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5기] [동아시아] - 다시만난베트남 팀 (1) [한베 과거 역사인식 재고와 미래 발전 가능성에 대한 탐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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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8-11-30 12:41 | Read | 1,471 |
본문
올해, 문재인 대통령은 2박 3일에 걸쳐서 베트남 순방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문재인정부의 ‘신(新)남방정책’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 남방정책이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1월 개최된 ‘한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교류정책으로,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수준을 대폭 끌어올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국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신남방정책은 3P 키워드로 정리됩니다. 사람(People) 중심, 상생 번영(Co-Prosperity)을 통한 평화(Peace)공동체 마련입니다.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사람 공동체, 안보 협력을 통해 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평화 공동체, 호혜적 경제 협력을 통해 함께 잘사는 상생번영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자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한국과 아세안 국가 간 교류가 기존에는 상품 중심의 교역이었다면, 신 남방정책은 교류의 차원을 기술, 문화예술, 인적교환 등으로 확대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베트남은 이번 정책에 있어서 가장 주요한 국가로 꼽히는 VIP에 들어갑니다. V(Vietnam), I(Indonesia),P(Philippines)이 바로 신남방정책의 핵심 국가들인데, 이중 베트남은 가장 우선순위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베트남이 한국의 4위 교역국이며 우리나라는 베트남의 2위 교역국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이 되면 대미 수출을 뛰어넘을 전망이 기대되는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며, 2015년부터 FTA 계약이 체결되면서 상호 간의 발전성도 매우 높습니다. 2018 년 한·베트남 공동언론발표문에 따르면, 양구은 양국 간의 경제협력을 더욱 호혜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습니다. 한국은 베트남의 소재·부품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여, 호혜적인 무역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양국 기업이 안심하고 상대국에 투자할 수 있도록 이번에 타결된 사회보장협정과 같은 제도적 기반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신남방정책이 시행되면서 베트남과 한국의 관계가 앞으로 향후 지속적으로 더욱 더 긴밀해지고 발전할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향후 10년 안에 더욱 긴밀해지고 교류가 증가할 베트남과 한국의 미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한국과 베트남의 과거 역사인식에 대해서 재고하고 이를 토대로 양국의 미래에 관해 논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미현 팀원은 ‘외대평화나비’라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해결하는 동아리의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 전시 성폭력 문제, 전쟁, 평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베트남 전쟁 피해자 증언 및 기사를 읽어보던 중, 하나의 사건을 3국(베트남, 미국, 한국)에서 각각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으며 전쟁의 기록과 흔적을 직접 보고, 듣고,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일본군 성노예자 피해자들의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를 기리기 위해 세우는 평화비, 기림비 등을 설치하고 계속해서 일본에 사죄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나라 군인들에게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 죽임을 당한 분들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는 베트남 정부가 우리의 사죄를 거부했다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사죄의 태도를 하지 않고 외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 역사의 올바른 청산이 이뤄질 때 베트남과 한국의 진정한 미래 지향적 관계가 세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라는 큰 주제 속에서 우리가 다뤄야 할 주제는 전쟁의 배경부터 진행, 결과, 피해, 전쟁 후 기록 관리까지 매우 광범위합니다. 이번 로컬리티 탐사를 통해서 베트남 전쟁을 폭넓고 자세하게 다뤄보고자 합니다.
한국 역사 교과서에 베트남 파병은 우리나라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 사건으로만 강조되고 있습니다. 역사교과서를 보면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지원확보에 기여했다.”, “미국의 군사원조와 차관, 경제지원, 한국기업의 진출 등 60년대 한국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라고 베트남파병에 의한 경제효과가 교과서에 모두 기술된 한편,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기술은 전무합니다. 2014년이 되어서야 “(1만5천여명의 전사, 부상자 외) 많은 고엽제피해와 민간인의 희생, 라이따이한 등 수많은 문제를 남겼다.”(천재교육사,<고교한국사>中)와 같은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기술도 다소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일본과 관련한 내용에서 보면 한국의 역사 교육이 얼마나 편향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기록되어야 할 역사에 있어서 이러한 제한적인 교육 제공은 우리들에게 베트남 전쟁을 잊게 만드는 구조가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다시 만난 베트남’ 팀은 한국과 베트남의 과거 역사 인식 재고를 탐사 목표에 포함시켰습니다. 베트남전쟁 관련 탐사를 행하며 베트남에서 직접 전쟁의 상흔을 볼 예정이며, 한국군이 베트남인들에게 남긴 상처를 보고 정확히 알지 못했던 베트남의 역사적 진실, 그 이면을 제대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탐사목표
1. 베트남 전쟁 피해 지역 및 관련 유적지를 탐방하고 직접 체험함으로써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한국군 주둔 지역에서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실을 확인한다.
