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3기] [인도남아시아] - 인더시네마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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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03-16 16:38 | Read | 1,819 |
본문
<1월 23일 월요일>
▷여기가 영화의 도시, 뭄바이입니까?
기차는 많이 덜컹 거렸으나 의외로 숙면을 취했다. 누가 훔쳐가진 않았을까 일어나서 가방부터 챙겼다. 아침식사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깨고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기차는 뭄바이 상부부터 사람들을 내려주기 시작했다. 의외로 우리의 목적지인 뭄바이 센트럴 역에 도착했을 때는 열차 안이 한산했다. 오전 8시 반쯤에 기차에서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뭄바이 열기에 숨이 턱 막혔다. 한 나라인데 델리와 이렇게 날씨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뭄바이 센트럴 기차역은 천장이 높고 컸다. 사람들도 많았는데 다른 인종의 외국인이 많았다. 델리에서는 사람들이 어딜 가나 우리를 쳐다보았는데 뭄바이는 워낙 외국인이 많아서 사람들이 시선이 덜함이 확실히 느껴졌다. 우리는 마라타 만디르에 가서 내일 볼 영화표를 예매하기 위해 택시 승강장으로 이동하였다. 뭄바이에는 릭샤가 없고 전부 택시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남부 뭄바이는 전부 택시고 북부 뭄바이는 릭샤라고 한다. 승강장에 가니 역시 택시 아저씨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50루피에 마라타 만디르까지 태워준다는 아저씨를 따라 택시를 탔다. 택시에는 미터기가 있었다. 아저씨에게 미터기를 켜달라고 했지만 역시 우리가 외국인이라 그런지 미터기를 켜주지 않았다. 영화관은 굉장히 가까웠다. 체감 상 5분도 안되었다. 미터기를 켜서 시작하는 기본요금이 19루피임을 감안해보면 굉장히 큰 금액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영화관에 가니 영화관은 닫혀있었다. 영화관 옆 노점상 아저씨에게 언제 영화관이 여는지 물어보니 11시에나 열린다는 답이 돌아왔다. 11시까지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우선은 숙소로 이동하기도 했다. 영화관 앞에서 택시를 다시 잡았다. 소박해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우리가 타자마자 어딘지 묻고 미터기를 켜주었다. 속이려고 안달이난 인도 땅에서 스스로 미터기를 켜주는 아저씨에게 매우 감동받았다. 하지만 그 감동도 잠시, 우선 출발은 했는데 아저씨가 ‘호텔 블루버드’가 어디인지 잘 모르는 듯 했다. 그래도 아저씨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결국 도착할 수 있었다.
호텔에 딱 도착해서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번에는 호텔 방 예약에 문제가 생겼다. 예약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인지 인도에서는 마음을 놓고 있을 수가 없는지 한숨이 나왔다. 다행히도 우리의 예약 정보는 있었다. 하지만 4명인데 2인실로 예약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방을 새로 하나 잡아야하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난감해하자 삭발한 매니저 아저씨가 침대 2개를 놔 줄 테니 추가비용만 내라고 제안했다. 하루에 4567루피.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다. 우리는 냉큼 하루치 숙박비를 결제했다. 상큼한 연두색 벽의 방은 넓었다. 창문도 크고 화장실에서 뜨거운 물도 잘 나왔다.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단점을 꼽자면 엄지 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우리 방을 나가는 것을 봤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라면 밤에 바퀴벌레 걱정에 잠도 못 잤을 텐데, 인도 생활에 적응했는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우리는 애초에 기차가 연착될 것을 염두에 두고 오늘 일정을 잡지 않았다. 그래서 숙소에 도착하고 무엇을 할지 고민해보았다. 윤희가 뭄바이에 왔으니 바다에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하여 윤희를 선두로 모두 밖으로 나갔다. 바다 냄새가 나길래 우린 해변이 가까운 줄 알고 무작정 걸었다. 그런데 지나가는 외국인 커플에게 물어보니 ‘초빠띠’라는 해변이 가장 가까운데, 30분은 택시를 타고 나가야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 얼른 택시를 잡아탔다.
초빠띠 해변으로 가면서 본 풍경은 정말 이국적이었다. 옛날에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서 그런지 건물들이 모두 서양식이었다. 건물만 보면 유럽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초빠띠 해변으로 향하면서 우리는 ‘마린 드라이브’라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샤룩 칸의 팬인 정은이는 택시 아저씨에게 여기가 영화 'Deewana'(1992)에서 샤룩 칸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간 길이 맞냐고 물어봤다. 아저씨가 맞다고 대답해주셨다. 마린 드라이브는 뭄바이 영화 10대 촬영지를 선정하면 매번 언급되는 곳이라서 그런지 많은 연인들이 붙어 앉아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서울의 한강 수준의 데이트 코스인 것 같았다. 솔로 4인방은 살짝 슬펐지만 택시에서 내려서 본 초빠띠 해변의 경치를 보며 서로를 다독여 주었다. 어떤 여자 분이 얼음으로 된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으면서 지나가시기에 우리도 한번 사먹어 보았다. 라즈베리랑 망고 맛을 사먹어 보았는데, 보이는 것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해변 쪽으로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우리에게 와서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몰려들었고 그날 7번은 넘게 같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좀 늦은 시간에 해변에 도착하여 금세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이 보였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하늘과 일몰은 정말 장관이었다. 뭄바이는 낮보다 밤에 더 아름다웠다.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도 잠시, 우리는 배가 고파져서 얼른 식당을 찾으러 나섰다. 조깅을 하며 지나가는 여성분에게 잠시 Non Veg 식당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유일하게 ‘Kobe’라는 식당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뭄바이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은 들려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맛집이었다. 사장님께서 무슬림이신지 소고기 스테이크가 있었다! 나가면서 사장님께 엄지를 척 내비쳤다. 우린 행복을 느끼며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1월 24일 화요일>
▷20년간 한결같은 영화관
아침에 숙소 근처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은 후 마라타 만디르로 갔다. 가니까 사람들이 꽤나 모여 있었다.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DDLJ의 영화표 4장을 구매했다. 마라타 만디르는 샤룩칸과 까졸이 주연인 용감한 자가 신부를 얻는다(Diwale Dulhania Le Jayenge, 이하 DDLJ)라는 영화를 매일 같은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관이다.
