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5기] [유라시아] - 피땀눈물 팀 (1) [시베리아 횡단열차, 쉼표에서 찾는 의미: 쉼표로 찍어 가보는 러시아, 열차 안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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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8-11-29 15:57 | Read | 1,346 |
본문
탐사테마
로컬리티 챌린지 지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희 팀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했던 부분은 바로 탐사 주제를 선정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탐사’의 의미가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헤매기도 했고, 이후에는 ‘탐사’와 ‘여행’ 그 사이에서 학술적인 주제를 내세워 그 둘을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서 보다 더 심오한 주제를 찾으려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팀 내에서 나름대로 심오하고 학술적이라 여긴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의견이 오고갔지만, 그렇게 오고간 그럴듯해 보이는 주제들에 대한 결론은 탐사과정에서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히곤 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런 그럴싸해 보이기만 하는 주제들에 대해서 팀원 모두가 크게 궁금증과 흥미를 느끼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저희들은 우리가 정말 궁금하고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전공을 하면서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러시아라는 나라는 아직도 여전히 저희에게 익숙하기보다는 낯선 미지의 나라입니다. 그래서인지 팀원들 모두 탐사기간 동안 러시아의 다양한 곳을 둘러보며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호기심과 관심이 있었고, 뒤늦게야 저희는 이전까지 탐사에서 완전히 분리시키려고만 했던 ‘여행’을 탐사와 관련지을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스치듯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떠올랐습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러시아의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부 모스크바를 연결하며 이동거리가 9,288km로 지구 둘레에 4분의 1에 달하는 거리입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지구 둘레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과 밖에서의 시간과 환경들이 여느 여행에서와는 확연히 다른 의미를 전달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희 팀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쉼표’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시베리아 횡단열차, 쉼표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제목 하에 탐사주제를 열차 밖과 안 두 가지로 나누어 세분화 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열차 밖에서의 활동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한 번에 가는 것이 아니고 가는 동안 다양한 역에 정차하는데, 저희는 지역마다 정차하는 열차에 ‘쉼표’라는 키워드를 적용시켰습니다. 저희 팀은 그중에서도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 중부 이르쿠츠크, 서부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 이렇게 네 지역을 선정하였습니다. 러시아의 영토가 광활한 만큼 지역에 따라 지리적 차이 뿐 아니라 문화적 차이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저희가 앞서 선정한 동부, 중부, 서부를 대표하는 4지역의 지역별 탐사를 통해 러시아의 동부, 중부, 서부 각각의 문화적 특성과 지리적 특성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열차 내에서의 활동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가 아니라 어떻게 나에게 귀감이 될 것인지를 탐사할 예정입니다.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 열차 안에서 7일이라는 긴 시간은 매일 매일이 변함없이 바쁘게 흘러만 가던 우리의 삶에 ‘쉼표’가 되어줄 것입니다.
위의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관련된 활동들 뿐 아니라 한국적 요소가 돋보이는 한지로 종이접기나 만들기를 해서 열차 내 다른 국적의 여행객에게 선물한다거나, 열차에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쓴 편지를 러시아 우편을 통해 보내는 등의 힐링을 주고 받는 이벤트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탐사일정
14박 15일 동안 크게 4 군대 (블라디보스톡, 이르쿠츠크,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를 탐방하였습니다. 러시아 영토 내에서 도시간 사이의 모든 이동 수단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이루어졌습니다.
2018. 07. 15 (블라디보스톡) / DAY1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8시에 인천공항에서 집결하였습니다. 블라디보스톡으로 떠나는 비행기는 오전 10시 10분이었으며 도착 시간은 13시 50분입니다. 점심은 기내에서 해결하였으며 안전한 여행을 위해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통신사를 개통하였습니다. 그리고 숙소로 택시를 통해 이동하였으며 체크인을 하고 난 후, 근처에 위치한 아르세니예프 박물관, 혁명광장, 개선문, 꺼지지 않는 불꽃 등 블라디보스톡의 각 대표 상징물을 탐방하고 왔습니다. 그 후 독수리 전망대에 올라가 블라디보스톡의 아름다운 도시 전경을 감상하였으며 아르바트 거리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블라디보스톡에서의 하루 일정을 마무리지었습니다.
