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기] [마그레브] - 레끌리스 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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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6-03-25 14:10 | Read | 3,116 |
본문
탐사테마
프랑스 내 3개 도시(파리, 마르세이유, 리옹)에서 본 마그레브 지역 역사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
우리 팀은 과거 지배국-피지배국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에 빗대어 프랑스-마그레브간의 역사 인식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2005년 프랑스 내에서 북아프리카 식민지배에 대한 프랑스의 긍정적인 역할을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권장하는 법률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어 어두운 역사인 식민 통치를 왜곡한다는 논란이 생긴 적이 있었다. 2010년, 아프리카 문명에 대한 문제가 중학교 1학년 역사 교과에 반영되자, 이 후 관련된 교사 및 연구자들은 교육적인 기획 하에 세계사 교육의 문제를 통합하고 규명하는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2015년 4월, 중학교 1학년 역사 수업에서 아프리카 문명에 관한 내용이 사라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프랑스 역사 교육 내 식민 지배에 대한 서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우리 팀은 프랑스의 역사 교육 중에서도 특히 피지배국이였던 마그레브 지역에 대한 오늘날의 프랑스 청년 인식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과거 지배국이였던 프랑스는 어떤 방식으로 마그레브 식민 역사를 교육하고 있는지, 또 프랑스인과 프랑스 내에 거주하고있는 마그레브 지역 이민자들이 생각하는 역사 교육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마그레브 지역과 같이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경험하고, 현재 프랑스어를 배우며 마그레브 지역을 알아가고 있는 학생인 우리에게, 이번 탐사는 지배국의 입장에서 역사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우선 우리 팀은 마그레브 지역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프랑스에 위치한 마그레브 지역과 관련된 기관들(국립 파리이민역사박물관, 아랍세계연구소, 파리 이슬람대사원)을 방문함으로써, 그들의 식민지 역사과 이민의 역사에 대해 보다 실제적으로 접근하고 아랍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전달하고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또한 마르세이유에 위치한, 마그레브 이민자들이 모여 형성한 파니에 지구와 구 시장을 방문하여 그들만의 정착 방식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 후 현지 역사 교육을 받은 프랑스인들이 마그레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또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대부분의 탐사 활동은 주로 대도시(파리, 마르세이유, 리옹)에 위치한 대학교를 방문하여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를 시행하여 현지인들의 인식을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프랑스 내 3개 대도시 방문을 통한 설문조사로 도시별 마그레브 지역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는지 비교할 것이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프랑스의 역사나 마그레브의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현지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만나 보다 심층적인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다. 학생과 더불어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를 만나 어떠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식민 지배 역사를 교육하고 있는지, 또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무엇인지 조사하고 교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역사 교육의 문제점과 학생들이 느끼고 있는 문제점에서 비롯되는 차이에 대해 비교⦁분석할 예정이다.
탐사목표
역사 교육은 ‘과거를 앎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보다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행해지는 교육’이라 정의된다. 역사 교육의 핵심은 사회가 형성되면서부터 변천되어온 역사적 과정을 토대로 현재와 미래를 바로 인식하고 예측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과거 세계는 제국주의를 앞세운 서구 열강에 의해 많은 지배를 받았다. 특히 검은 대륙인 아프리카는 ‘열강의 케이크’라 불릴 정도로 서구,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많은 침략을 받았고, 그들의 식민지였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 진다.’는 말이 있듯, 과거 지배국에서 진행되는 식민지 역사교육과, 이런 국가들로부터 독립한 과거 피지배국에서 가르치는 역사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팀은 과거의 지배국과 피지배국 사이에서 진정한 화합과 화해를 이루어지기 위해선 올바른 역사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지배국이었던 프랑스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검은 대륙의 마그레브 지역의 화합을 위해서 역사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할 것인지 탐구하고자 한다. 자고로 역사 교육이란 다른 어떤 교육과도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역사의식 발달 단계에 맞추어 적절하게 조직되어야한다. 또한 개인과 가정, 가까운 지역 사회 등의 변천 과정에서, 국가의 변천 과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보도록 하여 무엇이 역사의 변천 요인이었으며, 그 결과는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났는가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교육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배국과 피지배국 간의 화합과 화해를 위해선 각 국가가 과거 식민지 역사를 서로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이를 올바르게 교육할 필요성이 제고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프랑스는 과거 다수의 국가를 식민 통치하였다. 이들 국가 중 프랑스와 가장 영향을 많이 주고 받은 국가는 단연 마그레브 국가(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이다. 지배국과 피지배국으로서 프랑스와 마그레브 국가는 수 십 년간의 식민 통치 기간 동안 같은 역사를 공유해왔다. 우리 팀은 과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프랑스와 마그레브 국가의 역사 교육을 비교 및 분석하여, 이들 국가가 미래에 보다 끈끈한 협력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자 탐사를 계획하게 되었다. 같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지배국(프랑스)과 피지배국(마그레브 국가)의 관점이 다를 것이고, 이에 따라 역사 교육도 다르게 진행되어왔을 확률이 크다고 판단되며 이들의 역사 교육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왜곡되지 않을 때 양측은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팀은 피지배국이 아닌 지배국의 역사 교육 입장을 보다 깊이 탐구하고자, 마그레브 지역의 역사를 배운 프랑스 대학생 및 대학원생들의 인식을 조사하고자 한다.
위에 언급한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팀은 프랑스와 마그레브 사이의 역사 갈등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다각적으로 바라볼 것이다. 현재 마그레브와 프랑스는 고대사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사적 갈등을 앓고 있다. 과거의 지배국과 피지배국의 역사적 관점 차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는 것처럼, 프랑스와 마그레브 지역의 역사적 관점과 역사 교육 또한 차이를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된다. 우리 팀은 이번 탐사를 통하여 마그레브 식민지 역사에 대한 프랑스인과 마그레브인의 인식을 비교하려 한다. 지배국과 피지배국, 양 국의 역사에 대하여 다각적인 시각을 가지고 교육자와 학생의 입장에서 역사 교육의 다양한 방식을 접해봄으로써, 올바른 역사관을 기르기 위해선 어떠한 역사 교육이 필요한지 탐구할 것이다.
이번 탐사를 통해서 결과적으로 우리 팀은 우선 마그레브 식민 역사를 마그레브 출신의 사람들과 프랑스 사람들이 과거에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받아왔었는지를 비교해 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그들이 서로의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특히 이러한 영향력이 프랑스 대학생 및 대학원생들이 과거 마그레브 식민 시절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연관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해 볼 것이다.