(*DDLJ 줄거리: 런던에 사는 라즈(샤룩 칸)와 심란(까졸)은 유럽 기차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처음 그들의 만남은 원수지간이었지만 둘만 기차에서 낙오되어 같이 지내는 동안 둘 사이에 사랑이 싹트게 된다. 하지만 심란은 여행이 끝난 후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인도에 결혼을 하러 가게 된다. 라즈는 이 소식을 듣고 심란을 찾아간다. 둘은 몰래 사랑을 하다가 결국 들키게 되지만 심란의 아버지가 둘의 진정한 사랑을 함을 깨닫고 심란을 라즈에게 보내주게 된다.) 이 영화는 1995년에 개봉했는데, 이 영화관의 특이한 점은 20여년 전의 영화를 개봉 당시와 똑같은 가격인 20루피(한화 약 240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좌석에 따라 가격은 15루피, 20루피, 25루피로 상이하지만 여전히 저렴한 가격이다. (우리가 갔던 영화관 좌석과 비교해 볼 때 적게는 4배 많게는 20배 가량 싸다.)
이 영화관에서는 DDLJ를 매일 오전 11시 30분에 상영하는데, 관람객이 비교적 적을 오전에서 한낮 시간에 이벤트성으로 진행 하는 것 같았다. 한국으로 치면 조조영화 대신 상영하는 셈이다. DDLJ 상영시간 이외에는 일반 영화관처럼 다른 영화를 상영한다고 쓰여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 매표소 위에 1109 WEEKS쓰인 문구로 이 영화를 상영한 지 1109주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관 건물 안팎에 걸려있는1000주 기념 포스터에는 ‘THE LONGEST RUNNIG FILM IN INDIAN CINEMA’라는 글귀가 적혀있었고, 500주, 1000주 기념 기념품들도 전시해 두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재회 할 때, 매개 역할을 했던 종(種)을 500주 기념으로 만들어서 놨다는 것은 참 신선했다.
다른 영화관처럼 마라타 만디르도 시작시간이 10분정도 남았을 때야 건물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전까지 건물 밖에서 영화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별다른 앉을 곳 없이 그냥 서있거나 낮은 턱에 쪼그려 있었다. 영화 상영관이 하나고 DDLJ를 시작으로 3시간 간격으로 영화를 상영하다 보니 그 곳에 기다리는 사람은 아마 모두 DDLJ를 보러 왔을 것이다. 옆에 앉아 있던 또래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DDLJ를 보러왔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문이 열리자 보안검색대가 무색하게도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갔다. 영화관 건물 외부가 굉장히 낡고 더러웠다면, 내부는 낡았지만 고풍스럽게 디자인 되어있고 깔끔했다. 상영관은 2층으로 되어있었고, 큰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영화관 입구에서 안내원이 후레쉬로 우리 자리를 비춰줬는데 처음 겪는 일이라서 매우 당황스러웠다. 두 명씩 나눠서 두 명은 1층에서 영화를 보고 나머지 두 명은 2층 발코니에서 영화를 봤다. 매일 똑 같은 영화를 상영하는데도 그렇게 큰 영화관이 반 정도나 차있었다.