2018. 07.16 (블라디보스톡) / DAY2
아침 겸 점심 식사로 해양공원에서 블라디보스톡 인기 명물인 곰새우와 킹크랩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아르바트 거리로 나서 모스크바와 비교하여 블라디보스톡의 아르바트 거리는 어떠한 특색을 지녔는지 각 상점들을 방문하며 관찰하였습니다. 이르쿠츠크로 가는 횡단열차가 19:10분 기차였기에 기차역 근처에 위치한 상점에서 장을 보았으며 열차 시간보다 미리 기차역에 도착하여 기차역 주변 특색이 어떠한 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8.07.17.~18 (기차) / DAY3, DAY4
기차 안에서 탐사 목표였던 ‘쉼’이라는 주제를 풀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사온 엽서로 지인들에게 엽서를 써보는 시간을 갖기도 하는가 하면, 열차에 같이 탄 외국인들과 소통하며 우리의 문화를 알려주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또한 각 기차 정류장마다 그 주변 특색을 둘러보는 시간도 가졌으며 다음 행선지인 이르쿠츠크를 배경으로 한 ‘유정’소설과 ‘웨이백’영화를 감상하고 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2018.07.19. (이르쿠츠크) /DAY5
15시 51분에 이르쿠츠크 기차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난 후 각자 고단했던 열차여행의 피로를 조금 푸는 시간을 가졌으며 숙소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였습니다. 그 후 이르쿠츠크 시내인 130지구를 둘러보며 어떠한 특색이 있는 지 살펴보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2018.07.20. (이르쿠츠크) /DAY6
이르쿠츠크의 관광코스인 그린라인을 따라 도시를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도시에 즐비한 이르쿠츠크의 전통 가옥을 관찰하며 그들의 건축 양식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으며 알렉산드르3세 동상, 꺼지지 않는 불꽃, 즈나멘스키 수도원, 카잔 성당 등의 방문을 통해서도 이르쿠츠크의 문화와 삶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8.07.21. (이르쿠츠크) /DAY7
그간의 여독을 풀기위해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미처 다 돌지 못한 그린라인 관광코스를 둘러보았고 ‘중앙시장’에 가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였습니다. 횡단열차 시간은 16:14분으로 팀원들과 미리 기차역에 도착하여 주변을 관찰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행성지인 모스크바로 떠납니다.
2018.07.22.~23 (기차) /DAY8 DAY9
전체 탐방일정 중 이미 절반의 시간이 흘렸습니다. 도시에서 여행할 때는 일정에 급급하여 여행하기 바빴지만 보다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기차에서 이제 다시 ‘쉼’을 테마로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동안의 여행은 어떠했는지, 각자 느꼈던 러시아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8.07.24. (모스크바) /DAY10
모스크바 기차역에 14:13분에 도착하였습니다. 기차에서 숙소까지 택시로 이동하였으며 과거 ‘썸머스쿨’에서 연이 닿은 러시아 친구 ‘레나’양을 만나 모스크바 일정을 같이 보냈습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을 관람하였으며 구세주그리스도 성당 옆에 위치한 파트리아르시 다리를 건너 붉은 10월 초콜릿 공장 등 모스크바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였습니다. 그 후 아르바트 거리를 걸으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2018.07.25. (모스크바) /DAY11
10:00~13:00 사이에만 볼 수 있는 레닌의 묘를 보기 위하여 먼저 붉은 광장으로 향하였습니다. 관광객들이 많아 1시간을 기다린 끝에야 레닌의 묘를 관람할 수 있었으며 그 후 성바실리 성당, 굼백화점, 카잔성당, 알렉산드리 정원을 구경하였습니다. 근처에서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 크렘린으로 이동을 하여 우스펜스키 사원, 블라고베센스키 사원,, 아르한겔스키 사원, 총주교 궁전 등을 관람하였고 그간 일정을 함께한 레나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긔로 저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일정을 위하여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00:41분 야간열차를 타러 갔습니다.