베트남 전쟁은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일어났다. 사실상 종전부터 지금까지 40여년이 지난 역사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와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탐사를 준비하는 우리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전쟁의 참혹함을 책이나 영화와 같은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듣고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피해 지역 및 관련 유적지를 방문하고 관련 경험을 직접적으로 하는 것은 우리가 베트남 전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아주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 팀은 그래서 호치민에서 구찌땅굴 터널에 직접 방문하여 실제 베트남 게릴라전에 사용되었던 함정들이나 무기들을 확인하고, 땅굴에 직접 들어가는 체험을 할 것이며 다낭에서는 베트남 전쟁 때 가장 대표적 학살지였던 하미마을을 방문할 것이다.
다만베 팀은 탐사지역으로 호치민과 다낭, 두 도시를 선택했다. 사전 스터디 때 보았던 영화 ‘굿모닝베트남’의 촬영 배경으로 익숙한 도시 호치민은 전쟁박물관, 구찌터널 등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최적의 탐사지라고 생각했으며, 사전에 연락한 교수님과 학생들을 만나 현지 베트남 사람들의 역사 인식을 확인하고 탐사원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만남’의 공간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첫 번째 탐사지로 꼽았다.
다음으로 다낭은 베트남 내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로 알려졌지만 사전 스터디 때, 베트남 전쟁 최대의 격전지이자 베트남 전쟁 미군의 휴양지였던 곳임을 알게 되었다. ‘다낭 = 휴양지’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역사 속 감춰진 다낭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호기심으로 두 번째 탐사지로 선정하였다. 실제로 다낭은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지로 대표되는 하미마을이 있는 곳인 만큼 관련 주제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2. 베트남 현지 대학생,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한국-베트남 사람들의 역사인식과 역사관을 비교한다.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 국민들이 역사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배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베트남 정부에서도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요청한 것이 바로 ‘과거는 잊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 이다. 실제로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이라는 책에서는 베트남 전쟁을 직접 겪었던 사람이, 정부의 방침이 아니었다면 한국인들과 대화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한 발언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베트남 민간인들은 자유롭게 한국인을 대하거나 역사를 바라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직접 베트남에 찾아가서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배우는지, 배운다면 어느 정도 까지 배우는 지, 베트남 사람들 스스로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어떤 인식이 있는지를 물어보고자 한다. 양국이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큰 차이가 없이 비슷해야 미래를 바라보는 방향성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두 나라의 역사관을 비교하고자 한다.
3. 베트남 전쟁을 재현한 매체와 박물관, 유적지, 책 등에서 베트남 전쟁이 어떻게 기록되고 있고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한다.
베트남에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박물관이 호치민과 다낭에 여러 개가 있다. 이 중 우리가 방문할 박물관은 호치민의 호치민 전쟁박물관, 여성박물관이며 다낭에서는 다낭 박물관과 5군구 전쟁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들에 전시된 사진들과 정보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서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외국인이나 내국인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고 사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베트남전쟁을 한국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컸기 때문에, 베트남 박물관에 직접 방문하여 베트남 시선에서 바라본 베트남 전쟁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박물관은 사진과 같은 실제 자료들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아주 적합하다.
4. 향후 증가할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 외교적 교류를 고려하여, 베트남의 문화를 직접체험하고 한국의 문화와 비교하며 이해한다.
