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1기] [마그레브] - 잃어버린 두 시간 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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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6-03-25 12:21 | Read | 3,033 |
본문
탐사테마
모로코의 교육과 청년사회
테마에 대한 여러 고민을 하던 중 단순하게 우리와 같은 모로코의 대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며 사는 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대부분의 한국의 청년들은 좋은 대학에 가기위해 초․중․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취업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 한다. 모로코의 청년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으며 어떤 교육을 받고, 그들은 미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테마를 '교육과 청년사회'로 정했다.
테마에 관련된 가장 주된 활동은 현지에서 학생들(주로 대학생, 또는 고등학생)과 청년들을 직접 만나서 사전에 준비했던 설문지를 통해 조사를 하고, 함께 얘기를 나누어 보고, 또 그들의 문화도 함께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설문지는 먼저 우리의 소속과 로컬리티 챌린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주관식의 8문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은 설문지의 8문항이다.
1. 전공이 무엇입니까 ? Quelle est votre spécialité ?
2. 왜 그 전공을 선택했습니까 ?
Pourquoi est-ce que vous choisissez cette spécialité ?
3. 장래 희망이 무엇입니까? Qu'est-ce que vous voulez faire dans la vie?
4. 요즘 고민이 무엇입니까? (Ces jours-ci) Qu'est-ce qui vous inquiète?
5. 당신의 수업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무엇입니까?
Quelle langue est-ce que vous utilisez dans votre cours?
6. 선호하는 언어와 그 이유는? (불어와 아랍어 중)
Quelle langue préférez-vous le français ou l'arabe? et pourquoi?
7. 가장 나쁜 국내 사회 문제는 무엇입니까? 의견을 제시해 주세요.
Quel est le pire problème social dans ce pays? Donnez-nous votre opinion.
8. 청년이란 ( )다. Les jeunes sont ( )
이렇게 설문지의 문항들은 그들이 배우는 전공, 장래희망, 고민 등 학생으로서 학업과 미래, 사회에 대한 생각을 알아 볼 수 있는 질문들과 마그레브 지역의 특징인 아랍어와 프랑스어 사용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아랍어와 프랑스어 사용에 관한 질문을 첨가했던 이유는 사전에 탐사 테마의 키워드 중 하나인 '교육'에 대해 조사하던 중 발견한 모로코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한 보고서를 보게 되었는데 그 보고서에서 제시한 문제점 중 하나가 과거 프랑스어 사용 인구와 아랍어사용인구간의 단절과 대립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젊은 세대의 학생들의 프랑스어와 아랍어에 대한 생각과 실제로 두 언어가 현재 모로코 사회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사용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또한 우리 팀은 이러한 프랑스어 사용 인구와 아랍어 사용인구 간의 단절과 대립이라는 문제와 더불어서 그렇다면 현재 마그레브트랙으로 아랍어를 배우고 있는 우리에게 실제로 마그레브 지역에서 아랍어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방문하는 지역마다 아랍어와 프랑스어의 사용비중이 어떻게 되는지,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떤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탐사를 해보았다.
우리 팀은 이 설문지를 방문하는 도시마다 설문의 대상이 되는 대학생 또는 청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방문 했다. 학기 초에 계획했던 학교 방문은 우리의 탐사 시기가 학교가 문을 닫는 방학기간이었기 때문에 무산되었다. 그래서 방문하는 도시마다 도서관 또는 카페, 그 외 젊은이들이 주로 모일만한 기타 여러 장소들을 방문했고 설문조사를 했다. 또 처음 보는 현지인들에게 설문지를 나눠주고 설문조사를 한다는 것이 어려울 거라는 예상도 했었기 때문에 사전에 페이스북으로 현지에 사는 친구들과 연락을 해 두었다. 그리고 모로코에 도착해서 실제로 그 친구들과 만나서 함께 관광명소를 둘러보기도 하고 탐사 주제에 대한 얘기, 또 그 외 같은 대학생, 젊은 세대로서 공감할 수 있는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모로코의 여러 학생들과 청년들을 직접 만나보고 그들과의 대화, 설문조사를 통해서 설문조사를 통해 알고자 했던 점들, 그리고 그 외에도 모로코의 젊은 세대들의 생각과 문화를 심층적으로 알아보고, 경험해 볼 수 있었다.
탐사목표
우리의 탐사 첫 번째 목표는 모로코의 대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며 사는 지 알아보는 일이다. 한국의 청년들도 많은 생각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모로코의 청년들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고민을 통해 마그레브 지역에 대한 이해를 높임과 동시에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청년들에게도 무언가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실제 탐사를 통해 많은 숫자는 아니였지만 다양한 전공과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면서 모로코의 청년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놀라웠던 것은 대부분의 청년들이 실업문제를 걱정하는 동시에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목표는 모로코의 지역 별 교육 격차에 대해 알아보는 일이였다. 모로코는 국내 총생산 아프리카 내 4위, 일인당 국내 총생산 4천 달러를 넘는 아프리카 내에서 비교적 부유한 편에 속하는 국가이다. 그러나 문맹률이 52%라는 높은 수치에 달하고 있다. 마그레브 지역을 공부하는 우리들로서는 이러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현지에서 직접 파악하고 모로코의 미래인 청년들을 인터뷰하면서 현 상황을 파악해보고자 한다.
운좋게 직통버스가 아닌 수많은 도시를 경유하는 버스를 타게 되면서 조금이나마 다양한 도시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와닿았던건 대도시와 소도시간의 격차가 정말 크다는 것이었다. 소도시만 가도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서도 모로코 지역 격차의 현실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세 번째 목표는 모로코 내 존재하는 아랍어와 프랑스어의 비중과 중요성이다. 현재 우리는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있지만 마그레브 지역을 함께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마그렙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아랍어를 배우고 있다. 탐사를 떠나기 전 우리는 프랑스어로도 충분히 소통히 가능한 지역이라면 왜 우리는 아랍어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이번 탐사를 통해 모로코 내에서 프랑스어와 아랍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길거리 간판부터 시작해서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언어까지, 우리가 방문하는 여러 도시들을 통해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 예정이다.
대도시에는 프랑스어와 아랍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었으며 놀라웠던 것은 많은 모로코인들이 간단한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프랑스어는 간판에서도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도시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거의 아랍어를 사용했다.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었다.) 또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1학기에 배운 서툰 아랍어를 사용하니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해줬다. 프랑스어로도 충분히 소통히 가능했지만 아랍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사실 약 8박 9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우리팀의 테마를 완전히 소화해내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팀은 모로코라는 낯선 이국 땅에서 우리와 같은 청년들을 만나서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학생이라는 것과 청년이라는 공통점만으로 공감하며 서로 마주하며 상대방의 국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많은 이야기를 통해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탐사내용
•탐사 1일째(8월 10일 월요일, 카사블랑카)
8월 10일 월요일 프랑스 파리를 거쳐 모로코 카사블랑카로 아침 9시 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두 시간 전에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던 우리 팀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이른 시간인 6시쯤에 공항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더 이른 시간에 갔음에도, 출국 전에 여러 가지 수속 등 이것저것 하다 보니 시간이 조금 늦어져 본격적인 챌린지 시작 전부터 팀원들 모두가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오랜 비행 끝에 긴장은 잊혔고 대신에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모로코 현지 시각으로 8월 10일 월요일 오후 5시, 모로코 카사블랑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숙소로 향했다. 한국의 기차와 비슷한 모로코의 ‘ONCF’라는 교통수단을 타고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무인자동발매기를 이용해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이후에 파리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기위해 고생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모로코에서는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쉽게 표를 예매한 것이었다. ONCF는 1등석과 2등석이 나뉘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창문이 청소가 잘 되어있지 않아서 카사블랑카의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국과 너무나도 달랐고 팀원들을 설레게 했다. 역의 바로 앞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풀고 난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음날 일정에 대해 간단히 의논했다. 그리고 보다 나은 일정 소화를 위해 일찍 취침을 했다.
