와 모로코의 일상]
Writer 로컬리티센터 Date 17-03-14 13:25 Read 1,637

본문

 

 

​탐사테마 

 

우리 인샬라팀의 전체적인 테마는 영상으로 담은 프랑스와 모로코이다. 우리는 단순한 탐사가 아니라 정말 각 나라 현지인의 생활에 녹아들어 일상적인 삶을 알아보려고 했다.

 

누구든 기본적인 3대 요소 곧 의, , 주를 겪으며 살아가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 가운데 과거, 현재에 한 마디로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적인 사건이 어떻게 표현되었고 남아 있는지, 지금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탐사해보고 이를 카메라에 담는 것이 우리 팀의 탐사 여정이었다.

 

일상이란 정말 사소한 것부터 시작된다. 우선 인간에게 가장 기본이라 볼 수 있는 언어의 차이부터 그들과 우리 일상의 차이가 된다. 우리의 도착지이자 탐사가 시작되는 장소,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리자마자 우리 눈 앞에 보여지고 들리던 불어는 아 우리가 지금 다른 일상에 들어왔구나 함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던 점이었다. 그때부터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일상 체험이었는데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느끼고 오려고 인샬라팀은 잠을 줄여가며 노력했다.

 

모로코 페즈 공항에서는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테마인 일상체험을 위해 약 1시간을 기다려 마을 버스를 탑승했다. 그 과정에서 이재현 학우의 캐리어가 부서지고 모두가 멀미가 나는 등 고생을 했지만 정말 현실적인 일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정류장이 불분명해서 내릴 때 마다 서로 소리질러서 알려주고 서울의 지옥철 못지않게 가득 타서 천천히 이동을 했다. 정말 다부서질거같은 버스안에서 다양한 모로코사람들을 그렇게 처음 만났다. 우리는 특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메디나 방문에 집중을 했는데 1000년이 넘은 구시가지를 보존할 수 있었던 원인과 그 오랜 세월이 어디에 어떻게 묻어나와 있는지 눈앞에 보이는 길로 하염없이 걸었다. 크게 난 보행자 도로 이외에는 그 사이사이로 약 9000여개의 작은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다. 후에 우리는 길을 잃을까 두려워 모로코 전통 빵을 조각내서 떨어뜨리면서 가다가 정말 가득한 고양이들이 다먹겠다고 판단해 구글 맵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우스운 이야기도 있다. 이국적이면서도 친근한 볼거리와 정겨운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그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었고,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사람들의 인심 등을 느낄 수 있다.온갖 수공예품, 가죽공방, 레스토랑,생필품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이들은 이것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고 했다. 다니면서 느낀 바는 정말 모로코는 물가가 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관광객에게 그만큼 터무니없는 가격 부르기는 일상. 우리는 늘 할인을 외쳤다. 하지만 경제상황을 반영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한국인들을 좋아하는 모로코인의 인심도 느낄 수 있다.프랑스와 모로코, 이 두 나라에서 우리는 현지인과 최대한 많이 소통하고 배우려고 애썼다. 현지 학생들의 생활을 경험해보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많은 유학생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고 식사에 초대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국가, 도시의 특색이 잘 반영되어 있는 궁전을 필수적으로 방문했다. 당대 왕국의 근엄함과 아직 남아있는 숨결을 느껴보고 경험해보았다. 두 국가 동시에 현존해있는 건축, 디자인 방식들이 두국가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한편으로 궁전, 대저택 등을 탐사하며 현지인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 프랑스와 모로코의 역사를, 다른 한편으로 일반 거주 밀집 지역 및 시장을 방문, 지역 주민들의 일상사를 재구성하고자 한 것이 우리 팀의 가장 큰 테마이다.

 


탐사목표

 

프랑스에는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모던 등 시대별로 큰 특징을 보이는 세계적인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건축물로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을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노트르담 대성당 등을 방문했다. 모로코에서는 이슬람사원인 모스크, 궁전, 학교, 모로코 전통양식의 대규모 집인 리아드 , 성곽으로 둘러 싸인 메디나 등을 방문했다. 이러한 건축 양식들을 촬영하고 동시에 그 속에 존재하는 두 나라 사람들의 의,,주 즉 일상 생활에 대해 알아보고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인식을 살펴보고자 했다.

 

건축과 시장을 중심으로 우리가 보고 느낀 현지인들의 주거양식 및 생활양식을 영상물과 기록물로 구축하고 이들을 서로 비교 가능한 형태로 구현하고자 했다. 이처럼 영상, 사진, 기록을 통해 1차적인 정보교류를 넘어서는 효용 가치를 사람들에게 시각적, 청각적으로 편안하고 손쉽게 다가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이번 탐사의 궁극적인 목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 캠퍼스는 타 캠퍼스와 달리 언어뿐만 아니라 지역학적 접근을 통해 전공 지역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도모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평소에 학우들이 프랑스학, 그리고 광역특화 전공 관련 수업들을 수강하면서 지역학을 여러 과목을 통해 수학하지만 영상 자료 부족으로 해당 지역에 대한 현장감을 실제로 느끼기에는 교육 자료가 상당히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책으로만, 글자로만 통해 배우는 지역학이 아니라 생생한 영상과 사진, 다양한 증언 기록들이 수업의 보조 자료로 활용된다면 학습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고 확신한다.