마라따 만디르는 자선단체에서 기부금을 받아 세운 영화관인데, 기업이 세운 영화관과는 다르게 이렇다 할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 것 같다. 쉬는 시간에는 보안상 문제로 영화관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해서, 간단히 영화관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여성분이 힌디로 말을 걸었다. 영어를 못하는 것 같았다. 어디서 왔냐고 해서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까졸이 너무 예쁘다고 하니까 신기해하면서 웃으셨다. 인도사람을 만나서 길을 묻거나 말을 걸 때 힌디를 하면 힌디를 아냐고 신기해하면서 웃고, 그 다음으로 듣는 말이 ‘중국인이냐, 일본이이냐’ 라는 말이었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남쪽인지 북쪽인지 물어서, 여행 중반부터는 그냥 남한이라고 말하곤 했다. 영화관 인터미션은 쉬는 시간이 끝나갈 때 종이 울리는 것도 아니어서 그 여성분이랑 대화를 하다가 허겁지겁 자리로 돌아갔다. 영화는 이미 시작한 후였다. 영어자막조차 없는 인도영화를 보는 것은 참 힘들었다. 만약 중간중간 나오는 춤과 노래가 없었다면 더운 날에 시원한 영화관에서 3시간 동안 자다가 나왔을 것 같았다. 인도는 큰 땅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다. 그만큼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언어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가장 많이 쓰이는 힌디어 조차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상당수다. 춤과 노래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은 그런 사람들조차 다른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영화를 보고 근처 식당에 서 점심을 해결한 후 숙소로 돌아갔다. DDLJ의 테마곡 ‘Tuje dekha to yeh jaana sanam’의 멜로디가 계속 귓가에 맴돌아서 힘들었다. 휴식을 취한 후, 상아가 입을 여름 옷을 사러 패션 스트리트로 향했다. 천막으로 지어진 가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옷의 종류는 사리부터 현대복까지 어른 옷, 아이 옷, 남자 옷, 여자 옷 등 다양했다. 그리고 길 가장자리에서는 장신구나 장난감, 악기 등을 팔고 있었다. 정은이가 거기서 파는 장난감 기타를 샀는데, 결국 짐이 되어서 마지막 숙소에 버리고 왔다. 상아는 결국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찬준이랑 윤희는 옷을 하나씩 샀다. 그리고 나서 조금 구경을 한 후 뭄바이에 온 로컬리티 챌린지 다른 팀을 만나기 위해 처치게이트로 향했다. 길도 잘 모르고 어두워서 무서웠지만 최대한 영어를 할 줄 알고 점잖게 생긴 사람들을 골라 길을 묻고 물어 찾아갔다. 정은이가 새로 산 장난감 기타로 DDLJ 멜로디를 연주하고 우리는 그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밤거리를 걸었다. 인도사람들이 왜 영화음악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Dangal도 그렇고 DDLJ도 그렇고 노래가 정말 중독적이다. 다른 팀을 만나서 이것저것 인도에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오랜만에 다른 한국인을 만나니까 정말 반갑더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1월 25일 수요일>
▷다시 찾아간 마라타 만디르 그리고 인터뷰
어제 마라타 만디르에서 사람들과 말을 섞어보지 못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려 정은이와 찬준이는 오전 10시에 마라타 만디르로 향했다. 솔직히 이때까지도 왜 사람들이 영화에 열광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들 영화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다. 단순히 인구가 많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상아와 윤희는 좀 피곤한 듯 보여 오후 일정을 위해 Regal cinema에서 만나기로 했다. 택시가 빨리 갔으면 더 좋았으련만 교통체증 때문에 11시가 넘어서야 영화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화관 내부로는 11시 10분부터 들어갈 수 있는데, 표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원래는 영화관 밖에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돌아오는 것이 목표였으나 사람들이 영화관 안으로 다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우리도 표를 사서 들어갔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인터뷰가 아닌 대화였기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는 다음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1. DDLJ를 몇 번 봤는지? 왜 봤는지?
2. 왜 인도인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우리가 처음 말을 섞은 사람은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2분이었다. 이분들은 ‘40번인가 50번째’ 이 영화를 보고 있다고 답해주었다. 왜 봤냐는 질문에는 ‘샤룩 칸’과 ‘까졸’ 커플의 팬이기도 하고 내용이 열린 결말(마지막에 여주와 남주가 기차를 타고 같이 떠날 뿐, 뒷 이야기는 보여주지 않는다)이라서 좋아한다고 답해주었다. 두 분은 자매 사이였는데 정기적으로 이 영화를 보기위해 마라타 만디르를 방문한다고 했다. 인도 사람들이 왜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냐는 질문에는 사람들은 영화와 관객 간의 연결고리, 그리고 관객과 관객 간의 연결고리, 즉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오는 것 같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인도인들이 ‘그 영화를 보는 그들’이 아니라 ‘이 영화를 본 우리’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샤룩 칸의 팬이라기에 마침 오늘 개봉하는 샤룩 칸의 새 영화 'Raees'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매우 기대하고 있고 오늘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꼭 영화를 볼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다음 대상을 찾아나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옆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께 말을 걸었다. 말을 걸고 ‘아차’싶었다. 영어를 못 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짧은 힌디로 간신히 이 영화를 몇 번 보셨는지 질문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Ek so', 100번은 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더 여쭤보고 싶었지만 상영관으로 들어가라는 안내원의 지시 때문에 아쉽게 할머니와 헤어져야 했다. 상영관 안에서도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질문을 계속했다. 정은이 뒤에 앉으신 노부부는 우따르프라데시 주에서 왔는데, 이번에 이 영화를 처음 본다고 답해주셨다. DDLJ의 인기가 과거의 영광만이 아닌 현재 진행형임을 느낄 수 있는 답변이었다. 정은이 앞에 앉은 젊은 커플은 이번이 2번째 관람하는 것이라고 답해주었다. 이 분들은 영화는 인도인에게 엔터테인먼트이지만 단순히 재미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어떤 메시지가 녹아들어있어, 그 점을 좋아한다고 답해주셨다. 찬준이는 샤룩 칸의 열혈 팬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은 뭄바이 상부에 사는데 이 영화를 보기 위해 40km를 달려왔다고, 자신은 샤룩 칸에 미쳐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영화가 시작하려고 하자 영화를 봐야한다고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 정은이와 찬준이는 영화가 시작되자 다음 일정을 위해서 상영관을 나왔다. 이번에 나눈 대화를 계기로 사람들이 우리 한국인과는 좀 다른 영화 관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인도 배우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 특히 샤룩 칸에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마라타 만디르에서 보여준 사람들의 반응은 Regal cinema에서 본 반응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 정은이와 찬준이는 점식식사 후, 오후 일정을 위해 Regal cinema에서 상아와 윤희를 만났다. 샤룩 칸의 새 영화 ‘Raees’의 개봉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Raees’의 줄거리: 어릴 적부터 밀주사업에 수완이 좋았던 ‘Raees’(샤룩 칸)는 청년이 되자 본격적인 밀주사업에 뛰어들게 되고 그 업계에서 최고가 된다. 하지만 밀주사업이 경찰에게 덜미를 잡히자 경찰과 대치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결국 Raees는 경찰이 쏜 총에 맞아서 죽게 된다.)
