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3기] 한국학과 - 텐사이하꼬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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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로컬리티센터 | Date | 17-03-17 10:31 | Read | 2,774 |
본문
2017.01.22. 5일차
일요일을 맞이하여 탐사원들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침에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기상을 하였고, 기상을 한 이후에도 숙소에서 전날 마무리하지 못한 당일 보고서 작성, 사진 정리 및 앞으로의 탐사 일정을 정리하고 예산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에는 근처에 있는 공원을 방문하기로 하였으나, 지난 도쿄도청 방문 때 가이드 해주시는 분께서 추천해주셨던 요코하마를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요코하마는 숙소에서 약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휴일을 맞아서인지 가족단위로 방문한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요코하마 근처에 있는 작은 유원지에서 가족단위의 방문객, 연인들, 그리고 가끔 보이는 외국인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는 사람들이 보드를 타거나 돗자리를 펴고 얘기를 하는 등의 모습이 휴일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는 듯 하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유원지에서 시간을 보낸 후, 처음으로 만난 타코야끼를 파는 노점상에 신이나 계단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하며 간식을 먹었습니다. 유원지 맞은편에는 규모가 꽤 큰 상가 건물이 있었고, 그 곳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위 층의 상가를 조금 더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고, 이후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 바로 숙소로 복귀하였습니다.
2017.01.23. 6일차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숙소에서 출발하여 일본 국회의사당까지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도착하였고, 일본 국회의사당에서 11시 견학코스를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국회의사당은 초등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학급에서도 견학을 신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부터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꽤 다양한 연령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국회의사당 건물들은 철저하게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견학을 신청하는 절차도 엄격하였습니다. 소지품 검사부터 모든 절차를 다 마무리한 뒤, 국회의사당 견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국회의사당에는 천황과 천황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휴게실부터 실제 국회의원들이 사용하고 있는 공간까지는 볼 수 있었습니다. 천황과 천황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휴게실은 매우 고풍스러운 모습을 보였으며, 국회의사당을 견학하는 내내 경성스캔들의 장소를 방문한 것 같은 느낌과 구 서울 시청의 내부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회의사당은 매우 많은 대리석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고, 그 대리석에는 여러 종류의 화석들도 많아 화석의 보고라고도 불린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본회의장에 도착해서는 일본 국회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국회의 모습은 우리나라 국회와 비슷하였지만, 국회가 개회할 때 천황을 모시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 국회의사당의 외부 역시 구 서울시청과 비슷하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사진 촬영이 금지된 탓에 자세한 사진 자료는 남길 수 없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국회의사당은 크게 천황과 공산당의 유무로 차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단 일본의 국회의사당에 구 서울시청과 외관이 비슷한 건물이 존재하였으나, 국회의사당이 매우 넓고 건물들이 많아 비슷한 외관의 건물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일본 국회의사당과 구 서울시청은 건물의 크기와 구조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있었으며 비교하기에는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일본과 한국의 국회의사당 내부와 구성에 대해 비교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일본의 국회의사당은 건물들의 외곽으로 울타리가 높게 쳐져있으며 중간중간 경계를 서는 경찰들이 있어 내부를 확인하기도, 들어가기도 매우 어려운 반면, 한국의 국회의사당은 밖에서도 쉽게 국회의사당 건물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건물 외부를 구경하러 쉽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일본 국회의사당 본 건물 1층에는 현재 3개의 인물상이 세워져있는데, 그 중 이토 히로부미의 동상을 보며 관점에 따라 다르게볼 수 있는 인물들의 업적을 알 수 있었고, 아직도 청산하고 정리해야할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시부야 번화가로 나가 오랜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잠시 쉬며 국회의사당에서의 느낌 등을 정리한 뒤 도쿄타워로 향했습니다. 도쿄타워는 파리의 에펠탑과 외관이 매우 흡사하였고, 외국인 관광객들 또한 매우 많았으며 도쿄 시내의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높은 건물들에 아직도 불이 켜져 있는 모습을 보며 매우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와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고 있을 그 사람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원피스’를 테마로 삼아 ‘도쿄 원피스 타워’라는 별명을 가지고 홍보 및 운행을 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한번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그것을 잘 활용하여 특징 및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모습에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대해 반성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도쿄타워에서의 관람을 마친 후 본 탐사원들은 다시 숙소로 들어와 회계정리, 각자 쓴 작품 작성 및 수정, 간이보고서 작성, 사진 및 동영상 정리 등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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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이보람
빠르게 걸음을 재촉해본다.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역에 도착해야만 한다. 드디어 신문물을 경험하고 새로운 지식들을 마주할 수 있는 동경으로의 유학길을 오르는 순간이다. 경성에서 동경으로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동경으로 갈 수만 있다면 이 시간쯤은 가볍게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차에 탑승하여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도 동경에 대한 정보가 담긴 책을 읽으며 눈을 감았다 뜨면 동경에 도착해 있기를 바라본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다. 문득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동기들이 쉬는 시간을 맞이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다들 들뜬 목소리로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멕시코, 네덜란드, 일본, 미국 등등... 아직도 잠에서 깨지 않은 것 같았다. 겨우 동경하던 곳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동경해야 할 곳들이 많이 남았다니..