•탐사 2일째(8월 11일 화요일, 카사블링카)
모로코에서의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에서 조식을 먹었다. 여기서 먹었던 조식이 이번 탐사 중에 묵었던 호텔의 조식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는 흔치 않은 열대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아프리카풍’의 정원에서 테이블 밑의 발아래에서 돌아다니는 고양이들과 함께 먹었던 그 시간은 정말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조식을 마친 후 나갈 채비를 하고 호텔 앞에 있는 트램(Tramway)정류장으로 향했다.
트램은 한국의 지하철과 비슷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모로코는 전반적으로 교통수단이 잘 되어있는 편이다. 특히 트램은 다른 교통수단들에 비해 청결했고 보다 소음이 전혀 없으며 안전했다. 여기에서도 무인 발매기를 이용해서 쉽게 표를 끊었다. 호텔 앞에서 트램을 타고 모로코몰 방향으로 30분쯤 가다 보면 카사블랑카 해변 근처에 있는 마지막 정류장 ‘ain diab plage terminus’이 나온다. 그곳에 내리자마자 광활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탐사 일정 중에 만난 예상치 못했던 파란 해변은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팀원들 모두 발걸음을 멈췄고 모로코의 아름다운 전경을 눈과 사진 속에 담았다. 그러고 나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원래의 일정이었던 도서관으로 향했다.
미리 검색해두었던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한참을 걸으니 도서관의 간판이 보였다. 대낮이었음에도 골목은 고요했고, 도서관을 관리하시는 분이 쭈뼛쭈뼛 서성이는 우리를 보고는 다가오셨다. 외국인인 우리가 도서관 출입이 가능한 지에 대해 물었지만, 출입 가능의 여부가 아닌 도서관 자체가 방학기간 동안에는 개방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로코가 여름을 맞아 모든 학교들이 방학기간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도서관까지 방학을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모로코 학생들은 여름에 어디서 공부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후에 계획되어있던 곳들도 대부분 도서관이었던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잃었다.
급하게 의논하던 중에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옆을 지나가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불러 세웠다. 그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당연히’ 여름에는 학교나 도서관은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혹시 모르니 국립 도서관에 가보라며 친절하게도 가는 길을 설명해 주었다. 그 학생은 도서관 관리사 분과는 아랍어로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에게는 처음부터 불어로 이야기했다. 이후에 더 정확한 의사전달을 위해 영어를 할 수 있느냐 물었는데 바로 영어로 답해주기도 했다. 여름방학 때 참여했었던 썸머스쿨에서 만난 모로코 친구도 아랍어와 불어,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했었는데 모로코의 학생들 대부분이 그러한지 궁금해졌다.
길을 따라 가는 중에 하산 2세 모스크가 있었다. 이곳은 카사블랑카에 오기 전부터 유명한 건축물이라고 들어 알고 있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모스크를 잠깐 구경하면서 그늘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그러던 중에 인터뷰를 할 만한 청년들을 찾아보았다. 대부분이 관광객들이었고 노인들과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그 중에 히잡을 쓴 젊은 여자 친구들이 보였고, 그 친구들에게 용기 내어 다가갔는데 마침 그들이 막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도서관에서도 그리고 처음으로 어렵게 용기 낸 순간에도 예상대로 되지 않자, 우리는 의욕을 잃고 모스크 아래에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동양인인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니하오’, ‘곤니찌와’라며 인사를 걸기도 했다.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쉬다가 모스크와 가까이에 위치한 국립 도서관으로 가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여름 방학에는 모로코의 모든 교육과 관련한 기관들이 휴가임을 또 한 번 확인했다. 도서관 건물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우리 팀원들은 허무함을 느꼈지만 아직 탐사 첫 날일 뿐이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모로코에 오기 전 한국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 조사하고 준비했기에 나름대로 잘해나갈 것이라 기대했었는데 막상 탐사를 시작해보니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서 어려움이 계속 되었다. 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들은 아니었고 중간 중간 친절한 사람들도 만나기도 하며 잘 헤쳐 나갔던 우리였다. 오후 3시쯤 늦은 점심을 저녁을 대신해서 먹었다.
블로그에 맛있는 집이라며 소문난 ‘릭스카페’에 찾아갔는데 첫 모로코 식당이라 어떤 메뉴를 시켜야 할지 고민이었다. 다행히도 식당의 메뉴판에도 불어와 영어가 함께 적혀있어서 직원의 도움이 필요하진 않았다. 굉장히 비싼 식사를 하고 나와서 우리는 청년들이 많이 있을만한 곳을 의논했다. 택시기사님께 젊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을 물었는데 우리 팀의 숙소가 있는 카사보야져 역을 추천해 주셨다. 숙소 앞에는 기차역과 작은 공원이 있었는데 우리는 곧바로 트램을 타고 그곳으로 이동하였다. 공원에는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들이 프랑스 전통놀이인 pétanque(뻬탕크)를 하고 계셨다. 그 공원에 있던 모로코의 여자들은 그 수가 적었고 대부분이 히잡을 쓰고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거나 공놀이나 뻬탕크를 구경하고 있었다. 마치 남자와 여자들의 행동이 분리되어 정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공원에서는 젊은 청년들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우리들은 벤치에 앉아 그들을 구경하다 보니 해가 저물었고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하다는 판단을 해서 호텔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 당시 하루를 돌아봤을 때 큰 수확이 없어보였고, 다들 서로를 위로했지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엔 또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했고 아직 시작하는 단계였기에 함께 의지를 다지며 다음 일정에 대해 의논하며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 후에 일찍 취침을 하였다.
•탐사 3일째(8월 12일 수요일, 카사블랑카 → 라바트)
카사블랑카에서 라바트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조식을 먹고 ONCF역으로 향했다. 전날에 무인발매기 옆에 서있었던 ONCF 직원의 도움을 받고 표를 미리 사둔 덕분에 제 시간에 맞춰 어렵지 않게 라바트행 기차 앞에 도착했다. 기차에 올라타기 전 승강장은 사람들로 붐볐고 그 때문에 팀원 한 명만 기차에 올라탔는데 자동문이 닫혀버렸다. 그대로 출발해 버릴까봐 다들 무척이나 당황했는데 지켜보던 현지인이 문에 있던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주었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을 잘 몰라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다. 기차의 2등석은 좁지 않았고 이동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었다.
라바트에 도착해 역 앞에 나오자마자 미리 페이스북으로 연락했던 현지 친구 2명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 친구들은 라바트에 있는 국립 모하메드 5세 대학에서 영어공부를 하는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의 영어실력은 수준급이었고 아랍어는 물론 프랑스어도 능통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카사블랑카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모로코에서 여름에 도서관의 문을 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았을 때, 그 둘은 동시에 입을 모아 “여름이니까!”라는 아주 간단한 대답만 해주었다. 여름에는 공부가 아니라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그냥 즐기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고 잠깐이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했다. (조금은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우리 팀은 라바트에서도 국립 도서관에 가기로 미리 정해놓았지만 그 친구들에게 청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을 추천받았고 라바트에서의 하루를 그들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먼저 꽤 오랜 시간을 걸어 핫산 탑으로 도착했다. 이곳은 아직 미완된 모스크가 있는 곳인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관광객들이었고 인터뷰나 설문조사를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가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연예인 혹은 구경거리가 되었고 여기저기서 같이 사진찍자며 다가왔다. 우리 팀원들은 인터뷰하러 간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는지 모른다. 그곳에 마련된 기도실에는 많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외국인인 우리는 출입이 불가했다. 모로코에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심지어 식당, 또는 공원에도 기도실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 팀원들은 이번 탐사기간 동안에 탐사의 테마와 관련된 부분들에 더욱 집중해야하긴 했지만 모로코의 이모저모를 보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우리가 공부해나갈 지역에 직접 가서 책이나 인터넷으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정말 값진 시간들이 되었다.