 

탐사 결과로 제작된 영상과 탐사 과정이 담겨있는 여러 가지 사진들이 후에 학우들이 지역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좀 더 구체적인 학습을 할 수 있게 함이 우리팀의 목표였다. 우리는 탐사를 진행하면서 배우는 학생으로서, 대학생으로서, 청춘으로서, 외국인으로서 등의 다양한 시각으로 모든 것에 관해 호기심을 가지고 부딪히고 경험해서 최대한 많은 것을 프랑스학과와 마그레브 전공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고 매순간 최선을 다해 임했다. 이러한 우리 팀의 노력이 꼭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팀의 결과물을 보고 향상된 학습을 한 학우들이 국내학습 뿐만 아니라 시각을 더 넓히고 싶다, 나도 저런 곳에 가서 직접 느끼고 경험해보고 싶다라는 동기부여가 되어 교환학생, 파견학생, 또 다른 기수의 로컬리티 챌린지 양상에 도움이 되어 정말 세계로 뻗어나가는 외대인이 되기를 작게나마 바라는 바이다.

 


탐사내용

 

 

 1일차

 

우리 인샬라팀은 129일 탐사에 대해 잔뜩 기대를 머금고 인천공항에 모였다. 비행기부터 입 · 출국 수속까지, 모든 것이 새로웠다. 사전 답사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시작이었으며, 각자 팀원들의 머릿 속에는 프랑스 · 모로코의 일상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3시간의 기다림 끝에,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무려 17시간에 가까운 긴 비행이었지만, 탐사 기간 동안에 맡을 서로의 역할을 분배하며 수다를 떨다보니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한 이후로, 인샬라팀은 일상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 정의하였으며 눈에 보이는 모습들을 촬영하여 영상으로 만들기로 하였다. 그리고 팀원 모두가 영상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DSLR, 액션캠, 핸드폰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장비를 동원하였으며 사전 조사에 기반하여 탐사를 진행하였다.

먼저, 우리는 파리에서의 숙소 Absolute Paris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숙소까지 RER전철을 타고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현지 택시기사들의 흥정이 겉잡을 수 없이 많이 들어왔다. 그 중 한명이 저렴한 가격으로 흥정을 제시했으며, 팀원 배성은 학우의 유창한 불어실력과 적절한 애교로써 밴을 잡을 수 있었다. 인샬라팀에 있어서는 첫 외국인과의 만남이자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느껴졌다. 따라서 팀원들은 평소에 배웠던 불어를 바탕으로 ‘Qu'est ce que vous faites dans la vie?' // ’Combien de temps faut-il?' 등 하고 싶은 질문들을 하며 현지인과의 벽을 허물어 갔다.

그렇게 창 밖의 배경들도 찍어가며, 기사님과 수다도 떨다보니 숙소에 도착하였다.

짐을 풀고나서 프랑스에 교환학생을 가 있는 학우들과 함께 Soirée에 참석했다. Soirée를 번역하자면 야회인데, 말 뜻 그대로 프랑스인들이나 지인들과 함께 저녁이나 음료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파티였다. 일상을 접해보고 싶은 우리에게는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Soirée가 시작되니, 호스트의 입장에서 우리가 외국인이지만, 누구나 와도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처음보는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친해지며 즐기고 있었다. 또한, 팀원들은 각자 친해진 외국인 친구들과 연락처도 주고 받으며 지속적인 우정을 약속하였다. 이렇게 한바탕 프랑스의 문화를 경험하고 나니 모든 것이 익숙하고 좀 더 친숙해 보였다.

 

 

 

2일차

 

131일 화요일, 인샬라팀은 본격적인 탐사프랑스 지역 탐사에 나섰다. 이 날 일정은 현지 가이드와 함께 이동하였다.

우선, 아침에는 간단한 조식거리를 해결하기위해 숙소 근처에 있는 Franfrix 로 이동하였다. 이른 오전의 Franfrix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일반 마트와 별 다를 점이 없어보였다. 하루동안 손님들에게 팔릴 물건들을 정리하는 직원의 모습, 우리팀처럼 식사거리를 구매하러 온 사람들, 하루를 바쁘게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눈에 보이는 모습은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었다. 우리는 그 속에 섞여서 우리들만의 하루를 시작하였다.

오전 9, 현지 가이드와 만나기로 한 개선문으로 이동하였다. 개선문에는 하루동안 우리와 함께 이동할 Captain Zero님이 계셨다. Zero 님은 부산에서 요트산업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겨울철에는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혼자 여행을 오셨다고 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함께 있는 시간동안 친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베르사유궁전에 도착하였다.

베르사유 궁전은 스케일부터가 남달랐다. 17~18세기에 바로크양식으로 표현된 이 정원은 자그마치 크기가 8,000ha에 이르렀다. 정원을 둘러보기 위해 기차를 타야한다는 말이 그 크기를 증명해준다. 또한, 화려함의 끝이라 불리는 바로크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 베르사유 궁전이었다. 온 궁전 외부의 색이 금색으로 도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살면 어떤 기분일까.. 루이14세의 생각을 훔쳐보려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궁전과 정원을 영상으로 담아낸 후, 13시쯤 파리 시내의 콩코르드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이 곳에서 우리는 세네갈 출신의 상인 빠유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유창한 한국어실력으로 먼저 우리에게 다가왔다. 팀원 이수민 학우는 그를 인터뷰하기 시작하였다. ‘빠유는 한국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한국인 친구가 많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ASIA 국가들 중에서 한국을 가장 좋아하게 된 이유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한국은 중국, 일본과 다르게 사람들의 스타일이 좋고 성격이 친절하다고 하였다. 이번 여름에 부산에 올 예정이라고 하였고, 그에 따라 고향이 부산인 이재현 학우가 호응을 해주었다그리고 나서 우리는 허기진 배를 달래기위해 1430분 쯤 Monmartre 언덕 및 Sacré - coeur 성당으로 이동하였다.