탐사내용
⦁탐사 1일차 (2월 2일 화요일,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 → 프랑스 파리 샤를 드 골 공항)
2월 2일 화요일 파리로 가는 오전 10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우리 조는 7시 30분까지 인천공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시작으로 탐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출발 전 여권 또는 탐사에 필요한 준비물을 몇 번이고 꼼꼼히 확인했다. 설레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바짝 긴장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오랜 비행시간과 길었던 식사 시간의 간격 때문인지 우리 팀원들은 모두 지쳐있었다. 식사 전에 우리는 승무원에게 “Vous avez des lingettes?(물티슈 있나요?)”라고 물어봤더니, lingette(물티슈)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승무원이 손 닦는 것을 말하는지 우리에게 다시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프랑스어를 할 줄 아냐고 웃으면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 주었다. 우리는 제공 되는 식사의 간격이 길어 배가 너무 고프기도 해서 구비되어있던 마들렌을 7개나 먹고, 스프와 샌드위치까지 먹었다. 그리고 프랑스 현지 시각 2월 2일 화요일 오후 2시 경,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프랑스 북부다운 구름 가득하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으슬으슬한 날씨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기대와는 다른 흐린 날씨가 들떴던 마음을 조금 가라앉게 해주었다.
입국 수속 이후부터 우리는 소매치기 일당들을 경계하며 공항 리무진을 타고 개선문 샤를 드 골 에투알(Charles de Gaulle Etoile)역에 내려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탔다. 무거운 짐을 끌고 장시간 이동하여 지쳐있던 팀원들은 짐을 풀기 위해 에펠탑이 있는 트로카데로(Trocadéro)역 근처에 위치한 에어비앤비 숙소로 이동을 했고, 이동하는 도중에 에펠탑을 볼 수 있었다. 짐정리를 하고 배가 고파진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이미 프랑스에서 공부를 한 경험이 있는 두 명의 팀원들 덕분에 식당의 위치를 찾거나 메뉴를 선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프랑스의 식당답게 우리는 코스 요리(menu)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식사는 ‘전식(entrée), 본식(plat principal), 후식(dessert)’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 메뉴를 제공하는 것인데, 1학년 ‘어휘와 표현’ 수업시간에 배운 식당식사 용어들을 실제로 접해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정말 프랑스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샐러드와 연어 타르타르, 오리스테이크, 캐러멜 아이스크림으로 배부른 첫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에펠탑에 잠깐 들러 야경을 보았다. 파리의 상징답게 어둠 속에서 반짝 반짝 노란 빛으로 빛나는 에펠탑과 그곳을 보고 설레 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 팀도 여느 관광객처럼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곤 했다. 에펠탑을 보고 있는 우리를 향해 “5개 1유로 반짝반짝! 안살래? 그럼 6개 1유로” 라며 굉장히 유창한 한국어로 에펠탑 모형을 팔던 잡상인들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한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명소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숙소에 일찍 귀가해 다음날 일정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날씨의 영향으로 인해 이전에 준비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겨 어쩔 수 없이 플랜 B를 준비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프랑스 기상청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비가 자주 오는 파리의 날씨를 고려하여, 원래 둘째 날 계획되어있던 박물관과 그 이후의 대학교 방문 일정의 순서를 바꾸게 되었다. 이때부터 일정 논의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 팀은 매일 저녁 식사 이후 다음날 날씨 상황에 맞는 일정으로 새로이 일정의 수정을 반복했다. 그리고 다음 날 진행할 설문 조사에 대비해 복주머니에 새콤달콤과 ABC 초콜릿을 채워 넣고 스케줄을 위해 일찍 취침했다.
⦁탐사 2일차 (2월 3일 수요일, 파리)
파리에서의 둘째 날 아침, 다행히 시차적응의 문제없이 팀원들 모두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 다음 날의 일정을 소화했다. 아침으로 숙소에서 우유와 크루아상, 바게트를 먹고 프랑스 대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파리 7대학을 방문했다. 대학의 건물에는 들어갈 수 없어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받고 교내 카페테리아에서 우리는 한국어를 전공하는 프랑스인 대학생 다섯 명을 만났다. 약간의 어색한 기운 가운데 서로 간단히 프랑스어로 자기소개를 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고, 준비해 간 설문지를 나누어 주었다. 정성스럽게 설문지에 답변을 적어주는 친구들에게 매우 고마웠다. 감사한 뜻을 담아서 한국에서 가져온 새콤달콤을 담은 작은 전통무늬가 새겨진 알록달록한 복주머니를 나누어 주었다. 프랑스인 친구들은 “C’est très mignon!(정말 귀엽다!)”을 연신 반복하며 복주머니를 열었다. 호기심에 새콤달콤 맛보기에 도전한 친구들은 톡 쏘는 시큼하고 달달한 그 맛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 친구들의 도움으로 이번에는 길거리에서 4장의 설문조사를 더 할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플랜카드를 들고 무언가를 하는 우리가 신기해 보였는지 지나가는 프랑스인 두 명이 더 설문조사에 참여해주었다. 그녀들은 우리가 하는 설문조사에 대해 물어보더니 “그럼 선물이 뭔데?” 라는 말을 먼저 꺼내었다. 그런 그녀들을 보고 우리와 같이 있던 한국어를 전공하는 프랑스인 친구들이 한국어로 “역시 프랑스인!”이라는 말을 했다. 아주 솔직한 면을 가진 프랑스인의 특징을 볼 수 있었다. 몇 장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해왔던 설문조사를 11장이나 하는 걸로 좋은 시작을 할 수 있어서 우리는 뿌듯하기도 하고 다른 학교에서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고 조금 들뜨기도 했다. 파리 7대학에서 11장의 설문조사를 마치고 학교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햄버거를 먹을 때 감자튀김과 케첩 대신에 마요네즈를 곁들여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파리의 날씨는 매우 변덕스러웠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씨떼 섬(Ile de la Cité)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강력한 바람과 비라고 생각했지만 우산손잡이를 잡던 손이 따가워서 봤더니 알갱이가 보이는 갑자기 쏟아지는 우박 탓에 우산 머리 부분이 부러져 꺾였다.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건물 아래로 우박을 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 우리의 상황이 너무 웃겼는지 배가 아플 정도로 계속 웃음이 났다. 비록 우산은 망가졌지만 한국에서는 경험 할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 생겼다. 씨떼 섬으로 이동하기 전에 우리는 역에서 파리 교통패스인 나비고(Navigo)를 발급받았다. 증명사진이 필요한 교통카드이기 때문에 파리 지하철역에 위치한 증명사진 찍는 기계를 이용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파리 지하철은 듣던 대로 깨끗하지 않았다. 한국과는 다르게 스크린도어가 없었고, 지하철 문은 수동이었고, 지하철역에서 화장실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지하철 역 마다 구걸하는 사람은 항상 있었다. 처음 와본 팀원들은 처음보는 파리 지하철의 모든 것에 신기해 하는 것 같았다.