모스크를 둘러본 후에 우리는 친구들에게 조금 조용한 곳에서의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부탁했다. 그들은 라바트 신시가지 남동쪽에 있는 로마시대의 유적인 Chellah(쉘라)를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싶어 했고 마침 그곳이 조용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다고 했다. 또한 먹을 것을 미리 사서 그곳에 있는 잔디밭에 앉아 여유롭게 식사를 하자며 우릴 인도했다. 그곳까지 Petit taxi를 타고 이동했는데 정원이 3명이라 나눠서 타야만 했다. 택시안의 공간이 꽤 여유로웠는데 3명만 타야하는 것이 조금은 불만스러웠지만 어쩔수 없었다. 쉘라는 들었던 대로 참 크고 아름답고 조용한 곳이었다. 관리자분께 허락을 맡고 잔디 위에서 피크닉 분위기를 내며 식사를 했다. 처음 앉았던 자리에는 모기가 너무 많아서 얼른 식사를 끝내고 일어났다. 우리는 쉘라를 돌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먼저 한국에서의 청년실업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며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그들은 바로 모로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실업문제에 대해서 공감했지만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모로코에서는 당장에 주변에 그저 일할 수 있는 어떤 것이든 가리지 않고 취업한다고 말했다. 취업을 해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다고 한다. 보통 꿈이나 미래를 생각해보지 않으며 그럴 여유도 없고 필요성 또한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미래보다는 현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일단은 대부분이 일하는 나이가 되면 ‘ 되는대로’ 취업을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또한 설문지를 작성하며 나눴던 대화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랑스어가 왜 제2외국어인지 모르겠다.”였다. 라바트에서 우리는 꽤 많은 거리를 걸었는데, 그곳의 건물들이 유럽의 건물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에 대해 물어보니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모로코는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던 당시 세워졌던 건물과 철도 등으로 인해 해방이 된 지금에도 해마다 프랑스에게 돈을 주고 있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프랑스는 여전히 모로코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프랑스어를 배운다고 한다. 특히나 상류층으로 가면 갈수록 프랑스어를 많이 배우고 지방의 가난한 지역에서는 실제적으로 아랍어를 많이 쓰며 프랑스어를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설문지에 아랍어와 프랑스어 중에 아랍어를 선호한다며 그 이유를 “아랍어가 모로코 본래의 민족성과 정체성에 부합하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또한 앞으로 우리가 가게 될 쉐프샤우엔이라는 도시에서는 스페인 식민 지배를 받아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 점에 있어서 의문을 제기하고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한국 또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일본어를 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모로코에서의 프랑스어 사용은 당연한 일이 아닌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계속됐던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마그레브지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불어를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랍어를 배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함을 깨달았다.
인터뷰를 한 후에 조금 더 많은 청년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바트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정말 청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추천해줬던 곳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라바트 시내에 위치한 기차역이었다. 그곳에는 기차 출발시간까지 꽤 긴 시간이 남아있는 청년들이 많아서 설문조사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탐사 이틀 만에 정말 많은 청년들을 만났고 생각보다 모로코 친구들이 타인 그리고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촉박한 것이 아닌 이상 흔쾌히 설문에 응해줬고 친근하게 대화를 걸어주었다. 때문에 우리 팀원들은 자신감을 조금 더 얻게 되었고 쉽지 않았던 지금까지의 탐사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덜어낼 수 있었다. 아쉽지만 라바트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과 헤어진 후에 이른 아침부터 이동하고 계속해서 걸어 다녔던 우리는 호텔에서 쉬며 다음날에 있을 쉐프샤우엔으로의 이동을 준비했다.
•탐사 4일째(8월 13일 목요일, 라바트 → 쉐프샤우엔)
우리는 라바트에서 쉐프샤우엔으로 이동했다. 전날 성공적인 탐사를 마친 후 팀원 모두 피로가 쌓인 데다 쉐프샤우엔으로 가는 CTM 버스(모로코 국영버스) 출발시간이 오후1시45분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했다. 11시경 Malak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한 이후 쁘띠택시(Petit Taxi) 두 대를 두명씩 나눠 타고 라바트의 CTM버스 정류장인 Gare Routiere Kamra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약 10분정도 지난 후 우리는 12시경 버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은 CTM전용 정류장과 일반 고속버스터미널로 나뉘어져 있었다. 사전에 계획했었던 도착 시간이 정확하고 시설도 잘 갖추어진 CTM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우리가 도착 했을 땐 쉐프샤우엔으로 가는 표가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 당황스러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에 있는 일반 고속터미널로 가 보았다. 일반 고속터미널은 CTM정류장과 다르게 매우 시끌벅적하고 입구에서 행선지를 묻는 호객꾼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호객꾼들을 따라가면 팁도 줘야하고 뭔가 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불안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쉐프샤우엔’이라고 대답하고 따라갔다. 쉐프샤우엔으로 가장 빨리 출발 하는 버스가 몇 시에 출발하는지, 혹시 표가 또 매진되진 않았을까, 오늘 안에 쉐프샤우엔에 도착 할 수 있는 버스가 있을까, 걱정을 하며 호객꾼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호객꾼은 여기저기 버스기사 들에게 물어보더니 막 출발하려던 한 버스를 세우며 우리에게 이 차를 타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버스 터미널을 생각해서였을까, 매표소에서 시간을 알아보고 티켓을 구매하는 절차없이 바로 출발하려던 버스를 잡아 태우니 또 한번 당황스럽기도 하고 바로 출발한다니 예상외로 순조롭게 일이 풀려 기분이 좋았다. 바로 기사에게 약 300디람 정도 지불하고 짐을 싣고 버스에 올라탔다. 시끌벅적하고 질서 없는 버스정류장을 빠져 나오자 우여곡절 끝에 오히려 더 일찍 출발하게 된 우리 팀은 한 숨 돌리게 됐다. 일반 고속 버스여서 에어컨도 없고 의자도 좁고 조금 열악하긴 했지만 모로코 날씨가 건조해서 창문을 열고 달리면 그리 덥지 않았다. 일찍 출발하기는 했지만 CTM버스와 다르게 쉐프샤우엔으로 직행하지 않고 여러 정류장을 들려서 승객들을 태우고 가느라 예상 이동시간보다 더 길게 6시간 정도 걸려서 쉐프샤우엔에 도착했다.
CTM버스가 예상보다 빨리 매진되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쉐프샤우엔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 마자 다음 일정의 도시인 마라케시로 가기위한 버스표를 알아보았다. 쉐프샤우엔과 마라케시는 거리가 굉장히 멀었기 때문에 사전에 우리팀은 쉐프샤우엔-카사블랑카-마라케시 이렇게 카사블랑카를 경유해서 갈 것으로 계획했었다.(카사블랑카를 경유하는 것이 가장 이동시간을 단축 시키는 것이었고 경유 시 다음 버스 대기 시간도 가장 짧았다.) 그러나 다음 이동 일정인 토요일 카사블랑카를 경유하는 버스가 이미 매진돼 있었다. 다시 한번 당황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정류장 직원은 우리에게 페스를 경유해서 갈 것을 추천해 주었다. 페스를 경유할 때 문제는 페스에서 5시간 정도 대기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프리미엄 야간버스를 이용하고 다음날 새벽에 마라케시에 도착하게 돼서 예상 일정보다 하루 늦게 마라케시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 팀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될 시 프리미엄버스 때문에 추가비용이 발생하고 또 무엇보다 마라케시에서의 호텔을 하루 취소하게 되어서 수수료가 붙게 되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난감한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고민 끝에 우리팀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직원의 추천대로 일정을 수정하고 마라케시에서 첫날 묵게 될 숙소에는 양해를 구한다는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쉐프샤우엔은 산간지형이었기 때문에 오르막길이 많았고 길도 복잡했다. 버스정류장에서 그랑택시를 잡은 후 50디람으로 가격을 정하고 호텔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렸을 때 우리는 구 메디나(Ancienne Medina)의 입구에 있었다. 호텔 앞까지 가고 싶었지만 구 메디나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길과 계단의 연속이었다. 길도 미로 같아서 도저히 호텔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호객꾼의 도움으로 8시 경 겨우 호텔에 도착했다. 호객꾼은 무려 팁으로 100디람을 요구했다. 복잡하고 오르막길이 많은 곳이라 힘들긴 했지만 예상치 못한 가격에 당황했다. 게다가 호객꾼은 혹시 마리화나를 피냐고 묻고 같이 피자고 권유하기도 했다. 당연히 단호하게 거절했다. 모로코는 이슬람 국가여서 젊은 사람들이더라도 종교에 충실할 줄 알았고, 마리화나와 같은 마약류에 엄격할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았다. 참고로 이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쉐프샤우엔은 모로코 내에서 'cannabis'라 불리는 대마초의 주요 생산지역 중 하나라고 한다.