Sacré - coeur 성당을 처음 건립한 것은 보불 전쟁이 끝난 후라고 하였다. 보불전쟁의 패배를 영적, 도덕적 타락에 대한 징벌이라고 간주하여 이를 속죄하기 위해 성당을 건립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Sacré - coeur 성당의 설계 요소 중 다수는 민족주의 테마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하였다. 포르티코와 그 세 개의 아치형 양옆으로는 이폴리트 레프브르의 작품 잔 다르크와 루이 9세의 기마상이 서 있었다. 팀원들끼리는 몰랐던 사실을 가이드님을 통해 알게되니 영상촬영과 탐사에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후, 바로 옆에 있는 몽마르뜨 언덕으로 이동하였다. 몽마르뜨 언덕에는 역시 예술의 거리답게 길거리에서 캐리커쳐나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백들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우리는 점심을 먹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가장 오래된 전통이 있다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서 Zero 님과 함께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양껏 식사를 마치고 난 후, 계산을 하려는데 웨이트리스의 따가운 눈초리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프랑스에서는 팁 문화가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듯 한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우리는 팁에대해 신경을 써 주지 않았다. 아직까지 일상에 녹아들기에는 서투른가 보다.

16시쯤,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이동하였다.

12세기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엄하고 웅장한 모습은 어느 쪽에서 보아도 감탄을 자아낸다. 그중에서도 센 강 왼쪽 기슭에서 보는 남쪽과 뒤쪽의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성당 내부에는 성 베드로의 동상과 여러 가지 성유물들로 이루어진 조각상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자체만으로 성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18시쯤 저녁을 먹기위해 마레지구, Opéra Bastille 등을 이동하며 일상을 관찰하였다. 파리의 밤거리는 시끌벅적한 한국과는 다르게 어딘가 쓸쓸해 보였으며, 예술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밤이되니 분위기에 맞게 거리의 건축물들이 더욱 더 빛나게 장식되고 있었다.

 

 

3일차

 

21일 수요일, 모처럼 날씨가 너무 좋은 날이었다. 프랑스에서 해가 뜨는 날이 드물다고 하는데 이 날은 정말 축복받은 날이었다. 오전 8시쯤, 인샬라팀은 숙소에서 나와 2일차에 봐두었던 빵집으로 갔다. 프랑스식 아침식사를 즐겨보기 위해서였다. 빵집의 풍경은 어제의 Franfrix와 비슷했다. 자신의 요깃거리를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으며 이 장면을 영상으로 담았다.

 

오전 10, 아침식사를 끝내고 인샬라팀은 Panthéon에 도착하였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인지, 비틀즈 흉내도 내보고 팀원들의 컨디션이 최고조여서 좋은 영상들도 많이 담아 낼 수 있었다. 팡테옹의 웅장함을 느낀 후, 옆에 붙어 있는 소르본 대학교로 이동하였다. 소르본 대학은 왕권의 보호를 받으며 프랑스 교육의 산실로 성장했고 빅토르 위고, 파스퇴르, 베이컨 등 유명인사들을 배출했다고 한다. 오후 13시쯤 되어서야 우리는 허기를 느꼈고, 점심을 먹으러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이 곳에서 남은 파리일정들을 정리하며 4일차면 떠나는 모로코에서의 여정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나서 오후 1430, 프랑스의 대표 건축물인 에펠탑으로 이동하였다. 에펠탑에 도착하니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으며, 에펠탑은 소리없는 웅장함을 뽐내고 있었다. 파리 테러 사건 이후부터인지 보안이 강화되어 들어가는 입구부터 소지품검사를 엄격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에펠탑에 직접올라가서 파리를 한 눈에 내려다보면 좀 더 좋은 촬영을 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 팀은 샹젤리제거리로 또 이동해야 했기에 다음을 기약하고 샹젤리제거리로 떠났다. 샹젤리제거리로 걸어가는 길에는 대사관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각각의 대사관의 건물들이 다른 특성을 띄고 있었다. 그 중에는 주불 한국대사관의 모습도 보였는데 실내를 구경해보고 싶었지만, 외부의 전경만 카메라에 담고 떠났다.

16시가 되어서야 샹젤리제 거리에 도착하였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한 샹젤리제 거리는 긴 1자형의 거리가 탁 트여있었는데, 마치 우리학교의 구조를 연상시키게 하는 모습이었다. 해가 지고 난 후, 야경의 일상을 담아내기 위해 팀장 박원일 학우는 샹젤리제 거리의 끝까지 내려갔으며 그 결과로 현지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저녁식사를 끝내고 인샬라팀은 1830분쯤 개선문으로 올라갔다바로 개선문에서 바라본 파리의 모습을 타임랩스로서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주황, 초록, 빨강, 파랑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이루어내는 프랑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타임랩스로서 촬영하는 우리 팀의 모습을 보고 다른 관광객들이 응원의 말을 건네주었다.

 

 

 

4일차

  

오전 8, 3일동안 묵었던 Absolute Paris 호텔을 벗어나 택시를 타고 오를리공항으로 이동하였다. 가는길에 택시를 바로 잡지 못해서 정말 조급했었지만 파리를 떠나야하는 아쉬움과 모로코로 향하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들 아쉬운 나머지, 각자 핸드폰을 꺼내 택시 창 밖의 스쳐지나가는 파리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두려 하였으며, 잊지못할 추억들을 새겨넣고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 국가 자체가 한국에 비해 일 처리 속도가 느린감이 없지 않아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출국심사를 대기하는 사람들을 보고 이대로 모로코를 가지 못하는 건가 싶어서 온갖 언어를 다 이용하며 양해를 구하고 최대한 빨리 심사장을 통과해서 있는 힘껏 달렸다. 그렇게 정말 달려서 도착한 비행기안에서는 역시나 프랑스이구나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비행기연착이었다. 우리는 정말 럭키가이라며 또 이런것에 우리는 행복을 느끼고 웃었다. 연착을 좋아라하는 우리 팀원들은 역시 해맑다.