파리 지하철을 타고 씨떼 섬으로 이동하니 언제 우박이 내렸다는 듯이 희한하게도 날이 갰다. 우리 팀은 파리 시청의 외관을 구경했다. 오래되었지만 건물의 고풍스러움과 웅장함에 놀라웠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방문했다. 시청만큼이나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에 감탄했다.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내부를 천천히 구경 할 수 있었다. 테러 위험 때문인지 경찰과 군인이 곳곳에 위치했었고, 방문한 곳 마다 한 명 한 명 모두 짐 검사를 했다. 현장의 긴장감을 느꼈다. 그리고 핸드폰 사용을 위해 근처에 위치한 프랑스 통신사 중 한 곳인 부이그(Bouygues)에서 팀원 두명의 핸드폰 유심 칩을 먼저 구매했다. 이후 반복되는 악천후 때문에 숙소로 곧장 귀가했다.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설문지 정리를 간단히 마쳤다. 설문지에 응해주는 학생들이 과연 많을까, 무시하지는 않을까, 지나가는 학생들한테 과연 우리가 말은 걸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목표량을 채울 수 있어서 성취감이 들었다. 설문지를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고 출출해진 우리 팀은 숙소 바로 옆에 있던 모노프리(Monoprix)라는 마트에서 저녁식사를 위한 장을 봐왔다. 식재료의 저렴한 가격 덕분에 스테이크를 구웠고 토마토 미트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었다. 우리 팀은 팀워크가 아주 잘 맞았다. 서로 식사 준비를 하겠다고, 식사가 끝나면 서로 설거지 또는 정리를 하겠다고 하는 굉장히 화기애애한 팀이었다. 식사 후 다 같이 모여서 다음날의 일정을 논의 하고 9시쯤 모두 잠이 들었다. 아마 첫 설문조사에 부담을 가지고 긴장한 탓이었던 것 같다.
⦁탐사 3일차 (2월 4일 목요일, 파리)
파리 셋째 날 아침 일찍, 우유와 오헝지나(Orangina, 오렌지 맛 탄산음료)와 요구르트, 크루아상과 애플파이로 이른 아침식사를 했다. 우리는 갓 나온 빵에 감탄하면서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했다. 준비를 하고 10시쯤 지하철을 타고 오페라(Opéra)역으로 이동했다.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를 구경하고, 홍합과 감자튀김(Moules frites)으로 유명한 레옹(Léon)이라는 식당으로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프랑스의 홍합은 한국과 맛이 비슷했다. 한 냄비에 가득 담겨 나오는데, 양이 적을 줄 알았는데 다 먹고 나니 무척 배가 불러서 만족스러웠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물티슈를 찾기 바빴다. 결국 팀원 중 한명이 한국에서 가져온 물티슈 한 통을 항상 챙겨 다녔다. 식사를 마친 후에 다른 팀원 두명의 핸드폰 개통을 위해 근처에 위치한 또 다른 통신사인 SFR 통신사로 이동해서 유심 칩을 구매했다. 그리고 우리는 프랑스에 온지 3일째라 한국음식이 슬슬 그리워지게 되었다. 근처에 위치한 에이스 한인마트에 방문해서 컵라면을 구매하기도 했다. 파리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많아서 그런지 한인 마트의 규모가 꽤 컸다. 각종 양념, 라면, 과자, 아이스크림이 구비되어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지나 오르세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집시 소매치기 일당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4명이기도 하고 그들의 수법을 익히 들어왔던터라 종이를 들이밀며 말을 걸며 빠르게 다가오며 정신을 쏙 빼놓는 그들을 아주 철저히 무시하고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들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거나 혼자 있었더라면 소매치기를 당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섬뜩했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 팀은 항상 4명에서 같이 움직이기로 다짐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프랑스의 여러 관광지에 방문할 수 있는 티켓인 뮤지엄 패스를 4장 구매해서 입장했다. 오르세 미술관 내부에서는 각자의 시간을 갖고 작품들을 감상하기로 했다. 여러 종류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폭이 넓었다. 오르세 미술관 내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파트는 인상주의 작품들이 전시된 곳이었다. 중고등학생 때 미술시간에 배웠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고 프랑스는 예술가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꼈다. 2시간정도 작품들을 감상하고 팀원들을 만나 휴식을 취했다.
미술관에서 나와서 그롬(Grom)이라는 곳에서 젤라또를 맛봤다. 현지에서 매우 유명한 곳이라 항상 줄을 가게 바깥까지 길게 서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는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마비용(Mabillon)으로 이동했다. 마비용에서 라클레트(Raclette)와 퐁듀를 먹었다. 라클레트는 한국에서 먹거나 우리가 생각하는 치즈를 녹여 찍어먹는 퐁듀랑은 다른 방식이었다. 치즈와 햄, 감자가 나오면 치즈와 햄을 달궈진 판에 녹이고 구워서 판에서 밀어내서 접시 위에 떨어뜨린 다음 함께 싸먹는 방식이다. 그리고 고기튀김은 생고기와 기름 냄비가 준비되면 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기름에 스스로 튀겨먹는 방식인데, 사실 주문하려고 했던 건 그게 아니어서 식사가 잘못 준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맛있게 잘 먹었다.