험난했던 도시 이동 일정을 다 마친 후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우타 엘 하맘 광장에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버스타고 오는 길에 멀리서 보았을 땐 산속에 있는 작은 도시 같았지만 광장에 나오니 사람들로 북적이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대부분 야외 식당들이었고 가장 중심적인 모스크(사원)과 쿠토비아(요새 유적)이 있었다. 모스크에서는 기도를 하러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팀은 한 야외식당에서 모로코 전통음식인 쿠스쿠스와 타진을 먹었다. 힘들었던 하루를 마치고 여유를 갖는 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에 식당에서 일을 하는 한 청년이 우리에게 영어로 혹시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보고, 한국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말을 걸었다. 질문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한국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비자관련해서는 정확히 알 지 못해서 잘 대답해 주지 못했지만 지난 여름학교 때 이태원 이슬람사원 방문 시 길에서 마주쳤던 모로코인 아르바이트생과 식당에서 만난 모로코인 요리사가 생각이 나서 한국에서 일하는 모로코인 들을 본 적이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거기서 일하는 것이 더 나은 인생(better life)가 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고맙다고 했다. 모로코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니 반갑기도 했고 마지막에 한 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탐사 주제와 관련한 내용들을 우리가 더 알아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팀원 모두가 피곤 했고 늦은 저녁시간이라 아쉽게도 호텔로 복귀해야 했다.
•탐사 5일째(8월 14일 금요일, 쉐프샤우엔)
우리는 본격적으로 쉐프샤우엔에서의 일정을 진행했다. 호텔 조식시간에 맞춰 오전 9시경 일정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호텔 직원이 추천해준 스페니쉬 모스크(Spanish Mosque)이었다. 스페니쉬 모스크는 쉐프샤우엔의 동쪽 끝에 위치한 높은 언덕에 세워진 흰 색 건물로 이곳을 방문하면 쉐프샤우엔의 아름다운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했다. 스페니쉬 모스크는 쉐프샤우엔이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스페인인들이 지역 주민들을 위해 건설했지만 이들에 반감을 지니고 있던 주민들이 이용하지 않아 버려졌다고 한다.
언급됐듯이 쉐프샤우엔은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모로코 일부 지역 중 한 곳이었다. 그래서 인지 이 지역의 주민들은 주로 아랍어와 스페인어를 했다. 심지어 곳곳에 있는 큰 안내 지도에도 프랑스어인 ‘Vous etes ici'가 아닌 'Usted esta aqui'라고 적혀있었다. 스페니쉬 모스크로 가는 길에 들린 작은 가게에서도 물을 사려고 했는데 “뻬께뇨? 그란데?(pequeño? grande?)”(스페인어로 ‘작다’와‘크다’)라고 물었다.
스페니쉬 모스크로 가는 길에 ‘쉐프샤우엔’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염소 뿔 모양의 큰 바위 산봉우리를 볼 수 있었고(쉐프샤우엔의 ‘샤우엔’이라는 단어는 베르베르어로 ‘뿔’을 의미한다.) 염소 떼와 농사를 짓는 몇몇 지역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모스크에 다다르자 정말 아름다운 쉐프샤우엔의 전경이 내려다 보였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쉐프샤우엔이라는 도시가 산골에 자리 잡은것이 한 눈에 들어왔고 쉐프샤우엔의 가장 큰 특징인 하늘색의 건물들이 부분부분 보였다. 마침 날씨도 좋아서 하늘도 파랗고 바람도 살짝 불고 탁 트인 풍경 지난날 쉐프샤우엔으로 오는 길에 겪었던 난감한 상황에 얼어있던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 그 풍경을 말로 다 설명 할 수는 없다. 힘들게라고 온 바람이 있었다. 12일의 로컬리티 챌린지 기간 동안 가장 즐거웠던 순간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렇게 잠깐의 여유를 즐긴 후 우리는 탐사테마를 위해 다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우타 엘 하맘 광장으로 향했다. 스페니쉬 모스크에서 내려가는 길에 염소 떼 옆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한 할머니가 우리에게 푸르스름하고 작은 통통한 양파처럼 생긴 어떤 과일을 먹어보라고 손짓을 했다. 처음보는 과일이라 조금 이상했지만 호기심이 있었던 나는 한번 맛을 보았다. 작은 씨가 있고 달콤하면서도 약간 새콤한 것이 참외와 토마토와 포도를 섞은 맛이었다. 마음에 들어서 “Cuanto es?”(스페인어로 가격을 묻는 표현)라고 가격을 물었더니 할머니는 “아샤라”(아랍어로 10을 의미함)라고 대답하셨다. 그렇게 10디람을 지불하고 그 과일 한 봉지를 구매했다. 팀원의 절반은 그 과일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과일은 'fig'라고 불리는 무화과열매였다.
우타엘 하맘 광장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우리는 탐사 설문지 인터뷰 활동을 재개했다.전 날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청년이 떠올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식당으로 갔다. 정말 아쉽게도 그 청년을 만나 볼 수는 없었지만 또 다른 청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에 잠시 점심을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친절했던 식당 주인 아저씨께 양해를 구하고 점심을 마친 그 청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는 25살이었고 학생은 아니었다. 라바트에서와 같이 설문지를 주고 싶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가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쉐프샤우엔이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곳인 줄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국가의 공용어 중 하나인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것이 조금 당황스럽고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관광객을 제외한 청년들이 대부분 그랬다. 오히려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을 상대해서인 지 영어를 했다. 우리가 만났던 젊은 호텔 직원도 주로 프랑스어보다는 스페인어나 아랍어를 사용했다.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 불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전날 도착하자마자 버스정류장 표를 구매할 때 만났던 CTM버스 직원, 호텔직원, 카스바(고대 요새 유적) 인포메이션 직원 뿐이었다.
그래서 쉐프샤우엔에서는 아쉽게도 설문지 작성을 하기 어려웠다. 관광지가 주요 산업인 이곳의 청년들은 대부분 호텔이나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어린아이들도 물건을 팔거나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주요 관광지들이 있는 구 메디나 밖을 벗어나면 고등학교가 있긴 했지만 여름방학기간이라 문을 닫았고 도서관이라도 찾아가보려 했지만 도서관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걸어서 메디나 밖을 탐사하던 중 라바트에서 보았던 Institut Francais간판을 발견하기도 했다.