향후 20년 동안 한국과 베트남의 국제적인 관계는 무역뿐만 아니라, 문화나 외교부분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대표적인 공약이,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발표한 ‘신남방정책’이다. 신남방정책은 아세안과의 관계 격상을 통해 평화 및 번영의 공간을 확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베트남은 신남방정책의 중심 국가로, 두 나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서 2020년까지 교역 규모를 1000억 달러까지 늘리기로 합의하였다. 과거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왜곡되지 않고 양국이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 단계로서 긍정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상대방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현재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하는 여성들도 증가하고 있고 베트남에 진출하는 한국기업도 매해 증가하고 있다. 서로의 국가에서 생활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국가적인 관계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문화뿐만 아니라 현 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번 베트남에 가서 베트남 음식, 베트남 건축 등 베트남 문화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현재 베트남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알아볼 것이다. 이를 위해 베트남에서 한 시장과 같은 큰 시장에 가서 옷 같은 제품들도 비교해보고 베트남에서 커피로 유명한 콩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음해 볼 것이다. 최근 베트남에서 K-POP, K- DRAMA, 한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하여, 거기에 한국을 알고자하고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한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고 젊은 세대가 한국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 또한 알아보려고 한다.
탐사일정
총 10박 11일 일정
(7월 14일 – 7월 24일)
1일 차 ( 7월 14일 토요일)
인천공항 – 호치민공항 – 숙소(23시 체크인)
2일 차 (7월 15일 일요일)
숙소 출발(10:30) - 전쟁박물관 (11:30) - 점심?(14:30) - 남부여성박물관(15:30) - 공차(17:00) - 저녁 꾸안 넴(19:00) - 숙소 복귀(20:30)
3일 차 (7월 16일 월요일)
숙소 출발(12:00) 신투어리스트(12:30) – 구찌 땅굴(13:00) – 저녁 식사(18:30) - 숙소 복귀(20:00)
4일 차 (7월 17일 화요일)
숙소 출발(13:00) - 나라어학원(14:00) - 로열티 카페(19:30) - 숙소 복귀(20:30)
5일 차 (7월 18일 수요일 )
96BExperiment(나라어학원원장선생님과 10:30) – 호치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14:00) - 반세오 46a (18:30) - 숙소 복귀(21:00)
6일 차 (7월 19일 목요일)
호치민 - 다낭
7일 차 (7월 20일 금요일)
숙소 출발(11:30) - 점심 마담란(12:00) - 다낭 박물관((12:40) - 다낭 기념품 카페(14:00)- 5군구 전쟁 박물관(15:30) - 숙소 –저녁 퍼홍 쌀국수(19:00) - 뷰스파((20:00) - 숙소 복귀(23:00)
8일 차 (7월 21일 토요일)
오전 휴식 – 한시장(15:00) - 콩카페(16:00) - 본죽(18:00) - 기념품샵(20:00) - 숙소 복귀(22:00)
9일 차 (7월 22일 일요일)
숙소 출발(10:00) – 하미 마을(11:00) – 숙소(18:00) - 베안(19:00) – 더커피하우스(21:00) – 숙소 복귀(22;30)
10일 차 (7월 23일 월요일)
숙소 출발(11:00) - 롯데마트(11:30) - 점심 해피브레드(14:00) - 숙소 – 미케해변(18:30) - 저녁 바빌론스테이크(19:30) - 숙소복귀(21:00)
11일 차 (7월 24일 화요일)
숙소 – 다낭공항 – 인천공항
탐사내용
1일차 / 7월 14일 토요일
15 : 00 인천공항 도착 및 출국 준비
18 : 00 인천 ~ 호치민 비행
22 : 00 탄손누트국제공항 도착
23 : 00 숙소 체크인
7월 14일, 떨리는 첫 날, 긴 준비 끝에 드디어 떠나는 날이다. 로컬리티 탐사 때문에 첫 만남을 가졌던 때가 3월, 겨울옷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무더운 여름, 벌써 이렇게 시간이 훌쩍 지났나 싶었다. 전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는 동안, 지금까지 베트남전쟁 탐사를 위해 우리가 쏟았던 시간과 노력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또 팀원들 간 서로를 향한 배려 덕분에 첫 출발을 기분 좋게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베트남 탐사 준비를 하면서 평소 모르고 외면했던 베트남전에 대해 조금씩 지식을 쌓았고, 베트남전을 주제로 한 다양한 매체나 강연 등을 보면서 단순히 역사를 아는 것을 넘어서 팀원들 간 다양한 사고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책과 영상 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베트남, 실제로 몇 시간 후에 그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우리 모두 들떴고 안전하게 탐사를 마치자는 말을 반복해서 했다. 만나기로 한 시간 오후 3시 전 우리는 모두 공항에 도착했고 환전, 항공권과 짐 정리, 머물 숙소와의 연락 등 출국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 허윤영 팀원이 항공권이나 숙소 예약증 등 필요한 서류를 모두 인쇄해 와서 아무 문제 없이 진행 할 수 있었다. t-way 항공을 이용해서 베트남을 떠났는데, 우리는 비상구 옆 좌석이어서 앞뒤가 꽤 넓은 좌석에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하늘 위에서 베트남의 모습은 과연 어떨지, 베트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며 잠을 청했다.