동경하는 곳이 신비루처럼 가까워지는 듯 사라져가는 꿈을 꾸고있는 것 같았다.
150m의 행복
최진
미나토구의 어느 역에 내린 우리.
옆 친구는 도쿄 타워를 보러 가자고 한다
썩 내키지 않는 나의 발걸음은 도쿄 타워를 향한다
그 모양도 못내 아쉬웠다
프랑스인지 일본인지 전혀 분간이 안 가는
저 멀리 빛나는 철조물 하나
이미 퉁퉁 부어버린 내 발은
아직도 궁시렁 거리며
도쿄타워 입구로 들어서는데
10m
20m
50m
.
.
.
150m, 띵-동
그 곳에선
온 세상이 어둡고 도쿄만 빛나고 있다
물감을 흩뿌린 듯 형형색색의 도쿄
내 눈에 다 담으려 하니
머리가 핑 돈다
도쿄에 발붙인 지 6일차,
처음으로 도쿄는 황홀함으로 다가왔다
2017.01.24. 7일차
도쿄역은 사진에서 보던 것과 같이 구 서울역과 매우 흡사한 외관이었습니다. 유동인구 또한 매우 많았고, 노선도 매우 복잡한 내부를 지나 본 탐사원이 알고있던 도쿄역 외관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도쿄역의 외관은 구 서울역과는 다르게 높이가 더 높고 옆으로도 더 넓었습니다. 비슷한 양식의 건물이 크기가 다른 것을 보고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건물 하나하나부터 얼마나 위압감을 주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재건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복원작업이 매우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본 탐사원이 알고 있던 도쿄역은 현재 도쿄 호텔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예전의 건축양식이 그대로 남아있는듯한 도쿄역 건물을 호텔로 사용하여 접근성이 좋고 매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듯 하였습니다. 호텔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굉장히 잘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도쿄역 앞은 현재 공사를 하고 있는 부분이 많아 멀리서 전경을 담은 사진을 찍지는 못하였지만, 보존 현황과 옛날의 도쿄역 사진과 그 설명들이 지하철역 내부에 전시되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쿄역 바로 앞에 있는 규모가 있는 쇼핑몰 옥상 테라스에 올라가서는 도쿄역을 위에서 바라볼 수 있었으며, 올라가는 중간중간 유리창 너머로 도쿄역의 모습 또한 볼 수 있었습니다.
도쿄역 근처에 머무는 내내 알지못하는 위압감에 계속 짓눌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시골에서 도시로 갓 상경하여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고, 커다랗게 보이며 내가 작아지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 문인들에게 경성역은 근대화와 신문물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나섰다. 나는 좀 야맹증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밝은 거리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리고는 경성역 일이등 대합실 한곁 티이루움에를 들렀다. 그것은 내게는 큰 발견이었다. 거기는 우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안 온다. 나는 날마다 여기 와서 시간을 보내리라 속으로 생각하여 두었다.