3시 45분 상영시작이었는데 상영관은 40분에나 열렸다. 사람들이 우르르 보안검색대로 들어갔다. 계속 ‘삐-’소리가 났다. 그래도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안으로 들어갔다. 보안검색대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었다. 상영관에는 그동안 보았던 어느 상영관보다 사람이 많았다.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광고가 끝나고 국가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어김없이 일어서서 국가를 불렀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고 'Red chilles'라는 영화 제작사 로고가 뜨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그저 제작사일 뿐인데 왜 저렇게 반응하는지 그 당시에는 수긍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제작사가 샤룩 칸이 설립한 것임을 알게 되고 나서는 수긍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본 반응을 나열해 보고자 한다.
1. 샤룩 칸 아역이 나올 때, 박수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2. 메인 테마곡인 ‘Laila’가 나오자 사람들이 노래의 후렴구를 따라불렀다.
3. 샤룩 칸이 진지한 대사나 (추측컨대) 멋있는 대사를 치면, 환호성과 휘파람, 박수가 나왔다. 4. 액션신이나 진지한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조용했다.
5. 몇몇 사람들은 노래가 나올 때, 가사를 찾아보았다.
6. 마지막에 샤룩 칸이 죽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가기 시작했다.
오늘 조사를 통해서 우리는 인도인의 영화에 대한 생각은 우리와 많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서 본다면 이들은 영화를 ‘즐기기’위해 오는 듯 했다. 마치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듯이 말이다. 그저 야구를 ‘보기위해서’ 라면 야구장에 직접 가지 않고도 TV를 통해서 야구를 시청할 수 있다. 하지만 야구장에 직접 가서 느낄 수 있는 바가 다르기에 사람들은 야구장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도 영화에서 ‘스타’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지 직접 체감해 볼 수 있었다. ‘영화는 곧 스타, 스타가 곧 영화’라고 과언이 아니다싶다.
<1월 26일 목요일>
▷인도의 휴일
1월 26일은 인도에서 중요한 날이었다. Republic Day, 즉 인도 헌법이 발포되고 공화국이 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인도에서 큰 공휴일 중 하나이며, 인도의 각 중심지에서 퍼레이드와 광대한 행사가 진행된다. 거리 밖에서 사람들이 모두 국기를 흔들며 거리를 활보했다. 모두 애국심이 넘쳐 보였다. 국가 전체가 축제 분위기인 만큼 우리도 전체적으로 들떠있었는데, 국가적인 날이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녀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때문에 특별히 일정은 소화하지 않고 재충전 할 겸, 숙소 근처를 구경하기로 했다. 맨 처음으로 간 곳이 뭄바이 성 토마스 대성당이었다. 처음에 아시아에서 가장 큰 대성당이라고 하여 기대하고 갔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름만 같은 다른 성당이었다. 원래 알고 있던 성 토마스 대성당은 첸나이에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생각한 그 성당이 아니었다. 조금 실망은 있었지만 성당 자체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더운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당 주변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기분이 좋았다. 팀의 안전과 무사히 일정을 마치길 바라는 기도와 함께 성당 문을 나섰다. 주변 거리를 계속 배회하다가 책을 파는 곳을 발견했다.
각자 원하는 책을 고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찬준이가 ‘악!’하며 비명을 질렀다. 알고 보니 벌이 찬준이를 쏘고 간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 깜짝 놀랐기에 순간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책 가게 주인아저씨께서 재빠르게 침을 빼고 응급 처치를 해주셨다. 찬준이도 좀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우리는 너무 걱정되어 찬준이에게 병원에 갈 것을 권유했지만 이제는 괜찮다며 구경이나 더 하자고 하였다. 돌아다니다 보니 정말 괜찮아보였다. 그래서 걱정을 멈추고 더위를 피해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가지 못하는 곳이었다. 역시 인도라서 그런지 한국에 비해 음료가 비교적 저렴했고 맛도 좋았다. 스타벅스에서의 일정 이후로는 거리에 사람이 더 늘어난 탓에 사고 방지를 위해 바로 숙소로 복귀해 다음날 진행할 일정에 대해 회의하였다.
<1월 27일 금요일>
▷호텔 이동과 급작스러운 필름아카데미 인터뷰!