그리고 루브르의 밤인 “밤부르”를 보러 갔다(우리 팀은 이렇게 여러 관광지에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건물에 비춰진 빛이 만들어내는 야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이전까지는 파리에 온 것이 그다지 실감 나지 않았었는데 루브르의 야경을 보니 입이 쩍 벌어지고 파리에 온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팀원들끼리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즐거워했다. 그다음 콩코드와 샹젤리제를 거쳐 숙소로 귀가 했다. 파리는 야경이 매우 아름다운 도시였다. 숙소에서 간단히 다음날 계획을 수정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탐사 4일차 (2월 5일 금요일, 파리)
파리에서의 넷째 날은 아쉽게도 수강신청과 우리의 탐사 일정이 겹쳐있었고, 8시간의 시차로 인해서 수강신청을 기다리기엔 다음 날의 일정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밤을 샐 수가 없어 수강신청을 성공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늦은 아침, 샹젤리제 거리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파리에 온 이후 처음으로 비가 오지 않는 날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구름이 잔뜩 껴 뿌옇고 추웠지만 우리는 “날씨가 좋다!”를 반복했다. 샹젤리제 거리를 구경하고 프랑스의 롯데리아격인 패스트푸드점 퀵(Quick)에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그다음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을 지나쳤는데 그곳에 있는 대관람차(La Grande roue)는 겨울에만 있고 3월 1일에 철거를 한다고 한다. 에펠탑 앞의 샹 드 막스(Le Champ de Mars)의 잔디밭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는데 이는 겨울에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아 프랑스는 시설관리를 아주 엄격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으로 이동해서 뮤지엄 패스로 입장해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다른 박물관에 비해 규모가 작은 반면, 벽 한 가득 전시된 모네의 수련을 실제로 볼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인터넷에서 보던 이미지로는 크기가 가늠이 안됐는데 생각보다 큰 작품에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프랑스의 국회의사당(Assenblée Nationale)을 방문하고 근처에서 휴식을 취했다. 프랑스에 온 지 4일밖에 안됐지만 우리 팀은 한식이 그리워서 한인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다음 날 마르세유로 이동하기 때문에 캐리어 세 개의 짐을 맡겨야했다. 그래서 잠시 숙소로 이동해 짐정리를 다시 꼼꼼히 하고 파리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는 프랑스학과 학우의 집에 짐을 맡기게 되었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되어 쌍미셸(St. Michel)에서 에스카르고(escargot, 달팽이)와 뵈프 부르기뇽(bœuf bourguignon, 쇠고기·양파·버섯 등을 적포도주로 조리한 음식)을 먹었다. 에스카르고의 식감은 골뱅이와 비슷했고 소스가 아주 맛있었다. 그리고 뵈프 부르기뇽은 와인 향과 맛이 나는 갈비찜 같았다. 그리고 HD 라는 가게에서 밀크 쉐이크를 마시고 씨떼 섬의 야경을 감상하러 이동했다. 파리는 낮과 밤의 느낌이 아주 다른 묘한 도시였다. 심지어 몇몇 장소는 낮에 갔던 곳이 맞는 것인지 서로에게 되묻기도 하고 알아차리는데 한 참이 걸리기도 했다. 시청과 노트르담 대성당은 밤이 되니 건물의 형태가 더 자세히 보여서 웅장함이 배가 되었다. 이렇게 밤씨떼 섬을 보고 개선문을 올라가기 위해 이동했다. 개선문을 올라가는 것 또한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를 하고 뮤지엄 패스를 확인한 후에 올라갈 수 있었다. 가로 폭이 좁은 계단 탓에 올라가는 길이 촘촘하고 힘듦에도 다음 사람이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발걸음을 멈추고 쉴 수가 없는 구조였다. 다리도 아프고 숨도 가빠졌지만 끝까지 올라가서 보이는 경치에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게 전부 잊어졌다. 밤 9시 정각에 반짝이는 에펠탑과 파리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와서 다음날 마르세유로 가는 기차 시간을 정확히 숙지하도록 반복하고, 개인 소지품을 다시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날 이른 출발을 위해 마르세유에서의 일정을 간단히 논의하고 일찍 취침했다.
⦁탐사 5일차 (2월 6일 토요일, 파리 → 마르세이유)
이 날은 파리에서 프랑스 최고의 항구 도시인 마르세이유(Marseille)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한국에서 7시 35분 행 TGV를 예약했기에 제 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서 우리는 새벽 5시에 기상을 해야 했다. 에어비앤비 숙소를 정리하고 있던 와중에 누군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 그 사람은 우리 숙소의 바로 아래층에 거주하고 있는 분인데, 이른 시간부터 소음이 나서 항의하려고 올라온 것이었다. 그 분은 매우 화난 상태였지만 팀장의 유연한 대처로 다행히 잘 넘어갈 수 있었다.
에어비앤비 숙소를 체크 아웃하고 우리 팀은 TGV를 타기 위해서 리옹역(Gare de Lyon)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역 내에는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해 온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출발 시간을 기다리면서 리옹역 안에 있는 빵집에서 크루아상 네 개를 사서 아침으로 먹고 TGV에 탑승했다. 빠르게 달리는 TGV 안에서 창문으로 바라본 프랑스는 정말 멋졌다. 드넓은 들판, 그 사이사이에 보이는 작은 집들, 푸른 하늘. 화려했던 파리만큼이나 파리를 벗어난 프랑스 외곽도 매력적으로 느껴졌으며 마르세이유로 간다는 것에 설렘을 더했다.
마르세이유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3시간 정도가 걸렸고, 11시에 드디어 마르세이유에 도착했다. 마르세이유는 이민자의 도시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국가에서 온 수많은 이민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범죄율도 높은 도시이기 때문에 우리는 파리 숙소를 떠나기 전부터 안전에 주의를 기울였었고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 본 마르세이유는 정말 아름다운 항구 도시였다. 우선 우리는 프랑스에 도착하고 5일 만에서야 이곳에서 햇빛을 볼 수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이민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건물들은 대부분 상아색 계열을 띄고 있었고 높이가 낮아 골목마다 햇빛이 강하게 비췄다. 항구도시답게 거리마다 갈매기들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가 예약해놓은 에어비앤비 숙소는 파니에 지구(Le quartier du Panier)에 위치해있었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파니에 지구는 사전 조사해 본 결과 프랑스인들과 마그레브 이민자들이 어울려 살고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상점 앞에서 프랑스인과 북아프리카 이민자들 몇 명이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어울려 대화하는 모습은 파리에서도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신기했으며 마르세이유에 도착했음을 실감나게 했다. 우리는 숙소로 가는 길에 마르세이유 내 북아프리카 시장(Marché Noailles)이 있어서 이곳을 탐사하고 가기로 했다.
이 시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좁은 시장 골목이었다. 또한 가게 주인과 손님 모두 북아프리카 이민자들로만 구성되어있었으며, 프랑스인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역에서부터 보이지 않던 이민자들을 이곳으로 모아놓은 줄 착각할 정도였다. 시장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재래시장과 흡사했다. 식료품가게와 생선가게가 대부분이었고, 북아프리카전통 음식이나 식료품도 종종 보였지만, 프랑스식 피자와 샌드위치 등도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 모두들 일렬로 지나가는 우리를 쳐다봤고, 너무 무서웠던 우리는 시장 탐사를 짧게 마치고 최대한 조용히 그 골목을 지나갔다.
숙소를 체크인한 다음에 우리는 전반적인 마르세이유 탐사를 위해서 구 항구(Le vieux port)와 마조르 대성당(Cathédrale de la Major)을 갈 준비를 했다. 소매치기의 표적이 될 만한 물건은 최대한 숙소에 두고, 숙소에서부터 각 탐사지역의 이동 경로를 확인한 뒤에 숙소를 나섰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구 항구의 선착장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되어있었고 마르세이유인들의 생활의 중심지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 배를 타면 이프(If) 섬과 프리울(Frioul) 섬으로 갈 수 있다. 선착장 건너편에는 식당들과 카페들이 줄지어 있었고 주택들도 보였다. 주택 외벽에는 프랑스어가 아닌 이민자들의 언어로 된 그래피티가 있기도 했다. 바닷바람이 매우 불어왔지만 햇볕은 따사로워 구 항구를 구경하러 나온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구 항구를 따라서 위쪽으로 올라가다보면 국립 지중해 박물관인 《MuCum》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다 한 가운데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독특한 디자인을 하고 있었고, 무료로 입장 가능한 전망대가 있어 아름다운 지중해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이민자들의 도시답게 박물관에는 프랑스어와 함께 아랍어로 적힌 안내문이 있었다.