페즈 공항에 도착해서 낯선 아랍어에 당황했지만 우리는 또 다시 불어를 이용하며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 것이다. 우리 팀은 그곳에서 모로코인 두명과 자신이 베르베르인이라 한 사람들과 그 사이에 친해졌다. 그들에게 물어보니 버스는 오기는 하나 언제올지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려야한다고 했다. 처음에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 드라이버가 우리에게 일명 삐끼를 치려고 120디르함이라면서 접근해왔지만 우리는 돈도 아끼고 싶고 일상체험을 제대로 하고 싶어서 그것을 거절하고 한국돈으로 거의 1인당 500원 꼴인 버스를 택했다. 근데 거의 1시간을 기다려서 탄 버스는 정말 다 부서질 것 같았다. 버스를 타다가 너무 험해서 이재현 학우의 캐리어가 부서지기도 했다. 정류장들은 특정한 명칭이 없었고 표시가 되어있지도 않았으며 어디쯤이면 기사와 승객들이 서로 눈짓을 주며 크게 소리쳤다. 버스 안에서는 구걸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싸우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정말 이쁜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공항 쪽 길이 외곽이고 험한데다 버스운전이 난폭해서 가는길에 모두 얼굴이 하얘졌다. 언제 내려야할지 몰라서 옆에 계신 아저씨께 계속 여쭈어가면서 겨우 내렸고 그렇게 도착해서도 길을 잘 찾지 못해서 이분거리에 있는 우리 숙소를 찾지 못해서 경찰에게 택시를 잡기위해서 어디로 가야하냐고 했더니 바로 앞이라고 걸어갈 수 있다고 해서 안도를 내쉬며 힘겹게 첫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고작 이분동안 걷는 동안에도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졸졸 쫓아오며 놀리는 것을 보고 아 우리의 페즈는 험난하겠구나라고 느꼈다.

 

짐을 정리하고 우리는 짧은 휴식을 취하고 옆에 위치한 까르푸에 저녁을 먹으러갔다. 아직 지리도 익숙하지 않고 항상 조심해야한다는 김응운 교수님의 말씀을 정말 머릿속에 새기며 가장 가깝고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곳이 까르푸여서 갔더니 정말 커다란 쇼핑몰 같았다.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은 정말 동양인을 좋아하는 듯했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다 웃으며 쳐다봤고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사람부터 점원들은 메뉴의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의 실물을 보여주며 설명해줄만큼 너무 친절했다. 까르푸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우리가 한 말 페즈 너무 좋아!”.

 

 

5일차

 

우리는 전날 밤 반한 페즈를 어서 둘러보기 위 해 일찍 기상했다. 페즈는 1300년여의 역사를 지닌 모로코의 옛 수도로 종교와 예술의 중심지이다. 아랍 문화를 모로코에 전파한 곳으로서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기도 하다했다. 모로코에서의 첫 조식은 프랑스때와 비슷하게 역시 크로와상, 오렌지쥬스가 존재했다. 든든히 먹은 후 당일 일정에 관해 지리도 익히고 할겸 회의를 했다. 그러던 중 카사블랑카에서 인턴 과정 중인 배준영, 박준호 학우가 페즈에 도착했고 우리보다는 모로코에 익숙한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그토록 무서워하던 택시 요금 바가지 씌우기를 피해서 첫 번쨰 목적지인 블루게이트에 도착했다.! 블루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음식점들이 나오고 온갖 가죽용품과 카페트가 즐비했다. 모든 점원들이 니하오!!하면서 호객행위를 했으나 우리는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그렇게 탐사를 시작했다.

 

블루게이트 뒤로 존재하는 시장은 수크라고 불리운다. ‘미로도시라고도 불리우는 페즈 답게 수크의 골목은 정말 많고 복잡했다. 부족들의 요새 여러개가 합쳐진 결과라고 한다. 우리는 우선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거의 야외식사가 대부분이었고 식탁 밑에는 고양이들이 즐비했다. 고양이를 정말 무서워하는 배성은 학우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못하고 눈물을 떠뜨렸다. 식전에 주는 모로코빵의 부스러기를 주워먹으려 고양이들이 야단법석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모로코 전통 음식인 따진을 접했다. 한국의 갈비찜과 흡사했다. 식사 후에 우리는 하염없이 걸었다. 걸을 때마다 나는 가죽냄새들이 우리가 가죽공장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예언했다.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가죽공장. 들어가자마자 건네받은 민트잎이 나중에는 그렇게 필요하게 될지 몰랐다. 안내해주는 사람을 따라 들어가 내려다 본 곳에는 책에서만 보던 염색 공장이 나타났다. 그런데 역한 냄새가 정말 코를 찌르는 듯 했다. 민트잎으로 우리는 코를 들어막고 설명을 들었다. 보통 가업을 통해 공장을 물려받는다고 했다. 염색 공정은 총 5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설명을 듣는 도중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비둘기의 똥의 산성분이라는 사실에 정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맨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작업하는 것을 보고 이미 익숙해지셨나보다 했다. 그리고 다시 나가는 길에는 정말 미로같이 엄청나게 큰 영업장이 존재 했다. 온갖 가죽 자켓과 가방, 지갑, 신발 등이 눈을 사로잡았다. 이 모든 것들이 저런식으로 만들어지다니 신가하면서도 놀라웠다.