2018.07.26. (상트페테르부르크) /DAY12
오전 9시13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였습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난 후 넵스키대로를 걸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축미를 감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이삭 성당, 카잔성당, 피의 사원 등의 관람을 통해 각 성당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8.07.27. (상트페테르부르크) /DAY13
여름궁전을 보러 하루를 일찍 시작하였습니다. 갈 때는 지하철과 버스를 환승하여 가였으며 돌아올 때는 페리를 통해 네바강을 따라 넵스키대로로 돌아왔습니다. 에르미타쥐 앞에 페리가 정차하였기에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불리우는 에르미타쥐도 관람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2018.07.28. (상트페테르부르크) /DAY14
많은 여행 일정으로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하루를 느긋하게 시작하였습니다. 넵스키대로를 걸으며 첫 날 들리지 못한 상점 및 건물들을 탐방하였으며 주변 지인들의 선물을 사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또한 카잔성당을 들려 러시아 정교회의 예배모습을 관람하는 기회도 가졌으며 그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야경을 감상하며 러시아 여행의 마지막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8.07.29. (한국으로) /DAY15
길었던 탐사 일정을 마치며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입니다. 아침식사는 전날 연이 닿은 러시아에 30년 간 거주하신 한국인 가정에 초청받아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12시 20분이었으며 한국에는 다음 날 오전 8시 2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탐사내용
*기차 밖 러시아
1. 러시아 지역별 비교
1) 러시아 영토 변천사
러시아는 약 17,000,000㎢에 육박하는 면적을 가지고 있다. 처음부터 러시아는 오늘날과 같은 영토를 가지지는 못했다. 불과 1000년 전에는 유럽인들에게 변방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다. 862년 노브고라드 공국이, 882년 키예프 공국이 설립되면서 러시아 역사의 시작인 “키예프루시”가 시작되었다. '러시아의 광개토대왕'이라 불리는 스뱌토슬라프가 전쟁을 벌이며 영토를 넓히기 시작하였지만, 1240년 몽골의 침입에 키예프가 함락되면서 러시아는 킵차카한국에 복속되었다. 240년이라는 긴 시간의 지배 끝에 이반 3세 통치시기에는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바실리 3세까지 러시아 북동 지역의 통합에 집중했다. 그 후 이반 4세는 안으로는 러시아 국가의 통일을 강화하면서, 밖으로는 국가의 팽창을 추구했다. 그는 1552년 카잔한국을 붕괴시켰고, 1556년 아스타나한국을 정복하였다. 이로써 러시아는 우랄산맥까지 이르는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그 후 우랄산맥 동쪽으로 뻗쳐진 시베리아에 대한 본격적인 개척은 1581년부터 시작되었고 1583년 시비르한국을 정복했다. 그렇게 1600년대로 넘어오면서 러시아는 톰스크, 바이칼, 야쿠츠크, 오호츠크, 캄챠카, 그리고 아무르강 유역까지 뻗어 나갔다. 표트르 대제의 대북방전쟁을 통한 니스타드 조약, 청나라와의 국경 조약인 네르친스크 조약, 예카테리나 2세의 크림반도 종주권 획득등 러시아는 서로는 리투아니아, 남으로는 흑해와 아무르 강, 동으로는 태평양에 이르는 대제국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 후 소련이 되면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작용하면서 공산주의 국가 확산을 위한 영토팽창이 있었고 오늘날 러시아의 면적을 가지게 되었다.
러시아가 영토팽창을 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동인이 있다. 외부침략 위협에의 극복을 위한 부동항 확보를 위해 지리적 요인의 팽창주의가 대표적 동인이다. 또한 장기간 지속된 전쟁, 정치적 유배로 흑해 및 코카서스지역, 시베리아지역으로 이주되었다. 경제적 요인으로도 시베리아산 검은담비가 최상 품질로 취급되고 이러한 모피를 찾아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Great Tea Way’라고 중국으로부터 차를 가져오기 위해서 팽창주의를 펼치기도 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대한 러시아의 영토 중 우리는 ‘블라디보스톡’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9940km라는 거리를 기차로 이동했다. 모든 도시들이 비슷한 모습을 하기에는 크나큰 면적이기에 우리는 각 도시별 특색을 찾기 위해 러시아 동부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톡’과 ‘이르쿠츠크’, 서부 러시아의 대표적인 두 지역인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탐사했다.