4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호치민 탄손누트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출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챙기고 공항 안에 있는 유심칩을 사러 갔다. 어떤 조건의 유심칩을 살까 망설이느라 시간이 많이 가고, 베트남 직원과 소통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즐거웠고 괜찮은 유심칩을 구매하고 환전까지 마쳤다. 공항을 나가는 순간 느꼈던 베트남의 열기와 습도는 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즐비했고 손님을 태우려는 택시기사들의 경쟁과 그 눈빛은 강렬했다. 우리 팀원 모두 설렘은 잠시 제쳐두고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터무니없이 황당한 택시비 제안에 우리는 강경하게 그럴 수 없다고 했고 노력 끝에 적당한 가격을 제시한 택시를 잡고 숙소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그제야 우리는 “드디어 베트남에 왔구나!”라는 말을 했고 택시 기사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베트남 거리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본 7-8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아 약간의 동질성이 느껴지면서도 수많은 오토바이들을 보며 그 색다름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호치민 SOMERSET 호텔에 도착한 후 우리는 택시기사에게 택시비 영수증을 요청했지만,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무작정 팁을 요구하였다. 이야기 끝에 팁 1달러를 주고 택시비 영수증을 얻지 못한 채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는 생각보다 너무 좋은 호텔에 감사했다. 짐 정리를 다 마치고 저녁을 먹지 못해 허기가 진 상태여서 호텔 앞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간식들을 사왔다. 베트남 라면과 도시락을 숙소에서 먹으면서 오늘 하루 동안 쌓였던 긴장감을 풀었다. 그리고 내일 있을 일정에 대한 계획을 시간별로 다시 한 번 정리하였다.
2일차 / 7월 15일 일요일
9 : 00 기상 및 탐사 준비
10 : 40 환전소, 신투어리스트 방문
11 : 30 베트남 전쟁박물관 관람
14 : 30 식사
15 : 30 남부여성박물관 관람
17 : 00 공차 카페
19 : 20 저녁식사
20 : 30 숙소 복귀
오전에 호텔 조식을 간단히 먹고, 박물관에 가기 전 환전소에서 어제 다 하지 못한 환전을 마친 후, 신투어리스트 사무실에 찾아가 구찌 터널 관광 프로그램을 예약하였다. 그리고는 곧장 베트남 전쟁박물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우리나라 용산구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을 떠올랐다. 그리고 전쟁기념관과 전쟁박물관의 용어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왜 우리나라는 전쟁을 기념한다는 의미인 ‘전쟁기념관’일까 하면서 말이다. 전쟁박물관에서 총 3시간 동안 전시를 관람하였다. 베트남 전쟁박물관은 총 3층 구성으로 베트남 현지 사람들의 시선으로 당시 전쟁범죄를 고발하고, 전쟁의 잔인함과 경각심을 깨워주는 공간이다. 각각의 구역마다 주제가 정해져있고 영어와 베트남어로 해설 표기되어 있어 관광객들이 보기에 편했다. 구역별로 베트남전쟁의 역사적 진실, 종군기자가 남긴 사진의 모음, 전쟁 범죄, agent orange 등의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먼저 내부 전시관부터 들어갔다. 이 곳 전쟁박물관에서는 긴 전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베트남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분신자살한 사람의 이야기, 베트남과 온 세계의 진정한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시위 현장의 모습, 각 국에서 발행한 잡지, 신문, 책, 선전물과 같은 자료, 민간인이 학살당한 장소와 증거물을 직접 보기도 하면서 전쟁의 현장을 조금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종군기자들이 담은 전쟁 당시 베트남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우리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미현 팀원은 교내 평화나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주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만을 다루는데, 다음 학기에 베트남전시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말했다. 