이 박물관에서 우측으로 가면 마조르 대성당이 나온다. 로마네스크와 비잔티움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규모가 매우 컸으며, 특이하게도 외부와 내부가 모두 줄무늬로 이뤄져 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성당 안에는 성가 음악이 틀어져 나와서 엄숙한 분위기는 더욱 배가 되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지중해와 어우러진 마르세이유의 전경은 장관이었다.
탐사를 마치고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서 구 항구 근처의 식당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주말이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지나자마자 사람들로 북적였던 식당들은 대부분 문이 닫혀있었다. 이 도시를 대표하는 생선 요리인 부이야베스(Bouillabaisse)를 먹을 계획이었지만, 우리는 근처에 보이는 지중해식 뷔페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마르세이유를 더 탐사하고 싶었지만 안전상의 문제와 이른 아침부터 도시를 이동하느라 팀원 모두가 피곤했기 때문에, 우리는 숙소로 가는 길에 있는 모노프리에서 장을 보고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낮에도 구 항구 근처 외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질 않았는데 해질 녘에도 마찬가지였다. 숙소로 가는 길에 위험할 수도 있는데 광장에서 해맑게 축구를 하고 있는 북아프리카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안전하게 숙소로 복귀한 뒤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의 일정을 준비했다.
⦁탐사 6일차 (2월 7일 일요일, 마르세이유)
기상 예보에서 오전에만 내린다고 했던 비가 오후가 되도록 그치질 않았다. 이 날은 엑스-마르세이유 대학교(Université Aix-Marseille)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파니에 지구에 있는 시장을 탐사하기로 했던 예정이었기 때문에 더욱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맑은 날에도 위험하다고 느낀 마르세이유를 우천 시에 돌아다니는 것은 안전상의 이유로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팀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고민 끝에 비가 그치면 파니에 지구를 탐사하기로 일정을 변경했다. 그리고 담당 교수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일정을 수정하는데 양해를 구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행히 숙소 근처에 있는 식당들은 일요일에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퀵(Quick)에서 햄버거를 포장해 와서 늦은 아침을 해결했다.
이후 우리는 비가 그칠 때까지 숙소에서 파리 7대학에서 실시했던 설문조사를 중간 정리하기로 했다. 각각의 문항에 대한 답변을 통계를 내서 답변의 방향성을 대략 정리해보기로 했다. 아직 설문 조사를 한 번밖에 진행하지 않았고 판단을 내리기엔 표본 수가 적었기 때문에, 지금은 대략적인 답변 통계만 내는 것이 앞으로의 객관적인 판단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우리가 설문조사를 실시한 연령층은 20-23세가 절반을 차지했으며 그 다음으로 10-19세가 많았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한국학과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자국의 역사 교육에 대부분 만족한다고 답변을 해주었지만, 놀랍게도 마그레브 역사 교육 만족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답변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11명 모두 마그레브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답변해줬으며, 마그레브 역사를 처음 배운 시기로는 중, 고등학생 때가 절반을 차지했다. 마그레브 역사에 대해 배운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묻는 주관식 질문에는 공통점이 많이 보였다. 식민지배와 알제리 내전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 마그레브에 속하는 국가 중에서 자주 언급된 국가는 알제리였는데, 튀니지나 모로코는 언급이 거의 되지 않아 의아했다.
설문조사를 정리하면서 우리는 설문지 답변 설정에 오류가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역사 교육 만족도를 묻는 질문의 답변에는 보통(Moyen)이 있었는데, 마그레브 역사 교육에 대한 질문에서 '보통'이라는 답변이 50%를 넘었다. 그래서 우리는 프랑스 대학생들이 마그레브 역사 교육에 긍정적인 편인지 부정적인 편인지 판단을 내리기가 애매해졌다. 이미 한국에서 설문지를 모두 인쇄해왔기 때문에 이 답변을 삭제해서 설문지를 다시 작성할 수도 없었다. 이 문항이 탐사 주제에서 가장 중요했기에 중간 결과가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다음 설문조사를 실시할 리옹에서는 '보통'이라는 답변이 덜 나오길 바랄 뿐이었다. 프랑스의 전반적인 역사 교육에 대한 생각을 묻는 문항에도 '보통'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대부분 다른 답변을 선택해줬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설문 조사를 정리하고 나니 오후 5시였다. 비가 완전히 그쳐 맑은 하늘이 보였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이 날 일몰 시간은 오후 6시경이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파니에 지구를 탐사하기로 결정하고 숙소를 나섰다. 일요일이라서 사람들이 가족들과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어제보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더욱 없었다. 우리 팀이 이 도시를 방문하기로 했던 이유는, 마그레브 이민자들이 모여 형성한 지역을 방문해봄으로써 그들만의 정착 방식과 프랑스인과 마그레브 이민자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체류해있던 날이 주말이었기 때문에 거리에서 사람들을 발견하기가 어려워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일보다 주말에 외출을 더 많이 하는데, 프랑스인들은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미리 인지하지 못하고 계획을 세운 잘못이었다. 그래서 해 질 녘의 마르세이유 경치만 바라보다가 근처에서 젤라또를 사먹고, 유일하게 영업을 하고 있던 라파예트에서 저녁 장을 본 뒤에 숙소로 복귀했다.
마르세이유에서의 탐사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무척 컸지만, 파리에 있을 때보다 더욱 많은 마그레브 이민자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짧았지만 그들만의 시장에 가고, 여유롭게 여가 시간을 즐기고, 프랑스인들과 어울리는 그들의 실생활도 엿볼 수 있었다. 어느 도시에서보다 마르세이유 방문은 마그레브와 관련된 탐사 주제를 직접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마그레브 이민자들의 정착 역사를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이곳을 걷기만 해도 그들이 정착한 모습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프랑스 같지 않지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는 면에서는 가장 프랑스다웠던 마르세이유. 이 다양한 매력을 지녔던 도시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음날 갈 도시인 리옹으로 갈 준비를 한 뒤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탐사 7일차 (2월 8일 월요일, 마르세이유 → 리옹)
아침 일찍부터 우리는 마르세이유에서 프랑스 제 2의 수도라 불리는 리옹(Lyon)으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숙소를 체크 아웃하고 8시 24분에 리옹으로 출발하는 TGV를 타기 위해서 마르세이유 기차역으로 향했다. 아침에 거니는 마르세이유의 거리는 평화로웠으며 한적했다. 출근 시간대였지만 아직 가게들은 영업 준비 중이었으며, 출근하려고 바삐 뛰어가는 직장인도 보이질 않았다. 같은 나라임에도 수도인 파리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프랑스 남부에 위치해있기에 마르세이유 날씨는 항상 좋았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마르세이유의 작은 개선문을 지나칠 수 있었다. TGV를 타기 전 역 안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맥모닝 세트를 사서 아침을 먹었다.