2) 러시아 지역별 공통점
비교에 앞서, 네 개의 도시를 탐방하면서 두 가지의 공통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정교회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동로마로부터 정교회를 수용한 뒤 몽골의 침략과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러시아의 정교회는 민족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체적으로 변모하여 오늘날 다른 나라의 종교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먼저, 성호를 긋는 방식에서의 차이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인지를 세우고 중지는 약간 굽힌 뒤 나머지 세 손가락을 모아서 성호를 그었지만 러시아에서는 삼위일체를 상징하기 위해 엄지와 인지, 중지를 한 데 모으고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의미하는 약지와 소지는 모아서 손바닥에 붙여서 성호를 긋는다. 다음으로 성호를 그을 때 러시아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이 아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는다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두 번째는 십자가의 차이이다. 러시아 십자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습과는 다르다. 러시아 정교십자가는 ‘8개의 끝이 있는 십자가’이다. 예수의 십자가형을 최대한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가로대가 세 개로 이뤄져 있다. 맨 위 가로대는 죄명을 알리는 패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적혀 있다. 맨 아래 경사진 가로대는 죄수가 발을 딛는 발판이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은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할 때 오른쪽에 있던 죄수가 그를 믿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동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블라디보스톡’은 VLAD와 VOSTOK의 합성어로 ‘동방을 지배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러시아 극동지역의 최대도시며 태평양으로 향하는 부동항의 도시이다. 그렇기에 해군뿐만 아니라 상선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국제무역과 관광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으며 한국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 이런 부분은 탐사를 하면서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블라디보스톡의 전광판에 나오는 광고 중 많은 것들이 LG 또는 SAMSUNG에 제품이었으며, 대중교통에서마저도 한국과 관련된 것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블라디보스톡의 중심가에 있는 예술의 거리라 불리는 ‘아르바트거리’는 한국 기업인 KT에서 조성해준 거리여서 다른 도시에 비해 러시아적인 느낌이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시아 속 유럽”이라고 불리는 블라디보스톡은 우리에게 러시아의 느낌에 한국적인 요소가 가미된 친숙한 도시로 다가왔다.
특히 블라디보스톡에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기억되는 곳이었다. 일제의 압박에 연해주로 한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블라디보스톡 시내 인근에는 과거 한인촌을 기리는 ‘신한촌기념비’가 있다. 이 기념비에는 ‘민족의 최고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며,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정신이며 첨사에 빛난다...한민족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있다. 고려인들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신한촌을 만들고 독립운동이 이뤄지던 역사적인 장소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조들의 피땀눈물이 블라디보스톡에도 있다는 사실이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우리가 느낀 ‘블라디보스톡’은 항구도시이며 한국과 많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도시로 받아들여졌다.
4) 중부 러시아: 이르쿠츠크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르쿠츠크’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못지않게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꾸며진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르쿠츠크는 한때 유배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1812년 나폴레옹과 러·불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는 파리에 입성을 하면서 승리로 이끌었다. 프랑스의 젊은 장교들을 접하면서 러시아 장교 계층은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민주주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러시아로 돌아온 뒤 아직까지 남아있는 전 근대적 농노제도와 봉건주의, 부정부패를 보며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혁명을 꿈꾸게 되었다. 그렇게 ‘12월 난(데카브리스트의 난)’을 준비하였지만 실패에 그치고 최고 지도자였던 트루베츠코이를 비롯한 혁명당원들은 강제노역을 했으며 이르쿠츠크로 유배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러시아내에서도 고위계층이었기에 높은 식견과 예술이 이르쿠츠크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렇게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로 파격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며, 시베리아 고풍을 녹여낸 ‘파리풍’을 접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전통 샤머니즘과 러시아 정교회가 추구하는 전통양식이 혼합된 특이한 건물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른바 “시베리아 바로크 형식”이라고 부르며, 이르쿠츠크의 주택을 비롯한 전통 건물들은 크기나 외양에서 같은 것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창문마저도 똑같은 것 하나 없이 각기 다른 색깔과 문양을 가졌으며 블라디보스톡보다 더 유럽의 느낌을 풍기는 건물과 도로가 있었다.
또한 이르쿠츠크는 이전부터 베이징에서 모스크바로 수입하는 차(TEA) 유통의 중간 도시였다. 그로인해 차에 관한 역사와 박물관이 있으며, 다양한 차들을 접해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5) 서부 러시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와 제정러시아 시대 당시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르쿠츠크와 블라디보스톡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수도권의 이미지에 걸맞게 고층건물이 즐비해있으며 거리도 비교적 깔끔하게 잘 정비된 모습이었다. 선진적인 모습은 건축물이나 지역적인 분위기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나라든지 행정수도가 더 발전해있듯,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블라디보스톡이나 이르쿠츠크에 비해 훨씬 현대적이고 선진적이었다.