저녁이 되어 또다시 저녁을 먹으려고 메디나에 있는 우타엘 하맘 광장으로 갔다. 이슬람은 일요일이 쉬는 날이 아니라 사실상 주말이 금요일과 토요일이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였는지 금요일인 이날 저녁에는 사람들이 북적댔고 식당들은 시끌벅적하고 종업원들은 바빴다. 우리는 수많은 식당 호객꾼들을 마주쳤고 큰 고민 없이 그들이 안내하는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유명관광지여서 인지 세계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앉아 저녁을 먹는 것도 많이 보았고, 해가 져서 시원해진 광장에 모여 휴식을 취하는 주민들로 북적댔다. 교육 기관도 쉽게 찾을 수 없었고 쉐프샤우엔에서 언어의 문제로 설문지 작성에는 실패했지만 구두인터뷰의 결과 이곳 청년들은 라바트에서와는 달리 대부분 관광업에 종사(호텔, 식당, 여행에이전트, 호객꾼)하고 있다는 걸 알았고 프랑스어가 모로코의 공용어라고 해서 어느 곳에서나 빈번히 쓰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탐사 6일째(8월 15일 토요일, 쉐프샤우엔 → 마라케시)
우리는 쉐프샤우엔에 도착했던 첫날 변경했던 일정대로 쉐프샤우엔에서 페스를 경유하여 마라케시로 가는 이번 로컬리티 챌린지 중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되는 도시 이동을 하게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오전에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했다. 묵었던 호텔 로비에 있는 방명록(방명록에는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남긴 글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한글로 쓰인 글들 도 꽤 있었다.)에 한글로 짧은 글을 남기고 떠났다. 호텔이 위치한 구 메디나를 벗어나와 택시 두 대를 잡아 두 명씩 나눠서 타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두 대 합해서 30디람을 지불했다.
CTM버스는 짐(캐리어)을 실을 때 추가 비용이 발생했는데 마치 비행기를 탈 때와 비슷하게 버스를 타기 전 카운터에서 짐을 부치고 짐에도 행선지가 적힌 기다란 스티커를 부착했다. 버스에 타니 이전에 탔던 일반 고속버스와는 다르게 확실히 에어컨도 잘 갖춰져 있었고 의자도 편안한 편이었다. 앞자리에는 어떤 꼬마가 앉아 있었다. 그 꼬마는 동양인인 우리가 신기했는지 뒤돌아서 계속 쳐다보았다. 나는 그 꼬마가 귀여워서 말을 걸어보았다. 외관상으로는 모로코인 같았지만 쉐프샤우엔에서 스페인어 쓰는 사람을 많이 봐서 "tu parle francais?"라고 먼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un peu."라고 대답했다. "Tu a quel age?"라고 묻자 “huit ans"라고 대답했다. 옆에 앉아있던 아버지와는 아랍어로 얘기하는 것 같았는데 우리나라 나라 나이로 9~10살(8살이라고 대답했는데 모로코는 만으로 나이를 얘기하기 때문에)인 아이가 나라 공용어인 프랑스어를 조금한다고 하는 걸 보니 프랑스어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 본격적으로 배우는 것 같았다. "Tu habite ou?"라고 묻자 잘 못 들었는지 머뭇거렸다. 옆에 있던 꼬마의 아버지도 내 질문을 들었는지 꼬마에게 뭐가 얘기를 해주었다. 꼬마는 그 제 서야 내 질문을 이해했는지 미소를 지으며 ”Fes“라고 대답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꼬마의 미소가 기분 좋게 만들었다. 같이 사진도 찍었다. 더 활짝 웃어주었다.
페스로 가는 길은 4시간30분이나 걸렸지만 바깥 풍경을 구경하느라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창문 밖으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연 풍경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쉐프샤우엔을 벗어나자 산은 거의 없었고 완만하고 넓은 언덕들이 많았다. 잔디는 누렇고 나무는 푸르렀다. 언덕 위에는 양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중간에 한번 20분 정도 휴게소에 들린 것을 제외하고 4시간 을 달려 페즈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꼬마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Nous arrivons dans 10minutes"라고 말해주었다. 페즈에 도착하니 오후 5시30분 정도가 되었다. 우리는 페즈에서 5시정도 대기한 후 밤10시30분 출발해 7시간동안 마라케시로 가는 프리미엄야간CTM버스를 타야 했다. 5시간이면 그리 적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예전에 계획했다가 취소했던 페즈를 구경해 볼 수 있었지만 캐리어를 맡길 곳이 없어서 이동이 불편했기 때문에 구 메디나까지 들어가 볼 수 없었다.
저녁을 먹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 동안 음식이 입맛에 안 맞아 힘들어하는 팀원들을 위해 신 메디나에 위치한 맥도날드로 향했다. 맥도날드로 가는 길에 한 청소년 무리가 우리에게 프랑스어로 말을 걸어왔다. 맥도날드로 가는 길을 안내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어려보였지만 여러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쉐프샤우엔에서 봤던 호객 꾼 생각도 나서 그냥 거절했다. 그들의 도움 없이 우리는 맥도날드를 찾아갔다. 한국에서 보아왔던 상가 건물에 있는 작은 맥도날드를 생각했었는데 이곳에서는 큰 2층 건물 하나 자체가 맥도날드였다. 1층 밖에는 야외 테이블과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고 2층에 가니 야외 테라스도 있었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되어있었다. 가족단위로 외식을 나온 모습들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사람들이 북적댔다. 우리는 각자 한국에서 즐겨먹던 메뉴들을 시켜서 맛있게 먹고 혹시 학생들과 청년들에게 설문조사를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커피나 디저트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이전 일정 도시였던 카사블랑카, 라바트, 쉐프샤우엔의 크고 작은 카페들에서는 예상외로 젊은 세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곳 맥도날드에 오니 우리나라의 카페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을 보게 되었다. 대학생 또는 청소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간단한 디저트를 먹으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노특북을 가져와서 함께 과제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처음보는 사람들한테 말을 걸어서 설문조사를 부탁하려 하니 긴장도 되고 거절하지는 않을 까 걱정도 조금 됐다. 어떻게 말을 걸 지 불어로 생각해보고 연습도 했다. 가장 부탁을 잘 들어 줄 거 같고 우리 또래처럼 보이는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학생들이 모여있는 테이블에 가서 펜과 설문지를 보여주며 "Excusez-moi"라고 말을 걸었다. "Nous avons des questionaires.."라고 준비했던 말을 이으려 했지만 생각보다 설문지에 관심을 갖고 읽어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부탁을 받아주었다. 그들은 신기한 듯이 미소를 지으며 설문지를 작성해 나갔고, 서로 얘기도 나누면서 재밌어하는 분위기였다. 왜 이런 걸 하는 지 묻기도 했다.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 졌다. 그 친구들은 대학생들이었고 우리가 불어로 말을 걸었는데 더듬더듬 말을 하는 것이 불편했는지 혹시 영어를 하냐고 물었다. 그 이후로는 영어로 말을 했던 것 같다. 작성을 다 마치고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들 중 한명이 자신의 휴대폰으로도 찍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맺자고 제안했다. 안 그래도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어서 시선이 집중됐었는데 이런 행동들을 하니 주변에서 더 관심을 보였다. 먼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설문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었다. 순조로운 설문 조사에 기분이 좋아서 우리도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그러던 중 옆 테이블에 젊은 청년 두 명이 수다를 떨며 앉았다.