마르세이유에서 리옹까지 TGV로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이었고, 우리 팀은 10시 30분쯤에 마침내 리옹에 도착했다. 매일 햇빛이 비추던 마르세이유와는 달리 리옹의 날씨는 파리처럼 흐린 날씨를 유지했다. 리옹은 마치 파리의 외각 지역을 보는 것 같았다. 대도시라서 대부분의 시설과 교통수단 등을 갖추고 있었지만, 파리보다는 사람들이 적었으며 고요한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가 예약한 에어비앤비 숙소는 리옹 파르디유(Part Dieu) 역에서 지하철로 3정거장 떨어진 장 마세(Jean Macé) 역에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다음날 설문 조사를 진행할 리옹 2대학과도 인접해있었다. 리옹에 처음 와 본 팀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날은 리옹에 대한 전반적인 탐사를 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우리 팀은 1일 동안 무제한으로 리옹의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교통권을 구매하고 숙소로 향했다. 리옹 에어비앤비 숙소는 그동안 머물렀던 숙소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4인이 사용하기에 매우 넓었으며 전등을 켜지 않아도 채광이 좋았다. 짐을 정리하고 휴식을 취한 뒤에 우리는 본격적으로 리옹 탐사에 나섰다.
먼저 우리 팀은 리옹의 중심에 있고 리옹에서 가장 큰 광장인 벨쿠르 광장(Place Bellecour)에 도착했다. 광장의 중앙에는 루이 14세의 기마상이 있었다. 이 기마상의 루이 14세는 신발을 신고 있지 않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가설이 있다고 한다. 광장 주변에는 식당과 상점들, 관광안내소가 즐비해 있었으며, 이곳에도 프랑스 어디에나 있는 대관람차가 있었다. 관람차 정중앙에는 리옹의 상징인 사자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또한 벨쿠르 광장에는 생텍쥐베리 동상이 있었다. 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왕자와 함께. 이는 생텍쥐베리의 고향이 리옹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리옹 카톨릭 대학교에서 어학 연수중인 본교 학생들을 만났고, 그들은 리옹 탐사를 도와주기로 했다. 벨쿠르 광장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골목이 연결되어있었는데, 우리는 그 중 부숑(Bouchon) 거리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부숑이란 리옹의 전통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을 일컫는데 코르크 마개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식도락으로 유명한 리옹의 명성대로 아무 식당에 들어갔음에도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우리는 푸르비에르 언덕(Fourvière Hill)으로 가기위해서 구시가지(Vieux Lyon)로 향했다. 오후인데도 구시가지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질 않았고 광장도 텅 비어 있었다. 동행한 본교 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이른 아침이나 저녁 즈음에 사람들이 북적이며 활기찬 분위기로 변한다고 했다. 박물관의 나라 프랑스답게, 구시가지에도 미니어처 박물관 같은 작은 박물관들이 종종 보였다. 구시가지를 빠져나오면 리옹의 큰 두 개의 강 중 하나인 손강을 볼 수 있었다. 손 강의 다리 너머로 고전적인 느낌의 주택들이 줄지어 있었다.
우리는 푸르비에르로 올라가기 위해서 케이블카를 탔는데, 이 케이블카는 언덕을 올라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남산타워 케이블카와는 달리 지면에 붙어 있었고 언덕을 따라서 기울어져 있었다. 이 케이블카를 타면 터널을 통과하여 약 2분 만에 언덕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케이블카를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자태를 풍기고 있는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이름은 같지만 각 도시에서 본 노트르담 대성당들은 그 도시만의 특색을 갖추며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푸르비에르 성당은 리옹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한다. 세계 2차 대전 때 독일의 침공을 받지 않도록 사람들은 성모마리아에게 기도했는데 신기하게도 리옹은 침공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성모마리아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지은 것이 이 성당이다. 비잔티움 양식으로 세워진 이 성당 곳곳에는 리옹을 대표하는 사자상이 있었다. 다른 성당과는 다르게 내부는 전부 황금으로 도배가 되어있었고, 다양한 모양의 성모마리아상이 전시되어있었다. 때문에 왠지 모르게 푸르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은 엄숙하지만 포근한 두 가지의 대조적인 느낌을 줬다. 푸르비에르 언덕은 리옹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멋진 리옹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푸르비에르를 오기 전에는 몰랐는데, 리옹의 대부분의 건물들 은 빨간색 지붕이었다. 빨간 건물들이 언덕을 뒤덮고 있었으며 좁은 골목길도 보였고, 중간 중간에 높이 솟은 첨탑도 볼 수 있었다.
전반적인 리옹 탐사를 마친 후 우리는 리옹 안내를 해준 본교 학생들과 헤어졌다. 다음날 리옹 2대학을 가야해서 준비할 것이 많았기에, 우리는 모노프리에서 저녁 장을 보고 숙소로 복귀했다.