또한 전쟁은 그 어느 시대, 어떤 지역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인권에 반하는 행위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전쟁박물관 1층에서 <베트남 전쟁과 기억> 구수정 박사 초청 강연회에서 들었던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을 글과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군사 지역을 지나가고 있었던 조종사 Hugh Thompson이 민간인 대학살의 현장 속에서 최소 10명의 베트남 시민들의 목숨을 살린 이야기이다. 조종사들의 사진과 이름을 보는 순간 그 강연이 떠올랐으며 사전 조사 때 했던 다양한 활동이 하나도 헛되지 않았음에 뿌듯했다. 민간인 학살 내용이나 전쟁 사진 등은 책으로 많이 보았지만, ‘Agent Orange의 여파’ 라는 주제l로 8구역에 전시된 고엽제, 고엽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소했고 그래서인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베트남 전쟁 중 미군에 의해 사용된 고엽제 중 하나이다. 그 물질은 그 사람들의 몸과 정신을 고통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다음 세대까지 그 고위험 물질이 전달되는 끔찍한 것이다.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존자들의 고통은 2세들에게 대물림되는 현재진행형이다. 전쟁 박물관에 게시된 글과 사진을 통해서 전쟁이 가져올 수 있는 다양한 문제, 민간인 학살, 전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떠올려 보았다. 특히 8구역은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워지는 공간이여서 사진으로 담기 어려웠다. 전쟁의 가혹성과 그 끔찍함을 눈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8구역 전시를 둘러보고 난 후 팀원 모두 충격에 빠져 더는 보는 것이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외부전시관에서 베트남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실제 전투기와 탱크들을 관람했다.
모든 전시 관람을 마친 후,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호치민 전쟁박물관 주변 5분 거리에 있는 ‘Sadec Quan’ 식당으로 향했다.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해물 볶음 국수와 돼지고기 볶음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사장님은 우리가 식사하는 모습을 직접 사진으로 담아주시기도 하셨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남부여성박물관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도중 길거리에서 태권도 연습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우리는 그들과 소통하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집중하고 있기에 그럴 수 없다며 웃으며 거리를 걸었다.
남부여성박물관에 도착해서 방문자 카드를 받았다. 남부여성박물관은 국민의 성금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여성들 스스로의 힘을 모아 남부여성박물관을 건립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았다. 전쟁 당시 베트남 여성의 역할은 남성과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뿐이었을 거라는 팀원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여성 군부대를 조직하여 전쟁터로 나가기도 한 모습을 엿 볼 수 있었다. 여성들이 담당했던 대표적인 투쟁 중 하나인 인간다리 투쟁가 인상적이었다. 전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면 그 사람들을 후송하기 위해 인간 다리를 놓는 것이다. 이 투쟁 이외에도 강인한 여성, 어머니의 모습을 덥고 습한 날씨였지만 가슴 속으로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 여성들의 이러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 베트남은 성평등 사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우리나라 성평등 수준, 여성들의 위치를 생각해보았다. 베트남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함이 훨씬 느껴졌으며 더욱 확고해졌으며 우리의 고정관념은 완전히 깨졌다.