여느 모로코인들과 같이 유일한 동양인인 우리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먼저 "Where are you from?"하고 물었다. '코리아'라고 대답을 했고 인상이 둘 다 선해보였고 우리 또래 같아보여서 대화를 이어갔다. 얘기를 나누어 보니 한명은 모로코인 의대생이었고 한명은 프랑스인 대학생이었다. 모로코인 의대생 친구에게 설문지를 작성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들어주었다. 곧 CTM버스터미널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다. 맥도날드에서 버스터미널까지는 20분 정도 걸렸는데 어두운 밤거리를 캐리어를 끌고 돌아갈 생각을 하니 조금 걱정이 되어 택시를 타자고 상의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정말 반갑게도 그 두 친구가 자기네들이 차를 가져왔으니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설문지도 작성해 주었고 얘기를 나눠보니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서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친구들의 차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 예전에 해외여행을 간 관광객이 차를 태워준다는 현지인의 말을 따랐다가 실종된 사건들을 인터넷에서 본 것이 떠올랐다. 정말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문 쪽에 앉은 나는 창문을 열어놓고 언제든 문을 열고 나갈 수 있게 손잡이를 꼭 잡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의심했던 것이 미안해 질 정도로 친구들은 친절하게 우리를 터미널까지 안전하고 빠르게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고 페이스북을 통해서 계속 연락하기로 했다. 그 친구들에게 감동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순조롭고 알차게 페즈에서의 5시간을 보내고 야간 프리미엄 CTM버스에 올라탔다. 프리미엄 버스여서 의자를 큰 각도로 젖힐 수 있었다. 이전에 탔던 버스들 중에서는 가장 편했지만 그래도 역시 눕는 것 보다는 못했다. 안전벨트를 동여 메고 잠이 들었지만 깊이 잠들지는 못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페즈에서 출발 한 지 6시간이 경과 된 후 우리는 '오아시스 카페'라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들르려고 내렸는데 너무 추웠다. 버스 안에 있을 땐 에어컨 때문에 추운 줄 알았는데 밖은 더 추웠다. 이후 1시간 정도 더 달린 후 우리는 드디어 마라케시의 CTM정류장에 도착했다.
•탐사 7일째(8월 16일 일요일, 마라케시)
지난 밤 쉐프샤우웬에서 CTM 밤 버스를 타고 가느라 팀원 모두가 지친 상태였다. 밤에 편안히 자면서 가려고 프리미엄 CTM 버스를 탔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 편안한 자리는 아니었다. 또한 지금까지는 숙소에서 잤기 때문에 모로코의 밤이 얼마나 추운지 몰랐던 우리는 CTM 버스 안에서 엄청난 추위에 떨었다. 에어컨도 끄고, 온 몸을 담요로 싸매도 추위 때문에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약 일곱 시간을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마라케시로 넘어가는 중간에 휴게소를 잠깐 들렸는데, 밖은 에어컨을 켜 놓은 버스 안보다 더 추웠다. 이렇게 우리는 모로코의 사막 날씨를 온 몸으로 느끼며 정말 사막이 있는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새벽 5시 30분, 마라케시 CTM역에 내린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향했다. 그러나 숙소가 CTM역과 꽤 먼 거리에 있었고, 새벽인 시간이기 때문에 택시기사는 80디르함씩 두 대를 불렀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택시를 항상 30에서 40디르함을 주고 이용했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에 당황했다. 아무리 가격을 깎아보려 해도 기사 아저씨들의 고집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아, 여기는 마라케시구나.’ 지금까지 순조롭게 이겨왔던 가격흥정과는 다르게 듣던 대로 마라케시는 상인들의 도시였다. 그러나 끝까지 힘겨운 흥정을 한 후에, 결국 100디르함에 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그렇게 길을 잘 아는 것처럼 자신만만하던 택시기사는 분주하게 다른 기사에게 전화를 걸며 길을 묻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고, 심지어 우리에게도 자꾸 길을 물었다. 그럴수록 우리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가 예약한 호텔을 찾았지만, 자신이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으니 택시기사는 우리에게 팁을 요구했다. 새벽부터 우리는 120디르함이나 주고 하루를 시작했다. 더군다나 지난 밤, 다른 시간의 버스 자리가 없어서 밤 버스를 타고 가느라, 예약했던 숙소 하나를 가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겨우 마라케시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찾아갔지만 두 시간 정도만 머물고 다른 숙소로 옮겨야 한다는 문제가 생겼다.
숙소를 취소하고 싶었지만 수수료가 거의 방 값과 비슷해 취소하지 못하고 한 방에만 잠시 머물다 가는 쪽을 선택했다. 다른 한 방은 이용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숙소 주인에게 우리의 상황을 말하고 가격을 조금 낮춰서 계산 하는 일이 좀 어려웠다. 결국 가격 협상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마라케시의 첫 아침부터 많은 일들을 겪느라 지쳤다. 그리고 두 번째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우리의 길 찾기는 다시 한 번 시작되었다. 다음 숙소는 구 메디나에 있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핸드폰 지도 앱을 켜서 숙소를 잘 찾아가고 있었는데 사막 투어를 광고하는 한 사람이 우리의 길을 막아섰다. 집요하게 사막 투어에 대해 설명을 해준 다음, 사무실로 데려가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숙소에 찾아가는 길을 도와주겠다며 돈은 따로 주지 않아도 좋으니 이따 숙소에 들린 후에 같이 사막투어 사무실로 가자는 것이었다. 쉽게 고집을 꺾을 수 없어 일단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얼른 자리를 피할 셈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우리가 가고 있던 길을 돌려 세우고 다른 길로 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뭔가 속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는 다른 길은 지금 막혀서 갈 수 없다며, 숙소가 있는 곳은 자신이 잘 아는 골목이고 당신들끼리 찾아갈 수 없다는 말로 계속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역시나, 이 후에 사막투어를 가지 않는 다는 것과, 고생해서 길을 찾아주었다는 이유로 다시 돈을 요구했다.
다시 한 번 느꼈다. ‘마라케시는 돈이구나.’ 첫날의 마라케시의 기억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던 우리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뜨거운 오후에 이동할 수가 없었다. 해가 좀 질 때까지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가 오후 5시쯤, 제대로 된 마라케시를 보기 위해 Jema el Fna광장에 나갔다. 광장에는 낮에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미 광장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큰 광장의 중심부에는 여러 쇼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중 인상에 깊었던 것이 코브라 쇼였다. 피리를 부는 사람 앞으로 다섯 마리 정도의 코브라가 놓여있는데, 피리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코브라를 보느라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또한 반대편에는 원숭이 쇼도 있었고,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야기꾼까지, 마라케시의 사람들은 화려한 불빛 아래 그들만의 시끌벅적함으로 모든 관광객들을 매료시켰다. 그렇게 화려하고 멋진 밤이 지났다.
•탐사 8일째(8월 17일 월요일, 마라케시 → 카사블랑카)
오늘은 청년들을 만나 탐사를 하기 위해 신 메디나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를 달리면, 구 메디나의 광장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그 곳은 현대적인 건물들과 많은 상점과 카페, 세계적인 매장도 여기저기 보이고, 젊은 사람들이 바쁘게 일을 하는 곳이다. 나는 조금 더 그들의 일상에 들어왔다는 생각과, 그 일상을 알아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우리는 택시에서 내린 거리에서 가장 잘 보이는 맥도널드에 들어갔다. 이미 다른 도시에서 맥도널드의 위력을 느낀 만큼 오늘은 누구를 만날 수 있을지, 어떤 얘기를 들을 수 있을지 기대되는 마음으로 청년들을 찾았다.
역시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동양인인 우리를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티를 내려 하지는 않지만 그 궁금한 표정들은 숨길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설문지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동안 모로코 청년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을 기억하며 우리는 한 테이블, 두 테이블씩 다가갔다. “Excuse moi......." 그들은 성실히 설문을 해주고 우리에게 궁금한 점들도 물어봤다.