오늘은 원래 뭄바이 두 번째 숙소로 옮기고 쉴 계획이었다. 뭄바이에서 숙소를 옮기는 이유는 뭄바이가 남부와 북부가 멀기 때문이다 일정들이 남부와 북부로 나뉘어 있었기 때문에 숙소 이동은 꼭 필요했다. 체크아웃이 12시라서 그전에 아침밥을 시켜먹고 출발을 하려고 했으나, 오전에 원래 주문하려고 했던 식당이 문을 열지 않는 바람에 다른 식당에 다시 주문하고 기다리느라 시간이 좀 늦어졌다. 밥을 빠르게 먹고 북부 뭄바이로 올라캡을 불러 이동했다. 아저씨의 블루투스 노래재생 목록에서 아는 인도 노래가 나오자 따라 부르기도 하고 창밖도 구경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가니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세 번째 호텔 Milan International은 조용한 펜션 같은 느낌이 강했다. 건물도 하얗고 채광이 좋아서 그런지 포근한 느낌도 들었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내일부터 소화해야 할 일정들을 정하기 위해 숙소에 짐을 풀고 모였다.
북부 뭄바이에 있는 동안 ‘필름시티’와 ‘필름 아카데미’에 가보기로 결정이 났다. 그래서 필름 아카데미에 가기 위해 전화로 문의를 하게 되었다. 서로 되는 시간을 조율하다보니 오늘 오후 5시밖에 시간이 나지 않아서 갑작스럽지만 오늘 필름 아카데미를 방문하게 되었다. 급하게 회의를 하여 가서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을 써내려갔다. 윤희가 필름 아카데미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서 검색을 하는 도중 필름 아카데미 홈페이지를 발견하였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필름 아카데미는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이었다. 영화 제작과 감독, 영화 예술 촬영술과 영상학, 조명 등 영화제작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르쳤다. 또한 사운드 디자인과 영화 편집, 시나리오 쓰기와 같은 수업은 물론 연기와 발성, 호흡 수업 코스도 존재했다. 수업 코스 중에 신기했던 것은 춤과 노래, 립싱크 수업, EDM 프로듀싱과 플레이백 싱잉에 관한 수업이 있다는 것이었다. 인도영화의 특징을 떠올려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없는 편이 이상한 것이 맞는 것 같았다. 홈페이지를 보다보니 이 아카데미는 84개국에서 온 학생들이 수강을 했다고 적혀 있었는데, 한국은 없고 북한이 있는 것에 깜짝 놀랐다. 우리는 질문지를 만들고 1시간정도 휴식을 취한 후, 필름 아카데미로 이동하였다.
릭샤 아저씨는 우선 길을 몰라도 우리를 태우고 출발했다. 우리가 계속 지도를 보고 ‘이더르(이쪽)’, ‘우더르(저쪽)’하며 손으로 방향을 가르키면서 갔다. 간신히 아카데미를 찾을 수 있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30분은 일찍 도착해서 근처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서 기다렸다. 대단히 웅장하고 클 것이라고 생각하고 간 필름 아카데미는 생각보다 허름하고 작았다. 한쪽 벽에는 기념사진으로 꽉 차있었고, 또 다른 벽에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우리는 혹시 수강생인가 싶어서 영어로 학생이냐고 물어봤지만,영어를 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힌디로 다시 물었더니 수강생이 맞다는 답이 돌아 욌다. 우리가 인터뷰나 설문지에서 체험으로 조사방법을 바꾼 것이 신의 한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무실 문을 두드리자 비서로 보이는 여자 한 분이 나오셨다. 우리가 아까 전화 드린 사람들이라고 말했더니, 그 여자분이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순간 큰 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상아가 침착하게 아까 걸었던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지금 잠시 사무실을 나왔다며 10분만 기다려 달라는 답변이 왔다. 다행히 사무실에 들어가서 기다려도 된다고 허락을 해주셨다. 들어가서 우린 방문자 목록을 작성했다. 기다리면서 심심하길래 우리는 비서 분에게 요즘 나온 영화 'Dangal'을 봤냐고 운을 뗐다. 비서분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 선글라스를 쓰고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덩치 좋은 아저씨 한분이 들어왔다. 필름 아카데미 대표님이었다. 우리는 먼저 한국에서 온 학생이고 영화문화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증과 여권을 보여드리면서 우리의 신분을 증명했다. 대표님은 우리에게 학원 홍보 영상과 인도영화 예고편 비디오 클립을 틀어주었다. 대표님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다 대답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바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Interview in MFA(Mumbai Film Academy)>
Hi Jii! I’m so glad to meet you.
We are students from Korea, HUFS(Hang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and came India on January 18th. We are studying about Indian movie. I mean why Indians love movie.
One of our team-member found MFA on google so we searched about you guys. We saw so many reviews saying, “MFA is the best institute for studying movie in India”
Review A. was Electronic music production student.
Review B. was Actor student.
Review C. was Film making&direction student.
Review D. was Audio engineering student.
So, we have some questions for you.
Q)First, what is the purpose of this institute?
A)이때 소개 책자 보여주시며 설명해주 영상도 같이 보여주셨다. 펜도 선물해주셨다. 유튜브를 틀어 설명을 해주시며 개봉한지 시간이 좀 지난 인도영화가 유튜브에 많이 올라온다고 설명해주셨다.
Q)Second, why Indians love(crazy at) movie? Two days ago at Regal cinema, Colaba, we saw <Raees> Shah rukh khan and there, people screamed so loudly. We were so surprised cause Korean do not make any sound during movie in the theater.
A)이때 헐리우드와 비교하며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주셨다. 할리우드가 초기자본700으로→800의 수익 창출한다면, 볼리우드는 초기자본100으로→800의 수익 창출한다. 인도에 1년에 1500여 편의 영화 만들어지는데, 영화를 만드는 기간은 최소 30일도 가능하다. 적어도 인도에는 13000개의 영화관이 있다.