 

그렇게 가죽 공장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는 당나귀들과 말들이 짐을 싣고 이동하고 있었다. 정말 길이 좁은데 오토바이, 당나귀, , 사람들이 다 섞여다니니까 정신이 없었다. 이리저리 피해서 우리는 Tombeaux Des Mérinides에 도착했다.명소인지라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그곳에서 내려다 본 페즈의 메디나는 정말 아름다웠다. 험난했던 오는길이 다잊혀질만큼. 그곳에서 우리는 영상에 담을 것들을 어서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시선을 끄는 동양인이었고 영남대에서 교환학생 과정 중인 아쌀라도 만났다. 연락처를 교환받으며 서로 언어를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아쌀라의 친구들이 우리의 페즈여행을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우리는 그다음날 쉐프샤우엔으로 떠나야했으므로 아쉽게 인사를 했고 숙소로 복귀했다.

 

 

6일차

 

우리는 쉐프샤우엔으로 이동하기 위해 이른 아침 기상 후 조식을 먹고 CTM버스를 타기 위

 

해 이동했다. 공항처럼 미리 짐을 맡기고 무게를 잰 후 따로 그에 따른 요금도 지불했다. 그렇게 탄 버스는 생각보다 좋았다. 오랜시간 가야 했기에 우리는 잠에 들만도 했지만 밖에 펼쳐지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선 야자수가 보이던 페즈 끝자락의 풍경도 예뻤지만 페즈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수록 광활한 잔디밭, 푸른 언덕, 거대한 호수,

 

뛰놀던 양과 당나귀, 말들 . 정말 큰 제주도 같았다. 영상에 담기 바빴고 버스에서 찰칵찰칵 소리가 나면 모두 인샬라 팀원들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이 정말 크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던 첫 번쨰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자연 그대로였다.

 

오래도록 달린 후 우리는 드디어 모로코에서 가장 예쁜 도시 ,쉐프샤우엔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시가 해안도시인 것처럼 산맥을 따라 온갖 건물들이 즐비했다. 여기에 바다가 있나?할만큼 . 알고보니 건물들이 푸른색이어서 더욱 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쉐프샤우엔이 원래부터 푸른색의 도시였던 건 아니라고 한다. 원래는 창문과 문에 이슬람의 상징인 초록색이 발려있었는데 1930년대에 이주해 온 유대인의 영향으로 푸른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루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도시! 우리는 어서 숙소를 찾아서 짐을 두고 숙소 근처에 있었던 메디나 광장으로 갔다. 그곳에 가니까 엄청난 관광객들이 있었고 레스토랑, 기념품점들이 정말 많았다. 우리는 한국말을 잘하던 점원에 이끌려 한 식당에 도착했고 그곳에서도 고양이들과 소동을 일으켰다. 의자위에 오르던 고양이 때문에 여학우들은 기겁을 했다. 역시 따진을 주문했고 식사를 하던 도중 로컬리티를 통해 한국을 방문해서 우리학교에 머물렀던 모로코친구를 만났다! 바로 옆테이블에서 만났는데 그들도 카사블랑카에서 여행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너무 신기했고 우리가 앞으로 탐사할 때 궁금한 것과 조심해야할 점을 전해들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메디나가 산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계속 오르는 길들이었지만 푸른색에 사로잡힌 우리는 돌아갈 길은 생각도 않고 끊임 없이 홀린 듯 걸었다. 정말 이렇게 이쁠수가 있을까 싶었다. 지나가던 길에 갑자기 큰 음악소리와 악기 소리들이 나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행진해오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동네 꼬마아이의 생일이라고 했다. 신난 우리는 함께 박수를 치고 춤을 췄다. 그리고 펠리따씨옹!!!!!!!!!하고 외치니까 모두가 웃었다. 사진과 영상을 모두 찍고 우리는 다시 돌아가려했으나 구글맵이 먹통이었다. 그래서 그냥 왔던 듯한 길로 갔다 근데 도시가 작아서 그런지 올라온 시간보다 어찌 다시 내려가는 시간이 훨 적게 걸리는 듯햇다. 해가 져물어서 재빨리 숙소로 복귀했고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반드시 아침의 쉐프샤우엔을 다시 느껴보자 약속하고 결과물을 정리하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7일차

 

일찍 기상 후 우리는 숙소에서 제공해주는 아침식사를 했다. 역시 빵과 오렌지 주스! 이수민 학우는 그곳에서 먹은 크림치즈를 모로코에 있는 내내 찾았다. 그리고 어제 둘러보았던 푸른 골목으로 다시 올랐다. 그 전날과는 다른 방향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길을 오르기 전에 광장에서 올려다본 메디나 끝자락이 저 꼭대기에 위치해있었는데 길도 묻지 않고 그곳에 가기 위해 무작정 올랐다. 아무래도 작다보니까 그렇게 갔더니 정말 우리가 가려한 곳이 나타났다. 성벽의 끝자락이었는데 끝에 딸려있는 계단을 몇 개오르니 예전에는 무엇인가 요새로 쓰였을 법한, 군사들이 불을 들고 지키며 주변을 둘러보았을만한 곳을 찾았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쉐프샤우엔은 페즈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옆에는 정말 큰 산들이 있지만 그 아래 산맥을 따라 옹기종기 작은 건물들이 푸르게 있었다. 얕게 깔린 안개에 비춰진 쉐프샤우엔은 정말 이뻤다. 학대와 압박을 피해 도망 온 유대인들도 작고 푸른 도시를 보며 희망을 찾았던 건 아닐까 했다.