동부 러시아와 비교했을 때 고가의 자동차 수, 지역 내의 극장 수, 시내거리 수, 매장 수, 도시정비수준과 생활에서 느껴지는 쾌적함의 정도 등 여러 가지 지표에서 행정상 중심지인 서부가 더욱 발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상에 놓여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이 두 도시는 러시아의 바로크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크'는 16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건물 양식을 뜻하는 용어로서 르네상스양식에 로마식 표현형식을 첨가한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유럽의 건축물들을 보면 웅장함, 화려함과 함께 부드러운 곡선미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권위와 왕정의 강력하고 절대적인 힘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러시아의 바로크적 건축물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넓고 화려하다는 것이다. 표트르 대제가 건설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절대주의를 바탕에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에 넓고 화려할 수밖에 없다. 특히 러시아는 막대한 양의 금을 사용하여 건물을 지었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하얀색 기둥들과 함께 화려함을 자랑하는 건물들로 이루어져있다.
둘째는 기마상과 광장이 늘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은 연속적인 바로크 양식이 표현되어있으며, 균형미를 이룬다. 기하학적인 평면으로 네 면은 동일한 벽면으로 둘러싸여 있고 러시아 특유의 수직적 구조를 보여준다. 중앙에는 기마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러한 기마상은 절대왕정의 권위를 자랑한다.
셋째, 돔형식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돔을 자세히 보면 러시아 정교와 관련된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 종교적 요소와의 결합을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돔이 작고 여러 개의 돔이 중앙의 돔을 에워싸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흔히 ‘양파형’돔이라 불리는 러시아식 돔은 눈이 많이 오는 러시아에서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이외에도 신자들의 기도를 모아 하늘에 전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며, 촛불모양으로 신성한 장소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네번째로는, 러시아만의 독특한 색채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흰색과 금색이 정교회의 건축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었다. 흰색은 평화와 숨결, 황금색은 신성을 상징하는데, 그 중 흰색은 교회 중심을 이루는 부분에 칠해지는 가장 보편적인 색이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 정교 성당이 흰색과 황금색으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탐사기간동안 이러한 공통적인 부분을 배경으로 우리는 두 도시 간에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모스크바’라는 도시는 로마노프 왕조가 끝나는 제정러시아에서 소련으로 오면서 수도를 옮긴 곳이었다. 동시에 20세기 많은 러시아 위인들이 모스크바를 거점으로 활동하였다. 그들 중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인물들을 추앙하고자 건물 외벽에 그려져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우리는 불가코프에 관련된 벽화를 보았다. 아르바트거리에서 약 100m 떨어진 거리였다. 불가코프는 오늘날 푸시킨이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룩한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동상뿐만 아니라 벽화로써 표현한 모습은 모스크바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러시아의 매년 연말에 방영하는 <Ирония судьбы, или С лёгким паром!> 라는 영화가 있다. 특이하게 이 영화 앞에는 단편의 애니메이션이 나오는데, 그 내용은 설계도를 가진 남자가 이곳저곳 찾아다니면서 자신이 설계한 저택 모양의 집을 짓기를 부탁하였는데 퇴짜를 맞게 된다. 관료주의에 의해 난도질당한 설계도는 결국 아름다운 외형을 제거한 단순하고 단조로운 아파트 모양으로 굳어졌다. 그 후 건축가들은 전형적인 소비에트 행진곡에 발맞춰 해변, 사막, 설원 가릴 것 없이 동일한 크기와 모양의 아파트들을 이곳저곳에 건설한다. 이 짧은 3분짜리 영상에는 그 당시 획일화된 아파트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 현재는 그 잔재를 많이 없앴다고 하지만 모스크바 대로변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유럽보다도 더 유럽 같다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모스크바와는 달리 건물에 있어서 정교한 부분들이 많았다. 창문틀 하나에도 예술작품처럼 만들었고 문의 손잡이도 섬세하게 작업한 부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건물 외벽에 평범한 기둥 대신 석상으로 장식을 해두었던 부분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는 예술 그 자체였다. 표트르 대제가 서구의 문물을 보고 그대로 담고 싶어 했던 염원이 이 도시에 잘 녹아들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해 있는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에르미타쥐의 경우, 기본적으로 성인에게 700루블의 입장료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에 대해서는 무료입장을 시행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문화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문화교육 양성에 힘쓰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원은 표트르 대제가 자신의 개혁 정치를 상징하기 위해 수도를 천도하고자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1703년부터 네바 강변에 서유럽식의 새 도시를 세우려고 하였지만 당시 네바 강변의 땅은 매우 거친 늪지대였다. 춥고 척박한 땅에서 많은 사람들의 희생 속에 오늘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건설되었다. 하지만 해수면이 상승하고 지반이 높아지면서 도로는 건물의 1층보다 높이고자 하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렇다보니 기존의 1층은 반지하로 변모하게 되었고 이런 형태를 도시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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