Q)Third, how many graduations get the job in Bollywood?
A)yes. 거의 대부분 일자리가 있다.
Q)Fourth, do Indian movies guide Indian culture? (with example please)
A)그렇다. 예를 들어서 살만 칸이 영화 ‘다방’에서 선글라스를 목 카라 뒤 위에 끼고 나왔는데, 그것이 유행이 되어 사람들이 선글라스를 목 카라 뒤에 끼고 다녔다.
Q)Fifth, why always dancing scene included in malasa movies?
A)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추가 질문
Q)찬준: 자나가나마나 는 영화시작 전에 왜 부르나요?
A)액션과 다툼, 사랑, 감정적인 것들이 모두 영화 안에 들어있기에 이를 존중하는 것이다.
Q)윤희: 인도 영화는 한국영화와는 다르게 개봉 후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유튜브로부터 돈을 받기 때문이다. 저작권을 가진 감독들이 올린 것이라서 저작권은 문제되지 않는다.
같이 대화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Full Entertainment'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표님은 마살라 영화가 다양한 사람들의 흥미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영화에 로맨스만 있다면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영화를 보러가지 않을 것이고 코메디를 좋아하는 사람 또한 보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까지 만족할 수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다 섞여있는 것이 제일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나 한국영화를 포함한 다른 외국영화들은 보통 일정한 장르가 정해져있다. 그러한 영화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우리 눈에는 인도영화가 난잡하게만 보였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렇구나!’싶었다. 또한 영화는 인도인들의 피곤했던 하루를 풀어주는 역할도 한다고 했다. 하루의 끝에서 고된 일을 마치고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사랑을 하고 악을 처단하는 장면을 보면서 하루를 달랜다는 것이다.
대표님은 인도영화계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알고 보니 대표님도 영화감독 겸 제작자였는데, 자신이 제작한 영화 팜플렛도 보여주었다. 한편, 인터뷰를 하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영화 저작권자가 영화관에서 상영이 끝난 영화를 ‘유투브’와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려 수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대략 개봉한 지 4개월 정도 되는 영화라면 웬만한 인도영화는 유투브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저작권에 대해 신경을 안 쓰시냐는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대표님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린 토렌트를 보고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사용했던 아이템들이 유행을 한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한편, 우리는 영화 시작 전 외국영화나 자국영화에 관계없이 항상 들을 수 있었던 jana-gana-mana(인도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영화 시작 전 국가가 나오고 관람객 전체가 기립하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국가가 애국심을 강요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표님은 이런 재미있는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준 인도 국가에 대한 경의의 표시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2주도 안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는 인도인들이 애국심이 넘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인들의 인도사랑은 영화 문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영화'Dangal'의 인도가 우승하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DDLJ'에서 ‘나는 여자를 존중할 줄 아는 인도 남자야.’라는 대사라던지,'Happy New Year'(2014)라는 영화에서도 ‘뉴스에서는 사기와 부패가 넘치고 가난과 배고픔으로 우리들은 고통받지만 우리는 인도국기가 높이 날도록 헌신할 것이다.’라는 대사에 영화 속 수천의 인도인이 환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도에 오기 전에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대표님의 말씀을 들으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유익했던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기념 사진을 남겼다. 대표님이 좀 아쉬우셨는지 우리에게 아카데미 스튜디오를 구경시켜 주신다고 했다.
우리는 음악 스튜디오를 둘러볼 수 있었다. 손으로 만든 전통악기들과 전자 피아노, 마이크 등이 있었다. 대표님이 컴퓨터를 켜더니 음악을 트셨는데 소리가 너무 커서 다들 깜짝 놀랐다. 그랬더니 대표님이 웃으면서 왜 그렇게 놀라냐며 인도인들은 노래를 크게 트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대표님이 켠 컴퓨터 화면 노래 재생목록에는 어림잡아 몇 백 곡의 음악이 있어보였다. 대표님께 다 영화음악이냐고 물었는데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스튜디오 투어를 마치고 우린 대표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숙소로 돌아갔다.
인도에 오기 전에 로컬리티 윈터스쿨에서 만난 리짜도 영화배우와 감독, 안무가, 플레이백 싱어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노래제목과 영화이름은 물론이고 영화 촬영지가 어딘지, 유명한 영화계 이슈에 대해 많이 설명해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리짜는 친구들에 비해 영화를 많이 보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우리 과 인도인 교수님께서도 모디총리가 방한했을 때, 한 학생이 왜 총리를 보러가지 않냐고 교수님께 물었는데, 교수님께서 샤룩 칸 같은 배우라면 보러가겠지만 총리 따위를 왜 보러 가냐고 답하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전까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번 대표님과의 대화를 통해 점점 이해되기 시작했다. 슬픔, 사랑, 스릴, 통쾌함, 기쁨, 어여쁜 여자 주인공과 잘생긴 남자 주인공 그리고 노래와 춤까지. 모든 엔테테인먼트가 영화 속에 있는데 어찌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1월 28일 토요일>
▷필름시티 예매 실패 ㅠㅠ
뭄바이 북부에서의 이튿날이 찾아왔다. 원래 계획대로는 당일 필름시티를 현장 예매하여 투어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예매 사이트에서는 표 수량이 많이 남아있어 걱정 없이 현장에서 구매하려고 했으나, 표가 다 팔린 것이었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에 호텔에서 필름 시티까지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달려왔는데, 상당히 기가 빠지는 소식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날을 기약하기 위해 다음 날 표를 예매하려고 했으나 카드 계산조차 안 되었다. 때문에 현금을 뽑기 위하여 정은이와 상아가 atm기를 찾아 다녔지만 atm기 자체도 많지 않았고 atm기를 찾아도 작동하지 않았다. 불운이 여러 가지로 겹쳤고 우리 팀은 피곤했다. 꽤 먼 거리를 더운 날씨에 달려왔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이뤄낼 수 없었다. 당일 일정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직원이 다음 날 티켓을 4개 보관 해줄테니 오전 10시까지 꼭 오라고 하였다. 우리는 필름 시티에서의 일정을 진행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당일 일정을 진행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지친 채로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휴식을 청했다.