⦁탐사 8일차 (2월 9일 화요일, 리옹)
전날에 이른 아침부터 도시를 이동하고, 하루 종일 탐사하느라 피곤했던 우리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오전에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했다. 리옹 2대학에서 진행할 설문지와 복주머니를 챙기고 오후 12시쯤에 숙소를 나섰다. 우리는 현재 리옹 2대학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는 본교 학생을 만났고, 그녀는 자신의 수업을 청강해볼 것을 제안했다. 프랑스 대학의 수업을 들어보는 것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우리는 청강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청강한 수업은 국제관계에 관한 수업이었는데, 이 날은 냉전체제에 대한 강의를 했다. 수업 내용을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프랑스 현지에서 들어본 수업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프랑스인이었지만, 종종 아시아인들도 보였다. 그러나 마그레브인은 찾기 힘들었다. 한 학기동안 이 학교를 다닌 그녀도 마그레브 학생들을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대답했다.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그녀의 안내에 따라 리옹 2대학의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아니어도 이곳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어서 설문조사를 하기에 적합했다. 본격적으로 설문조사를 하기 전에, 우리는 설문조사 대상들을 탐색할 겸 늦은 점심식사도 할 겸 점심을 먹었다. 이전에 설문조사를 했던 파리 7대학에서는 그 곳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는 본교 학생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막상 우리끼리 설문조사를 하려고하니 긴장이 되었다. 옆 테이블에는 프랑스인 다섯 명이 식사를 마치고 얘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들의 눈치를 보고 있던 것이 티가 났는지 그들과 눈이 계속 마주쳐서 용기를 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그들도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우리는 설문조사를 부탁하는 내용의 피켓을 펼치면서 우리가 한국에서 온 학생들이며, 설문조사에 참여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들은 흔쾌히 우리의 부탁을 받아줬으며 설문지에 관심을 갖고 읽어보기 시작했고 그들끼리 내용에 대해서 토론하기 시작했다. 파리 7대학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프랑스인들은 평소에도 토론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부탁하면 묵묵히 설문지에 응답해주는 모습을 주로 볼 수 있는데, 이와 달리 한 사람씩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는 것을 보면서 프랑스인들의 토론 문화가 실생활에도 뿌리 깊이 박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한국에서 준비해온 복주머니 선물을 매우 기쁘게 받아주었다. 설문조사용 선물을 준비해가라고 피드백 해주셨던 담당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카페테리아 내 유일한 동양인인 우리가 피켓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몇몇 프랑스인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감을 갖고 학생들에게 설문에 응해줄 것을 부탁했고, 그들은 신기한 듯이 미소를 지으며 설문지를 작성해 줬다. 덕분에 리옹 7대학에서 우리는 총 16장의 설문조사를 해낸 뿌듯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의 예상보다 학생들이 응대를 잘해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우리는 다음날 파리로 이동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 장을 보고 일찍 숙소로 돌아갔다.
⦁탐사 9일차 (2월 10일 수요일, 리옹 → 파리)
정들었던 리옹의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파리로 가는 TGV에 몸을 실었다. 기차를 타고 두시간 정도 지났을까, 우리는 파리 리옹역에 도착했다. 리옹에 머무는 2박 3일 내내 비가오고 우중충한 날씨만 계속되었는데 파리에 도착하니 마치 잘 다녀왔냐는 듯 하늘이 새파랬다. 겨울의 유럽에서 파란 하늘이라니 감격스러웠다. 파리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10시 반이였다. 숙소에 가기 위해 호스트에게 연락을 했는데 호스트가 체크인은 오후 4시부터라고 해서 5시간 가량이 붕 뜨게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어서 우리는 적잖이 당황을 했다. 쉬이 돌아다닐 수도 없었던 것이 우리에게는 캐리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하다가 발견한 것이 수하물 보관함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짐을 모두 보관함에 보관한 뒤에 아직 가지 못했던 몽마르뜨 언덕을 방문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Blanche역에 내리니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물랑 루즈(Moulin Rouge) 였다. 말로만 듣던 곳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이렇게 조용한 곳이 밤에는 시끌벅쩍한 곳으로 변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기도 했다.
물랑 루즈를 본 뒤 몽마르뜨로 가는 길에 있는 2014년 바게뜨 1등 빵집에서 바게뜨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몽마르뜨 가는 길목에 있는 고흐의 생가와 사랑의 벽(Le mur des je t'aime)를 보았다. 사랑의 벽에는 “사랑해”라는 말을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하여 써 놓아서 여러 가지 언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모국어 앞에서 사진을 찍으러 그 언어를 찾아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랑의 벽을 본 뒤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했다. 좋은 날씨 덕에 몽마르뜨 언덕 위의 사크레 쾨르(Sacre Coeur) 성당은 더욱 아름다웠다. 원래 몽마르뜨 언덕은 팔찌 강매 상인들이 판을 치는 것으로 유명한데 경찰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어서 그런 상인들은 눈에 띄지 않았고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언덕을 올라간 뒤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당 내부는 흔히 보는 노트르담 대성당과는 굉장히 달랐다. 안타깝게도 성당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운 좋게도 실제로 진행되는 미사를 볼 수 있었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팀원들은 저게 불어가 맞냐며 왜 한 단어도 들리지 않느냐며 자신들의 실력을 자책하기도 했다.
몽마르뜨 언덕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오페라로 향했다. 연신 빵 종류만 먹어 아시아 음식이 그리웠던 우리 팀은 오페라(Opéra)역에 위치한 일식당으로 향했다. 우리는 돈부리, 일본 라멘을 먹었고 후에 저녁에 먹을 고기를 구입했다. 그 후 숙소에서 쉬다가 파리에 사는 프랑스학과 학우가 저녁을 해주겠다며 자신의 기숙사로 우리를 초대해 보쌈, 감자튀김, 막국수, 닭고기 요리를 해주었다. 불어 공부에 대해 심층적이고 유익한 대화를 나눈 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바로 잠에 빠졌다. 캐리어를 계속 옮기느라고 피곤했던 탓이다.
⦁탐사 10일차 (2월 11일 목요일, 파리)
간단하게 근처 빵집에서 산 크루아상과 바게뜨로 아침식사를 하고 우리는 INALCO(Institut National des Langues et Civilisations Orientales, 국립동양학대학교)로 이동했다. 파리 7대학이나 리옹 2대학에서의 설문조사는 학생식당에서 진행하였으나, 우리가 INALCO에 갔을 때엔 점심시아간 즈음이라 자리가 만석이라 외부인인 우리 팀이 테이블 하나를 꿰차고 있기가 굉장히 애매했다. 결국 우리는 식당과 계단의 중간 복도 사이에서 출국 전 미리 준비한 종이 카드를 들고 서있었다. 사실상 이방인이 복도 한 복판에서 그렇게 서있으면 이상한 눈길로 볼만도 한데 INALCO의 학생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호의적으로 우리를 대해주었다. 이를테면 ‘설문내용은 뭐예요?’, ‘한국 전통 사탕이라니 궁금해요!’라는 말을 건네며 우리에게 다가와 긴장을 완화시켜주었다.
INALCO에서의 설문조사 이후 우리는 라틴지구에 위치한 팡테옹(Panthéon)으로 향했다. 정면에서 보이는 글귀가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 조국이 위대한 이들에게 사의를 표한다.