54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베트남은 중국 천년 지배와 프랑스의 백년 식민지 속에서 끊임없는 전쟁을 거쳤지만 자신들의 언어와 정신을 잃지 않고 정체성을 지켜온 점에 대해서 민족성이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했고 우리나라가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다. 동아시아라고 생각하면 예전까지만 해도 후진국이라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는 같이 성장, 협력하는 국가로써 단순히 경제적인 이익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역사를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베트남이 있기까지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앞으로의 베트남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부여성박물관까지 관람을 마치고 사실 우리 모두 너무나도 바쁜 일정에 녹초가 되었다. 다행히도 주변에 공차 카페가 있어서 그 곳에 들어가 2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다. 하루 동안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기도 하고 개인SNS에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렇게 2시간을 카페에서 보내고 난 후, 베트남 분짜를 저녁으로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아직까지 팀원 모두 베트남 화폐 단위계산에 익숙지 않아서 계산을 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고 숙소에 가서 연습해보자며 농담하기도 하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야시장에 들려서 베트남 길거리 음식과 옷가지들을 구경을 하고 팀원들과 그 주변에 있는 운동장에서 산책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늘 박물관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분류 정리하였고 어학원에서 할 수업에 대해 구상해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3일차 / 7월 16일 월요일
10 : 00 기상 및 탐사 준비
13 : 00 구찌터널
18 : 00 저녁식사
20 : 00 숙소복귀
구찌터널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지하 터널이다. 호치민에서 구찌까지는 북서쪽으로 약 70km 떨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15일에 미리 신투어리스트에서 구찌터널투어를 예약했다. 한 사람 당 105000동이 투어 비용이고 110000동이 입장료였다. 한국 돈으로 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라 저렴하다고 생각했다. 오후 1시에 출발하는 반나절 코스였으므로 10시쯤 숙소에서 조식을 먹고 신투어리스트로 향했다. 대기실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한국인들도 꽤 많았다. 1시 코스를 예약한 사람들을 태울 버스를 타고 구찌터널까지 1시간 반 정도를 달려 도착했다. 가는 동안 버스에서는 구찌터널 안내를 맡은 안내원분의 소개를 듣고 베트남에 관한 기본적인 퀴즈놀이도 했다. 본격적으로 터널을 들어가기 전 실제 전쟁에서 사용하던 총들과 대포, 폭탄들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들었다.
구찌터널에 들어서면 밀림이 나오는데 그 안에서 게릴라전의 상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가이드 분께서 구찌터널의 축소판 모형으로 베트남 군인들이 왜 터널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예를 들면, 터널 안에서 용변을 보면 그냥 방 한 쪽에 덮어둔다는 것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셨다. 안내는 모두 영어로 이루어졌다. 어마어마한 길이의 터널 내부에는 게릴라전에 대비한 모든 시설, 즉 회의실, 주방, 식당, 침실, 심지어 수술실까지 갖추고 있었다고 했다. 때문에 미군이 터널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하고 고엽제를 대량 살포했음에도 남베트남의 기세가 약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전체 길이는 250km로 캄보디아까지 이어지는 이 터널을 온전히 사람의 노동력으로만 파서 만들었다고 하니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밀림 속을 걷다가 폭탄에 의한 크레이터 자국을 보았다. 크기가 무척 커서 작은 호수로 보이기도 했다. 전쟁 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을지 잔혹했을 현장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걷다가 나무 아래 낙엽이 많이 쌓인 곳에서 가이드 분은 우리에게 땅굴 입구를 찾아보라고 했지만 아주 감쪽같아서 아무도 찾지 못했다. 어느 한 쪽에서 낙엽을 치우니 나무판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베트남 사람들의 작은 체구를 이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입구가 좁아 보통 체격의 성인 남자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였다. 이미현 팀원은 흰 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투철한 도전 정신으로 직접 땅굴에 들어가 숨는 모습을 재현해 보았다. 나무판자 위에 낙엽까지 덮으니 그 안에 사람이 들어있으리라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베트남 사람들은 땅굴 속에서 미군을 몰래 공격하였다고 한다.