카페에서의 휴식 후 적당한 탐사를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아 우리 팀은 숙소로 복귀했다. 숙소에서 낮잠을 잔 다음 그 날의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 한국 식당에 가기로 결심했다. 인도 탐사에 막바지였고 마침 향수에 젖어있는 상태였다.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고향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뭄바이에서 행복이라는 한국 식당이 운영되고 있음을 알고 구글 맵에서 그곳을 찾아 인도의 올라캡을 이용하여 식당까지 갔다. 30분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팀의 의지는 강력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가는 중이었고 택시 아저씨 또한 친절했기에 앞으로 올 재앙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택시 안에서는 정말 즐거웠다. 부족한 힌디어로 아저씨와 한국과 인도에 대해 특히 두 나라 간 기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한국 음악을 듣고 갔기 때문에 모두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하지만 문제는 또 우리를 괴롭혔다. 해당 장소에 우리가 찾던 식당이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알고 보니 구글 맵에서 엉뚱한 정보를 알려준 것이었다. 그 날 하루 안 그래도 지칠 때로 지친 우리었는데 여기서 큰 타격을 받았다.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아시아 음식 식당이 있어 그나마의 서러움을 덜고자 했다. 마침 한국 음식을 팔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식당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날은 그 어떠한 것도 되는 날이 아니었다. 한국 음식을 빙자한 전혀 새로운 음식이 나온 것이다. 비빔밥이라고는 할 수도 없는 이상한 채소와 밥의 조합이 우리 앞에 등장한 것이다. 음식 자체의 맛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기대한 그것 또한 아니었다. 그 날 하루는 실망만 한 채로 숙소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1월 29일 일요일>
▷필름 시티를 투어하다!
어제 예약한 티켓을 찾기 위해 오전 10시가 되기 전에 필름시티로 출발했다. 시간이 급박했던 만큼 아침식사는 어제 산 라면이랑 빵으로 해결했다. 올라캡을 타고 'Dadasaheb film city complex'로 향했다. 가니 벌써 사람들이 매표소에 모여 앉아있었다. 혹시나 이번에도 티켓이 동이 났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티켓 박스는 오전 10시 정각에 문을 열 것이라고 기다리라는 답변을 들었다. 우린 매표소 대기실에 온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가족 단위로 온 것 같았다. 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를 데리고 온 엄마랑 아빠, 딸 셋을 데려온 엄마도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었는데 놀러왔다고 예쁘게 화장까지 하고 온 것 같았다. 10시가 딱 되자, 어제 우리에게 티켓 예약을 해준 아저씨가 도착했다. 우리는 외국인이라고 인당 입장료가 3000루피였다. 12000루피를 내고 티켓 프린트 종이를 받았다. 이 종이 한 장을 받으려고 어제 그렇게 생고생을 했나 자괴감이 들었다. 에어컨 버스를 타고 사파리처럼 필름시티를 돌아다니는 1시간 반짜리 데일리 투어였다, 우리는 10시 15분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나름 우리가 외국인라고 앞자리로 안내해 주셨다. 처음에는 우리만 태우길래, 우리끼리만 투어를 시켜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대기실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버스에 타기 시작했다.