 

다시 광장으로 내려와서 어제 먹었던 식당의 점원의 추천으로 고양이가 없는 곳에 갔는데 우리가 둘러보던 정반대 골목으로 또 다른 골목들이 펼쳐져있었다. 실내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이곳에서 먹은 따진을 우리 팀원들은 모로코 탐사 내내 그리워했다. 그리고 식당 밖에 위치한 시장 골목을 구경하기 위해 걸어가던 중 어제 만난 친구를 또 만났다. 우리는 이제 쉐프샤우엔을 떠난다고 하니 매우 아쉬워했다. 한국에 오면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서 맡겨둔 짐을 찾았다. 숙소 주인이 너무 친절해서 모로코에서 머물렀던 숙소 중 인상 깊은 숙소 중 하나이다. 고맙고 아쉬운 맘에 우리는 우리의 ctm식량이었던 귤과 요플레를 건냈다. 그렇게 다시 우리는 ctm을 타러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고 여유롭게 도착해서 마라케쉬로 가기 위해 페즈를 경유했어야 했으므로 페즈행 버스를 탑승했다. 잘있어 쉐프샤우엔! 짧고 굵은 , 그러나 인상 깊었던 쉐프샤우엔.

 

페즈에서 마라케쉬로 가는 버스를 환승하기 위해서는 30분의 간격밖에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연착이 일상이고 우선 출발 시간부터가 15분 연착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초조했다. 몇분을 남기지 않고 우리는 페즈에 도착했고 마라케쉬로 가는 버스가 곧 출발하려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 당황해서 한명은 가서 버스를 붙잡고 상황을 설명하고 한명은 버스아래에서 짐을 찾고 나머지는 버스안에서 가지고 내릴 짐을 다 정리하고 아주 야단법석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럭키가이아니었던가 그들도 버스가 갓 도착함을 알았던지 너그러이 이해해주었고 우리는 화장실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열시간넘게 이동해야하는 야간 버스였기에 모두가 기진맥진했고 좁은 버스에 많은 짐과 이동하려다보니 다리에 쥐도 나고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서로를 챙겨가며 결국 우리는 마라케쉬로 도착했다.

 

 

8일차

 

26일 페즈에서 마라케시까지 15시간의 버스를 타고 왔다. 새벽 6시 마라케시 도착. 패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추위에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겨우 숙소에 도착하여서 운이 좋게도 얼리체크인을 하였다. 다시 잠을 청하고 조식을 먹고 낮에 조원들은 모였다. 나름 가벼운 복장으로 집업 후드를 입었으나 응? 강렬한 햇빛은 우리 모두를 다시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게 만들었다. 마라케시 도착하자마자 추위에 떨던 이재현 학우는 무려 반바지를 입었다. 드디어 마라케시 도시 탐방 시작이다. 마라케시는 알모라비드 왕조가 1050년 전쯤 건설한 도시로 오랜 기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이었다. 사실 모로코에서 수도는 라바트이고, 가장 잘 알려진(영화 덕분에) 도시는 카사블랑카이지만, 정말 알짜배기 보석 같은 도시는 바로 마라케시이다. 우리 인샬라팀도 마라케시 구석구석을 탐사하기위해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하기로 정하였다. 마라케시는 사막투어의 시작점이기도 하며, 볼거리 문화유산이 가득하다. 대표적인 유산으로는 쿠투비아 모스크, 카스바, 성벽, 기념문, 정원등이 있다. 또 뛰어난 건축물을 자랑하는 바히아 궁전, 벤 유세프 이슬람 학교, 왕가 묘와 진정한 노천극장이라 할 만한 자마 엘프나 광장이 있다.

 

우리는 쿠투비아 모스크로 향하였다. 마라케시의 탐사는 도시 중심에 위치한 쿠투비아 모스크에서 시작된다. 마라케시 어디에서든지 모스크는 눈에 띄게 잘 보이며 랜드마크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쿠투비아 모스크는 제마 엘프나 광장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광장은 모로코 사람들의 일상을 담아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바쁜 길거리 한가운데서 예사로 간식을 파는 상인들, 모퉁이 마다 사실 같은 간식을 판다. 호기심에 먹어 볼 법도 하였지만, 몇 분을 관찰 한 결과 아무도 구매를 하지 않아서 우리 또한 선뜻 구매하지 못하였다. 또 그늘아래 할아버님들의 삼삼오오가 눈에 띄었다. 햇빛을 쐬러 나온 가족단위, 산책을 즐기는 연인들, 마라케시의 첫 발걸음을 떼는 우리와 같은 외국인들 등 다양한 사람들로 모스크를 둘러싼 광장 일대는 붐볐다. 쿠투비아 모스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12세기에 무슬림 베르베르 왕조인 알모하드의 후원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쿠투비아 모스크의 이름은 쿠투비아 모스크 앞에서 필사본을 파는 상인들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더 이상 견줄 만한 것이 없는 사원의 첨탑은 무슬림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핵심 유산으로 도시 경관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자 도시의 상징이다. 쿠투비아의 미나렛은 제마 엘 피나 광장으로부터 수크로 들어가는 순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쿠투비아 모스크는 T자형 설계로, 25,000명의 신도를 수용할 수 있지만 비이슬람인들에게는 개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들어가 보지는 못하였다. 들어가려는 순간 바로 저지당하였다. 모스크를 조금만 지나니 또 야자나무와 오렌지나무가 조화를 이루며 휴식공간을 조성하고 있었다. 이 광경은 흔히 우리가 아프리카라고 생각하는 틀을 깨주었다. 모로코인들이 이곳을 거닐며 일상, 하루를 보내는 곳이다.