또 우리는 복원해놓은 많은 부비트랩들을 보았다. 밟으면 덫에 걸리는 Sticking trap, rolling trap, window trap 등 당시의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사용됐던 물자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마네킹으로 그 당시 모습을 재현해놓아서 더욱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네킹에 신겨 놓은 신발마저 미군을 경계하기 위해 치밀한 속임수를 사용했다. 신발의 밑창을 통자로 만들어서 진흙에 신발 자국이 남아도 어느 쪽 방향으로 갔는지 알 수 없게 한 것이다. 이런 신발들도 터널 안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의 치밀함에 놀랐고 미군들은 땅굴 공격과 이러한 전략들에 혼비백산이었을 것 같았다. military workshop이라고 안내판에 적혀있던 곳은 전쟁에 사용되는 물자를 직접 만들던 곳이다. 이곳에서 폭탄이나 총알을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 전투에 사용된 탱크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탱크에 총알 자국이 그대로 선명히 남겨져 있는 것이 전쟁의 현장감을 더해주었다.
우리는 구찌 터널을 체험할 수 있었는데 20m, 40m, 60m, 100m 중 우리는 40m를 선택했다. 땅굴 입구에 들어서는 것조차 비좁고 너무 어두워서 덜컥 겁부터 났다. 이 터널은 체격이 작은 베트남 사람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통로는 고작 세로 80cm, 가로 50cm 정도라고 했다. 실제로 전쟁 당시에는 입구 주변에 부비 트랩을 설치하여 미군의 진입을 막았다고 한다. 땅굴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허리를 완전히 굽힌 채 오리걸음으로 움직였다. 땅굴 속에서도 덥고 습했기 때문에 짧은 코스였지만 체험이 정말 힘들었고 얼른 탈출구로 나가고 싶은 마음만 들 뿐이었다. 더 깊이 들어가면 팔까지 동원해 기어가야 한다고 했다. 같이 투어를 간 사람들 중에서도 100m를 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쟁 때문에 이곳에서 하루가 아닌 몇 년을 생활한 군인들의 고역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총을 직접 쏴 볼 수 있는 사격장이 있었는데 멀리서도 그 총소리가 어마무시 했다. 총소리가 귀에 박혀 깜짝깜짝 놀랬다. 계속 들려오는 총소리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렇지 못하게 계속 깜짝 놀랐다. 스콜도 쏟아지고 총소리가 무서워 체험을 직접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천막으로 이동해서 카사바를 먹고 차를 마셨다. 당시 군인들이 먹던 음식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 카사바는 열대지역에서 나는 작물이라고 교과서에서만 봤었는데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식감은 고구마와 거의 비슷했고 맛은 고구마보다 달지 않았다.
오후 6시쯤 이렇게 우리의 구찌 터널 투어는 끝이 났다. 3시간 사이에 우리는 많은 것을 보았다. 열악했던 게릴라전의 상황을 보여주는 터널이 밀림 안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밀림 속에다가 중간중간 스콜이 내려서 무척 습하고 더워 우리는 땀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의 상황을 책으로, 영상으로 간접 경험 했던 것보다 몸소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얻어가는 게 많은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 당시 군인들의 생활을 체험해보며 전쟁 당시 얼마나 힘들었는지, 미군을 당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노력의 결실이 전쟁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었다.
우리는 다시 버스 탔던 곳에서 내려서 근처 먹을 곳을 찾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눈에 보이는 피자집으로 들어갔다. 화덕 피자집이었고 우리는 바비큐피자를 시켰는데 한국과 같은 메뉴라고 해도 맛이 같지 않았다. 베트남스러운 향신료가 들어갔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긴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복귀했다.
7월 17일 나라 Nara 어학원 방문
13 : 00 숙소에서 출발
14 : 00 나라 어학원 방문
19 : 30 로열티 카페
20 : 30 숙소 복귀
한국에서 베트남 호치민 대학교에서 만나기로 한 교수님과 약속을 잡는 와중에, 교수님이 운영하시는 한국어 어학원에 초청을 받았다. 그곳은 Nara 어학원이었는데 한국에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한국대학생 생활이나 한국어를 가르쳐 주셨으면 하셔서 방문을 하기로 하였다. 학원에 가기 전날, 우리는 어떤 대학생문화를 소개할지, 그리고 어떤 한국어를 가르쳐야 할지 준비를 하였다. 한국어 수준이 다양할 것 같아서 어떤 수업을 할까 고민하다가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대화식 수업을 준비했다.