모두 버스에 타니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작은 과자 한 봉지와 물 한 병씩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버스 천장에 달린 작은 TV로 필름시티 소개 영상을 틀어주었다. 영상은 힌디로 나왔지만 다행히 밑에 영어자막이 있었다. 4분짜리 영상이었는데, 앞에 2분은 우리(인도인)에게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나레이션이 유명한 영화 장면들에 덧입혀져 나왔다. 나레이션의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영화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는 우리를 웃게 만든다. 축제의 매 순간마다 우린 춤주고 노래하며 영화를 즐긴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보통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해준다. 영화는 항상 우리가 단합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것이 영화의 목적이기 때문이다.’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검은 화면에 하얀 글씨로 'Entertainment'를 4번 강조해서 보여줬다. 영상을 보니까 우리도 영화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세뇌당하는 기분이었다. 그 후 필름시티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필름시티는 500에이커(4050평방미터)에 달하는 크기의 영화 세트 집합 장소로써, 1977년 9월 26일에 개관했다고 한다. 2001년 4월 30일에 인도 영화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Dadasaheb Phalke'의 이름을 따 ’Dadasaheb Phalke Film City Mumbai‘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영상이 끝나자 버스가 필름시티 입구로 들어갔다. 어제 어떤 릭샤 아저씨가 안에 들어가면 정글처럼 나무뿐이라고 했는데,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은 나무뿐이었다. 그러다가 나무 사이사이에 세트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트장은 버스가 다니는 길과 등을 지고 있어서 내부가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티켓을 준 대머리 아저씨가 마이크를 들고 세트장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각 세트장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힌디어로 두 번째는 우리를 위해 영어로 설명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니 힌디어부분에서는 각 세트장에서 촬영했던 유명한 영화의 제목과 그 영화의 테마 주제곡을 한 소절 씩 부르면서 설명을 했는데, 우리에게 설명할 때는, ‘여기서 많은 인도영화가 촬영되었다.’라고만 알려주고 끝냈다. 투어 설명에는 영어도 지원해준다고 하였는데, 역시 믿을 것이 못 되었다. 그래도 힌디어 전공자라고 알아들을 수 있는 작품은 몇 개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반응은 흥미로웠다. 가이드 아저씨가 각 세트장에 대해서 설명을 해줄 때마다 ‘오’를 연발하며, ‘여기가 거기구나!’하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번 투어에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대략 20개가 넘는 세트장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촬영 중인 세트장은 2개였는데, 각각 결혼식 세트장, 법정 세트장이었다. 촬영 중인 모습이 보일 때마다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너도나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트장 안으로는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다. 보안상의 문제 때문인 것 같았다. 군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수시로 버스를 세워서 체크를 진행했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린 것은 딱 2번이었다. 첫 번째는 ‘필름시티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간 것이었고 두 번째는 화장실에 갈 때였다. 필름시티 호수는 필름시티 안에 존재하는 호수로, 웬만한 바다 장면은 여기서 촬영하고 CG처리를 한다고 했다. 전망대에서 50m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가보지는 못했다. 우린 잠시 이곳에서 포토타임을 가졌는데, 사람들이 우리가 신기했는지 여기에서도 같이 사진을 찍자고 몰려들었다. 사진을 찍어주느라 자칫하면 버스를 타지 못할 뻔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휴게소 화장실을 들른 후, 우리는 투어를 마칠 수 있었다. 사실 투어를 마치고나서 다소 실망감을 느꼈다. 내국인 가격이 599루피인 것을 감안해보면 외국인 3000루피는 너무 높은 가격이었다. 차라리 같은 가격을 받았으면 한 번 방문해 볼 만한 장소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제대로 된 설명도 들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다앙한 체험이 준비되어 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왜 필름시티가 존재하지만 외국인의 체험 후기가 별로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다음에 이곳을 방문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돈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더 보고 맛있는 것을 사먹으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그래도 완전히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관 티켓의 두 세배 가격이라서 이 정도(600루피)는 사람들이 부담을 많이 느끼지 않고 여유가 생기면 방문하는 것 같았다. 어제도 사람들이 티켓 매표소에 길게 줄을 쭉 서 있었는데,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와있는 것을 보니 인기도 있는 장소인 듯 했다. 그리고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문화 체험의 공간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보고 즐기니 인도인에게 영화는 즐거웠던 기억으로 항상 자리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투어를 마치고 배가 고팠던 우리는 다시 한 번 'Kobe'에 가게 되었다. 알고 보니 체인점이라 뭄바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올라캡을 타고 가니 청소시간이라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가게 밖에서 주린 배를 안고 40분 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가치 있는 기다림이었다. 꼭 뭄바이에 간다면 'Kobe'에 들려보길 바란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찬준이는 오후 미사를 보기위해 성당으로 이동했다. 정은이랑 상아, 윤희는 그에 뒤따라 성당 근처 마트 Big Bazaar에 가서 구경을 하며 찬준이를 기다렸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뭄바이에서의 마지막 밤이 흘러갔다.
<1월 30일 월요일>
▷뭄바이 to 델리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샤워기와 고군분투하며 샤워를 마치고, 바쁘게 배낭을 챙겨 세 번째 호텔, Milan International에서 체크아웃을 했다. 택시를 타고 차트라 파티 시바지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겨우겨우 델리 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준비를 마쳤는데, 게이트 앞에서 막혀버렸다. 원래 오전 9시 50분 비행기였는데, 2시간 연착되었다는 것이다. ‘그래 2시간 쯤 기다릴 수 있지.’ 생각하며 공항에서 밥을 먹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비행기는 계속 연착이 되어 결과적으로 4시간 후에 출발하게 되었다. 국내선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Leoney와 Anu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친구의 합류로 여섯이 된 우리는 50분 정도 택시를 타고 Tibetian Colony에 도착했다. 이곳에 온 이유는, Leoney가 우리들의 마지막 인도에서의 식사를 위해 맛집을 알아봐뒀기 때문이다. 인도에 온지 2주 가까이 되다보니깐 한국 음식이 엄청나게 그리웠지만 마지막 식사라니 맛있는 인도음식을 먹기로 했다. Tibetian Colony의 사람들은 정말 한국 사람과 생김새가 많이 다르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한국인 같았다.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기존의 우리가 먹었던 인도 음식과는 조금 다른 맛의 요리들을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이미 해가져서 깜깜해지고 있었다. 이제 한국에 돌아갈 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가기 전에 헤나와 가네쉬상(코끼리 신 조각상), 화려한 인도의 길거리 악세사리 같은 기념품을 사고 싶어 하는 우리들을 위해 Leoney와 Anu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소개해 주었다. 이제는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그 동안 많이 정들었던 인도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뉴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조금 있다 새벽 2시 비행기라서 여유 있게 체크인을 하고 무사히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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