 

다음은 메디나를 지나서 이슬람 학교를 갔다. ‘라 메데레사 반 요세프또는 알리 벤 요세프 메데라사라고도 불린다. 스페인의 어느 궁전(알함브라 궁전)을 본떠서 만들었으며 건물 가득 기하학패턴의 조각이 가득하다. 초창기에는 130개의 작은 공부방이 있었으며 그 후 900명까지 수용하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학교가 되었다고 한다. 130개의 작은 공부방은 우리의 관점에서는 조금 특이하였다. 작은 방은 독방과 같은 크기이며 창문이 없는 곳이 많았다. 그리고 지어진지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한국인 4명의 눈에는 교실이 어두침침하였고 공기가 싸늘하였다. 지극히 개인적은 느낌이다. 그래서 4명이서 뭉쳐 다니며 촬영하며 손전등을 비추며 다녔다. 건물 중간 중간에 나무 받침이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기와와 비슷하였다. 건물의 겉은 과 바닥은 타일로 이루어져있으며 벽은 황토와 초록색의 조화 아래 타일은 파랑색과 아이보리, 그리고 오렌지 계열의 타일이 조화를 이루었다. 아프리카 모코로 건축의 포인트 중 하나는 문, 창문 심지어 창살까지도 다 문양이 들어가 있어 예술의 미가 돋보인다. 창살들조차도 하나하나 모양이 달라 보이며, 푸른 하늘, 초록 나무, 중간 중간에 보이는 오렌지, 황토 집하나 하나가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진 것이 건축의 미를 더한다. 타일 역시 그렇다. 하나만 보면 모를 수도 있으나 여러 개가 모여서 은은한 조화를 이루며 모로코 건축양식을 완성시킨다. 조화를 이루면서도 화려함이 모로코의 정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은 건물 벽이다. 내부는 단조로웠다. 다시 메디나를 거닐며 되돌아갔다. 마라케시의 메디나와 페즈의 메디나를 비교하자면 마라케시의 메디나가 좀 더 상업적인 면이 있었다. 더 상인이 많았고 기회가 되면 상점들이 즐비하였다. 나이든 사람들이 많고(주로 장사를 하려고 하거나, 길을 가르쳐 주어서 팁을 받아 내려고 하는, 택시를 소개해주어 중간에 팁을 받는) 거리가 좀 더 정리된 느낌이었다. 페즈의 메디나는 좀 더 자연적이고 손을 대지 않은 느낌이며, 젊은 아니 어린 아이들이 무리지어서 공을 차거나 떼를 지어서 노는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페즈의 메디나는 모로코의 메디나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그 위상에 맞게 가장 구불구불하고 좁고 자연적이고 방대하고 인상 깊은 메디나였다. 구글 지도조차 잘 통하지 않는 페즈 메디나를 한 바퀴 돌고 마라케시의 메디나를 걸으니 길 잃을 걱정은 없었다. 중간 중간에 길을 한 번 물어보면 괜찮다는데 굳이 끝까지 안내해주시겠다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노 머니 노 머니라는 말과 함께. 괜히 더 못 믿겠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붙어 다녔다.

 


9일차

 

27일 우리는 바히아 궁과 궁 근처 람파트를 갔다. 바히아 궁전은 근대 모로코의 건축미와 정원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궁전이다. 모로코의 모든 건축물의 핵심이자 가장 큰 특징은 정원과 안뜰이다. 전통 리야드식이며 안뜰의 바닥은 타일로 되어있으며 정 가운데는 분수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뜰에는 식물들이 가득하다. 하얀 정원과 초록의 정원의 대비가 아주 잘 어울린다. 바히아 궁전은 왕궁은 아니고 당시 수상이었던 Ahmed Ben Mousse의 집이라고 한다. 마라케시의 유명한 왕궁인 엘 바디 궁전에 비해서는 규모도 작고 역사고 짧지만 기하학 적인 정원과 화려한 타일, 다양한 모로코 문양들이 잘 보존되어 매우 아름답다. 궁전 내부는 미로처럼 여러 방들이 연결되어 잇다. 방마다 화려한 무늬의 천장과 바닥의 타일이 인상적이다.

 

택시를 타고 마조렐 정원으로 향하였다. 프랑스가 모로코를 지배하였을 때, 프랑스에서 온 화가 자크 마조렐이 설계한 정원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불규칙한 곡선길이 이어지고 색감이 뛰어나다. 레몬색, 코발트블루. 이 코발트블루는 옛 자크 마조렐의 집안에 만들어진 이슬람 예술 박물관의 벽과 화분, 그리고 정원의 다른 부분들을 칠한 특별한 색감이 코발트블루라서 현재 마조렐 블루라고까지 불러진다. 매혹적이고 대담하며 푸르면서도 강렬함이 느껴지는 정원이다. 이 정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선인장이다. 한국에서는 날씨 때문에 선인장들은 온실에 보관되고 있는 것과 달리 야외에 갖가지 선인장들이 즐비하였다.

 

날이 저물고 사막투어를 신청하기 위하여 다시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상점이 양옆으로 즐비하였고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동양인이 많지 않았던 터라 우리는 거리에서 굉장히 튀었으며 사막투어 광고 하시는 분들이 우리에게 명함을 주며 자기 회사를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길을 가는 동안 쉴 틈 없이 그런 분들이 다가왔다. 결국 한 분을 따라갔고 설명을 듣고 있는데 잠시 밖에 나오니 다른 광고하시는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고민을 하다가 건물 밖에 나왔는데 광고하시는 분들끼리 말다툼이 있어보였다. 사실 이 부분에서 그들이 굉장히 공격적이여 보였고 무례해보였다. 영어를 쓴다고 하시지만 무례한 말만 하고 공격적이었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반가운 말! ‘ 한국인이세요?’ 한국인을 구사할 줄 아는 모로코인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너무 그 상황이 어지러워서 우선 벗어나고 싶다고 하였다. 벗어나려고 하자 사막투어 광고하는 모로코인은 한국말을 구사할 줄 아는 모로코인(이하 라니야)에게 화를 내기 시작하였다. 우리를 가로채려는 줄 오해하고. 그렇게 거리는 우리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큰 원을 만들며 사람들이 몰려서 구경하기 시작하였다. 필자는 이대로 모로코 경찰서 체험하는 줄 알았다. 다행히 우리는 난파를 뚫고 조용한 곳으로 나와서 라니야와 라니야 사촌동생과 얘기를 나눴다. 서로 소개를 하고 사막투어에서 돌아오는 날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인터뷰를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헤어지고 다시 돌아가서 사막투어를 빠르게 신청하고 억센 모로코 장사꾼들사이에 있었던 우리는 모두가 얼이 빠진 상태로 숙소로 돌아 왔다.