팡테옹을 가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프랑스의 식민지 노예제도를 폐지한 프랑스의 정치가 빅토르 쉘세르(Victor Schœlcher)가 안치되어있기 때문이였다. 팡테옹 내부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준 것은 ‘푸코의 추(진자)’였다. 이는 프랑스의 과학자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가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해낸 장치였는데, 프랑스 국립 과학 연구원에 있던 것이 끊어졌고 현재는 복제품이 팡테옹으로 옮겨져 1995년 이후 영구적으로 진동하고 있다. 위대한 이들(Grands hommes)이 안치된 곳으로 더 들어가자 조금은 차가운 공기가 우리 몸을 감쌌다. 이윽고 우리는 빅토르 쉘세르의 묘를 발견했다. 알고보니 그는 남미에 위치한 프랑스의 해외주(Région d’Outre Mer)인 프랑스령 기아나의 수도 카옌에 거대한 동상이 있었다. 동상의 손가락은 반쯤 벌거벗은 한 아프리카계 흑인에게 눈부신 미래를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탐사 11일차 (2월 12일 금요일, 파리)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이미 우산은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여서 들고 나갔다간 결국엔 짐만 될 것이 뻔하기에 우리는 파리지앵처럼 비를 맞고 가기로 했다. 숙소와 지하철역의 거리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뿐더러 파리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언제 비내리는 거리를 우산 없이 거닐 수 있을 것인가.
이민역사박물관에 도착해 티켓을 구입하려했는데 직원이 우리의 나이를 물어본다. 각자 나이를 말하고 티켓 4장을 달라고 하자 직원이 웃으며 18세 ~ 26세의 학생은 무료란다. 티켓에 적힌 ‘Musée 18-26, Gratuit’라는 글자를 본 순간 우리 네명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하고 본격적인 견학을 시작했다.
이민역사박물관은 생각보다 굉장히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였다. 유럽의 이민 역사만을 서술해놓은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파리에 왜 흑인들이 많은지, 프랑스로 이민온 북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어떻게 프랑스 문화에 융화될 수 있었는지와 같은 의문들을 풀어주었던 곳이 바로 이 프랑스 이민역사박물관이였다.
박물관에는 다양한 시청각자료 또한 구비되어 있었는데, 그 중 우리는 이민자들이 어떤 루트를 통하여 프랑스로 들어오게 되는지 서술하는 영상을 보았다. 서술자는 실제로 북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넘어온 남성이였다. 그에 따르면 북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가기에 가장 가까운 유럽의 영토는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이지만 이 곳에는 수많은 레이더가 있어 통과하기가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했다. 그들은 코르시카 섬으로부터 이탈리아 본토로 넘어간다고 했다. 당시 그의 수중에는 돈이 한푼도 없어서, 이탈리아에서 장기간 체류한 이후 프랑스로 이동하는데 성공했다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서구 열강과 같이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던 국가는 약탈을 통하여 부를 챙길 수 있었지만, 이와는 반대로 부를 찾아 식민지를 떠나서 지배국(프랑스)으로 들어온 이주민들로 인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초기의 이민 문화는 지배국(프랑스)의 경제적 착취에 초점이 되어있기 때문에 피지배국 출신의 소위 말하는 ‘말 잘 듣는’ 자들에게 포상으로 프랑스로 이민와 살게 하여 빈곤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이 사실이 와전되어 ‘우리 모두는 누구나 다 프랑스에 가서 살 수 있다!’라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빈곤해지는 이민 문화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탐사 12일차 (2월 13일 토요일, 파리)
어제에 이어 가랑비가 내리던 토요일. 우리는 마지막 목적지인 이슬람 사원으로 향했다. 사원은 우리 숙소와 거리가 얼마 차이나지 않아 도보로 이동하였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 처음 본 이슬람 사원은 분명 파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파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분명히 프랑스로 탐사를 왔는데, 프랑스와는 사뭇 다른 이국적인 느낌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건물 외관은 전체적으로 순백색과 청록색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우리는 보통 ‘파리’라고 하면 오스만양식의 건물을 생각하기 일쑤인데 이슬람사원은 그 외관부터가 ‘파리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알고 보니 파리의 이슬람사원은 무데하르 양식(Mudejar, 로마네스크와 고딕, 르네상스에 이슬람 양식이 혼합)이라는 독특한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벽면은 이슬람 특유의 기하학적인 무늬가 세공되어있었으며, 그 화려함과 엄숙함이 우리를 압도하여 이루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또한 사원 내부 곳곳에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과 서적 등으로 다양하게 꾸며져있었다. 입구에서 우측을 보면 커다란 예배당이 하나 있는데, 모두들 신을 벗고 조용히 예배를 드리고 있어 차마 사진으로 남기기가 어려웠다. 우리 팀은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 그들의 이 엄숙한 모습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진지하게 다가왔다. 이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본 미사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엄숙함이였다.
이슬람사원 탐사를 마치고 우리는 내일 출국을 위해 숙소로 돌아갔다. 입고갈 옷과 간단한 세면도구만을 남겨둔 채 캐리어를 싸고 탐사 2주동안 파리와 마르세유, 리옹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용지 및 영수증을 정리했다.
⦁탐사 13일차 (2월 14일 일요일,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
길고도 짧았던 2주간의 프랑스 탐사를 마치고 한국을 귀국하는 날. 비행기는 오후 1시에 이륙 예정이라서 우리는 오전 9시 즈음 일어나 부랴부랴 씻고 10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RER을 타고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해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파리발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탐사 종료 (2월 15일 월요일, 대한민국 인천국제공항)
오전 8시 30분 경, 우리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공항 리무진을 탔다. 각자의 탐사 소감은 이러하다.
10학번 류정현 : 1년간의 프랑스 체류를 마치고 돌아온 첫 학기라 프랑스가 많이 그리웠는데, 이번 탐사를 통해 프랑스에 다시 한 번 갈 수 있게 되어 정말 기뻤다. 어학연수를 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고, 탐사를 준비하고 실제로 프랑스를 탐사하며 프랑스와 마그레브의 관계에 대해 보다 깊게 알 수 있게 되었다. 13학번 배준영 :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지 반년 가량 만에 다시 프랑스에 가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많이 했었고,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세 명의 다른 팀원들과 함께 가는 것이라 안전 면에서 긴장을 많이 했다. 우려와는 다르게 다행히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전 프랑스 거주 경험이 있는 10학번 류정현 학우와는 다르게 14학번 강영주, 최신아 학우는 프랑스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고, 팀원 모두 편한 탐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였다. 이번 로컬리티 챌린지 프로그램을 통해 이전에 프랑스에 체류하던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혹은 가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추가로 발견할 수 있었고, 마그레브라는 새로운 분야에도 한 번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번 탐사 프로그램이 앞으로 내가 하고자하는 통번역과 커리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우리 프랑스학과 사람들과 이런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준 로컬리티 센터와 프랑스학과 교수님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14학번 강영주 : 프랑스에 처음 방문하는 만큼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기왕이면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자는 목표를 정했었는데, 설문조사를 예상보다 많이 채울 수 있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인 친구와의 실제적인 대화를 통해 수업시간에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직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좋았다. 14학번 최신아 : 처음으로 간 프랑스라서 책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아직 서툴지만 프랑스어를 통해 또래의 프랑스 학생들과 소통해볼 수 있던 귀중한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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