학원 운영하고 계신 원장님께 여쭤보니, 나라 어학원으로 이름을 짓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본어로 나무의 뿌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한국어로는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다른 나라의 언어로 해도 여러 가지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학원이름을 지으셨다고 하신 게 인상 깊었다.
학원에 들어가니, 우리를 맞이한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안녕, 한국 친구’라고 적혀져있었고 배경은 베트남과 한국국기가 맞대어 있고 또 광화문이 보여서 너무 감사했다.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서 정말 신경을 많이 써주신 것 같았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온 친구들의 한국어 실력은 정말 다양했는데,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운 친구도 있었고,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어를 독학한 친구들도 있었다. 한국을 알게 된 계기로는 한국드라마가 가장 컸다. 실제로 베트남 TV에서 한국드라마를 자주 방영해주고 그 덕분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고 많은 학생들이 말해주었다. 또 아무래도 어학원이기 때문인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나이도 정말 다양했다. 많게는 30이 넘으신 분도 계셨고 적게는 우리와 동갑인 친구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학과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마음이 느껴졌고 그것이 너무도 고맙게 느껴졌다.
수업을 준비하기에 앞서서 베트남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학원 측에서 먼저 친구들과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위해서 만든 게임을 먼저 했는데, 바로 끝말잇기 였다. 외국인 친구들이랑 끝말잇기를 하다 보니, 이 게임이 한국인에게도 어려운데 외국인 친구들에게는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되었다. 한국어에는 한자로 된 단어도 많이 사용해서 한국인들끼리는 이해하는 단어이지만, 막 한국어를 배우는 친구들에게는 설명하기 힘든 단어들이 많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한국어로 모두 함께 게임을 진행하면서 서로 어색한 분위기도 많이 풀어졌다.
시간이 좀 지나고 편안한 분위기가 형성되자, 우리는 교실에 올라가서 한국의 대학생활을 셔틀버스, 시간표, 학과소개등 대학생 새내기에게 필요한 정보들로 구성하여 알려주었고, 그 외에 한국에서 어떤 곳을 방문하면 좋은 지 경복궁이나 한강 등을 예로 들어 알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지만 실제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신조어들도 많이 알려주면서 학생들과도 친밀하게 그리고 재밌게 한국 문화 및 한국어 수업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의 문화를 소개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이미지와 우리가 느꼈던 베트남에 대한 이미지를 재고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수업 마지막에는 베트남 전쟁에 관한 젊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놀라웠던 점은 그들이 학교에서 베트남 전쟁에 관하여 깊게 배우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사전에 우리가 베트남 전쟁에 관한 질문을 한다고 학원 원장님에게 말씀을 드렸을 때에도, 학생들이 베트남전쟁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던 말과 일치하였다. 그 이유로는 베트남이라는 국가자체가 공산국가이기 때문에 배움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 큰 것 같았다. 한 사회의 이념이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까지 미치는 영향력이 큼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민주주의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산주의인 베트남 사람들이 베트남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중 자신은 역사에 관심이 있어서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따로 찾아봤다는 학생은 자신은 한국이 베트남에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군 때문에 참가한 것임을 이해한다며 우리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한국에서 와준 손님을 배려해서 해준 말인지, 아니면 정말로 한국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묻고 싶었지만 시간이 다 되어 내려오게 되어 아쉬웠다.
수업을 마치고 나서도 남은 학생들과 한국 생활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와준 것에 대한 답례로 감사하게도 학원 측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해 주셨다. 한국인들의 입맛을 고려하여 오리와 닭 그 외에 베트남에서 유명한 모닝글로리 등 각종 망고와 같은 과일과 더불어 너무도 큰 환대를 받아 우리도 굉장히 감사하고 기뻤다. 무사히 수업과 학생들과의 질의응답을 마친 뒤 돌아오는 길은 매우 뿌듯하고 즐거웠다. 앞으로도 한국과 베트남 사람들이 서로에게 호의를 베풀며 무역뿐만 아니라 문화 및 사회적 역사적으로도 더 알아갈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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