 

 

10일차

  

28. 사막투어를 하기위해 7시에 집합하였다. 중간에 아틀라스 산맥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 내려서 포토타임을 가졌다. 만년설 눈이 덮인 4000미터 높이의 거대한 산맥이다. 5시간가량 달려서 와르자자트에 도착하였다. 특히 와르자자트는 최대 영화 촬영지가 있기 때문에, Musee du Cinema가 있다. 우리는 시간상 생략하였다. 우리가 먹었던 식당 맞은편에는 와르자자트의 카스바가 있다. 카스바는 요새를 뜻하는데 주거형태로 쓰였다고도 한다. 와르자자트는 마라케시와 자고라 사이에 위치한 도시로 베르베르 고유의 전통가옥이 남아 있다. 흙으로 단단하게 지어진 가옥 말이다. 건물들은 황토색이나 붉은색이다. 뜨거운 태양아래 내리 쬐이는 와르자자트는 살짝은 음영감이 있으면서 누런, 한편으로는 열정을 뿜어내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한참을 또 달리다 휴게소에 들렸다. 모로코 휴게소는 간단하다. 돈을 받는 화장실, 상점, 그리고 정육점이 있다 고기를 즉석으로 구워준다. 주로 양고기이며 꼬치로 구워준다. 모로코에 있으면서 휴게소를 3번정도 들렸는데 다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드디어 사막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다리를 풀 새도 없이 바로 낙타에 올라탔다. 낙타는 이탈하지 못하게 입과 몸통이 앞 뒤 낙타와 연결되어 있었다. 측은하였다. 낙타에 올라타 1시간 30분 동안 베이스 캠프 쪽으로 갔다. 자전거를 탈 때 느낄 수 있는 안장통이 그 순간에 한 번 더 왔다. 이수민학우는 돌아오는 길에는 아예 낙타타기를 포기하고 빠른 걸음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배정받았다. 우리는 엑스트라 차지를 내고서 개인4인실을 신청하였다. 아뿔싸. 모두가 개인4인실 이였다. 우리는 일종의 사기를 당하였다. 그래도 호텔에서 신청하는 것보다는 저렴하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하며 웰컴티 모로코차를 마셨다. 민트 잎을 넣고 설탕을 잔뜩 넣은 차이다. 호불호가 강한 음료다. 이미 모로코에 갔다 온 많은 친구들이 사막투어를 가면 오로지 쿠스쿠스를 먹으니까 그 전에 쿠스쿠스먹을 필요 없다. 다른거 먹어라. 이런 말을 익히 들어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쿠스쿠스를 먹을 마음에 설레었다. 하지만 메뉴는 모로코식당에 갈 때마다 매번 먹은 따진이였다. 익숙한 맛이었고 야채도 많이 먹어서 좋았다. 우리는 이탈리아 부부와 동석을 하며 먹었는데 아쉽게도 이탈리아 부부가 영어를 하지 못하여서 많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어려웠다. 빠르게 저녁을 먹은 후 작은 캠프파이어를 하였다. 드디어 베르베르인의 음악, 놀이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두 명의 베르베르인들이(사막투어가이드) 장구 같이 생긴 작은 것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생소한 멜로디여서 아무도 따라 할 수 없었지만, 전 세계 공용 흥 돋는 수단음악으로 우리는 모두가 흥을 느끼며 몸에 리듬을 탔다. 사막이라 일교차가 심하여 밤에 매우 추웠지만 따뜻한 모닥불을 둘러싸고 베르베르인들의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드니 추위를 잊은 듯하였다. 한껏 흥을 느끼고 난 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한 뒤 잠을 청하였다. 사막의 밤은 정말 추웠다. 우리는 미리 준비해온 핫팩을 침대에 붙여서 핫팩이 전기장판 구실을 하였다. 그렇게 네 명은 배성은 학우를 시작으로 하여 한명 씩 곯아 떨어졌다.

 


11일차 ~ 도착

 

다음 날 새벽 6, 어제 흥을 잔뜩 돋군 베르베르인들이 문을 두드리며 깨우기 시작하였다. 엄청난 추위로 눈을 한 번 뜨니 다시 잠들기 힘들었다. 빠르게 준비하고 간단한 조식을 먹었다. 그리고 바로 낙타를 타고 다시 차량으로 이동하였다. 개인적으로 12일 사막투어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23일 정도는 해야 더욱 베르베르인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삶속에 조금이나마 더욱 투영 하고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마라케시로 돌아 왔다. 돌아오자마자 라니야와 라니야 사촌을 만나서 저녁을 함께하였다. 사실 마라케시에 위치한 한식집에 데려가면 좋았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모로코식 저녁을 먹었다. 함께 먹으며 모로코인들의 생활 방식, 사상, 문화, 여가생활 등등을 묻고 인터뷰 녹화를 하였다. 라니야는 한국 문화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아서 대화하기가 훨씬 수월하였다. 여기서 우리 인샬라 팀은 케이팝의 위대함을 느꼈다. 동남아시아나 유럽에서는 이미 한류가 인기를 타고 있다는 것을 익히 들어왔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처음 이였기 때문이다. 유쾌한 라니야의 사촌과 라니야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카카오톡을 교환하고 우리는 다음 여정을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현재 인샬라 팀은 모두 라니야와 연락을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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