"왜 당신들은 먼 한국에서 와서 이런 것들을 궁금해 하는 것입니까?” 맞다. 그들은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우리가 지난 학기부터 수업을 들으며, 로컬리티챌린지를 준비하며 항상 물어왔던 질문이었다. ‘왜 우리는 모로코 현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들의 교육과 미래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인가.’ 내가 하루, 이틀 모로코를 즐기면서 우리가 정말 이 곳에서 알아가고 싶은 것에 집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잠깐 고민했다. 우리는 지금 마그레브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고, 앞으로 졸업을 하고나면 그 지역 사람들의 필요를 알고, 그 사람들과 소통하며 일을 하게 될 텐데 지금의 우리와 같은 모로코의 청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알아야 그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로컬리티챌린지를 준비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우리가 직접 모로코에서 만난 사람들은 로컬리티챌린지가 우리의 진로계획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넘게 해주었다. 평소 우리는 ‘이정도면 내가 다른 문화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왔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또한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같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실수를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이 그러한 실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평소에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직접 모로코에서 그들을 보는 나를 돌아보며,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고,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마음가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우리가 예상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현재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사람들이었다. 요즘 걱정이 있는지 물어보는 질문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고민이 없는데요.” 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모로코의 교육에 대해 물어보는 우리들을 의아해했다. 자기들 스스로가 교육에 대해 관심이 없고, 그 필요성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멀리서 온 동양인들이 아랍어와 불어의 선호도를 조사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물어보고, 지금 교육의 만족도를 물어보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왜 이 사람들은 걱정이 없는지, 왜 젊은이들은 그들이 속한 사회에 관심이 없는지, 어떻게 이 사회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이렇게도 낙관적일 수 있는지,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는 그들의 생각과 문화를 내가 기존에 해왔던 생각과, 속했던 문화의 기준으로 비교하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나라를, 특히 이 청년들을 탐방하러왔지만, 그들의 생각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문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맞는지 틀린지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우리를 이방인으로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구경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우리가 로컬리티챌린지를 준비하면서 처음에 가졌던 그들을 더 알고 싶은 마음들이 우리들만의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들은 멀리서 온 우리들에게 자신들의 어떠한 것들을 알려주려 애쓰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먹는 것, 노는 것,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들을 보여주었다. 같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며, 우리는 설문지를 통해 그들을 이해하는 것 보다 그들에 대해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알아 갈 수 있었다. 이렇게 맥도널드에서의 시간은 앞으로 우리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볼 때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었다. 많은 생각과 사람들과의 기억을 가지고 우리는 다시 Jema el Fna광장으로 향했다. 어제 봐둔 것이 있어서 그런지 Jema el Fna광장의 두 번째 밤은 뭔가 더 여유롭고 편안했다. 광장이 훤히 보이는 사층 높이의 테라스가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들려왔던 도시들을 되돌아봤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언어의 장벽에도 맞닥뜨려보고, 수 km를 이동했지만 모로코에 잘 왔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다음날이면 처음 모로코에 도착했던 카사블랑카로 돌아갈 생각을 하며 시원섭섭한 밤을 즐겼다.
•탐사 9일째(8월 18일 화요일, 마라케시 → 카사블랑카)
우리는 마라케시 역에서 기차를 타고 처음 머문 호텔이 있는 ibis gare casa voyageurs역에 12시 반에 도착했다. 이날은 미리 페이스북으로 연락했던 라바트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라 괜히 더 설레었다. 그러나 많은 일정과 이동으로 팀장인 박인수 학우가 몸이 많이 좋지 않아 숙소에서 쉬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마지막이라 다함께 가고 싶은 곳도 있었고, 만날 친구도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팀장이 없는 세 명의 팀원들은 남은 일정을 소화하기위해 casa voyageurs역 앞에서 미리 연락한 친구를 만났다.
혹시나 했는데 반가운 한국말이 들렸다. “안녕하세요, 저기... 맞죠?” 얼굴은 유럽인의 얼굴을 하고 있고, 패션은 전형적인 한국 대학생이고, 어설프지 않은 한국어 실력을 가진 이 친구가 오늘 하루 우리와 함께 지낼 매인이라는 친구였다. 페이스북의 이름도 한국 이름에다, kbs에서 주최하는 케이팝 대회에 참여한다하고, 남자친구까지 한국인인 매인이는 한국을 모로코보다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친구였다. 우리는 매인과 함께 트램을 타고 ain diab해변을 갔다. 첫 날 아쉬움을 뒤로하고 탐사를 위해 남겨둔 곳이어서 그런지 두 번째 오는 ain diab이 너무나 반가웠다. 우리는 해변에 파라솔을 펴고 앉아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가족 얘기와 친구들 이야기, 한국이야기, 모로코 여행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름 열심히 프랑스어를 써가며 도저히 못할 것 같은 말은 영어를 써가며, 가끔 분위기 전환으로 한국어로 얘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나서, 여름학교에서 만났던 Wiam이 추천해준 모로코몰을 찾아갔다. 모로코몰을 보니 카사블랑카가 모로코의 정말 큰 상업도시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안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에 모로코에서 유명한 가수를 만났다. 우리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매인이 그 가수에게 우리들을 소개하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예인 만나기가 흔한 일이 아닌데 모로코에서 정말 유명한 가수를 만나다니 정말 신기했다. 몇 분 후 매니저가 우리의 사진을 받아가더니 그 가수의 sns에 우리들이 올라갔다. ‘첫 한국 팬’이라는 말과 함께 올라간 그 사진은 순식간에 많은 모로코인들의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우리가 그 분의 팬인지, 그 분이 한국의 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더 생겼다.
그리고 우리는 매인에게 모로코의 청년들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실업문제였다. 그러나 모로코의 청년들의 실업에 대한 태도는 한국의 청년들과 많이 달랐다. 한국의 청년들은 좋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하고, 경쟁하고, 스펙을 쌓아 취업하기에 가장 좋은 모습으로 자신을 만들어내지만, 모로코의 청년들은 진로에 대한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고, 미래에 해야 할 일에 대해 걱정하고 준비하기 보다는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20대 초반에 결혼 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모로코의 여자들은 경제적 능력이 부족할수록 일찍 결혼 준비를 한다고 한다. 만약 남자도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않으면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같이 도와 생계를 이어 나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은 공부에 스트레스가 적고, 여름방학이면 대부분의 도서관도 문을 닫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여름일수록 날씨가 덥기 때문에 휴가를 가거나 놀러가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필요를 더 원하지도, 지금의 상황에 불만을 갖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매인에게 한국의 학생들은 마음껏 놀 수 없을 뿐 아니라 아무도 놀고만 있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얘기해주었을 때 놀라워했다. 그렇게 k-pop이 발달된 나라에서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삶의 구조가 서로 연관이 되지 않았나보다. 매인과 얘기하면서 이렇게 같은 사회문제에도 다른 반응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모로코인의 삶의 여유가 느껴졌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매인은 그동안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아랍어실력을 택시기사에게 마음껏 발휘했다. 모로코의 어디에서나 아랍어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아랍어를 하지 않아서 직접 듣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한 학기동안 배운 부족한 아랍어실력으로 더듬더듬 간판을 읽는 모습이 기특해보였는지 지금까지 만난 친구들은 우리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역시 아랍어를 쓰는 것이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지금 한국에 돌아와서도 모로코에서 만났던 짧고 고마운 인연들을 이어가기 위해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고마운 것도, 고생한 것도, 누린 것도 참 많았던 모로코에서의 열흘이 끝이 보였다.
•탐사 10일째(8월 19일 수요일, 모로코 → 프랑스)
오늘은 모로코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프랑스로 이동하는 날. 우리 팀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이동 준비를 시작했다. 공항으로 가는 기차가 아침 일찍부터 있어 공항에서의 출국 준비를 위해 5시 15분 기차를 타려고 기차역 플랫폼으로 갔는데 기차가 연착이 되어 20분 정도 지연되는 일이 있었다. 다소 빡빡해진 시간 탓에 신속하게 움직여 비행기를 타려고 에어프랑스의 체크인 장소로 갔는데 비행기 자리가 없다는 대답을 듣는 상황이 발생했다. 1월에 예약한 비행기 티켓이였고, 황당했던 우리 팀은 강력하게 항의를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없던 비행기 자리가 생겼고 이로 인해 정말 촉박한 탑승 시간을 남겨두게 되었다.