(중략)
커피- 좋다. 그러나 경성역 홀에 한 걸음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내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그것을 깜빡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또 아뜩하였다. 나는 어디선가 그저 맥없이 머뭇머뭇하면서 어쩔 줄을 모를 뿐이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그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이상의 <날개>에서 다음과 같이, 그리고
‘그는 눈앞의 경성역을 본다. 그곳에는 마땅히 인생이 있을 게다. 이 낡은 서울의 호흡과 또 감정이 있을 게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같이 경성역이 소설의 배경이 된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비슷한 외관과 같은 양식을 가지고 있는 두 역들을 방문하며 만약 그 시대에 우리나라 경성과 동경이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면 얼마나 더 다양하고 풍성한 작품들이 등장했을지 아쉬움을 가지고 일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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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압감
이보람
구 경성역과 동경역, 지금의 서울 문화 청사 공간과 현재 호텔로 사용되고 있는 동경역의 옛 건물들은 외관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용된 자재 및 구성부터 기차역이라는 그 목적까지 비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서울 문화 청사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 경성역은 현재 말 그대로 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곳에서는 전시회 등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실제 도쿄역을 방문한 결과 예전에 지어진 도쿄역의 건물들은 호텔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옛 건물과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을 연결하여 지하철이나 기차를 타러 도쿄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거쳐갈 수 있게끔 되어있었으며, 도쿄역 안에는 시즌별로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 또한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부와 사용 목적 또한 비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지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도쿄역이 매우 위압감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구 서울역과 도쿄역이 외관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그 넓이와 높이가 매우 달랐습니다. 도쿄역은 구 서울역의 넓이로는 약 3, 4배 높이로는 2배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옛날 일제강점기 시절 동경이라는 장소를 방문한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끼던 그 유학생, 문인들이 비슷하지만 크기가 다른 건물에 들어서는 기분이 어땠을지 가히 짐작조차 어려웠습니다.
그 어두운 일제강점기 시절, 건물에서조차 위압감을 드러내고 우월감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 같아 우울함을 느끼면서도 그 건물의 모습과 호텔로 사용하는 모습에 감탄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대표적인 건축물 하나를 보더라도 어떻게 조선을 점령하고 지배하려고 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약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호텔로 멋있게 사용되고 있는 도쿄역의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마치 내가 그 옛날 동경으로 유학을 온 학생이 번화가에서 길을 헤매며 높은 건물과 넓은 부지에 위압감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김보경
일본에 발을 내딛던 첫 날은 이동하기 바빠 몸은 도쿄역에 있었으나, 시선은 없었다.
엿새가 지나 다시 찾은 도쿄역. 구 서울역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곳이다. 그렇지만 그 크기가 3배는 되는 것 같았다.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읽어보니 1951년에 복원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정말 깨끗했다. 호텔로 사용되고 있기도 했고. 하룻밤에 3만엔 즈음 하려나. 서양 건축 양식 느낌이 많이 나는 붉은 벽돌의 서울역 그리고 도쿄역은 내부도 아름다웠다. 높은 천장에 하얀 기둥들. 내 시선을 꽤 오래 머물게 했다.
지금은 다양한 눈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바쁘고 복잡하게 움직이는 곳이다. 그 중 나는 까만 눈을 가진 한국인이다. 5초만 걸음을 멈춰 서 있어도 나만 빼고 바쁘게 움직인다. 다들 어디로 갈까. 난 또 어디로 가야 할까.
체크인, 도쿄역
최진
지하철 도쿄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면 구 동경역 건축물을 볼 수 있다. 구 동경역은 마치 사진을 인쇄한 듯 그 색과 길이가 일정했다. 구 동경역 건물 중 하나는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구 경성역 건물이 문화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듯 그들도 이 공간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호텔 내부를 보고 싶어서 자동문을 열었다. 고풍스러운 소파와 책상, 그리고 어리둥절한 외지인을 맞이하는 도쿄역 호텔리어의 어색한 미소. 그 어떤 것 하나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은 없었다. 일제시대의 동경 유학생들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허겁지겁 그 곳을 쫓기듯 나왔지만 사실 나는 그 곳에 머무르고 싶었다. 도쿄역 호텔에 머무는 것은 도쿄 여행자들의 로망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실 다른 호텔방이랑 별 다를 게 없으리라. 다들 있는 침대와 커튼, 그리고 고요함이 감도는 방이 나를 반길 것이다. 하지만 그 방에 체크인 하는 순간, 도쿄가 내 방으로 들어 온 듯 뭔가 모를 설렘에 잠 못 이룰 것이다. 마치 도쿄에 체크인을 하는 느낌 같아 그 호텔은 참으로 잘 지은 것이라, 나는 감탄하며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2017.01.25. 8일차
도쿄대학을 방문하여 한국문학을 지도하고 계신 이형진 교수님께 지도를 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도쿄대학에서는 ‘한국학’이라는 국제지역학적 개념은 없고, 대학원에 한국문화조선연구과가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보통 한국 역사, 사회학, 국어학, 한국 불교 등에 대한 강의가 주를 이루고, 주로 한국어로 진행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도쿄대학에서는 아무래도 일제강점기 시대 문인들의 작품보다는 주로 현대 작가의 작품들, 특히 여성 문인들의 작품들이 주로 관심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도쿄에서는 한국에서보다는 조금 더 수월하게 북한의 문학서적 등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꽤나 최근에 발행한 2011년도의 서적을 보며 외국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면 조금 더 트인 시각으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일제강점기 문학보다는 더 이전시기의 문학이나 해방 이후, 현대 문학의 연구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성 문인들의 작품이 관심을 받는 만큼 식민지시기부터 현대까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단편집이나 수업에서 그 시기를 다루기는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1920년대 김동인의 <감자>와 같은 대표적인 소설 작품들은 일본어로도 번역이 되어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의 학교생활은 어떠한지, 그리고 주변에 볼거리와 조금 더 참고할만한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 안내를 받는 시간에는 도쿄대학 고마바 캠퍼스 근처에 있는 민예관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민예관을 세운 사람은 조선과 관련된 수집품들 또한 많이 가지고 있으며 전시까지 이루어진다고하여 다음날 방문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후에는 근처에 있는 절과 공원을 거니는 시간을 가진 뒤 아사쿠사에서 크루즈를 타고 이동하고, 오다이바에 도착하여 자유의 여신상 복제본을 볼 수 있었으며, 이후에는 자동무인열차를 타고 도쿄 시내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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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과 현재의 것
이보람
어느새 제출한 계획서에서의 공식적인 방문일정들을 마무리하는 하루가 다가왔습니다. 도쿄대학을 방문했으며, 그 곳에서 대학교 캠퍼스를 살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도쿄대학에서도 역시 옛 건물과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탐사를 하며 살펴보았던 건물들이 모두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구 건물과 신 건물이 함께 어우러져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영주가 존재하던 시절 건설하였던 문까지 실제로 사용하며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신구의 조화라고 하면 옛것을 잘 보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먼 미래를 바라본다면 옛것을 잘 보존해 현재와 조화를 이루게 하며, 또한 현재의 것이 옛것이 될 때를 대비하여 현재의 것을 처음부터 잘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현재의 문화가 미래에 과거의 문화가 되어 기록으로 남게되는 것처럼, 현재 지어지는 건축물들 또한 설계를 잘 하여 유지보수만 잘 하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특정한 장소를 방문하지 않는 이상, 옛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우리의 삶과 옛것을 잘 보존하고 현대의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일본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명문대를 간다는 것은
최진
도쿄대 아카몽 앞에는 사람들이 늘 붐빈다. 매섭게 부는 1월의 겨울바람에도 삼삼오오 모여 아카몽을 카메라에 담아가고 있다. 마치 서울대학교 정문 앞의 ‘샤’ 조형물을 담아가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비록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교복을 입고 있는 여학생들은 ‘동경대’를 ‘동경’하고 있는 것일지도.
캠퍼스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웅장했다. 구 건물은 구 건물 나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고 신 건물은 이를 도와주는 멀찍이서 빛을 내고 있었다. 도쿄대 학생들은 방학에도 열심히 스터디룸에서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을 보니 정말로 무언가에 열중한 것처럼 보였다. 문득 ‘나는 무언가에 저렇게 열중한 적이 있었나.’ 내심 그들이 부러워지는 나였다.
어떠한 건물 하나도 눈에 튀지 않고 그들끼리 조화를 이루는 모습. 그 모습은 고스란히 명문대의 자부심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굳이 웅장한 건물로 우리를 압도하지 않아도 그들의 역사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었다. 나지막이 우리를 부르는 도쿄대의 연못. 그 연못의 따사로운 햇살은 마치 일본 최고 명문대의 자부심과 같았다. 불쾌하기보단 부러움으로 가득한 햇살이었다.
2017.01.26. 9일차
본 탐사원들은 전날 방문하지 못했던 일본 국립박물관 대신 전날 교수님과의 면담을 통해 알게된 민예관을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The Beauty of Korean Crafts라는 조선 수집품들의 전시는 2016년 4월 2일-6월 12일에 끝났고, 현재는 SOETSU Yanagi and Artist-Craftsmen of The Minegi Movement 전시 중이었습니다. 민예관은 신청서를 작성한 후 확인절차를 거쳐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으며, 그 사진들은 모든 저작권이 민예관에 있으며, 레포트 제출 용도 이외에는 사용을 금하며, 문제가 생길시 촬영을 한 본 탐사원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신청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관리자가 촛불시위,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물어보아 우리가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조금 더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예관은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사람이 설립한 건물로써, 일본의 민예품은 물론이고 조선시대의 민예품들 또한 보관, 전시되어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본 탐사원들이 방문했을 시기에는 조선시대의 민예품의 전시기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의 민예품들만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방문 이후에는 다음날 출국을 위하여 이른 시간에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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