이번에는 출국 심사를 하는데, 수 많은 심사 부스 중 단 한 곳만 운영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했다. 직원은 있었지만 기다리는 여행객들을 보고만 있었던 모습에 우리 팀으로서는 황당할 뿐이었다. 이러한 황당한 업무 처리 덕분(?)에 많은 비행기 탑승객들이 우리와 같은 상황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비행기 출발 시간이 지연되는 상황을 발생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는 출발하게 되었고 3시간의 비행 끝에,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장에는 많은 사람이 대기중이였고, 입국 심사를 끝내고 나오니 이번에는 숙소로 이동하는 티켓을 사야 하는데 기계에 지폐가 들어가지 않는 일이 발생했는데, 동전 교환기 마저 고장이 나는 사태가 일어났고, 여러 가게에 들러 잔돈을 바꿔 겨우겨우 티켓을 구매하고 숙소가 위치한 에펠탑 근처 역으로 이동했다. 이제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데 데이터 로밍이 생각보다 안되서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길을 물어보았는데 친절하게 데려다 주신 덕분에 숙소에 잘 도착하게 되었다. 프랑스어를 서투르게 사용하는 우리의 모습에 흐뭇해 하시는 모습에 우리도 쑥스럽지만 뿌듯했다.
숙소에 짐을 빠르게 풀고 근처 서브웨이에서 점심을 해결하는데,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음료를 리필하는데 1유로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말로만 듣던 화장실을 유료로 이용하는 모습이 우리에게는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에펠탑으로 이동하였는데, 정말 처음 보는 에펠탑의 모습은 웅장하고 주변을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파리의 유명한 상징인 이유를 처음 마주하자마자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에펠탑에서 휴식을 취한 후에 우리 팀은 샹송으로도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를 느껴보기로 했다. 샹젤리제 거리를 함께 걸으면서 우리 팀은 샹송으로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장소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함께 거리를 걸었다. (기분이 좋아서 샹젤리제 샹송을 부르면서 걸었는데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샹젤리제 거리를 느껴본 후에, 우리 팀은 10여일간의 탐사 동안 그리웠던 한식을 맛보기 위해 파리에 위치한 한식당을 찾았다. 그 곳에서 그리웠던 한식을 먹으면서 모로코에서 음식이 잘 안맞아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추억했다. 식사 후, 우리 팀은 에펠탑 야경을 보기 위해, 다시 에펠탑으로 이동했다. 반짝이는 에펠탑을 바라보면서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고 팀원들 모두가 감탄하며 파리에서의 첫날 밤을 마무리했다.
•탐사 11일째(8월 20일 목요일, 프랑스 파리)
모로코에 있을 때 탐사에 많은 체력을 소모했는지 현소영 팀원이 컨디션 저하를 호소하여 아쉽게도 오늘 오전부터 시작되는 탐사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오전에 있을 베르사유 궁전을 탐사하기 위해 아침 일찍 준비를 하고 탐사를 출발했다. 비교적 이용하기 쉬운 지하철과 RER를 이용해 가려고 했으나, RER로 환승을 해야 하는 Champ de Mars Tour Eiffel 역이 공사중이어서 더 이상 운행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 무슨 상황인지 몰랐던 우리 팀은 눈치를 보며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갔고 운좋게도 환승을 잘 하여 베르사유 궁전 근처의 역에 도착했다.
프랑스에 온 우리들을 위한 하늘의 선물이였을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급하게 우산을 사고 담요를 둘러싸고 일단은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모로코에서부터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던 맥도날드로 향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신정아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셨던 베르사유에서 여유있는 샌드위치 식사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만 했다. 가격은 역시나 모로코의 맥도날드와는 다르게 비싼 편이었다. 우리는 유럽의 물가에 또 한번 놀라며 식사를 마치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향하는 도중에 여행객들을 위한 인포메이션이 있었는데 그 곳에는 놀랍게도 한국어 책자가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을 방문한다면 이 책자를 가져가는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오전 시간이였지만 베르사유 궁전에는 많은 사람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한참을 기다려 입장에 성공했다. 처음 보는 베르사유 궁전은 오랜 기다림이 무색한 듯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반해 기다림의 피로는 잊고 베르사유 궁전을 온 몸으로 느꼈다.
베르사유 궁전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베르사유 정원이 아닐까 싶다. 정말 비가 오지만 않았다면 최고의 풍경이 펼쳐질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제 정원에 막 진입해서 그 웅장함에 놀람과 함께 언제 이 정원을 다 둘러보나 라는 고민이 생겼다. 그런데 마침 우리 눈에 정원 내에서 이동이 가능한 전기차를 발견하게 되었다.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던 신연수 팀원 덕분에 우리는 약간의 유로를 지불하고 1시간 동안 전기차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는 프랑스 일정 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였다고 우리끼리 나중에 회고하기도 했다. 정원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짧은 시간동안 많은 장소를 둘러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베르사유 궁전 탐사를 끝내고 우리 팀은 파리의 제3구와 4구에 걸쳐 있으며 쇼핑 거리로도 유명한 마레 지구를 방문했다. 이 곳은 자기만의 취향과 개성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몰려드는 장소라고 한다. 우리는 이 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파리의 자유분방함을 만끽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컨디션을 회복한 현소영 팀원과 함께 면이 먹고 싶었던 우리 팀은 근처 일식집에서 우동을 먹기로 했다. 일식집이라 일본인이 운영할줄 알았는데 중국인이 일본 음식을 파리에서 팔고 있었고 그곳에 한국인이 방문을 했다. 뭔가 세계화속에 빠져든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에펠탑으로 가서 파리의 낭만을 즐기기로 했다. 에펠탑이 잘 보이는 공원 어딘가에 앉아 우리는 파리의 저녁을 느끼면서 그 동안 탐사했던 내용들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추억했다. 지난 시간들을 추억하던 도중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급하게 숙소로 복귀를 하였고,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탐사 12일째(8월 21일 금요일, 프랑스 → 한국)
오늘은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최대한 많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루브르로 향했다. 역시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소이다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미리 구매한 뮤지엄패스 덕분에 금방 입장할 수가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내부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박물관을 보는지 사람들을 보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많은 그림들을 관람하던 도중 몇일 전부터 발에 물집이 났지만 참고 걷던 박인수 팀장의 물집이 터지는 바람에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만이 남은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관람을 마칠 때 즈음, 통증이 가라앉은 덕분에 다시 탐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 방문한 프랑스학과 학생이라면 한번쯤 거쳐간다는(?)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이동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 도착해서 입장을 하려고 하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다가는 들어가서 얼마 못보고 나올거라 판단한 우리 팀은 아쉽게도 노트르담 대성당을 한바퀴 돌면서 그 웅장함만 느껴보고 근처의 광장으로 이동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면 공항으로 가야하는 우리는 1월부터 지금까지 서로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 즐거웠던 일들을 회상하며 파리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숙소로 복귀하여 맡겨놨던 짐을 찾고 바로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지난 모로코 공항에서의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신속하게 체크 인을 하고 여유있게 비행 준비를 했다. 비행기를 타려는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이번에는 비행기 문제로 비행기 이륙이 연기되었다. 30분 정도 연기가 된 후에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고 신속하게 비행기는 이륙을 했다. 비행을 하는 동안 기내식에서 먹었던 비빔밥과 미역국은 인스턴트 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맛있었다. 한식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고, 하루의 피로로 지쳐있던 우리는 잠에 들었고 일어나니 서울에 거의 도착하여 굉장히 체감상 빠르게(?) 귀국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입국 절차를 마치고 나와 우리는 무사히 로컬리티 챌린지를 다녀온 것에 기쁨을 만끽하고 지난 탐사의 아쉬움과 즐거움 이 두가지를 모두 가지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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